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회: 쪽박 or 대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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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탕한 봄.
한양 도성 내의 대택 내.
그 중에서도 외따로 떨어져 있는 행랑채 안이었다.
“물........ 물........!”
한 사람이 물을 찾으나 주변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계속 물을 찾으며 꼼지락 거리던 손이 멈추어지고 물을 찾던 주인공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여기가 저승인가?”
의식을 회복한 환자가 두 눈으로 사방을 훑으나 주변의 반응은 없었고, 잔양(殘陽)의 가시광선만이 창호지 사이로 파고들어 주변 사물을 가늠하게 했다.
“내가 다시 살아난 것인가? 도저히 저승의 풍경 같지가 않아. 그런데 주위의 풍경이 좀 이상하네. 마치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혼자 중얼거리던 이 진(李 珒)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괴성을 질렀다.
“아, 이건 뭐야?”
스멀스멀.
무언가 등을 타고 다니고 있었고 얼굴과 머릿속도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려웠다. 이진은 등을 긁적이다가 얼굴로 손이 갔다. 머리로 손이 갔다. 머리를 긁으려는 순간 무엇이 손에 잡혔다.
“설마, 상투?”
깜짝 놀란 이진이 자신의 상체를 내려다보았다.
분명 흰 저고리였다.
“아! 이게 어찌 된 일이야!”
‘내가 환생을 한 것인가?’
자신도 모르게 괴성을 지르고 내심 생각하는 이진이었다.
이때 문이 벌컥 열리며 한 명이 들어왔다.
“아! 군 마마, 깨어나셨군요?”
죽었던 자신의 조상이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 듯 반가운 표정과 응대였다.
“누구요?”
“군 마마, 저를 몰라보시겠습니까? 내의 허 준입니다.”
“허준? 그대는 조선 사람 아니오?”
“그럼, 명나라 사람이겠습니까? 아직 혼몽 중이신 것 같습니다.”
“그럼, 나는 누구요?”
“이(李) 자, 진(珒) 자의 임해군(臨海君) 마마 아니십니까?”
“임해군 이라........?”
낮게 중얼거리던 그의 안색이 급격히 흐려졌다.
“그럼, 광해(光海)가 내 동생이오?”
“맞습니다. 군 마마!”
“선조 이연(李昖)이.......”
“함부로 함자를 부르시면 안 되옵니다.”
역사학을 전공한 이진이었다. ‘선조(宣祖)’라는 말이 묘호(廟號)임에 산 사람에게 붙일 수 있는 말이 아님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현대인의 시각을 가진 그로서는 얼결에 튀어나온 말이고, 이름이었다.
“지금이 몇 년도요?”
“만력(萬曆) 16년 이옵니다.”
‘아무리 내가 역사학을 전공했더라도 그래서야 알 수가 있나?’
내심 중얼거린 이진이 다시 물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지 몇 년이나 되셨소?”
“음........ 그러니까, 21년째입니다.”
고개를 저은 이진이 다시 물었다.
“전쟁이 일어났소? 안 일어났소?”
“전쟁?”
“왜놈들이 쳐들어오지 않았느냐 말이오?”
“오늘은 웬 해괴한 말씀만........”
이번에는 허준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던 그가 말했다.
“쾌차하셨는지요? 어디 진맥 좀.........”
“다 나은 것 같소. 그 보다는 나는 가례를 올렸소?”
“네, 군 마마!”
“내자를 불러주오.”
“네, 군 마마!”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난 허준이 살짝 문을 열더니 밖에 대기하고 있는 누구엔가 무언가를 작은 소리로 일렀다.
“그런데 왜 온 몸이 간지럽고 특히 이제 얼굴이 말도 못하게 근지럽네요.”
말과 함께 이진의 손이 얼굴로 가자 기겁하여 소리를 지르는 허준이었다.
“아니 되옵니다. 군 마마! 그러다가 박색이 되시옵니다.”
차마 곰보가 된다는 소리는 못하고 에둘러 표현을 하는 허준이었다.
“내가 천연두를 앓은 것이오?”
“천연두?”
뒤늦게 일본에서 들어온 말이니 그가 알아들을 리 없었다.
“역질, 두창이라는 것이라는 것으로, 민간에서는 마마라 부르는 고약한 병이었습니다. 마마!”
“그럼, 전염성이 강하겠는데......?”
“그렇사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외진 곳에.........”
“그럼, 내자는 이 병을 앓은 적이 있소?”
“군부인 마마께옵서는 어려서 앓았던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흐흠.........! 그렇다면 전염은 안 되겠는데........”
“무슨 말씀이온지........?”“이 병은 한 번 앓았던 사람은 항체가 형성되어 이 병에 대한 면역이 생긴단 말이오.”
“무슨 해괴한 말씀만.........”
어리둥절한 허준에게 더 이상 말해봐야 입만 아플 것 같아 입을 다물고 있는데 밖에서 여인의 고운 음성이 들려왔다.
“군 마마! 깨어나셨는지요?”
‘누구?’
입 모양으로 말을 하며 이마에 주름을 만들어 묻는 이진에게 허준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군부인 마마시옵니다.”
허준이 낮게 일러주었다.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이진이 말했다.
“아직 내 깨어난 지 얼마 안 되어 기억이 뒤죽박죽이오. 그러니 내 병세에 대해 함부로 입을 열지 마시오. 내 온전한 정신을 회복하는 날, 그대와 다시 한 번 대화를 나눠보리다.”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다만 주상께는 많이 호전되었다고 아뢰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소.”
치하한 이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허준이 얼른 따라 일어나며 말했다.
“치료를 더 해야 하옵고, 전염성이 강한 병이오니, 함부로 불러들이거나 접근하시면 안 되옵니다.”
“알겠소.”
다퉈봐야 쉽게 설득될 것 같지 않아 이진은 순순히 대답하고 작은 문을 열었다.
“군 마마!”
이진을 한 번 바라보더니 급히 땅에 부복해 기쁨의 울음을 터트리는 한 여인이 있었다. 언뜻 보기에 18세 전후로 보였고, 자색이 뛰어나나 몸이 좀 허약해 보였다. 현대에 갖다 놓으면 뛰어난 미인으로 불리겠으나, 당세의 미인관으로 보면 어딘가 여린 구석이 있는 여인이었다.
“몸과 얼굴 머리가 몹시 가렵소. 옷을 갈아입고 목욕을 하고 싶소.”
“목욕은 안 되옵니다. 군 마마!”
힐끗 허준을 돌아본 이진은 어의가 한 말이니 따르기로 하고 말했다.
“옷이라도 좀 내오오.”
“네, 군 마마!”
허(許) 씨 부인이 총총히 사라지자 이진은 다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어디 맥을 짚어 보지요?”
“그럽시다.”
팔을 내맡긴 이진은 곧 과거 속을 유영하기 시작했다.
* * *
이진의 과거는 평범함 그 자체였다.
어린 시절 그 시절 사람들의 대부분이 다 그렇듯이 농촌에서 태어나, 그야말로 가난하게 살았다. 춘궁기에는 정말 초근목피로 연명하다보니 변비가 생겨,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가난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러다가는 아들 하나도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하겠다고 판단한 부모님은 도회지로 나왔고, 그는 부모님의 헌신으로 지방 대학교 역사교육학과를 나와 국사 선생이 되었다. 이후 이진은 같은 선생이었던 처녀를 만나 결혼을 했고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그렇게 대체로 평범하지만 행복한 생활을 하던 그는, 50 가까운 나이에 위암 판정을 받고 8년을 더 살았으나, 끝내 사망을 하게 된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공교로운 일은 이름이 이진(李珒)으로 임해군 이진과 한자까지 같은 묘한 인연을 갖고 있었다.
또 하나 더 부기하자면 이진은 위암 판정을 받은 날 학교에는 사표를 내고 죽기 전에 자신이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싶어, 치료를 병행하며 인터넷 작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전공을 바탕으로 주로 역사물을 연재하는 작가로 살다가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망외의 소득도 있었으나 크게 언급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는 것만 부기하고 싶다.
* * *
‘내가 환생을 한 모양이로구나! 진짜 이진은 죽고 내가 그 몸에 빙의를 한 모양이야!’
나름 판단을 한 이진이 회상에서 깨어날 무렵 허준이 손을 떼고 말했다.
“이제 조리만 잘 하시면 되겠사옵니다.”
“고맙소.”
이때 밖에서 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복을 가져왔습니다. 군 마마.”
“문 안으로 들이시고 돌아가세요. 옮을 수가 있습니다.”
“네.”
허준의 말에 대답과 함께 살며시 문이 열리더니 가지런히 갠 옷가지가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문이 닫혔다.
“군 마마! 가려워도 절대 긁지 마시고 당분간은 외부인과 접촉을 하시면 안 됩니다. 앞으로 네 닷새 더 조섭을 하시면 완쾌되실 것이옵니다. 또 찾아뵙도록 하겠사옵니다.”
“수고했소.”
물러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진은 그가 나가자 서둘러 옷가지를 갈아입었다. 그리고 그는 밖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다.
“게 아무도 없느냐?”
“네, 금란이 대령이옵니다. 군 마마!”
“내 옷가지를 줄 테니 가서 다 태워버려라. 이를 행할 때는 입과 코를 꼭 막고 하도록 해라.”
“네, 군 마마!”
대답이 들리자 이진은 벗은 옷가지를 돌돌 말아 밖으로 던지려는 순간, 깨알만한 이들이 옷에 기어다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하고, 얼른 문을 열어 밖으로 집어던졌다.
문을 닫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 얼굴뿐만 아니라 머릿속과 등까지 전신이 가려워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를 긁다가 덧나면 이차 감염으로 진행될 것 같아, 이를 꾹 참고 방안을 서성이는 이진이었다.
이렇게 괴로운 사흘이 지나자 전신에 맺혔던 딱지가 다 떨어지며 한결 나아진 이진이었다. 비로소 몸이 편해지자 자신의 신상에 대한 생각을 할 여유가 생긴 이진이었다.
‘임해군 이진이라?’
‘선조 이연의 서장자로 태어났지만 성정이 사납고 군왕의 자질이 없다하여 동생 광해에게 결국 목숨을 빼앗긴 인물이 아니던가! 환생은 했으나 곧 죽을 목숨이라?’
자연적으로 생각이 많아지는 이진이었다.
‘어떻게 된 연유인지 환생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죽은 임해군 이진의 몸으로 빙의를 했는데, 쉽게 다시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암!’
이런 생각을 하자 괜히 마음이 조급해지는 이진이었다.
그런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진은 책상 다리를 하고 앉아 명상을 하며 마음을 다스려나갔다. 이윽고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되자 이진은 구체적으로 살 방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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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읽는 분 모두모두 행운이 가득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