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189화 (189/200)

제189화.

급하게 울어대는 핸드폰에 떠오른 이름은 이준형이었다.

“준형아.”

-서인우, 너 아직 북경이냐? 베트남으로 돌아갔어?

“나 여기 베트남 [서풍]인데?”

-내가 밤새 작전을 세워봤는데 말이야. 우선 오늘 남성재 씨와 통화를 먼저 해서 계약하자고 해.

“뭐? 다짜고짜 계약부터 하라고?”

서인우는 직원들을 피해 복도로 나가 조용히 전화 통화를 이어갔다.

-당연히 계약서에 사인을 하라는 게 아니고, 계약하겠다고 저쪽에 확신을 주자는 얘기야.

“계약하겠다고 하고, 그다음은?”

-조건을 걸어야지.

“조건?”

-저쪽에서 먼저 말한 제안서에 따르면 우리가 중국 요리 협회 전문 요리사에게 [서풍]의 모든 요리를 가르쳐 주는 조건으로 20퍼센트의 지분을 받기로 되어 있잖아? 맞지?

“그렇지. 내가 보내준 제안서 그대로야.”

이준형의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건 저쪽 제안이고, 우리도 의논해본 결과 [서풍]의 모든 레시피를 다 공개하는 건데, 20퍼센트 지분으로는 안될 것 같다고 해.

“정확한 네 계획은 뭔데?”

-그건 만나서 자세히 얘기해줄게. 우선 오늘 통화해서 내일 오후로 약속을 잡아봐.

“뭐? 만나서?”

-내일 새벽 비행기로 날아갈 테니까 같이 해결하자.

“너 회사는 어쩌고?”

-잊었나 본데, 나도 사장이다. 그 정도 스케쥴 조정은 가능해.

서인우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네가 온다니까 정말 좋다. 든든해. 솔직히 이번 일 혼자 해결하려고 하니까 머리가 너무 아팠거든.”

-그럴 줄 알고 이 브레인 형아가 뱅기표 끊었잖아. 딱 기다려!

“알았어. 지금 바로 남성재랑 통화해서 내일 오후로 약속 잡아놓을게. 조심해서 와.”

-오케이. 내일 보자.

서인우는 핸드폰에 찍힌 시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바로 남성재의 이름을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서인우입니다.”

-아, 네! 서인우 셰프님. 북경에 들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남성재 씨가 알려주신 중식당 한 번 보려고 갔습니다.”

-그러셨군요? 말씀하셨으면 제가 모시고 가서 안내해드렸을 텐데요.

남성재의 목소리에 아쉬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네요. 갑자기 북경에 볼일이 있어서 겸사겸사 갔습니다. 다음엔 같이 가서 자세히 안내해주세요.”

-보니까 어떠신가요? 멋지지 않습니까?

“제가 중국어를 전혀 못 해서 구경만 하고 바로 왔습니다. 정말 근사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네, 말씀하세요.

조금 전 이준형과의 통화를 떠올리며 서인우가 말을 이었다.

“구체적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싶습니다.”

-그래요? 생각보다 빨리 결정을 해주셔서 너무 좋은데요? 그럼 언제가 시간이 편하십니까?

“계약서 작성 전에 저희 쪽에서도 제안할 내용도 있고, 이런 일에 전문인 제 공동대표가 내일 도착합니다. 오후에 같이 만났으면 하는데요.”

-아! 그러신가요? 알겠습니다.

남성재의 목소리가 살짝 당황한 듯 들렸다.

“내일 저녁 주문 들어오는 거 빨리 처리하고 7시 반쯤이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시간 괜찮으시겠어요?”

-네, 저는 언제라도 맞출 수 있습니다. 지금은 저에게 이 일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매번 이해해주시고 제 편의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긍정적으로 계약까지 생각하신다고 말씀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죠.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이준형의 말대로 약속을 잡아놓긴 했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그가 도착해봐야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통화를 마치고 들어간 주방은 열기로 가득했다.

한창 바쁜 저녁 식사 타임이었다.

“사장님, 방금 주문 들어온 해물누룽지탕 완성했습니다. 체크 좀 해주세요.”

강진수가 만들어 놓은 누룽지탕 소스를 맛 본 서인우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띵!

바로 접시에 담아 요리의 완성을 알렸다.

“사장님. 먹물 만두 이제 2인분 남았서라. 더 맹글 재료가 없는디요.”

마감까지 한 시간 남은 상태였다.

“오늘은 그것까지만 하죠. 지금 재료를 준비하면 마감 전에 소진하기 힘들 듯합니다.”

“지 생각에도 그라네요. 이미 만두소를 두 번이나 리필 했는디.”

포장 판매량이 많아지면서 하루에 두 번씩 대량으로 만드는 만두소로도 부족하기 시작했다.

“요즘 많이 힘드시죠? 여기 사람들도 만두를 정말 좋아하네요.”

“그래도 사장님이 포장 담당 직원을 따로 뽑아주셔서 훨씬 편합니다.”

[서풍 만두]에서 서인우를 따라 베트남까지 같이 온 두 사람의 열정이 이곳에서도 통하는 것 같았다.

[서풍]을 찾는 교민들 뿐 아니라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영양가 있게 한 끼를 해결하는 만두로 인기 만점이었다.

만두는 벌써 다 팔렸고, 백화점 마감 시간까지 정신없이 음식을 만들었다.

재료 준비와 설거지 등 바쁜 일손을 도와주는 현지 직원들도 이제는 제법 익숙한 모습을 보였다.

다른 직원들과의 교류부터 칼질의 속도까지 하루하루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들 오늘도 수고 많았습니다. 각자 편안한 시간 보내고 내일 보도록 합시다.”

합심하여 빠르고 깔끔하게 정리와 청소를 마친 직원들이 하나둘 인사하며 백화점을 나섰다.

[서풍]뿐 아니라 온 백화점이 정적에 빠져드는 시간.

아직 정리하며 분주한 모습을 보이는 매장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고요한 분위기였다.

-조용해지니까 [서풍]에 돌아온 게 실감 나네.”

“그래, 사부! 난 이 시간에 하루를 되돌아보는 게 참 좋아.”

-난 이 시간에 아무것도 안 하고 멍때리고 있는 게 참 좋아.

“멍 때리고 있는 거 별로인데. 베트남에서만 먹힐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볼까?”

-그런 거 하지 마라. 업무 외 근무수당 몇 배로 줘도 노 땡큐다.

“오늘은 나도 빨리 가서 좀 자야겠다. 아 참!”

서인우의 말에 중식도가 눈앞에서 빙그르르 돌았다.

-왜? 무슨 일 있어?

“내일 준형이가 올 거야. 이번 북경 갔던 일 같이 의논하고 계획 세워야 한다고.”

-이야. 이거 얼마 만에 보는 거냐? 간만에 고놈 떠는 거 좀 보겠네.

“안 그래도 엉아가 나서야 일이 해결된다나 뭐라나.”

-그놈 와꾸는 여전하겠지?

서인우가 소리를 내 웃었다.

-왜?

“우리 준형이 얼굴은 왜 자꾸 와꾸야?”

-그냥 견적이 좀 그래.

“그런데 말이야. 사부 얼굴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내 인성이나 능력, 이 근사한 음성을 고려해봤을 때 최소 서인우급은 되지 않았을까?

“그럴까? 하긴 혹시 알아? 너무 잘 생기고 멋있어서 황제의 미움을 받고 죽임을 당했던 것 일수도.”

-악! 인우야! 그게 맞는 것 같아. 이상하게 내 얘기처럼 확 끌리는데?

“진짜 못살아.”

중식도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매장 정리를 완벽히 마친 서인우가 전원까지 꼼꼼하게 체크한 후 집으로 돌아갔다.

* * *

재료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던 서인우 앞에 나타난 이준형은 영락없이 해외 출장으로 온 사업가 티가 났다.

“똑똑! 서인우 대표님!”

“준형아!”

“반갑다, 인마.”

한걸음에 다가간 서인우와 이준형이 반가운 마음을 가득 담아 서로 잠시 끌어안았다.

“내가 나간다니까 비행기 시간도 안 알려주고 이렇게 서프라이즈 하는 거냐?”

“그럼, 각자 얼마나 바쁜지 스케쥴 다 아는데, 그리고 내가 또 영어가 되잖냐?”

-이야, 저 와꾸 보니까 정말 반갑네. 하긴 저놈이 얼굴 빼고 다 되는 놈이었지.

반가운지 중식도의 목소리가 평상시보다 크게 들렸다.

“피곤하지? 아침은?”

“내가 설마 여기 오면서 아침을 먹고 왔겠냐?”

“백짬뽕?”

“고롬, 곱빼기로.”

둘의 대화가 재밌다는 듯 지켜보고 있던 직원들이 인사할 타이밍을 찾고 있는 듯 쭈뼛거리고 있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믿고 의지하는 내 친구이자 동업자 이준형 사장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방금 소개받은 그런 놈입니다.”

이준형의 농담 섞인 인사에 직원들의 웃음이 온 식당에 울렸다.

직원들과 인사를 마치고 백 짬뽕까지 곱빼기로 먹어 치운 이준형과 조용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 저녁 7시 반에 보기로 했다.”

“계약 얘기하니까 바로 보자고 하지?”

“응, 내가 북경에 다녀온 걸 알고 있길래, 식당을 보니 더 욕심이 난다고 얘기해놓기는 했어.”

“오케이.”

이준형이 가방에서 파일을 하나 꺼내 보였다.

“이거 보면서 얘기하자.”

파일의 첫 장을 넘기던 서인우가 놀란 눈으로 이준형을 바라봤다.

“왜? 좀 있어 보이냐?”

“이렇게 구체적으로 여러 플랜을 짜왔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

“철저하게 준비해야지. 나도 박정원 대표님과 같이 사업하면서 다 배운 것들이다. 이런 노하우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고.”

이준형의 파일에는 이 일의 배후가 누구인지는 모른다는 전제하에 상대방이 우리의 제안에 어떻게 나올지 시뮬레이션을 다 돌려 표로 만들어 놓았다.

“우선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상대방의 투자를 먼저 끌어들이는 거야.”

“상대측이 투자하도록 말이야?”

“그렇지, 우리가 이미 먹잇감이 됐다고 생각할 테니까 조금만 땅기면 가능할 것 같단 말이야.”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줘 봐. 나는 너무 어려운데?”

이준형이 파일을 뒷장으로 넘기며 설명을 이어갔다.

“어제 통화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제안서 내용을 다시 들먹여야지. 중국 요리 협회 전문 요리사에게 우리 [서풍]의 레시피를 다 전수해 주고, 가게 이름을 [서풍]으로 하는것까지 얘기가 된거지?”

“응, 처음에는 전문 요리사에게 기술만 전수해주면 20퍼센트의 지분을 갖게 해주겠다는 제안이었는데.”

“나중에는 [서풍]으로 이름을 걸고 체인점처럼 운영을 하자고 했고?”

“정확히 맞아.”

앞에 놓인 커피를 벌컥 마시고 입을 씩 닦은 이준형이 급하게 말을 이었다.

“보통 유명한 식당의 프렌차이즈를 하려면 여러 가지 창업 비용이라는 게 있잖아?”

“그렇지. 가맹비도 있고 매달 지급하는 로열티도 있을거고….”

“거기에 인테리어 비용도 만만치 않지.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요리사 비용인데, 그걸 교육하니까 교육비라 해야 할 것 같다.”

서인우가 조금씩 이준형이 준비해 온 파일이 이해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좀 알아먹겠냐?”

“응. 그러니까 결국 프렌차이즈를 내는 것과 같으니까 정식 절차를 밟아야겠다는 거지?”

“그렇지. 정말 정식 프렌차이즈화 하려면 가맹비와 매달 지불하는 로열티, 요리사 교육비, 인테리어 비용 등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할거다.”

“그래도 이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보통 식당같은 경우 대략적인 창업 비용이 2억에서 3억 정도 되던데?”

“그건 보통 식당 경우니까.”

이준형이 파일의 다음 장을 넘겼다.

거기에는 현재 [서풍] 강남점의 지금까지의 매출표가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서풍]은 MS 백화점 강남점에 입점한 F&B 사업체 중에서 가장 높은 매출을 보여주고 있었다.

“네가 말한 그 식당은 북경 한가운데 있으면서, 규모도 서울과 여기 [서풍]보다 훨씬 크다면서?”

“응, 그렇긴 해.”

“게다가 전문 요리사 두 명에게 [서풍]의 모든 레시피를 다 교육해줘야 하는 거고, 맞지?”

“그렇지.”

이준형이 준비한 파일의 마지막 장에는 각종 레시피에 가격을 책정해 계산한 도표가 보였다.

“내 친구 이준형 대단하다. 이걸 언제 다 준비한 거야?”

“사실 처음 제안이 들어왔다고 했을 때부터 계속 생각하고 따져보고는 있었어. 너한테 접근한 남성재라는 사람을 조사할 생각은 못 하고 있었지만.”

“나도 마찬가지지. 그 사람이 워낙 진정성 있게 다가왔거든.”

서인우가 이준형이 준비해 온 파일을 처음부터 다시 꼼꼼하게 살펴봤다.

“그러면 그 사람 만났을 때 어떻게 얘기를 끌고 가야 할까?”

“우선 내가 지금 북경에 준비 중인 식당이 [서풍]의 체인점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하면 되는 건지 먼저 물을 거야.”

“그리고?”

“그 사람에게 확실한 우리의 조건을 보여줘야지.”

“액수가 커서 그쪽에서 접지 않을까?”

“정말 [서풍]의 체인점이 욕심났던 거면 뭐든 비용을 줄이기 위해 흥정을 하거나, 아니면 포기하겠지.”

이준형의 눈빛이 반짝하고 빛을 발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의 목적은 서인우의 투자니까. 분명히 어떻게든 따라서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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