< -- 45 회: 부족한 재정을 벌충하기 위한 묘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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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승지 이항복이 이진의 명을 받고 원균의 장계를 읽어 내려갔다.
[신 북병사 원균 업드려 고하옵니다. 다름 아니옵고 선대왕 시절 니탕개와 함께 난을 주도했던 우을지가 규합한 무리 6,000과, 내통한 번호(番胡:귀화한 여진족) 500인을 앞세워 훈융진을 침탈한 바, 훈융진 첨사 신상절(申尙節)이 수비의 어려움을 호소하와, 구원 차 떠나며 1차 장계를 올리나이다. 뜻과 같이 아니할 때 조정의 지원을 바라나이다. ........]
“흐흠........! 또 북변인가? 어찌 했으면 좋을지 그 대책을 말하시오 먼저 병판부터 말씀해 보시오.”
이진의 지적에 병조판서 정언신이 즉각 받아 발언을 했다.
“니탕개의 난 때도 조정에서 지원군을 파견한 바, 정예를 선발하여 급파하는 것이 옳을 듯 하옵니다. 전하!”
“다른 분들의 의견은 없소?”
“큰 무리가 아니니 괜한 소요 일으킬 필요 없이, 일차적으로 지켜보다가 상황에 따라 원군을 파견하심이 옳은 줄 아옵니다. 전하!”
우의정 이산해의 발언에 이어 모처럼 만에 영의정 이발이 발언을 했다.
“우선 함경도 감사 휘하 권징의 본 병영 병력과 가까운 남병사 박선(朴宣) 휘하의 병력을 급파하여 구원하시옵고, 그래도 사태가 진정이 되지 않을 시에는, 그제야 중앙의 지원 병력을 파견하심이 가한 줄 아뢰오.”
여기서 남병사 박선에 대해 잠시 소개하면 이렇다.
니탕개(尼湯介)의 난 때 왕명으로 오운(吳澐)과 함께 조방장(助防將)이 되어 용사 800명을 거느리고 파견되어, 동관진(潼關鎭)에서 적을 물리치는 큰 공을 세워, 저 작년(1587년)에 전라좌수사에 보임된 사람이었다.
이후 이진이 이순신을 전라좌수사(절도사)로 보임할 때 해임되었다가, 금번 대신들의 논의에 의해 다시 남병사로 추천받아, 이진에 의해 윤허 받은 사람이었다.
“좋소! 영상의 말이 타당하니 그대로 행하되, 혹시 모를 변고에 대비해 훈련원 지사 신립 휘하의 병력을 대기시키도록 하는 게 좋겠소. 곧 조치를 취하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이로써 아침 조회가 파했다.
모든 대신들이 떠나고 이진 또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비 개인 대전 뜰을 거니는데 ,퍼뜩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검계 계원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시기적으로 벌써 순(旬:열흘) 전에 모두 훈련을 마쳤을 것이다. 그런 그들을 바쁜 정무로 인해 깜빡 잊고 있었다는 생각에 이진은 곧 송익필을 불러 검계 두령들을 등대하도록 했다. 그런 그가 산보를 마치고 다시 사정전으로 들어가려는데 저쪽에서 바삐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눈여겨보니 강녕전 자신의 침소를 수직하는 궁녀였다. 이에 이진이 잠시 기다리니 그녀가 다가와 깊이 허리 숙여 고했다.
“외조부께서 오셨다고 짬이 나면 잠시 들렸다 가심이 어떠하실지, 감히 여쭈옵니다. 전하!”
“알았다. 곧 가마.”
“망극하옵니다. 전하!”
깊이 고개를 조아린 상궁이 물러가자 이진은 수행인들을 데리고 천천히 자신의 거처인 강녕전으로 향했다.
“주상전하 납시오!”
수염 없는 새하얀 얼굴, 굽은 어깨, 계집같이 가녀린 목소리로 상온이 고하자, 전각문이 활짝 열리며, 몇 몇 사람이 부복해 이진을 맞아들였다.
“신 김희철 주상전하를 뵈옵나이다.”
“신 김예직 주상전하를 뵈옵나이다.”
“신 김의직 주상전하를 뵈옵나이다.”
“그만들 일어나세요.”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전하!”
조선의 제1세 앞에서는 외조부가 외삼촌들이고 예외가 없었다. 모두 부복하여 고하는 그들을 손수 일으켜 세운 이진이 보료에 앉으며 말했다.
“정무에 바쁘다보니 격조했습니다. 외조부님!”
“황공한 말씀을........!”
비로소 바르게 자세를 갖춘 외조부 김희철이 말은 그러하나 덤덤한 표정으로 받자, 이진이 궁금한 것을 물었다.
“사포서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직도 근무하고 있사옵니다. 전하!”
“흐흠..........! 그렇군요.”
“오늘은 모처럼 비번인 줄 안 자식들이 전하나 한 번 찾아뵙자고 조르는 바람에........”
“아주 잘 오셨습니다. 외조부님! 그래, 큰 외삼촌은 무과준비를 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아, 그게 글쎄.........”
머리를 긁적이며 답을 제대로 못하는 김예직이었다.
“준비한다고는 했으나, 영 자신이 없는 모양입니다. 전하!”
“허허........! 무인이 자신감 빼놓으면 무엇이 남습니까? 며칠 안 남았을 텐데요?”
“네, 전하!”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숙이는 모양새가 정말 영 자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 예직을 향해 이진이 말했다.
“금번 증광시에서는 예년에 비해 배로 뽑을 예정입니다. 변방이 소란스러우니 이에 대처할 필요가 있어서 지요. 하니 자신감을 갖고 응시해보세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비로소 만면에 기쁜 빛을 띠고 고개를 조아리는 이진이었다.
이진은 이 큰외삼촌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그의 기록을 보면 좀 별난 사람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직이 없는 선비로서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하였다. 1593년에 무과에 급제한 뒤, 1604년 평안도 용천군수(龍川郡守)를 거쳐, 1610년(광해군 2) 정3품 중추부첨지사(中樞府僉知事)가 되었다.
1616년 함경도병마절도사가 되어 부임하였다가 탐학한 행위가 많다 하여 삭출되고, 뒤에 재기용되어 포도대장, 삼도수군절도사를 역임하였다. 그 사이 모역죄로 처형된 허균을 비호하였다 하여 탄핵받았고, 1618년에는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위하려 하자 이를 극간하다가 파직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광해와 임해의 외숙이기도 한 그는 임금에게 죄를 청하였으나, 광해군 때 대북파(大北派)의 무고로 여러 차례 관직에서 물러난 사실이 확인되어, 오히려 포상을 받은 이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진보다 아홉 살이 많아 현 25세의 혈기 방장한 청년이었다.
이에 반해 외조부는 선조의 장인 되면서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조헌(趙憲)의 휘하에서 비장으로 출전하여 크게 공을 세웠고, 관직은 상장(上將)까지 올랐다. 그러나 금산싸움에서 왜적과 육박전이 벌어져, 조헌의 휘하에서 김절(金節), 변계온(邊繼溫), 양응춘(楊應春) 등 16인의 비장과 함께 혈전을 벌이다가 전사한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올곧은 사람이라 하겠다.
작은 외삼촌 김의직은 전혀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별로 큰 인물은 못 되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아무튼 이진은 이번에는 작은 외삼촌 의직에게 시선을 돌려 물었다.
“지난번에 한 번 찾아뵌 일이 있는데 뵙지를 못했습니다. 요즘 뭐 하고 지내십니까?”
“그 아이는 문과를 응시한다고는 하나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있사옵니다.”
의직은 살짝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고, 대신 부친이 대답하는 이들의 이상한 모양새였다.
“흐흠.........!”
무언가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진이 갑자기 고개를 들고 외조부에게 물었다.
“고생 좀 해보시겠습니까?”
“네?”
이진의 생뚱맞은 말을 이해 못한 외조부가 의아한 얼굴이 되어 곧장 반문했다.
“자염이 아닌 천일염이라고 새로운 방식으로 소금을 제조하려합니다. 이를 전국적으로 보급시켜 소금에 관한한 걱정이 없는 나라로 만들려 하니, 외조부께서는 사포서에서 손을 떼시고 이일을 맡아주시죠?”
이렇게 시작된 이진의 소금에 관한 강의가 근 이각 동안 이루어졌다. 자세한 생산방식이며 이를 어떻게 전국적으로 보급할 지에 대한 방안이었다. 또 기구로는 기존 염장은 천일염의 생산이 조선의 수요를 추월할 때까지만 존속시키기로 하고, 그때 까지는 염장도 새로운 부서인 사염감(司鹽監)에 부속시키기로 했다. 이 사염감의 정2품 제조를 맡아달라는 말에 외조부는 그 연세에도 얼굴이 벌개져 아무런 말을 못했다.
“어쩌시겠습니까?”
“신이 감당할 수 있을 지 두렵사옵니다.”
“작은 외삼촌도 정8품 봉사로 임명할 테니, 현장에서 데리고 쓰시죠. 제 구상으로는 조선의 첫 염전을 여기서도 가까운 제물포 주안에 만들려하니, 그곳의 현장 책임자가 되어 부국의 1등 공신이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합격하지 못했다고 벼슬에 임명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현량과라고,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인재를 천거에 의해 대책(對策) 만을 시험보고 채용하는 예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지금의 좌의정을 맡고 있는 성혼이었다.
그는 초시 합격 후 상을 당하는 바람에 그길로 복시에 영원히 응시하지 못해 현재에 이른 사람이었다. 그래도 선조에게 수많은 초치를 받은 사람이었으니, 사감이 없지 않지만 올곧은 외조부라면 잘 하리라 이진은 믿었다.
아무튼 주안은 1907년 우리나라의 첫 천일염을 제조한 곳이기도 하고, 이외 태안, 부안 염전이 유명한 곳이었다. 이진의 말에 김의직이 얼른 부복해 감사를 표하니 외조부가 쓴웃음을 지으며 마지못해 허락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그런 아들을 내려다보는 김희철의 눈에는 애잔한 빛이 가득했다. 그런 둘을 바라보는 큰 외삼촌 김예직의 눈에도 기대가 가득했다. 그러나 이진은 외면하고 말했다.
“큰 외삼촌은 금번 과거준비나 잘 하세요. 배로 뽑는데도 합격 못하면 안 되지요.”
“알겠사옵니다. 전하!”
대답은 잘 하나 입맛이 쓴지 표정이 별로였다.
때맞추어 조촐한 주안상이 들어왔다. 자신은 시킨 일이 없는데 알아서 행하니 기특해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이 행했다는 듯, 개똥이 얼른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고개를 끄덕인 이진이 몸소 술병을 들어 모두에게 술을 쳐주고, 외조부로부터도 한 잔을 받았다.
그리고 이진이 술을 마시지도 않은 채 입을 떼었다.
“얼마 전 명종대왕 시절에도 윤임, 윤원형 등 외척의 발호가 있질 않았습니까? 해서 과인은 지금까지 가까운 친인척이라면 아무도 등용하지 않았습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과인의 장인과 처남들은 아직도 충주에서 땅을 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권력과는 크게 무관한 곳으로 배치를 하는 것이니, 그런지 아시고 소임에 힘써 주세요.”
“망극하옵니다. 전하!”
고개 조아리는 그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데, 대전대관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고했다.
“검계 두령들 입시했사옵니다. 전하!”
“아, 그렇지! 잠시 들고 계세요.”
“네, 전하!”
이진은 그들을 내버려 두고 잠시 밖으로 나왔다.
“전하!”
“왔는가?”
일제히 예를 표하는 검계의 세 두령을 보고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받은 이진이, 안에 있는 사람이 듣기를 꺼린 듯 몇 보 움직였다. 이를 따라 세 사람도 같이 움직였다. 이진이 눈앞에 둔 세 사람을 둘러보고 물었다.
“훈련원에 입소했던 저들은 모두 수료를 했지?”
“그렇사옵니다. 전하!”
백일문, 김득신, 황명호 등 검계 세 두령이 일제히 고개 조아려 씩씩한 목소리로 답변을 했다.
“그들을 유용하게 쓰긴 써야겠는데 말이야.........”
말을 길게 끌며 생각에 잠겼던 이진이 자신의 소회를 솔직히 토로하며 말했다.
“과인이 왕이 되었다고 해서 독단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오산이었어. 해서 말인데........ 과인이 사저에 있을 때, 내금위로 임명한 적이 있잖은가?”
“분명 그랬사옵니다. 전하!”
백일문이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하지만 말이야 드러난 칼보다는 드러나지 않는 칼이 무섭다고 말이야. 자네들이 계속해서 음지에서 일을 해주면 안 되겠나?”
“전하와 한 번 맺어진 이상 죽음이 저희들을 갈라놓기 전에는 그 누구도 전하와 저희 사이를 떼어놓을 수 없음입니다. 음지든 양지든 저희들은 상관없사옵니다. 무슨 일이든 믿고 맡겨만 주십시오.”
백일문의 감동한 이진이 급히 셋의 손을 차례로 잡아가며 고마움을 표했다.
“고맙네. 과인이 그대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일생일대의 홍복이 아닐 수 없네. 해서 말인데........ 지금과 같이 음지에 숨어서 중앙이나 지방의 중요 인물들의 뒤를 캐고. 한 가지 더 중요한 일을 해주었으면 주겠는데........”
“계원 중에 외국 말에 능한 자들이 있나?”
“별 부류가 다 모인 저희들입니다. 대개가 먹고 할 일 없는 한량들인지라, 무예를 위주로 배웠지만 때로 심심풀이로 왜어, 만주어, 명나라 말을 배운 자들도 꽤 됩니다.”
“그것 참, 반가운 현상이군. 과인이 그런 자들에게 특별히 명을 내리려 하니, 좀 전에 말한 3국의 군사정보는 물론 산업정보도 캐오는 거야. 예를 들면 명국의 비단 제작 기술이라든가, 왜의 군사 움직임과 무기 제조법 등 우리 조선에 도움 되는 것이라면 다 좋아.”
“그렇다고 그대들의 사재를 털어서 하라는 것이 아니라 과인의 내탕금에서 계원들 모두에게 일정 이상의 녹을 내릴 것이야. 하고 외국으로 간 자들에게는 집안 전체를 과인이 책임지도록 하지.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대들이 바깥에 거주하니 과인이 이래저래 불편해 해서 3교대로 과인의 주변에 머무는 것이 어떻겠나? 물론 벼슬이 있어야 가능하지. 우선은 8품 부사맹으로 참아주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그들의 감사에 오히려 이진이 더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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