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196화 (196/200)

제196화.

서인우는 중식도에게 말한 대로 여느 때와 똑같이 일어나 새벽 운동을 하고 시장에서 재료를 주문했다.

백화점에 다가오면서 잔뜩 긴장했던 출근길도 무사히 넘어갔다.

‘오늘도 무사히.’

-와씨. 이거 제대로 명 단축하게 하네.

‘사부 명이 단축되면 999살인가? 998살인가?’

-서인우 대단하다. 이 와중에 농담이 나오냐?

‘사부 덕에 아무 일 없이 잘 출근했잖아. 오늘 하루도 최고의 요리를 선보이기 위해 난 최선을 다할 거거든.’

직원들이 하나둘 출근하면서 주방도 홀도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강진수 씨 휴가로 다들 더 바쁘겠지만, 내가 배울 기회가 더 많아진다는 거 잊지 마시고 오늘도 파이팅합시다.”

안 그래도 정신없는 주방이 큰 역할을 하고 있던 강진수의 부재로 그야말로 불붙은 호떡집 같았다.

“1번 테이블 깐풍기. 짜장 둘. 백 짬뽕 하나. 7번 테이블 탕수육. 먹물 만두, 삼선볶음밥. 짬뽕 둘. 바로 시작합시다.”

타다닥!

화라락!

화구에 불붙이는 소리와 함께 각종 채소와 해물에 불향이 제대로 입혀지기 시작했다.

“탕수육 소스에 전분물이 조금 부족합니다. 반 국자 더!”

서인우는 달콤하고 매콤한 소스를 만들어 놓은 웍에 바싹하게 튀겨놓은 닭고기를 넣으며 오상준이 만들고 있는 탕수육을 쳐다보고 있었다.

“네?”

맛을 본 것도 아니고, 단지 눈으로 전분물 양의 부족을 정확히 알아챈 서인우를 보고 오상준이 그저 입만 벌리고 있었다.

“너무 오래 볶으면 바삭함이 사라집니다.”

“네? 네. 바로 완성하겠습니다.”

띵!

말하는 중에 깐풍기를 완성해 벨을 누른 서인우가 바로 짬뽕을 만들기 시작했다.

재료를 준비해 놓은 직원들이 그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지가 뭐 좀 도울 게 있을랑가요? 주방이 너무 거시기 헌디.”

어느 때보다 빠른 동작으로 만두를 수북하게 만들어 놓은 이명옥이 다가와 물었다.

“서풍 만두 총 주방장님이 도와주시면 큰 힘이 되죠. 하지만, 맛이 달라지면 안되기 때문에 바빠도 저희가 하겠습니다.”

“실은 내가 볶음밥은 좀 허는디, 7번 테이블 삼선 볶음밥 맨들어 보면 우짤가요? 물론 [서풍]의 레시피로 할 수 있는디요.”

“네? 저희 레시피로 말입니까?”

“서당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는디, 이래 봬도 내가 눈썰미가 쪼까 알아준당께요.”

“좋습니다. 그러면 내 옆에서 바로 만들어 보세요. 확인하고 같은 맛이 나야지만 테이블에 내놓을 겁니다. 못 나가도 너무 서운해하시지는 말고요.”

이명옥이 짧은 대답과 함께 벌써 데쳐놓은 해물들을 볶아내고 있었다.

볶은 해물을 한 곳에 덜어 놓고는 바로 달걀 물을 넣어 포슬포슬한 달걀에 밥과 다진 채소를 넣고는 국자로 꾹꾹 눌러가며 재빨리 볶았다.

웍을 흔드는 모습이 아주 능숙하게 보였다.

미리 볶은 해물들과 함께 멋지게 완성해놓은 이명옥이 쑥스러운지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지가 본대로 완성은 했는디요. 맛이 우짤랑가 모르겄소.”

짜장면을 만들면서 동시에 이명옥이 [서풍]의 방식대로 볶음밥을 만들고 있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보고 있던 서인우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완성된 삼선볶음밥 맛을 본 서인우가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데요? 뭐 하세요? 바로 벨 누르시지 않고.”

“워매. 합격이어라?”

“아주 맛있습니다. 간도 정확하고요.”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던 직원들이 각자 하던 일에 더 열정을 쏟아 넣었다.

“앞으로 요로코롬 바쁜 날에는 지가 볶음밥은 맡아서 해도 되겄지라?”

“네, 부탁드립니다.”

완성된 요리들이 나가기 바쁘게 또 새로운 주문이 밀려 들어왔다.

만두를 삶을 물이 펄펄 끓고, 여기저기 고기며 새우등을 튀기는 열기가 합해져 직원 모두 목덜미에 땀이 흘렀다.

그래도 누구 하나 인상 한 번 쓰지 않으며 즐겁게 요리를 만들었다.

바쁜 점심 장사를 마치고 다들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서인우 역시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뻐근한 손목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괜찮냐?

‘뭐가? 손목? 이정도야 뭐! 좀 움직여주면 괜찮아져. 안 그래도 직원이 부족한 주방인데, 강진수 빈자리가 이렇게 클 줄 몰랐네.’

-빨리 하나 더 뽑아. 이건 사장이 제일 바쁘니, 뭐 이런 식당이 있냐?

‘다른 직원들보다 더 빨리 할 수 있으니까 내가 두배, 세배 노력하는 거야. 그래야 손님들도 바로바로 식사를 할 수 있지.’

-하긴 짜장면 집에서 음식 늦게 나오면 그게 제일 짜증나지.

‘맞아. 빨리 나오고 또 그만큼 빨리 먹을 수 있는….’

중식도와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이준형 이었다.

“준형아! 어떻게 됐어? 김원상에 관한 무슨 소식이라도 있어?”

-아직. 그나마 어제 오후까지는 핸드폰이 켜져 있었는데, 저녁부터 완전히 꺼져버렸다.

“잠은 잘 거 아니야? 어디든 카드를 썼을 텐데….”

-그게 베트남 입국 이후 카드를 사용한 흔적이 없어. 호텔도 가지 않은 것 같아.

“그러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여기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다는 걸까?”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에 서인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중식도가 본 장면을 누구에게 말도 못 하는 상황에 김원상의 행방도 알지 못한다.

-경찰에서도 김원상이 갈만한 곳을 조사하고 있어. 거기 영사관에도 연락해놓은 상태야.

“알았어. 다른 소식 있으면 바로 알려줘.”

-그래. 다른 곳도 아니라 거기에 갔다는 건 어쨌든 찝찝해. 항상 조심하고.

“그래, 걱정하지 마.”

통화를 마친 서인우가 어깨를 크게 올리며 심호흡을 한 뒤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이른 저녁을 먹으러 오는 손님들이 많아지면서 저녁 피크타임이 따로 없었다.

5시가 조금 넘어서부터 거의 마감 때까지 정신없이 주문이 들어왔다.

또다시 채소를 볶고, 고기를 튀기고 싱싱한 각종 해산물을 볶았다.

윤기 자르르한 요리와 탱글탱글한 면을 수 없이 만들었고, 요리의 완성을 알리는 벨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휴! 이제 마지막 주문까지 끝났네요. 다들 수고했어요.”

“오늘 온종일 사장님 손이 보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쩌면 그렇게 음식을 빨리 만드는지 정말 대단합니다.”

이명옥과 함께 만두를 만들며 제법 빠른 속도에 익숙해진 김명순인데도 서인우가 요리하는 모습에 놀란 듯 보였다.

“바쁘니까 저절로 더 빨라지네요. 얼른 직원을 더 충원해야 겠어요. 이러다가 우리 주방 직원들 쓰러지겠습니다.”

“나는 그 전에 사장님이 먼저 까무라칠까 거시기 헌디요.”

“오늘 우리 이명옥 총주방장님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네요.”

“쪼까라도 도움이 됐다고 허시니께 기분이 좋긴 허네요. 이제 후딱 정리하고 다들 들어갑시다.”

이명옥의 마무리와 동시에 너나 할 것 없이 가게 청소와 정리를 시작했다.

서열도 경력도 절대 내세우지 않고 마치 내 가게인 듯 뭐든 나서서 해주는 직원들이 정말 고마웠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홀 직원들과 주방 직원들까지 우르르 빠진 [서풍]을 쭉 둘러본 서인우가 만족스러운 얼굴을 보였다.

-퇴근 시간이라 쫄려 죽겠는데, 넌 왜 웃고 있냐?

“나는 참 복이 많은 것 같아. 우리 직원들은 하나같이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어.”

-뭐 다들 보고 배우는 거지.

“뭘 말이야?”

-여긴 사장이 가장 일 많이 하고 바쁘게 움직이는 곳이잖아. 원래 사장이 땡땡이 치고 빈둥거리면 직원들도 똑같이 내뺄 궁리만 하는거야.

“그런가? 그럼 내가 좋은 영향을 주는거군.”

-뭐 누군가는 말은 안 해도 불만은 있겠지. 사장이 드럽게 눈치 없이 일찍 와서 제일 늦게까지 가장 바쁘게 일하니까 중간중간 놀지도 못하고 말이야.

“듣고 보니 그렇네. 직원 더 뽑아 여유 좀 생기면 내가 종종 주방을 비워줘야겠어.”

-그래. 나랑 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놀자.

“그러려면 오늘도 무사히 귀가 해야겠지?”

중식도가 본 사고 장면을 잊어버리려 이런저런 얘기를 해도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너도 계속 불안하지?

“사실 그래. 잊히지 않고 자꾸 머릿속에 맴돌아서.”

-그 영상을 직접 본 나는 어떻겠냐? 종일 답답하고, 걱정돼서 미칠 것 같았다.

“오늘도 별일 없을 거야. 이제 집으로 가보자.”

어제처럼 중식도를 가방에 잘 넣고 백화점 입구를 빠져나왔다.

당연한 거지만 역시 제일 번화한 거리인 만큼 차들도 쌩쌩 정신없이 지나갔다.

‘긴장되지만 당당하게 걸을 거야.’

-그래. 나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뭐든 느껴지면 바로 알려 줄게.

씽씽 지나가는 차들에 깜짝깜짝 놀라며 막 길을 건너려 건널목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길 한쪽에 비상등을 키고 서 있던 차가 신호등이 바뀌려는 순간, 마치 경주하는 말처럼 소리를 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서인우! 지금 건너지 마. 빨리 길 위로 올라가! 어서!

잔뜩 긴장하며 길을 건너고 있던 서인우가 중식도의 외침이 들려오는 순간 정신없이 몸을 돌려 보도블록을 향해 뛰었다.

굉음을 내며 달려오던 검은색 세단이 바퀴를 틀어 서인우를 향해 돌진해왔다.

무서운 속도로 빠르고 거칠게.

그리고는.

쾅!

신호등 아래까지 달려온 서인우가 막 블록 위로 올라오려 할 때 검은 세단이 미처 올라오지 못한 서인우의 다리와 신호등을 동시에 박아버렸다.

-으아악! 서인우! 정신 차려!

신호등과 검은 세단 사이에 오른쪽 다리가 박힌 서인우가 점점 의식을 잃어가고 있을 때, 검은 세단이 거대한 마찰음을 내며 다시 한번 달려오기 위해 차를 조금씩 뒤고 빼고 있었다.

-서인우! 너 정신 안 차려! 제발, 제발 이대로 쓰러지면 안 돼. 정신 좀 차리란 말이야! 으으으 아아악!

처음 듣는 거대한 소리였다.

주변의 모든 소리를 누군가가 다 빨아들인 듯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온 세상이 어지럽게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았다.

오로지 사부의 처절한 외침만 귓가에 맴돌았다.

점점 더 크게.

급기야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어마어마한 괴성에 힘겹게 눈을 뜬 서인우의 시선에 조금 전 그 자가용이 그를 향해 다시 달려드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난 절대 죽지 못해. 가여운 엄마에게 이 끔찍한 경험을 또 하게 할 수 없어. 나, 나는 절대….’

그때 또다시 조금 전 괴성이 들려왔다.

-으으으 아아악! 정신 차리라고!

단지 서인우에게만 들리는 엄청난 소리.

그 소리와 함께 눈앞에 있는 모든 물건이 마치 회오리바람 속에 빨려 들어간 듯이 둥둥 떠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더니 서인우의 몸도 붕 뜨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다시 들린 중식도의 외침이 있었다.

-잠시만, 아주 잠깐만이라도 정신을 차려봐! 제발 눈을 뜨고 나를…. 나를 한 번만 불러다오. 제발….

“으윽!”

서인우가 안간힘을 쓰며 눈을 뜨려 애썼다.

“윽! 사, 사부!”

콰과쾅!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서인우가 보도블록 위로 뒹굴었다.

요란한 경적과 사람들의 비명, 멀리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

잠시 세상의 소리가 다 사라진 듯했던 정적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기저기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들려왔다.

그리고, 그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의 시끄러운 소리 속에서 나지막하게 들리는 중식도의 소리가 있었다.

-장하다. 내 제자. 정신 차리고 힘을 내줘서 고맙다!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다시 온 세상이 깜깜하게 변해 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