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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자임해-2화 (2/210)

< -- 2 회: 쪽박 or 대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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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앉아 생각을 하는 이진의 머리속에는 무수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이진이 맺은 최후의 결론은, 지금의 시점과 자신의 처한 상황부터 알아보아야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어의 허준의 말로 미루어보아 지금이 임란 전인 것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아직 자신이 십 수 년 삶의 여유가 있는 것은 확실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임해가 임란이 끝나고도 한참 후에 사사된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긴 이진은 밖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다.

“게 아무도 없느냐?”

“시비 금란 대령이옵니다.”

“군부인을 들라 하라!”

“네, 군 마마!”

대답이 끝나고 시비의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문 밖에서 허 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러 계시옵니까? 군 마마!”

“잠시 들어오오.”

“저.......! 어의의 말로는 아직 접촉을 하면 아니 된다는........”

“부인께서는 전에 두창을 앓은 적이 있질 않소?”

“그렇사옵니다. 군 마마!”

그렇게 묻고 나서 가만히 생각하니, 항체가 형성되었으니 괜찮다는 등 저들이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말로 한참을 설득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진은 가볍게 둘러대었다.

“내 이미 쾌복했으니 들어와도 괜찮소.”

“정말 이시옵니까? 마마?”

감출 수 없는 기쁨으로 묻는 부인 허 씨였다.

“그렇소. 얼른 들어오기나 하오.”

“네, 군 마마!”

이내 살짝 문고리를 잡는가 싶더니 살며시 작은 문이 열렸다. 들어오자마자 허 부인은 조심스럽게 이진을 살폈다. 그런 부인에게 이진이 물었다.

“어떻소?”

“정말 쾌차하신 듯하옵니다.”

“거기 앉소.”

“네, 마마!”

허 부인이 한 무릎 세워 단정히 앉자 이진이 먼저 치하를 했다.

“그간 고생이 많으셨소.”

“의당 지어미가 할 도리가 아닌가 합니다.”

이내 안색을 굳힌 이진이 조용하나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내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으니, 숨김없이 답하기 바라오.”

“네, 마마!”

“주변의 내 평가가 어떠하오?”

이진의 말에 안색이 변한 허 부인이 무언가 말하려 입을 벙긋거리나, 차마 말로는 표현을 못하겠는지, 주저주저하다가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보오. 부부사인데 어떻소?”

이진의 달래는 말에도 잠시 갈등하던 허 부인이 종내는 입을 열었다.

“성정이 화급하고 학문을 게을리 한다는 평가입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진의 표정은 별로 좋지 못했다. 부인의 말이 그 수위를 조절해 말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부인의 입에서 저 정도 말이 나올 정도면 역사가 평가하는 인물 됨됨이가 사실인 모양이었다.

난폭하고 탐욕스러우며 술을 좋아하고, 고관의 애첩도 빼앗을 정도로 마왕의 기질이 있는 것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잠시 생각을 가늠하던 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허준의 말로는 지금이 주상 즉위 21년, 아........!”

갑자기 자신의 이마를 탁 치며 즐거워하는 이진이었다. 말을 하다 보니 그의 머리에 임진왜란 발발 년도가 떠올랐던 것이다.

‘선조 25년 즉 1592년 4월 달에 임란이 발발하니........’

그러면 자동적으로 현재의 연도가 몇 년인지 판별이 되었다. 선조 21년이니 1588년으로 임란이 겨우 4년 남았다는 말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진이 심각한 안색으로 다시 말했다.

“내 병마를 물리치기는 했으나 기억이 아직 온전치를 못하오. 해서 묻는 말 이오만, 지금의 시절이 어느 때요?”

“춘 삼월 봄인가 합니다.”

“알겠소.”

걱정스레 대답하는 부인을 보고 넉넉한 웃음을 머금은 이진이 고개를 끄덕여 답하고 그녀를 물리쳤다.

“그만 나가 봐도 되오.”

“알겠사옵니다. 군 마마. 쾌차하셨더라도, 아직 원기가 회복치 않으셨을 테니, 조섭을 잘 하셔야 할 것이옵니다.”

“내 그리 하리다.”

부인을 안심시켜 내보낸 이진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4년, 4년 남았다 라?’

종내는 방안을 서성이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이진이었다.

‘내 이 땅에 다시 환생을 했으니, 그 처참한 민족적 수난을 다시 당할 수는 없잖은가? 방법이 없을까?’

이제 다른 명제로 고뇌하는 이진이었다.

원 역사대로 한다면 자신이 금방 목숨을 빼앗기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당장 코앞에 닥친 왜구의 침입은 어찌 하란 말인가? 이를 막을 방법을 골몰해보나,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는 이진이었다.

그러나 이진이 임란을 막아야겠다는 결심만은 확고했다. 아니 시간이 촉박해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 피해를 최소화해야겠다는 생각만은 확고부동했다. 이 생각으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나, 정상적인 방법으로 현재 자신의 처치로는 절대 이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이진이었다.

그렇다면 단 하나, 권력을 잡는 것이다. 권력을 잡는다는 것은 곧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선조 이연을 시해하거나, 상왕으로 몰아내는 방법 밖에 달리 길이 없어 보였다. 현실적으로 종친이나 왕자가 군력을 잡을 수는 없으므로 그런 판단을 한 이진은, 곧 무슨 수를 쓰더라도 자신이 보위에 앉아 임란의 피해를 최소화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건히 했다.

이를 결심한 이진의 표정은 결코 밝지 못했다. 현실적인 어려움과 어찌 되었든 이 몸의 아비를 어찌 해야 하는 부담감이 그를 압박한 것이다. 그러나 민족을 위해 가야할 길이라면 어떠한 길도 마다않겠다고 굳은 결심을 한 이진의 눈은 귀화처럼 번뜩였다. 이내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이진은 이후까지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권력의 속성을 알아야 했다. 조선 왕들의 권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역사를 전공한 그로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검토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첫째는 정통성에 있었다. 정실 즉 정식 왕비에서 난 적통의 아들, 그 중에서도 장자야말로 하나의 흠결도 없는 정통성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진은 어떠한가? 아버지 이연부터가 서자로 보위를 이었다. 즉 조선 역사상 최초로 이때부터 방계도 아닌 서자가 왕통을 이은 것이다.

그런데다 자신은 그의 적통도 아니고 또 서자의 장자였다. 그나마 차자인 광해군보다는 이런 면에서는 나았다. 그래도 사대부들에게 멸시를 받는 흠결이 있는 존재는 맞았다. 그래도 세자로 책봉될 수 있는, 1순위 인 것만은 누구도 부인 못할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진이 알기에 어머니 공빈 김 씨는 광해군을 낳고 삼년 후에 돌아가셔서, 당금 주상은 인빈 김 씨를 총애해, 그의 아들 신성군을 세자로 내심 점찍고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돌파할 일이었다.

두 번째로 왕의 권력은 신하들과의 정치력에 의해 좌우되었다. 쉽게 말해 신하들을 얼마나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그들과 뒷거래를 얼마나 잘 하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임해군이 정상적인 사람이었다면 그를 지지하는 신하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그가 선조 이연의 장자였으니까.

그러나 이진 자신의 품행으로 말미암아 이미 많은 인심을 잃은 후였다. 하지만 뒷거래를 통해, 그들의 일부를 자신을 지지 쪽으로 만들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은 아직도 남아있다고 판단하는 이진이었다.

셋째는 본인의 실력이었다. 즉 조선사회이니 유교적 지식이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도 임해군은 사부 하락(河洛)은 물론 주위 사람들로부터도 이미 낙제점을 받고 있었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해, 만회를 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판단을 한 이진은 이후에도 조섭 겸 사흘을 칩거하며 세세한 계획을 세우기에 골몰했다. 물론 이 동안에도 어의 허준은 그를 치료하기 위해 매일 내방했다. 아무튼 허준으로부터 완치 판정을 받은 이날, 이진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씻는 일이었다. 그의 지시에 의해 목욕물이 준비되었다.

이진은 처음으로 방문을 나섰다.

눈부신 햇살이 쏟아졌다. 마치 자신이 조선에 환생한 것을 축복해주듯 햇살은 눈부시게 빛났고, 바람은 엉?

향기로운 것이 아니라 구리 구리한 냄새가 바람결에 실려 왔다. 자신도 모르게 킁킁 냄새를 맡아보나, 이는 분명 구린내로 어디선가 인분 냄새가 바람에 실려 오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불쾌한 냄새였지만 지금 이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전신이 꿉꿉하고 제일 머리가 가려워 미칠 지경이었다.

“군 마마! 쇤네를 따라 옵소서!”

금월의 말에 이진이 사방을 둘러보니 무언가 이상했다. 분명 자신의 신분이 왕자이면 궁궐에 살아야 할 텐데,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궁궐이 아니었다.

“잠깐만!”

“네, 마마님!”

“여기는 궁궐이 아니 잖느냐?”

“잊으셨습니까? 주상께서 허락하시어 올 봄에 이 집을 완공하신 것을.”

‘허 참, 말이 좋아 궁궐 밖에 집을 짓도록 허락한 것이지. 이는 벌써 내친 것이 아닌가!’

모든 권력은 실세에 가까이 있을수록 많아진다는 것쯤은 이진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진으로서는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일시 암담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또 하나의 의문이 불쑥 머리를 쳐들었다. 남녀가 유별한 조선 사회에서 어찌 계집종이 자신의 시중을 든단 말인가?

“사내놈들은 다 어디 가고 네가 내 시중을 든단 말이냐?”

“잊으셨습니까? 원래부터 쇤네가 마마의 시중은 전담했습니다.”

“흐흠.......!”

하긴 왕이 용변을 보고 나면 뒤처리를 하는 것도 궁녀라는 것을 읽은 것이 얼핏 떠오르는 이진이었다.

“가자!”

“네!”

자신이 길을 모르므로 금란이라는 계집종을 앞세워 목욕탕으로 향하는 이진이었다.

그런데 이후 이진은 가는 내내 수많은 남녀종들을 마주치며, 그들의 인사받기에도 바빴다.

‘탐욕스럽다더니 종놈들도 되게 많구나!’

내심 중얼거리며 그녀의 뒤를 쫓다보니 높다란 담벼락과 함께 문 하나가 나타났다.

그러고 보니 이곳이 아무래도 안채 즉 내원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바깥채 즉 제일 크게 지어진 건물로 그를 안내하는 금란이었다. 그 중에서도 어느 방 하나로 들어가니, 나무로 된 마루방에 나무로 된 목간통이 하나 놓여있었다. 또 그곳에서는 한창 모락모락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참이었다.

‘이것이 목욕시설의 전부인 모양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이진은 주섬주섬 옷을 벗는데 상의를 다 탈의하자 금월이 기겁을 하며 뛰쳐나갔다.

“어머! 군 마마.........!”

“왜 소리는 지르고 난리냐?”

“사대부도 적삼을 입고 목간을 하는데, 하물며 군 마마께옵서.......”

“알았다. 네가 시중을 들려느냐?”

“네, 군 마마!”

이진이 주섬주섬 다시 적삼을 걸치며 말을 하니, 다시 들어온 금란이 사르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녀를 보니 새삼 그녀가 여인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세히 살펴보게 되는 이진이었다. 부인 허 씨와 비슷한 연령대의 18세 전후로 제법 자색이 고왔다. 그러나 부인 허 씨가 날씬한 것과는 달리 통통했다.

“제일 머리가 가려워 못살겠다. 머리부터 감겨다오.”

“알겠사옵니다. 마마님!”

말과 함께 한 쪽에 놓인 비누(?)와 참빗을 들고 오는 그녀였다.

그리고 이진에게 다가와 머리를 흘러내리지 않게 하는 망건을 벗겨내고, 상투에 꽂은 동곳을 빼어냈다. 그리고 먼저 상투를 풀어 헤쳤다.

“머리를 숙여주옵소서 마마님!”

“알았다.”

이진이 낮게 머리를 숙이자 동으로 된 대야를 갔다 받치고, 뜨거운 물을 바가지로 떠서 찬물을 좀 타더니, 이진의 머리 위에 몇 번이고 끼얹었다. 그리고 비누로 짐작되는 것으로 머리를 문지르더니, 참빗으로 머리를 계속해서 빗어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머리 이가 대야에 우수수 떨어지는 것은 물론 하얀 서캐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아무리 자신이 병상에 있었다하더라도 왕족이 하물며 이 정도 일진데, 백성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 몸서리가 처지는 이진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마마님!”

“너도 이가 있느냐?”

“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까? 주사전하의 몸에도 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기가 막혀 더 이상 말이 안 나오는 이진이었다.

“앞으로 매일 하루에 두 번씩 내 머리를 감겨라. 알았느냐?”

“네, 군 마마님!”

그녀의 대답을 듣고 가만히 있으니 이제는 이상한 날 비린내가 났다.

“이게 웬 비린내냐?”

“조두에서 나는 것이옵니다.”

“조두?”

“네, 마마님!”

그랬다. 팥, 녹두, 쌀겨 등을 곱게 빻아 만든 비누를 ‘조두’라 하는데, 삼국시대부터 써 왔던 것으로, 특유의 날 비린내가 났다. 이를 방비하기 위해 특히 여자들은 향낭을 몸에 차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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