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199화 (199/200)

제199화.

금색으로 멋지게 만들어 놓은 서풍 간판을 은은한 노란색 조명이 비추고 있었다.

양쪽으로 있는 거대한 체리목으로 만든 격자무늬 문 사이로 환한 빛이 새어 나와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입구 오른쪽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같이 놓인 커다란 장식품에 작은 홍등이 걸려 반짝거렸다.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온 따사로운 햇볕이 화려한 금색 샹들리에를 비추자 영롱한 빛이 무지개를 만들며 내부에 근사하게 흩뿌렸다.

끔찍한 사고가 있고 나서 정확히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오늘은 서인우 아빠 서동수의 [서풍]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새롭게 시작하는 [서풍] 오픈 하루 전날이다.

“오픈 축하합니다.”

진한 분홍빛이 도는 난이 활짝 피어있는 화분을 들고 김서원이 웃고 있었다.

“어서 와요. 서원 씨.”

“테라스에 폴딩도어를 설치했네요?”

“처음 서원 씨가 인테리어 해준 폴딩도어 똑같이 해놓을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기도 제시카씨가 인테리어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너무 멋지게 잘 나왔어요. 이제 감도 다 떨어져서 내가 했으면 이렇게 근사하게 뽑아내지 못했을 거예요.”

웃고 있는 김서원의 눈빛이 슬퍼 보였다.

“오늘은 이 화분만 전해주러 왔어요. 다음에 인우 씨가 만들어주는 백 짬뽕 먹으러 다시 올게요.”

“요즘 정신없이 바쁘죠? 비서 시켜도 될 텐데….”

“직접 얼굴 보고 축하해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김서원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붉어진 눈시울을 보이지 않으려 연신 눈을 깜빡이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살아줘서 고마워요.”

서인우는 말없이 김서원의 눈만 바라봤다.

그리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것 말고는 해줄 말이 없었다.

그거면 됐다는 듯 밝게 같이 웃어 보인 김서원이 돌아서자 뒤에 떨어져 기다리고 있던 차성철 부장이 다가왔다.

“지금 출발하면 바로 회의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회장님.”

“네, 바로 가시죠.”

차성철과 김서원이 다시 한번 서인우에게 작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서원 씨 완전 다른 분위기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김서원과 마주친 이준형이 계속 뒤를 돌아봤다.

“이제 [만가복]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니 전처럼 편하지는 않겠지?”

“서원씨 아버지는 아직 회복이 안 된 건가?”

“그때 충격으로 쓰러진 후 몸 왼쪽 전체에 마비가 와서 제주도 별장에서 요양한다고 들었어.”

“그래서 사람이 죄짓고 살면 안 되는 거야.”

이준형이 고개를 작게 가로저으며 말했다.

“사실 그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거나 마찬가지지. 어려서부터 한 번도 죽은 김원상을 칭찬해줬던 적이 없다더라.”

“그런 얘기는 또 어디서 들었냐?”

“김원상 사고 있고 난 뒤로 이쪽 사람들 사이에 소문 다 났었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부모한테 인정받지 못하는 삶은 너무 잔인한 것 같다. 김원상도 불쌍한 사람이네.”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고 서인우를 빤히 쳐다보던 이준형이 말을 이었다.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그놈 때문에 하마터면 저승길 갈뻔한 놈이 말이야.”

“그래도 나는 지금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고, 내 주위에는 나를 걱정해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많잖아.”

“너 그때 잘못됐으면 어머니도 아마….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서인우는 아직도 가끔 욱신거리는 다리를 슬그머니 만져보고는 가게를 다시 살펴봤다.

“기분이 어떠냐? 이 자리에 다시 [서풍]을 여는 기분 말이야?”

“그건 말로 다 표현 못 하지. 어떤 단어로도 이 기분을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만둬라. 말 안 해도 알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건 그렇고, 너는 왜 자꾸 일 안 하고 내려오는데?”

“나야 뭐 오픈 준비는 잘 돼 가고 있나 궁금하기도 하고, 시장통에 우리가 처음 가게 시작할 때 생각도 나고 해서 내려왔지. ”

서인우의 어깨를 툭 치며 이준형이 눈을 가늘게 떴다.

“사장이 이렇게 자리를 비워줘야 직원들이 편하게 일한다니까, 너도 명심해.”

“글쎄. 나는 요리할 때가 제일 행복한데….”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또 사장이 제일 바쁘고 열심히 하는 식당이라고 소문나게 생겼네.”

이준형의 말을 듣고 있던 서인우는 똑같은 말을 했던 중식도 사부가 떠올랐다.

사부와 함께여서 요리하며 더 행복할 수 있었는데….

서인우가 이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중식도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얼이 빠져 있냐?”

“아! 갑자기 누가 생각나서….”

“누구? 제시카씨? 아니면 제이씨?”

“너는 모른다. 내가 지난날 맘에 품고 있었던 게 누구인지….”

“너 뭐야? 베트남에서 여자 있었어?”

“나는 여자라고 말 안 했다.”

이준형의 미간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너 그런 거였어? 진짜?”

“뭐가 인마?”

“진짜 나를 마음에 품고 있었냐고?”

“뭐래? 짜증 나게. 너 빨리 올라가서 일 안 해? 괜히 6층에 네 사무실 열게 해줬어. 그냥 옮기지 말고 거기 계속 있게 했어야 했는데….”

이준형이 그런 서인우를 보고 더 환하게 웃어 보였다.

“우리 직원들이 시설 좋은 새 건물에서 일하게 됐다고 얼마나 좋아하는데, 특히 우리 서영 씨가 더 좋아해.”

“서영 씨는 왜?”

“우리 자기 집하고 더 가까워졌다고 어찌나 좋아하는지…. 이 잘생긴 얼굴을 더 늦게까지 볼 수 있어서 좋다나.”

“너 아직 안 올라갔냐?”

실실 웃으며 얘기하는 이준형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오후에 새로 뽑은 직원들 오리엔테이션 있지?”

“응. 강진수가 수석 셰프로 진행하기로 했어.”

“어린 친구가 실력이 뛰어나긴 한가 보다. 벌써 수석 셰프라니.”

“타고난 감각에 성실함을 다 갖춘 친구라 올해 일 년 더 나랑 일하고 내년에는 [서풍] 3호를 책임지고 운영할 거야.”

둘이 한창 대화하고 있는데 엘리베이터 소리와 함께 윤지영이 모습을 나타냈다.

“오픈 준비는 잘 돼 가?”

“너는 왜 또 내려왔어?”

“내일이 오픈인데 준비는 잘 돼 가고 있나 궁금하기도 하고, 시장통에 우리가 처음 가게 시작할 때 생각도 나고 해서 내려왔지.”

“너희 둘이 짰지? 뭐 이렇게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얘기하냐?”

“뭔 소리래?”

윤지영이 이준형을 쳐다보며 눈으로 물었다.

대답 대신 크게 웃은 이준형을 서인우가 흐뭇하게 쳐다봤다.

“이렇게 우리 셋이 다시 모이니까 정말 처음 생각이 많이 나긴 한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닌데 진짜 많은 일이 있었다. 오빠 안 그래?”

“맞아. 말 그대로 버라이어티했지.”

“지영씨가 이제 우리 살림을 책임지는 거네요. 잘 부탁합니다.”

“나도 서풍 만두에서 일하는 게 더 편하고 재미있는데, 요리만 열심이고 사업은 완전 꽝인 오빠 때문에 할 수 없이 온 거라니까요.”

괜히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린 서인우를 쳐다보고 윤지영이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을 따라 이준형과 서인우도 서로 눈을 마주치며 소리 내 웃었다.

* * *

회장실로 돌아온 김서원이 애써 착잡한 기분을 털어내려 어깨를 들썩이며 심호흡을 했다.

“오후 회의 시간을 좀 늦출까요?”

김서원의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차성철이 물었다.

“아니에요. 그리고, 오늘 같이 가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아무래도 양 비서가 가는 것보다는 제가 가는 게 더 나을 것 같았습니다. 물론 저도 서인우 대표 얼굴도 한번 보고 싶었고요.”

“사실 차 부장님 아니었으면 오늘 용기 못 냈을 겁니다. 도저히 그 사람을 볼 자신이 없었어요.”

또다시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려 급히 시선을 아래로 떨군 김서원이 애꿎은 테이블만 손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전, 아니 전전 회장님은 좀 어떠십니까?”

“아버지요? 이제 말씀도 조금씩 하시고 하루하루 좋아지고 계십니다. 물론 연세가 있으셔서 완쾌는 힘들 것 같아요.”

차성철이 선뜻 입을 열지 못하고 김서원의 눈치를 살폈다.

“전 회장님 일은 이제 빨리 잊으십시오. 회장님 잘못이 아니지 않습니까?”

결국 참았던 눈물을 보이고만 김서원이 흐르는 눈물에 화들짝 놀라 휴지로 재빨리 닦아냈다.

“미안합니다. 회사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는데….”

“주제넘었다면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 전전 회장님부터 지금 회장님까지 회사 대표가 세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제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이유가 뭔데요?”

“저는 회사의 가치만 보고 일을 합니다. 제 판단으로는 지금 회장님이 이 회사에 가장 적격이라는 생각입니다.”

“어째서죠?”

“우선 회장님은 판단이 정확하시죠. 그리고, 직원을 대하는 태도도 진심이고요. 무엇보다 사람을 끄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서원이 다시 한번 휴지로 눈을 꾹 찍어 남은 눈물을 닦아버렸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차성철 부장님이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앉아서 아무것도 못 했을 겁니다. 불미스러운 일로 교체된 자리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회사를 이끌어 나갈 겁니다.”

“네. 그러셔야죠. 그게 제가 퇴사하지 않고 여기 남아 있는 이유니까요”

“그럼 이제 회의하러 가볼까요?”

자리에서 일어나 심호흡을 크게 한 김서원이 차성철을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

* * *

“어서 오세요. 서풍입니다.”

오픈 하자마자 몰려드는 손님들을 향해 전 직원이 큰 소리로 인사하며 그들을 맞았다.

주방에서는 서인우를 중심으로 강진수와 오늘부터 새로 호흡을 맞추게 된 다섯 명의 직원이 긴장한 듯한 모습으로 첫 주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 새로운 [서풍]의 첫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해 멋진 작품을 만들어 봅시다.”

“네! 셰프!”

강진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주방 전체에 울렸다.

“3번 테이블에 탕수육, 먹물만두, 짜장 둘, 삼선볶음밥. 그리고 2번 룸에 양장피, 백 짬뽕, 마파두부. 바로 시작합시다.”

화라락!

일제히 화력을 높여 웍을 달구기 시작했다.

강진수가 탕수육을 만드는 동안 서인우가 양장피를 만들고 있었다.

샤사사사샥!

타다다다닥!

경쾌한 도마소리가 주방에 울리고 곧바로 달궈진 웍에 재료를 볶은 서인우는 전과 똑같은 속도로 요리를 만들어냈다.

완성된 요리를 접시에 담아 서인우가 홀로 나가 모습을 보이자 식사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그를 쳐다봤다.

“서인우씨.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사고 이겨내고 재활 성공한 거 축하드려요.”

“이제 여기오면 서인우 셰프님 매일 볼 수 있는 거죠?”

“어째 하나도 안 늙었대?”

“저 사람이 나오니까 갑자기 홀이 환해지네.”

이미 홀이 거의 찬 상태에 자리에 앉아있던 손님들이 제각각 한마디씩 거들었다.

“뉴스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그래도 천만다행이지.”

“서인우 셰프 그렇게 만든 놈은 물에 빠져 죽었다면서요? 에구, 잘나가는 [만가복] 회장이 뭐가 아쉬워서 그런 짓을 했는지….”

서인우는 웅성웅성 들리는 소리가 신경 쓰였다.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지겠지만, 언제까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할지 끔찍했다.

성큼성큼 홀을 지나 룸으로 들어간 서인우가 각양각색의 재료로 화려하게 장식한 양장피 접시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주문하신 양장피 나왔습니다.”

“다시 만나 반가워요. 서인우 셰프님.”

“네?”

놀란 눈으로 자세히 쳐다본 그곳에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거의 다 가리고 있는 사람이 환하게 웃는 눈으로 서인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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