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183화 (183/200)

제183화.

중국 요리 협회와 공동 투자로 진행하자는 [서풍] 중국 진출.

서인우 생각에도 나쁘지는 않았다.

단지, 생각지 못한 사업 확장을 하려니 조심스러웠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고 했으니, 꼼꼼하게 따져보고 결정해야 했다.

다시 주방으로 들어온 서인우는 막 시작된 저녁 장사로 정신없는 직원들을 도왔다.

“12번 테이블 칠리새우, 6번 테이블 양장피 준비 먼저 들어갑니다.”

“칠리 새우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오상준이 빠르게 답하며 재료를 준비했다.

“강진수씨. 이쪽으로 와서 양장피 만들어 보세요.”

“네? 제가요? 양장피는 사장님 영역인데….”

“나중에 강진수씨 가게 차리면 양장피 주문 들어올 때마다 내가 가서 해줘야 합니까?”

“에이, 그건 아니죠.”

“내가 만드는 걸 그대로 보고 따라서 똑같이 만들어 보세요.”

“네,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양장피를 만든다는 건 [서풍]의 모든 요리를 다 마스터 했다는 의미였다.

강진수는 지금 그 의미를 너무 잘 알기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서인우가 양장피를 만들 때마다 수도 없이 곁눈질로 훔쳐보고 따라 했던 강진수였다.

속도도 모양도 완벽해진 안정적인 칼질을 선보인 강진수가 채 썬 채소들을 색색으로 구분해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는 굴 소스와 여러 향신료 등을 넣어 화력을 최대로 해 각종 해물과 채소를 볶았다.

그런 후, 편으로 썰어놓은 오이와 벌집 모양의 오징어, 편육 등을 가지런히 접시의 가장자리 쪽으로 둥글게 깔아 놓았다.

“오이와 오징어등 차가운 재료는 바깥쪽에 그리고 방금 볶은 따뜻한 해물 채소 볶음을 안쪽에 그 사이 경계에 양장피를 화려한 꽃처럼 올리는 겁니다.”

강진수가 이미 혼자 수없이 연습했던 양장피를 그대로 선보였다.

“자, 손님 앞으로 가지고 나가서는 소스를 부어 재빨리 양장피를 안으로 섞어주면 됩니다.”

서인우가 완성된 양장피를 가지고 나가 손님에게 제공하고 바로 주방으로 돌아왔다.

“사장님, 그러면 나중에 저도 그 퍼포먼스를 하게 되는 겁니까?”

“아무래도 그 퍼포먼스가 이제 [서풍]의 상징이 되어 버렸으니 계속 이어가면 좋겠죠.”

“그건 좀 ….”

강진수의 표정이 그다지 밝지 않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사장님이야 그 얼굴 보려고 양장피를 시키는 손님들도 많았지만, 저는 좀….”

옆에서 조용히 칠리새우를 완성해 벨을 누른 오상준이 힐끗 강진수를 쳐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이거 봐요. 이렇게 웃는단 말이에요.”

“아니에요. 진수 씨 잘생겼는데? 이제 여드름도 거의 없어져서 청년티가 팍팍 납니다.”

“양장피 연습하면서 외모도 좀 가꿔야 하나? 나 여기서 더 잘생겨지면 우리 자기야가 엄청 신경 쓰일 텐데….”

-지금 얼굴에서 백배 잘생겨져도 그럴 일 전혀 없다고 전해라.

‘우리 진수 얼굴이 어때서?’

-곱상한 곳이 전혀 없잖아? 우락부락한 게 운동선수 같기도 하고 말이야.

서인우와 비슷한 큰 기에 떡 벌어진 어깨, 유독 튀어나온 광대뼈가 운동선수 같은 느낌을 주는 얼굴이긴 했다.

‘남자답기만 한데 뭐.’

강진수와 오상준에게 요리할 때의 세세한 팁들을 더 알려주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밖이 시끌시끌하더니 급기야 여기저기서 고함 같은 게 들렸다.

“사장님, 무슨 일이죠? 밖이 난리가 난 것 같은데요?”

놀라 뛰어나가는 서인우의 귀에 중식도의 외침이 들렸다.

-그녀다. 나의 밀크공주.

주방에서 뛰어나온 서인우의 눈앞에 화려한 복장을 한 제이와 그녀의 매니저, 그리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엄청난 인파가 몰려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셰프님!”

“아, 안녕하세요. 제이 씨. 여긴 어쩐 일이에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네요.”

“네?”

그새 달려와 옆에 찰싹 달라붙은 강진수가 손을 앞치마에 여러 번 씩씩 닦고는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정다운 매니저 남자친구입니다. 이번 주에 공연 있으셔서 어쩌면 올 수도 있다고 듣긴 들었는데…. 사실 믿지 않았거든요.”

작고 하얀 손을 내밀어 강진수와 악수를 하자 주위 사람들의 고함이 더 커졌다.

“오늘은 시간이 되나요? 밥 먹고 가요.”

“네, 조용한 룸 있으면 셰프님 백 짬뽕 먹고 가려고 왔어요.”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번쩍번쩍 후레쉬 터지는 불빛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역시 프로답게 제이가 몸을 휙 돌려 몰려든 인파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꺅하는 소리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사진 찍는 소리가 마치 기자회견장에 나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발 빠르게 인파를 정리하는 매니저와 안전요원 덕에 사고 없이 룸으로 들어온 제이가 그제야 편안한 표정을 보였다.

“내가 공연오면 꼭 들른다고 했죠?”

“정말 오실 줄 몰랐습니다. 영광입니다.”

“오늘 밤 비행기로 다시 돌아가요. 그 전에 맛있는 밥 한끼 먹고 가려고 들렀어요. 다시 보니 정말 반갑네요.”

“네,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그리고, 밥 먹고 가신다고 하니까 안심되네요. 전처럼 밥도 못 먹고 가면 속상했을 텐데요.”

제이가 언제가 보여줬듯이 긴 눈썹을 깜빡거리며 서인우를 한참 쳐다봤다.

그 모습에 당황한 매니저가 바로 찬물을 휙 끼얹었다.

“저는 마파두부 특으로 부탁합니다.”

“제가 뭘 먹고 가면 우리 셰프님이 속상하지 않을까요?”

“네?”

바로 답을 내놓지 못하는 서인우를 보고 꺄르르 웃는 제이는 봄날 벚꽃처럼 환했다.

“백 짬뽕 맛있게 해주세요.”

“네, 특별히 싱싱한 전복 넣어 기운 나는 백 짬뽕 해드리겠습니다.”

“왜요? 제이 보니까 좋아서? 반가워서?”

“반갑고 좋고, 잊지 않고 찾아준 게 고마워서요.”

“기분 좋은데요? 다음에 공연 있으면 또 와야겠다.”

매니저가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요리를 위해 다시 주방으로 돌아온 서인우 옆에 강진수가 바싹 달라붙었다.

“뭐 시켰어요? 식사 준비되면 제가 들고….”

-아니, 저놈 말고 나, 나랑 같이.

“빨리 만들어서 내가 들고 나갈 거다. 특별히 나를 보러 온 손님이야.”

“그러면 저랑 같이….”

서인우가 대답 대신 화구에 불을 올렸다.

화라락!

크게 올라오는 불빛만큼 이글거리는 강진수의 눈빛을 애써 외면하며 다른 때보다 더 정성 들여 마파두부와 백 짬뽕을 만들었다.

“내가 음료수 서비스라도 해드리면 어떨까요?”

“아니! 뭐해? 새로 주문 들어왔다.”

“에이, 치사하게.”

-제자야. 사부는 조용히 보고만 있을게. 앞치마에 쏙!

‘지난번처럼 꿈틀거리려고? 거기 그대로 쏙 박혀 있어.’

완성된 음식을 가지고 제이가 있는 룸으로 향한 서인우가 아직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 여전히 사람들이 많은데요?”

“공연장에서부터 따라온 사람들이에요.”

“힘드시겠어요.”

“저 사람들 덕분에 기운이 나는걸요. 아직 내 인기가 죽지 않았다고 느끼게도 해주고 얼마나 좋아요.”

“한번 제이는 영원한 제이죠. 저 사람들은 앞으로 1년 2년, 아니 10년이 지나도 영원할 겁니다.”

제이가 또 눈을 깜빡거렸다.

“서인우 셰프님이 그런 말도 할 줄 아네요? 저도 1년, 2년 아니 10년이 지나도 [서풍]에 밥 먹으러 올게요.”

“네, 감사합니다. 제이 씨가 좋아할 만한 특별한 메뉴를 연구해봐야겠습니다. 영양가 높고 칼로리는 낮은 거, 맞죠?”

“네, 기대하고 있을게요.”

“그럼 식사 맛있게 하세요.”

서인우가 나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던 제이가 아쉬운 듯 쩝하고 입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백 짬뽕을 조금 떠서 입에 넣었다.

“뭐야? 이 백 짬뽕 국물이 더 끝내주는데?”

“원래 끝내줬어. 너 그거 다 안 먹을 거지?”

이미 마파두부를 반 이상 먹어 치운 매니저가 제이의 백 짬뽕을 이글거리는 눈으로 쏘아봤다.

안 그래도 정신없이 바쁜 [서풍]이 제이의 방문 이후로 젊은 사람들 사이에 아이돌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주말 저녁은 이주일 이후까지 예약이 꽉 찬 상태였다.

‘나 북경에 다녀와야 하는데, 가게가 너무 바빠서 짬을 내기 힘드네.’

-그래도 저 두 사람이 워낙 잘해서 맡기고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번에는 나도 같이 가는 거 맞지?

‘응, 이번엔 꼭 사부와 함께 가려고.’

“백화점 휴무일 껴서 하루나 이틀 가게를 비워야 할 것 같은데, 둘이 맡아서 할 수 있겠습니까?”

잠시 쉬고 있는 강진수와 오상준 가까이 다가간 서인우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른 건 자신 있는데, 양장피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는 어떻게 합니까?”

“뭘 어떻게 해? 네가 해야지. 오상준 씨는 아직 아니야.”

“분명 손님들이 실망할 텐데….”

“최선을 다해 맛있게 만들어. 그러면 되는 거니까.”

손님도 많고 바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남성재가 말한 북경에 준비 중인 식당을 잠시라도 보고 와야 마음의 결정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가 재료 준비 같은건 거들테니께 걱정하지 마시고 후딱 댕겨와요. 자꾸 거시기허믄 발이 안 떨어진당께요.”

“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빨리 일이 끝나면 하루 정도만 비우고 돌아올 수 있을 겁니다.”

백화점 전체가 쉬는 휴무일이다.

손이 빠르고 경험 많은 이명옥에게까지 부탁해놓고 중식도와 간단한 짐을 챙겨 북경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북경이냐? 나 너무 국제적으로 노는 거 같은데?

북경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짐을 찾은 서인우는 중식도의 소리가 들리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중국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서인우를 도우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백화점 측에 부탁해 소개받은 MS백화점 북경 파견 직원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어제 전화 통화한 서인우입니다.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장민입니다.”

보통 체격에 선한 눈빛을 한 장민에게 남성재로부터 받은 식당 주소를 보여주었다.

“여기 시내 한 중심에 있는 곳이네요? 오늘 제대로 북경 투어 하시겠습니다.”

“그런가요? 저는 그냥 하얀 건 종이고 까만 건 글씨입니다. 한 글자도 못 알아보겠어요.”

“우리가 가끔 접하는 한자하고도 조금 다르죠? 그래도 비슷한 글자가 많아서 막상 공부해보면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베트남어 독학한다고 정말 고생 많이 했습니다. 이게 제 한계네요.”

웃으며 차창 밖으로 바라본 북경은 고층 빌딩이 빽빽한 서울을 보는 것 같았다.

특이한 건 시내 중심으로 향하면서 들어선 도로였다.

“이 도로는 정말 희한하네요. 빙글빙글 돌아서 가는 게 꼭 놀이동산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입니다.”

“네, 여기는 주로 도로에 환 (環) 이라는 글자가 붙습니다. 말 그대로 돌아가는 도로라는 뜻이죠.”

점점 시내로 가까워지자 뉴스를 통해 많이 봤던 유명한 관광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이 북경 왕푸징(王府井)이라는 곳입니다. 처음이시죠?”

“네, 이 유명한 곳에 드디어 와보네요.”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보여주신 식당 자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위치면 가격이 장난 아닐 텐데요?”

“그래서 여러 가지 따져보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것 같아서 힘들게 왔습니다.”

“그러면 혹시…. 여기 북경에도 [서풍]이 들어올 수 있는 겁니까? [서풍]의 백 짬뽕을 이곳에서 먹어볼 수도 있다고 꿈꿔도 되는 겁니까?”

서인우는 기대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장민을 보며 여기서 한국을 그리워하며 사는 교민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게 가능한지 잘 따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되면 좋겠네요. 재미있는 게 북경 살면서 우리 식구들이 한국 들어가면 제일 먼저 가는 곳이 북경반점입니다.”

“네? 북경반점이요?”

“우리 동네에서 제일 유명한 중식당이죠.”

맛의 향연이 펼쳐지는 중국, 그것도 북경에 있으면서도 한국식 중화요리를 찾아다닌다는 얘기가 재미있으면서 충분히 이해됐다.

“근처에 유명한 식당들이 많이 있으니 도착하면 식사부터 하시죠. 3시에 말씀하신 중국 요리 협회 사람하고 미팅 잡아 놨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언어가 안 돼서 이렇게 신세를 지내요.”

“아닙니다. 본사에서 특별업무로 지정해준 일이라 따로 수당도 받아요. 그러니, 아무 부담 없이 필요한 일 모두 보고 가십시오.”

다급한 마음에 유현주에게 가이드 한 명만 부탁했던 게 이렇게 일이 커져 버렸다.

유현주는 확실히 외탁이었다.

항상 신중하고 적극적인 태도에 감사할 뿐이다.

그나저나 식당에 곧 도착하는데 말 많은 중식도가 유독 조용했다.

‘사부, 왜 이렇게 말이 없어? 혹시 멀미해?’

-인우야. 나 기분이 이상하다.

‘왜? 막상 외국에 나오니까 떨려?’

-이건 뭐지? 나 여기 와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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