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1 회: 왕으로서의 고단한 하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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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한 시간에 걸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이진이 다시 강녕전으로 돌아온 것은 유시 말이었다. 이후 이진은 빈전에 나가 곡을 하고 다시 강녕전으로 돌아와 저녁 수라상을 받았다. 평소부터 많이 늦었지만 배고팠던 참이라 제법 많이 먹은 이진은 곧 보료 위에 기대어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다보니 반 시진이 훌쩍 지나 어느덧 8시 반이 되었다. 이진은 아직 물러가지 않고 있는 제조상궁과 지밀상궁, 직숙(直宿)하고 있는 내관을 앞세워 모처럼 중전의 처소인 교태전을 찾아갔다.
상을 당하여 지금까지 모든 것이 번잡하고 피곤했으므로 부인의 방을 찾는 것은 처음인 이진이었다. 또한 모든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했으므로, 개똥과 금란과는 더 더욱 가까이 할 처지가 아니었다.
사전 통보 없이 불쑥 이진이 찾아들자 당황한 허 부인이 허둥거리며 이진을 맞았다.
“주상....... 전하! 이 밤중에 어인 일이시옵니까?”
“아니, 부군이 부인의 방을 찾는 것도 허물이 되오. 이제 보위에 올랐으니, 부인이나 과인이나 왕자를 생산할 책임이 있는 것 아니오?”
반 농담으로 이진이 한 말이었지만 결혼을 한지 삼 년이 넘도록 후사를 생산하지 못한 허 부인에게는 그의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나 보다. 곧 그녀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의들의 진찰도 받아 보았으나, 큰 문제는 없다고 하는데, 아직 아기씨를 생산해 내지 못하니 소첩 또한 큰일이 아닐 수 없사옵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고 자꾸 접해봐야 뭐가 돼도 되지 않겠소?”
이진의 농담 성 발언에 살짝 홍조를 띤 허 부인이 곧 금침을 정리하더니 사르르 알아서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진도 꺼려지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왕비의 침전도 국왕의 침전과 다를 게 없어서, 채 삼 평도 안 되는 공간에 단지 휘장만 쳐져있고 탁 트였다는 것이다.
옆에는 바로 궁녀들의 방이 돌아가며 세 개나 있어 숙직 겸 왕비의 행위를 모두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판이니 조금만 기성을 지르거나 요상한 행위를 했다가는 금방 알게 모르게 궁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쉽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진이었다. 이에 잠시 부인의 행위를 중지시킨 이진이 소리쳐 불렀다.
“게 아무도 없느냐?”
“네, 주상 전하! 시비 대령이옵니다.”
“지밀상궁 대령이옵니다.”
“직숙내관 대령이옵니다.”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기 시작하는데 금방 일곱 명이 이진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이진을 따라온 자들이 넷에다가 나머지는 부인을 시중드는 궁녀들이었다. 이들을 잠시 착잡한 눈으로 바라보던 이진이 말했다.
“너희들이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 기가 약한 사람은 주눅이 들어 어디 제대로 운우의 정이라도 나누겠느냐? 반대로 너희들이 과인의 입장이라면 어떻겠느냐?”
“하오나, 전하.........!”
“됐다. 과인도 무슨 이유인지 다 안다. 허나 과인의 명이 있을 때까지는 어느 누구도 이 부근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야. 앞으로 만약 과인의 방사 중에 조그만 기척이라도 들리는 날에는 온전치 못할 것이니 그런지 알아라. 썩 물러가라!”
그 어느 때보다도 냉엄한 이진의 호통에 어쩔 수 없이 전 밖으로 물러가는 내관과 궁녀들이었다. 이를 보고 싱긋 웃은 이진이 부인에게 물었다.
“어떻소? 됐소?”
“그나마 다행이옵니다. 전하! 소첩 또한 한 걱정을 했사옵니다.”
“하하하........! 어서 마저 벗어보오.”
“네, 전하!”
상중이라 웃는 것도 웃는 게 아니었다. 이진 역시 소리죽여 웃을 수밖에 없는 속에서 살짝 얼굴을 붉힌 허 부인이 치마끈을 풀어갔다.
이진 역시 아예 전라가 되어 금침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어디서 났는지 질끈 끈부터 무는 허 부인이었다. 그 모습이 우습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공리공론에 물들어 허례가 지배하는 세상을, 적나라하게 보는 것 같아 씁쓸함을 금치 못하는 이진이었다.
이진이 생각 속으로 빠져들어 가만히 누워있자 허 부인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소첩 이미 준비가 되었사옵니다.”
“그냥 넣어줄까?”
이진의 막말에 곱게 눈을 흘기며 품안으로 파고드는 가녀린 여체였다. 사저에 있을 때는 그나마 살이 올랐나 싶더니, 요즈음 상 치르랴, 즉위식이다 해도 잠도 제대로 못자고, 먹는 것도 부실해서인지 다시 옛날의 야윈 모습으로 돌아간 허 부인이었다.
“어의에게 진맥은 받아보았소?”
“네, 전하! 아무 이상이 없다하옵니다.”
“알았소. 고마운 일이오.”
“웁!”
말을 하던 이진이 갑자기 그녀를 끌어안고 입안으로 혀를 들이밀자 깜짝 놀라 허둥대는 허 부인이었다. 거부하는 것을 어르고 달래 이제 어느 정도 키스는 가르쳐놓은 상태인데, 졸지에 파고드니 많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진이 강렬한 대시를 하니 도리도리 고개 짓을 하면서도 끝내는 허용하며, 벌써부터 허덕이는 허 부인이었다. 그런 그녀를 차근차근 공략해 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허용했던 행위를 더는 허용 않으려 애쓰는 허 부인이었다.
“남사스럽사옵니다. 주상! 거기만은 절대 안 되옵니다. 누가 보기라도 하면 소첩은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사옵니다.”
배꼽 이하는 안 된다고 이진에게 매달려 하소연 하는 허 부인이었다.
이 또한 세월이 해결할 일이라 생각한 이진은 곧 선선히 양보했다. 그리고 짓궂게 물어보았다.
“후위는 되는 것이오?”
“그것도........”
열심히 고개를 젓는 허 부인이었다.
“그럼, 당신이 위로 올라오지?”
“전하! 어찌 그런 말씀을........! 누가 들을까 겁나옵니다.”
‘젠장........!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골치 아픈 세상이군!’
내심 중얼거리던 이진이 말없이 그녀의 배위로 올라갔다.
어느새 단단히 또 차비를 하는 허 부인이었다. 즉 애무를 받는 사이 잃어버렸던 끈을 다시 입에 물고 신랑의 진입을 기다리고 있는 허 부인이었다.
“윽..........!”
억눌린 신음소리와 함께 이진의 등을 꼭 끌어안는 허 부인이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이진의 행위가 점점 거칠어질수록 대양에 뜬 일엽편주가 되어 허둥거리며 이진에게 매달리는 허 부인이었다.
그러면서도 극도로 신음소리를 자제하느라고 무진장 애를 쓰고 있는 그녀였다. 매일 이러면 재미없을 것 같지만, 나름 그런대로 새로운 맛이 느껴지는 밤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진의 품에 대롱대롱 매달려 고개를 내젓기 시작하는 허 부인이었다.
종착역이 멀지 않았음을 느낀 이진의 행위가 더 거칠어졌다. 이때였다. 그녀의 몸이 파동치기 시작하며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를 말을 주워 지껄이기 시작했다. 입에 물었던 끈도 놓친 지 오래인 모양이었다.
그 순간 이진도 정을 토해내고 싶은 욕구를 느끼고 그대로 힘차게 방출을 했다. 곧 나른한 쾌감이 몰려오고 이진은 한동안 그녀의 배 위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 * *
이튿날.
파루를 알리는 서른세 번의 종소리와 함께 왕으로써의 이진의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다. 오늘도 똑같은 일과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기상과 함께 지밀상궁들이 자신의 방으로 쳐들어오고, 대기하고 있던 시녀상궁들에 의해 수부수와 소세를 들고, 초조반을 들었다.
그리고 문안과 곡을 하고 조강이 시작되었다. 이날 조강에서 이진은 어제 왕대비로부터 내락을 얻은 남병사 신립의 훈련원 지사 임명 건과, 권율의 내금위장 직 이동을 통보했다. 그런데 이진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반발에 직면했다.
그 이야기인즉슨 문관들로 임명되게 되어 있는, 이 직에 무관을 임명했다는데 대해 이의 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즉 훈련원의 최고 직인 정2품 지사에 서반을 임명한데서 오는 반발이었다.
마찬가지 이유로 내금위장직 역시 권율이 현재는 문관이었지만 타관이 없어지는 것이므로 이 또한 반발에 직면한 것이다. 자신들의 자리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서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그들이었다.
그러나 이진은 그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자 이 이야기가 당상관 이상만이 참여한 조회 시간에도 거론이 되어 이진과 설전이 벌어졌다.
“언제부터 우리 조정이 이렇게 서반들을 천시했소. 내 꼽아보리까? 2품 이상의 고관들 중 무관출신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아마 다섯 손가락을 넘지 않을 것이오. 이러고서야 어찌 과인이 첫날부터 언급한 국방에 신경을 쓰는 태도라는 말이오. 앞으로 과인의 시대에는 명실상부하게 제조니 뭐니 이딴 것을 덤으로 얹지 않고 실질적인 사람을 그 자리에 보임할 것이니 그런 줄 아오.”
“이는 조선조 개국 이래 없던 일로 무신들이 날뛰던 고려 말로 돌아가자는 말과 다름없사옵니다.”
즉각 반발하는 좌상 정유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진이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무장 몇에게 정2품 벼슬을 준다고 어찌 그것에 비유를 하시오. 좌상이 너무 앞서나가는 것 같소.”
“경국대전의 법도에 따르는 것이 합당하옵나이다.”
이제 우상 유전이 거들고 나섰다.
와락 화가 치솟은 이진이 노성을 질렀다.
“시끄럽소. 경국대전 어느 구절에 무장은 임명하면 안 된다는 구절이 있소. 겸임은 하게 되어 있지만, 하나나 똑바로 처리할 것이지, 몇 개의 속아문의 제조까지 맡아 일이 제대로 되겠소? 형식적으로 돌보는 일이 어찌 온당히 처리되겠소? 앞으로는 가급적 제 업무 하나씩만 맡아 제대로 처리하는 것으로 했으면 좋겠소.”
“지금 주상께서는 우리가 무능하다는 말씀입니까?”
“어찌 그것이 그렇게 들리오. 너무 앞서나가지 마시오.”
“허허........! 내가 너무 이 직에 오래 있었음이야!”
이제 영상 노수신까지 탄식을 하며 합세하고 있었다.
잠시 좌중에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영상 노수신이 재차 입을 열었다.
“신이 영상을 맡은 이래 천붕을 당했다는 것은, 소신의 죄 또한 큰바 사직을 청하는 바이옵니다.”
“신 또한 같은 이유로 사직을 청하옵니다.”
이에 좌상 정유길이 동조하고 유전마저 끝내 동조하고 나섰다. 이에 가만히 듣고만 있던 왕대비 박 씨가 침묵을 깨고 나섰다.
“무릇 정사를 돌보다 보면 간혹 의견이 맞지 않을 수도 있지요. 극단적인 말씀은 삼가시고 주상이나 삼정승께서도 한 발씩 양보하는 것으로 하세요. 삼정승께서는 정직 말씀은 거둬들이시고, 주상께서도 한 사람만 임명하는 것으로 하시는 게 좋겠어요.”
“신 이미 너무 늙었사옵니다. 좀 더 젊고 유능한 대신을 영상에 올리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노수신에 이어 정유길마저 계속해서 사직의 변을 대었다.
“신 또한 병약하여 더 이상 직무를 감당할 수 없나이다.”
“신 또한 마찬가지 이옵니다.”
우상 유전 또한 합세해 고집을 세우니, 평소 ‘살아있는 관음보살’이라는 칭호를 듣고 지내던 왕대비 박 씨마저도 뿔이 나는지 한 마디 톡 쏘았다.
“늙고 병들어 직무를 감당할 수 없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말이 끝나자마자 조용히 일어나 퇴청하는 왕대비 박 씨였다. 이에 황당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셋이 이마를 맞대고 숙의하더니 모두 사직 상소를 올리고 물러갔다. 이러니 무슨 조회가 제대로 되겠는가. 이진은 곧 육조판서와 삼사의 우두머리만 남겨 삼정승에 대해 복상(卜相)케 했다.
여기서 복상(卜相)이란 새로 정승이 될 사람을 가려 뽑기 위해 후보자를 천거하던 일을 말한다. 그러나 이들 중의 몇몇은 복상은커녕 아예 사직상소를 내고 사라지는 인물도 있었다. 이에 쓴웃음을 지으며 이진은 자조적으로 혼자 지껄였다.
‘그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도 좋겠지.’
그날 저녁 이진은 왕대비 박 씨를 찾아가 고마움을 표시했다.
“저나 대비마마나 하나는 어리다고 얕보고, 한 분은 여인이라 얕보는 면도 있을 것이옵니다. 아무튼 밀리면 한없이 밀리는 것이 정치 세계라고 소자는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하니 이번 기회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어느 나라 속담처럼, 아예 물갈이를 하는 것도 청신한 기풍을 일으키는 데 좋을 것 같사옵니다.”
외견상 나이는 어리나 순진한 왕대비 박 씨의 약한 부분마저 자극해 자신의 의도대로 끌고 가는 영악한 이진이었다. 사실 이 정도까지 사태가 비화될 줄은 몰랐지만, 일이 터지면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는 이미 오래 전에 서 있는 이진이었다.
아무튼 이진의 말에 잠시 숙고하던 왕대비 박 씨가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주상의 말이 옳아요. 그보다도 이 어미가 과연 수렴첨정을 계속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어요. 아직 보령 유치하지만 하는 행동을 보니 강단도 있고, 어른들 뺨쳐요. 이 어미가 없어도 잘 해나갈 것 같은데 주상의 생각은 어때요?”
“아직 소자 어리오니 어마마의 도움이 필요하옵니다.”
“이 어미가 며칠 더 지켜보다가 단안을 내려야겠어요.”
“어마마의 결심이 그러하시더라도 수렴첨정 역시 쉽게 거둘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고집쟁이들이 많아 놔서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분명 만류할 것이옵니다.”
“그는 이 어미도 짐작이 가는 일 이예요. 이 어미도 한 고집하는 사람이니 너무 걱정 말아요.”
“소자의 생각으로는 반 년 정도 더 끌고 가시다가 단안을 내리셔도 괜찮을 것 같사옵니다.”
“아무튼 조금 더 지켜봅시다. 주상! 하고 대신들의 임명 문제는 어떻게 할 참이오?”
“소자의 머리속에는 이미 복안이 다 서 있습니다. 지금 동인만이 너무 득세를 하고 있습니다. 탕평 차원에서라도 서인 중에서도 유능한 자들은 가려 뽑아 쓰는 게 좋겠습니다.”
“암만 생각해도 이 어미가 지금까지 가장 잘 한 일은 주상을 보위에 올린일 같아요. 성군이 될 것 같은 느낌 이예요.”
“과찬이십니다. 어마마마! 하지만 소자가 학문에 등한히 한 것은 사실이오나 그것은 유교 경전에 한해서지, 여타 지식만은 어느 노 대신들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있사옵니다. 이는 어마마마께서 옆에서 죽 지켜보시면 아시게 될 일 것입니다.”
“호호호.........!”
급히 입을 가리고 웃음을 멈춘 왕대비 박 씨가 말했다.
“상중이나 흐뭇한 마음에 웃음을 금할 수가 없군요. 어제만 해도 그래요. 인빈이 감복해 우는 것을 보고, 정말 주상을 보위에 올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열 번도 더 들었어요.”
민망한 표정을 지은 이진은 그냥 웃는 것으로 답을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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