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192화 (192/200)

제192화.

남성재가 약식으로 작성해 온 계약서를 펼쳐 보였다.

“우선 다행히 대표님이 말씀하신 대로 [서풍]의 이름과 레시피를 사는 절차를 밟기로 했습니다. 단, 저희가 처음 드린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조건에서요.”

서인우가 슬쩍 이준형을 쳐다봤다.

“당연히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 위해 저희도 이렇게 애쓰고 있는 겁니다.”

“그렇죠. 양쪽 모두 서로 윈윈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죠. 그럼 이 서류를 한 번 검토해 주시겠습니까?”

“이게 뭔가요?”

“제가 서로의 요구 조건을 정리해서 우선 간단하게 계약서를 만들어 봤습니다. 반대하는 의견이나 뭐 덧붙여야 하는 내용이 있으면 추가해서 최종 계약을 하면 될 것 같아요.”

이준형이 계약서의 내용을 한 글자 한 글자 꼼꼼하게 살폈다.

서인우와 이준형이 요구한 대로 교육과 기타 비용으로 5억을 입금한 후부터 전문 요리사에게 정식으로 [서풍]의 모든 레시피를 전수해준다는 내용이 시작이었다.

“말씀을 정리하자면 대표님이 제시하신 5억을 입금하는 순간부터 저희 중국 요리 협회는 북경에 [서풍]을 열 정식 자격을 얻게 되는 거죠?”

“그렇죠. 그러면 저희는 바로 선발된 전문 요리사에게 [서풍]의 모든 레시피를 전수해서 그 간판을 걸고 요리할 수 있게 확실히 준비해 줄 겁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이 교육하시는 동안 우리 협회에서는 보고 오신 북경의 그 식당에 [서풍]을 열 수 있도록 인테리어며 다른 직원 채용까지 완벽하게 준비를 끝내 놓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인 계약 조건들을 서로 논의해 보도록 하죠.”

이준형이 준비한 서류를 내보이자, 남성재 역시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보였다.

“어제 말씀드린 내용을 기반으로 구체적으로 작성한 계약서입니다. 꼼꼼하게 살펴보시고 다시 의논하도록 하죠.”

이준형이 작성해 온 [서풍]의 레시피 전수를 위한 계약서를 보였다.

이미 충분히 얘기된 부분이라 그런지 서류를 살피는 남성재의 표정이 그다지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서류 잘 살펴봤습니다. 말씀하신 내용에서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네요.”

“네, 어제 보여드린 서류를 조금 더 구체화해서 작성한 것뿐입니다.”

“알겠습니다. 이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에 그 전제 조건에 해당하는 우리 협회 쪽 계약서를 살펴보시고 동시에 진행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만만치 않은 남성재가 이준형이 건넨 서류를 한쪽으로 밀어놓고 자신이 준비한 계약서를 가까이 들이밀었다.

“내용을 잘 보시면 알겠지만, 북경에 있는 식당은 이미 모든 게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전문 요리사 교육을 마치는 대로 바로 투입해서 영업을 시작할 수 있게 할 겁니다.”

“그러면 지금 운영하는 그 식당은 언제까지 영업하는 건가요?”

남성재가 살짝 당황한 듯 헛기침을 하더니 대답했다.

“제가 그래서 요리사 교육 기간을 물어봤던 겁니다. 협회에서는 그 기간을 고려해서 5월 1일부터 인테리어를 시작하는 걸로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잠깐 봤지만, 손님도 많고 장사도 잘되는 것 같던데…안타깝네요.”

“지금 사장이 건강이 안 좋아 더 못하는 거지 장사는 정말 잘 된다니까요. 그러니 서인우 대표님이 얼마나 운이 좋은 겁니까?”

이준형이 핸드폰을 켜서 캘린더를 펼쳤다.

“그러면 한 달 정도 남았네요?”

“네, 그동안 거기 사장은 가게 정리하고 셰프님은 바로 우리 직원 교육하고 계시면 우리 협회에서는 완벽하게 [서풍] 인테리어 작업을 할 겁니다.”

“전문 요리사라 믿기는 하지만, [서풍]의 모든 레시피를 똑같이 할 수 있으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네, 자신만만한 요리사들이 준비하고 있으니까 그 걱정은 정말 접어두셔도 됩니다. 그러면 이 계약서 내용을 꼼꼼하게 봐주세요.”

남성재가 제시한 계약서는 서인우를 찾아와 제안했던 내용들이 모두 글로 적혀 있었다.

대략적인 내용은 서인우가 협회 소속 전문 요리사 두 명에게 [서풍]의 모든 요리를 전수해준다는 것과 5월 1일부터 인테리어를 시작해 6월 1일에 북경 [서풍]을 오픈한다는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은 북경에 [서풍]을 오픈하겠다고 주장하는 그 건물의 임대료와 직원 고용 및 기타 제반 비용을 포함한 투자 액수였다.

그 단락을 읽고 있던 이준형의 눈이 잠시 튀어나올 듯 커졌다.

다시 안정을 찾은 듯 편안한 표정으로 돌아온 이준형이 남성재를 보며 물었다.

“지금 여기 적혀 있는 투자 액수 20억이 어떻게 산출된 건가요?”

“아! 그건 뒷장으로 넘겨보시면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바로 한 장 넘겨 내용을 살핀 서인우와 이준형이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얼굴로 서로 쳐다봤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북경도 물가가 장난 아니네요.”

“워낙 핫한 거리니까요. 그래서 제가 서류를 하나 더 준비해왔습니다.”

남성재가 가방에서 다른 서류 하나를 꺼내 보였다.

“우리가 [서풍] 강남점의 매출표를 보고 투자를 결심한 것처럼 현재 운영하는 그 식당의 지난 2년간 매출표를 첨부했습니다.”

“식당이 워낙 크고 손님이 많다고 느끼기는 했는데, 월 매출이 대단하네요.”

“평균적으로 월 매출이 6억 정도 되는 거고, 연말이나 특별한 행사가 잦은 달에는 보통 매출 8, 9억을 찍습니다.”

“이 매출표를 보니 초기 투자 비용 20억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합니다.”

숨기지 못하고 입꼬리를 살짝 틀어 올린 남성재가 이때다 싶은지 말이 빨라졌다.

“그래서 다른 업체에는 비밀로 하고 [서풍]에만 기회를 주는 거 아닙니까? 우리 회장님이 그 방송을 보고 딱 감이 오셨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이준형이 열심히 리액션을 해주고 있었다.

“지금 북경 그 자리에 저게 들어오면 반드시 성공한다고요. 사실 한국식 중화요리는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맛 아닙니까?”

“그렇죠. 특별히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싫어하다뇨? 오히려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선택을 못해서 더 문제죠.”

모두가 동감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작게 웃었다.

“그럼 계약을 진행할까요? 혹시 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거나, 더 추가할 내용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이건 약식 계약서이고 정식 계약서 바로 작성해서 진행하면 됩니다.”

이준형과 함께 내용을 꼼꼼히 살피던 서인우가 질문을 던졌다.

“그럼 오늘 저희와 계약서를 작성하고 나면 바로 돈이 입금되는 겁니까?”

“네, 계약서 작성하면 바로 10%의 계약금이 입금될 겁니다. 나머지는 내일 바로 입금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남성재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약식 계약서를 다시 서인우에게 가까이 보였다.

“이 계약서의 일정을 잘 보시고 서인우 대표님의 스케쥴을 조절해주셨으면 합니다.”

“4월 1일부터 교육받을 요리사들이 이곳에 오게 되어 있네요?”

“네, 서인우 셰프님의 손맛을 그대로 낼 수 있게 잘 교육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내가 중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데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남성재의 당황하는 눈빛을 순간 놓치지 않은 이준형이 바로 물었다.

“통역도 같이 준비된 거겠죠?”

“다, 당연히 그렇죠.”

다시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서인우가 계약 내용을 하나씩 살펴봤다.

“남성재 씨는 이곳에 내가 20억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확신하시는 거죠? 그러니까 이렇게 베트남까지 저를 찾아와서 투자 제안을 하신 거겠죠?”

“당연합니다. 북경에서 가장 사람이, 그것도 돈 많은 사람이 몰리는 곳에 다른 업체도 아닌 [서풍]이 오픈한다면 이건 분명히 성공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네, 저도 느낌이 좋습니다. 이번 북경은 우리 [서풍]의 이름과 레시피를 모두 사서 영업을 하는 곳이니만큼 궁금하기도 하고요.”

“우리가 성공하면 분명 또 다른 지역에서 연락이 올 겁니다.”

서인우가 남성재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다른 때보다 힘이 들어가 있었다.

“북경이 유일한 곳이 될 것입니다. 중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서풍]을 프랜차이즈화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럼 이번에만 특별히 기회를 주는 겁니까?”

“네, 남성재씨와 협회 회장님이 워낙 진정성 있게 저를 잘 설득하신 거죠. 그래서 내 전부나 마찬가지인 [서풍] 요리의 레시피를 모두 공개하는 겁니다.”

이준형이 눈치껏 말을 보탰다.

“우리 대표님은 중식은 특히 주방장의 스킬에 따라 너무 많이 달라질 수 있는 음식이라고 수없이 말해왔습니다. 그래서 워낙 깐깐하고 지독하게 직원들을 가르치고 있는 거기도 하고요.”

“네, 이미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북경의 [서풍]은 그곳을 맡아서 해줄 분들의 몫입니다. 얼마나 배운 대로 성실하게 요리에 임해줄지, 저도 그들을 믿고 또 그 건물에 매료돼서 투자를 결정한 거고요.”

남성재의 입꼬리가 슬며시 틀어 올라갔다.

“그러면 이렇게 계약을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네. 단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이 누락되어 있네요.”

“뭐, 뭐가 빠졌나요?”

“지금 북경에 [서풍]을 준비하고 있는 주소는 여기 정확하죠?”

“그럼요. 이미 가보셔서 잘 알 거 아닙니까?”

“네,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겁니다. 영업장 주소 정확하고, 모든 수익을 똑같이 반으로 나누겠다는 내용도 확인했고요.”

계속해서 눈을 깜빡거리고 있는 남성재가 어색하게 웃으며 서인우와 이준형을 번갈아 쳐다봤다.

“꼼꼼하게 잘 따져보도록 하세요. 워낙 큰 액수가 오가는 거니까요.”

“네, 그러고 있습니다.”

“6월 1일 정식 오픈은 사정에 따라 조금은 변동이 가능할 거고요, 맞죠?”

“그럼요.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으니까요.”

“나에게 교육받은 전문 요리사 두 명에 그들을 보조해줄 요리사 여덟 명을 추가로 투입해 진행한다고 했고요, 그 요리사는 전적으로 협회에서 책임지고 고용하겠다는 내용이고.”

서인우가 계약서의 내용을 하나씩 짚어가며 확인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얘기되온 내용과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습니다.”

“당연하죠. 여기까지 오기 위해 제가 서인우 대표님을 얼마나 쫓아다녔습니까? 둘이 합의된 내용으로 계약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아까 말한 누락된 중요한 사항만 첨부해 주시면 문제가 될 것이 없겠습니다.”

“어떤 내용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서인우가 이준형과 남성재를 한 번씩 쳐다보고는 목소리에 힘을 줘 말하기 시작했다.

“본 계약에 따른 투자를 위해 협회에 다음의 조건을 충족할 것을 요구할 수 있으며,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본 계약은 성립되지 못하고 파기되는 것으로 한다!”

“그 조건이라는 게 뭘 말하는 겁니까?”

“제일 중요한 조건은 계약 내용 중 그 어떤 것도 사실과 다르지 않아야겠죠.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이 계약은 바로 파기되는 겁니다.”

“네? 파, 파기요?”

“사실과 다를 경우에 말입니다. 혹시 이 계약서 내용에 설마 뭐 한가지라도 거짓이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도 아닌 남성재씨가 직접 작성한 건데요?”

“그런 일은 절대 없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모든 걸 다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시작한 일 아닙니까?”

“그러니까요. 저도 남성재씨 믿고 진행하는 거지 그전에는 이런 투자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번 북경이 유일한 곳일 거라고 말입니다.”

서인우의 확신에 찬 말들에 남성재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그럼요. 잘 판단하셨습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제가 말씀드린 부분을 특히 진한 글자로 눈에 확 띄게 작성해서 최종 계약서를 가져오시면 바로 사인하고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 바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그렇게 하도록 하죠.”

“그럼 [서풍] 쪽 계약서부터 진행하도록 합시다.”

다시 한번 꼼꼼하게 점검하고 둘이 같이 사인을 마쳤다.

그리고 바로 남성재가 어딘가로 문자를 보내고 5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다시 문자가 들어왔다.

“계약서에 적힌 계좌로 계약금 5천 입금했습니다. 확인해보세요.”

서인우가 핸드폰으로 회사 계좌에 돈이 입금된 걸 확인하고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확인됐습니다.”

“그럼 내일 계약서 최종본 들고 다시 오겠습니다.”

남성재가 카페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 이준형이 물었다.

“너, 뭔가 계획이 있는 거지?”

“오늘 저녁에 북경에서 메일이 올 거야. 그거면 내일 있을 계약서 파기할 수 있어.”

서인우의 반짝거리는 눈이 모든 걸 말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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