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7 회: 왕으로서의 고단한 하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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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세월은 팔월 하순으로 국상으로 인하여 중추절이 어떻게 갔는지 몰랐고, 또 올해는 음력으로 윤달까지 들었으므로, 양력으로 치면 10월 하순 쯤으로, 이미 계절은 가을이었다. 어느덧 색색으로 물들어가는 단풍을 구경하며 소주방으로 가는 길엔, 추풍(秋風)이 건듯 불어 메말라버린 낙엽을 이리저리 흩고 있었다.
계절은 만추로 치닫지만 삼천 궁녀는 고사하고 부인 하나로 만족해야하는 이진으로서는 욕구불만이 안 생길 수 없는 계절이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키는 대로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법. 김 개똥을 한 번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진의 걸음걸이가 빨라지자, 또 다시 종종 걸음을 치는 수행원들이었다.
내관과 제조상궁, 지밀 여기에 김체건과 김명순 외에 내금위의 호위까지 이진의 빠른 걸음에 허둥거릴 때 어느덧 저만치 수라간(水刺間)의 현판이 보이고 있었다. 수라(水刺)는 원래 몽고어(蒙古語)로 탕미(湯味)를 뜻하며, 수라를 짓는 주방(廚房)을 의미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오싹 한기를 느낀 이진이 멈추어 서서 최측근에서 모시는 지밀상궁들에게 물었다.
“과인이 밤에는 좀 춥다. 너희들은 어떠하냐?”
“쇤네들도 춥사옵니다. 전하!”
“온돌로 된 방은 없느냐?”
“천추전과 만추전에 온돌 시설이 있사오나, 만추전은 이미 빈전이 설치되어 있으므로.......”
“무슨 이야기인지 알았다. 오늘밤부터는 내 천추전에서 취침을 할 테니, 그곳에 불을 넣도록 해라.”
“네, 전하!”
사정전에는 온돌 시설이 없었다. 그래서 이진은 온돌로 개조할까 생각을 해보았으나, 이는 땔감 즉 산의 푸르름과 관계되는 일이므로, 함부로 결단하기 어려웠다. 아직 조선은 온돌이 크게 보급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도 산은 푸르렀고 민둥산은 없었다.
그러나 만약 이를 왕실부터 온돌로 꾸민다면 이를 따라 대갓집에서 먼저 시행을 할 테고, 이는 결국 전국적으로 번져나간다는 뜻이니 생각은 간절해도 시행할 수 없는 난점이 있었다. 그래서 좀 추우면 화로나 끼고 생활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이진이었다.
물론 더 추워지면 천추전으로 이거할 생각을 갖고 있는 이진이었다. 이진이 상념을 접고 다시 옥보를 옮기자 내관이 목청껏 뽑았다.
“주상전하! 납시오!”
이에 따라 석참을 준비하던 궁녀들이 일제히 수라간을 뛰쳐나와 양옆으로 길게 나누어 줄을 지었다.
“무엇이 타는 것 아니냐?”
“아 차차차.........!”
이진의 지적에 몇몇 무수리들이 황급히 달음박질을 치고, 음식을 만드는 최종 책임자인 정5품 주방상궁(廚房尙宮) 이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옥체 미령하셨사옵니까? 전하!”
“그래. 요즈음 격무로 입맛이 없는데도 맛있게 조리를 해주는 바람에 과인이 잘 먹었다. 해서 내 은상을 내리고자 찾아왔다.”
“망극하옵니다. 전하!”
감격한 주방상궁 이하 모두 맨바닥에 엎어지려하기에 이를 얼른 제지하는 이진이었다.
“그만........!”
그러나 600여 궁궐에 기거하는 궁녀 나인들 중 누가 이런 은혜를 입었던가! 모두 치마가 더렵혀지거나 말거나 예를 다하고 일어섰다. 이를 보고 혀를 차며 이진이 말했다.
“너희들의 과례로 세답방(洗踏房) 아이들만 고생하겠구나.”
여기서 세답방은 궁의 빨래를 전담하는 곳이다. 아무튼 이렇게 말한 이진이 제조상궁을 돌아보며 물었다.
“내가 경황이 없어서 묻지 못했는데 부제조상궁이 없는 것 같은데.......?”
“네, 지난번 병마에 희생된 이래로 아직 뽑지 않은 것으로 아뢰옵나이다.”
“흐흠.........! 그래?”
부제조상궁은 궁녀들의 최고 우두머리인 제조상궁 버금 위치로, 이 또한 왕의 측근에서 섬기며 아리고(阿里庫)상궁이라고도 했다. 내전별고(內殿別庫)를 관리하고, 옷감, 그릇 등 안 곳간(內庫間)의 출납을 관장하였다. 즉 재물을 전적으로 관리하는 상궁으로 발음상 ‘아랫고상궁’이라 불렸다. 그러니 그 권세가 어떠할 지는 상상이 가는 일일 것이다. 내심 이 직위에 포상으로 개똥이를 염두에 둔 이진이 말했다.
“내 금명간 임명할 것이니 그리 알라. 하면 이들의 은상은 우선 제조상궁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해라.”
“네, 전하!”
제조상궁의 복명을 듣는 등 마는 등, 죽 수라간 궁녀들을 살피던 이진의 눈에 고개를 푹 숙인 가운데에서도 열심히 곁눈질을 하고 있는 김 개똥이 들어왔다.
“아! 너........!”
이진의 지적에 얼른 한 걸음 앞으로 나선 김 개똥이 날아갈 듯 절을 하며 말했다.
“네, 전하! 김개시(金介屎)라 하옵나이다.”
“지난번 과인과 마주친 일이 있지? 과인이 임해군 시절에 말이야.”
“네, 그렇사옵니다. 전하!”
“그것도 인연이니 오늘부터 지밀상궁으로 과인의 곁에서 머물도록 해라.”
“망극하옵니다. 전하!”
얼른 부복하는 개똥이나 또 토를 다는 사람이 있었다. 제조상궁이 그녀였다.
“하오나 전하, 대령상궁을 함부로 임명하시 기에는........”
“시끄럽소. 그럼, 군왕이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뭐란 말이오. 일단 오늘은 거두고 과인과 상의합시다.”
“황송하옵나이다. 전하!”
이진의 명에 어쩔 수 없이 명을 받드나 제조상궁의 얼굴에는 탐탁지 않은 기색이 완연했다. 이에 내심 이진은 괘씸한 생각이 들어 음흉한 간계를 생각해 내었다. 이후 이진은 잠시 수라간을 둘러보는 척하다가 개똥을 딸려 함께 경복궁으로 돌아왔다.
* * *
그날 밤.
해시 초(亥時 初: 밤 9시).
이진은 보던 책을 덮어놓고 소리쳐 측근들을 불러 모았다.
“게 아무도 없느냐?”
“네, 전하!”
이진의 명에 사방에서 내관과 궁녀들이 모여들었다.
“춥다. 천추전에 불은 넣었겠지?”
“네, 전하!”
지밀상궁 하나가 얼른 허리 숙여 대답했다.
“그곳으로 가자!”
“네. 전하!”
일어나 옥보를 옮기려던 이진은 혹시 몰라 화로의 불씨를 살펴보았으나, 이미 화로는 싸늘하게 식어 재만 남은 뒤였다.
“그런 것 까지는 안 하셔도........”
“됐다.”
또 제조상궁의 참견에 소리를 지른 이진이 말없이 천추전으로 향했다.
이윽고 천추전에 다다르자 이진은 섬돌 위로 올라서며 제조상궁을 돌아보고 말했다.
“제조상궁만 따라 들어오너라. 김개시의 일을 논의하고자 함이야. 하고 모두 들어서는 안 되니 멀찌감치 물러서 있거라.”
“네이, 전하!”
친히 모두 전에서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이진은 그녀를 대리고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전 안에는 방이 식지 않게 하기 위함인지 이미 금침이 깔려있었다. 그 위에 털썩 주저앉은 이진이 문가에 조심스럽게 서있는 제조상궁을 향하여 말했다.
“가까이 오너라.”
“네, 전하!”
그녀가 발걸음 소리조차 죽여 다가와 조심스럽게 서 있자, 이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과인이 굳이 올려다보아야겠느냐?”
“황공하옵나이다. 전하!”
이진의 말에 얼른 양수거지하고 흔들리는 눈으로 이진을 바라보는 제조상궁이었다. 지금까지 이진을 모신 이래로 단둘이 이렇게 있기는 처음이라 몹시 긴장이 되는 모양이었다.
“과인도 참 무심한 사람이다. 이름이 뭐더냐?”
“정 옥빈 이옵나이다, 전하!”
“이름 또한 용모처럼 예쁘구나!”
이진의 칭찬에 급 얼굴을 붉히며, 더욱 아래로 얼굴을 묻는 정 상궁이었다.
“올해 나이가 몇 인고?”
“천비 금년 사십 하나인줄 아뢰옵나이다.”
“그 보다는 많이 젊어 보이는구나.”
“황공하옵나이다. 전하!”
제조상궁은 일명 큰방상궁이라고 하여 수백 명의 궁녀 중 으뜸이 되는 상궁으로 권세와 권위가 대단하여 남자관리로 치면 영의정의 지위와 같다 하겠다. 제조상궁은 단 한사람이며, 자격은 궁녀 중에 연조가 오래되고 위품이 있고 인격이 높아야 할 뿐만 아니라, 학식이 많고 수많은 궁녀를 통솔할 수 있는 영도력이 있어야 하고 인물도 출중해야 되었다. 제조상궁의 임무는 대전 어명을 받들고 내전의 대소 치산(治産:살림살이)을 주관했다.
제조상궁에 대한 음식대접은 임금님의 수라상과 가짓수를 같게 하고 분량만 적게 했다. 그리고 큰방상궁이 궁궐을 출입할 때는 세수간 나인과 비자가 따라 다녔을 정도다. 또한 왕의 웬만한 대소사를 다 주관하기 때문에, 막후 실권이 막강한지라 재상들도 함부로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난처한 일은 제조상궁에 부탁하여 처리하기도 하였다. 그러니 또 하나의 실세라 할 수 있는 이 여인을 앞에 두고, 이진은 한참동안 그녀의 거동만 유심히 지켜보다가 불쑥 물었다.
“그대는 처녀인가?”
“네?”
엉뚱한 이진의 물음에 화들짝 놀라 얼결에 묻고는 제풀에 놀라 더욱 얼굴이 붉어진 정 상궁이 말했다.
“승은(承恩)을 입은 적은 없사옵니다.”
임금의 은혜를 안 입었다니 우선은 다행이다 싶었지만, 이진은 이를 확실히 알기 위해 냉엄하게 추궁했다.
“섣불리 거짓말 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지? 내 앵무새 피를 묻혀 볼 테다.”
“천녀가 어찌 전하께 거짓을 고하리까. 달게 시험에 응하겠나이다.”
“믿겠다.”
이렇게 답변을 했지만 이진도 한 가지 의혹이 있었다. 궁녀들을 처음 선발하여 궁으로 들어올 때 처녀성을 감별하기 위해 궁에서는 앵무새 피로 감별을 하였다 한다. 즉 앵무새 피가 피부에 묻으면 처녀이고, 묻지 않으면 벌써 순결을 잃었다는 증거라 했다.
그러서 이것이 실제적으로 맞는 것인지 시험해 보고 싶었지만 그럴 여가는 없었으므로 일단 제조상궁의 말을 믿기로 한 이진이 다음으로 궁금한 것을 물었다.
“어찌 그대 같이 예쁜 상궁을 선왕은 손도 안 대었지?”
지밀상궁이나 시녀상궁 등은 최측근에서 왕을 모시다보니 아무래도 왕의 승은을 입는 경우가 어느 궁녀보다도 많은 것이 사실이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이진의 물음에 그녀가 답했다.
“선대왕께옵서는 비빈은 많이 두셨사오나, 함부로 아무나 손을 대지 않으셨고, 또한 천비는 몸이 빈약한지라..........”
“흐흠.........!”
“풍성한 여인들을 좋아하셨나?”
“대체로 그런 편이셨습니다. 외람되오나 왕대비 마마도 몸이 허약하시어 많은 승은은 입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지밀상궁과 시녀상궁은 물론 상선마저도 2교대를 하는데, 제조상궁만은 1인으로 파루에서 왕의 잠자리까지 모시는 최측근 중에 최측근이니, 아마 정확한 정보일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이진이 다음으로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왜 김개시의 지밀상궁 임명을 반대한 것이냐?”
“지밀상궁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지밀상궁이 될 아이들은 군왕의 최측근에서 모시는 아이들이므로 대소변을 가릴 나이인 4,5세에 이미 입궁시켜, 7,8세면 ‘소학, 동몽선습, 내훈, 열녀전서’는 물론 궁체연습까지 하며, 온갖 예절을 익히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옵나이다. 헌데 이런 교육 하나 없는 아이를 데려다가.........”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다. 하지만 과인이 그 아이와 몇 마디 나눈 결과 아주 영리했다. 하니 자네가 그 아이를 가르쳐서 측근에서 데리고 쓰도록.”
“하오나, 그 시간이.........”
웬만하면 알았다 할 것이지, 발악 발악 기어오르는 것 같아 무춤해진 이진이 버럭 고함을 지르려다가, 이내 무표정한 모습으로 아주 조용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어서라!”
너무나 무미건조한 말에 오히려 공포를 느꼈는지 정 제조상궁이 가늘게 몸을 떨며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벗어라!”
“전하........!”
이진의 명에 얼마나 놀랐는지 정옥빈은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았다.
“과인의 말이 들리지 않느냐?”
“천비 이미 많이 늙어 볼품이 없사옵니다. 젊은 아이들도 많은데 하필.........”
“지금 이 시간 그 누구보다도 과인의 눈에는 그대가 양귀비로다.”
이진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사르르 얼굴을 붉힌 정옥빈이 주저주저 말했다.
“천비 광영이오나, 실망하지 않을 실 런지.........”
“실망을 하고 안 하고는 과인이 하는 것이고, 그대는 어서 벗기나 하라.”
“전하..........!”
다시 한 번 엎드려 읍소를 해보려 하나 이진은 냉엄한 얼굴로 아예 돌아앉았다. 할 수 없이 무춤무춤 옷을 벗는 정옥빈은 마치 비 맞은 참새처럼 가늘게 몸을 떨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다 벗었으면 이리 와 금침 위에 누워라.”
이제 모든 것을 각오한 정옥빈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더니, 윗저고리만 벗은 상태로 천천히 금침 위에 반듯하게 누웠다.
도화 빛으로 물든 아름다운 얼굴에 길게 내리깐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거나 말거나 이진 또한 천천히 곤룡포를 벗고 윗저고리마저 벗어 아무렇게나 집어던지고 그녀의 곁에 모로 누웠다.
그리고 말없이 치마끈에 손을 대었다. 곁에 있어도 심장 박동소리가 들릴 정도로 그녀의 가쁜 호흡이 느껴졌다. 이미 손 하나 들어 올릴 힘마저 없는지 그녀는 이진이 치마끈에 손을 대어도 무저항이었다.
이내 치마끈이 풀어지고 천천히 치마가 벗겨졌다. 물론 중간에 그녀의 협조를 얻어서 한 행위였다. 어느새 그녀는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있었고, 하의는 이제 고의만 남은 상태였다.
“방사하는 장면은 보지 못했더라도 그 소리는 많이 들어보았겠지?”
“.........”
여전히 더욱 수줍은 얼굴로 고개만 끄덕이는 그녀였다.
“그 느낌이 어떠했더냐?”
“..........!”
이진의 짓궂은 물음에 답을 못하고 이제 목덜미까지 붉어진 정옥빈이었다.
“후후후........!”
“오늘 네가 그 맛을 직접 느껴보아라.”
말을 마친 이진은 음흉한 얼굴로 가슴에 얹은 그녀의 손을 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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