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181화 (181/200)

제181화.

식당 입구 쪽에 서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던 남자가 서인우를 보고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가까이 다가가 확인한 얼굴은 중국 요리 협회에서 나왔다는 남성재였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보니까 또 기분이 묘합니다.”

“안녕하세요. 정말 베트남까지 오셨어요?”

“전에 말씀 드렸잖습니까? 확답 들으러 베트남까지 가겠다고 말입니다. 오픈 준비로 정신없으신 것 같아서요.”

새로운 제안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한 채 이곳으로 오긴 했다.

천천히 고민해보고 긍정적인 답을 달라고 했었는데….

“새로 드린 제안서는 검토해 보셨죠? 동료분들과 의논해보시겠다고 하셨었는데.”

이준형, 윤지영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는 했었다.

전문 요리사에게 기술만 전수해 주면 지분의 20%를 주겠다는 조건과 그것도 어려울 때는 [서풍]과 서인우라는 이름만 걸게 해줘도 로얄티로 매출의 5%를 주겠다는 두 가지 제안이었다.

다시 고민에 빠진 서인우가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전문 요리사에게 기술을 전수해 주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서풍]을 시작하고 처음 같이 일을 시작한 안상훈부터 지금 강진수, 오상준까지 모두 서풍의 맛을 그대로 전수해주고 있으니까.

문제는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전에 해주신 제안들 제 동료 모두 찬성의 뜻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보시다시피 시간이 너무 없어서요. 죄송합니다.”

서인우가 정말 미안한 얼굴로 남성재를 쳐다봤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서인우 셰프님의 요리와 아버지의 뒤를 잇는 그 진정성 두 가지를 보여주고 싶다는 게 우리 협회의 뜻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제안을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계시는 건가요?”

“[서풍]과 내 이름을 걸고 로열티를 받는 조건 말씀하시는 거죠?”

“네, 맞습니다. 로열티도 충분히 협의 가능합니다. 사실 서인우 씨만 오케이하면 조건은 부르기 나름이죠.”

이제 돈은 서인우에게 큰 의미를 주지 않는다.

이미 한국과 이곳에서 [서풍]은 중식당과 서풍 만두, 새우면으로 업계 1, 2위를 다투는 매출 실적을 이루고 있었다.

남성재의 노력과 중식의 원조인 중국 요리 협회에서 서인우의 뜻을 이해해주고 제안해 준 부분이 쉽게 거절하지 못하게 만들 뿐이었다.

이번 왕타오의 짝퉁 서풍 사건이 아니었다면, 시간도 노력도 거의 들지 않는 두 번째 조건을 받아들였을 거다.

하지만, 앞으로는 절대 서풍의 맛을 내지 못하면서 [서풍]이라는 이름을 거는 걸 용납할 수 없다.

“정말 중국에도 [서풍]의 뜻을 펼쳐주세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음식을 통해 행복해하고 감동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남성재의 간절한 눈빛을 더는 거절하긴 힘들었다.

“[서풍]의 요리를 진심으로 배우고 싶은 중식 전문가가 있다면 제가 가르쳐주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협회에 등록된 요리사 중에도 서로 배워보고 싶다고 경쟁이 치열합니다. 사실….”

남성재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서인우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이미 북경에 크고 화려한 가게를 열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네? 제가 아직 답도 드리지 않았는데요?”

“전에 얘기했듯이, 이번 일 성사 못 시키면 저는 사표 써야 한다니까요. 그러니, 서인우 셰프님. 제발 사람 하나 살린다 생각하고 저희 제안을 받아주세요.”

베트남 진출에 이어 중국 진출까지 갑자기 너무 사업이 커지는 것 같아 불안했다.

윤지영의 얘기대로 서인우에게 좋은 조건인 것도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었다.

절대 공짜는 없는 법인데 말이다.

“남성재씨가 워낙 적극적이고 중국 요리 협회에서 제 실력을 높이 사주는 것이 감사해서 저도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은데요, 내가 시간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혹시 ….”

“요리전문가들이 서인우 씨가 있는 곳으로 갈 겁니다. 그곳이 어디든 무조건 가서 배우겠다고 난리입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저도 그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협회에 보고드리겠습니다.”

서인우가 기뻐하는 남성재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정확한 계획과 제 역할, 지분 등 구체적인 계약서를 받아보고 싶은데요, 제가 그쪽은 워낙 잘 몰라서 말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하셔야죠. 사업 계획서와 서인우 셰프님과의 계약서 작성해서 다음에 구체적으로 다시 얘기하도록 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남성재가 식당을 나간 후 다시 주방으로 돌아오자 강진수와 오상준이 궁금한 표정으로 서인우를 쳐다봤다.

“누가 찾아온 거예요? 한국에서 만났던 사람이 누구예요?”

“전에 우리 강남점에 찾아왔던 중국 요리 협회 서울 지부장이 여기까지 찾아왔네요.”

“중국 시장에 진출하라는 말이죠? 여기까지 찾아오고 끈질기네요.”

“그만큼 사장님하고 우리 [서풍]이 인기라는 걸 증명하는 거죠. 그래서 또 거절하신 거예요?”

“또 거절하긴 그래서 우선 구체적인 계획서를 보자고 했습니다. 뭐든 결정되면 자세히 알려줄 테니까 이 일은 더 신경 쓰지 맙시다.”

“네! 셰프!”

-그 중국 요리 협회 사람들이 너한테 완전히 꽂혔구나. 이 사부의 능력을 가까이서 보고 싶은 거지.

‘내가 중국까지 진출할 여유는 없고, 거기 전문 요리사에게 우리 비법을 전수해 주고 [서풍]을 이어갈 수 있게 해보려고.’

-그러면 [서풍] 중국 체인점이 되는 거냐?

‘글쎄. 우선 그쪽 계획을 꼼꼼하게 살펴봐야겠지.’

“강진수 씨. 남은 재료 체크하고 추가 주문 들어갔나요?”

“네. 이제 그 정도는 제가 알아서 척척합니다.”

서인우가 씩 한번 웃어 보이고는 오상준 곁으로 다가갔다.

“지금까지 배운 요리들 머릿속에 잘 기억하고 있죠?”

“네. 정확하게 잘 저장해뒀습니다.”

“중요한 건 수 없이 연습해서 몸에 익히는 겁니다. 오늘 새롭게 배우게 될 메뉴들까지 틈날 때마다 계속 연습하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추가 주문한 재료를 기다리며 저녁 장사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해물을 납품하는 거래처 사장이 추가 주문한 재료를 직접 가지고 나타났다.

“사장님. 어떻게 직접 오셨어요?”

해물 가게 사장의 얼굴이 어딘지 불안해 보였다.

“사장님 잠깐 뵙고 가려고 왔습니다.”

서인우가 해물을 받아 강진수에게 넘기고는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 지난번 말씀하신 일 때문에 왔습니다. 이틀 전에 후인퀑탄에게 돈 보냈습니다.”

“당연히 그 사람은 이 내용을 모르는 거죠?”

“그럼요. 다음 달에는 조금 더 보낼 수 있도록 잘해보라고 하는데, 내가 표정 관리가 힘들어서 혼났습니다.”

서인우가 해물 가게 사장 눈을 빤히 쳐다봤다.

“왜, 왜 그렇게 보십니까? 진짜 이 얘기 한마디도 안 했어요.”

“처음 후인퀑탄한테 돈 보내기로 했을 때 분명 다른 조건이 있었죠? 사장님도 뭔가 득이 되기 때문에 이런 조작을 하신 거로 생각하는데요.”

“나야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렇게 해야 계속 여기랑 거래하게 해준다고 해서 그만….”

“그뿐인가요? 지금 하신 말씀 책임질 수 있으신가요? 혹시, 혹시라도 말입니다. 다른 조건이 또 있었다면 그때는 정말 거래 끊습니다.”

연신 손톱을 뜯어대던 해물 가게 사장이 갑자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번 일 하는 거 봐서 후인퀑탄이 관리하는 다른 가게들도 거래할 수 있게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워낙 큰 업체들을 많이 알고 있다고 자랑해서 내가 순간 욕심에 정신이 어떻게 됐던 겁니다.”

서인우도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손님들이 먹을 음식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식자재입니다. 그걸 속이는 건 업체와 손님 사이의 신뢰를 완전히 깨버리는 거라고요. 아시겠습니까?”

“아, 압니다. 지난번 사장님 다녀가시고 저도 반성 많이 했습니다. 이제 그런 더러운 돈에 욕심내지 않을 겁니다.”

해물 가게 사장이 돌아간 뒤 그동안 모은 모든 자료들을 이영찬에게 보냈다.

이제 후인퀑탄과 응우엔 민 찐에 관한 처벌은 백화점 법무팀에 맡기기로 했다.

“사장님. 오늘 해물 특히 더 좋은데요. 확실히 지난번 거래처 쭉 돌고 오시더니 재료들이 싱싱해서 음식 맛을 더 살려줍니다.”

“네, 여러분도 나중에 가게를 내게 되시면 항상 재료에 신경을 써주세요. 결국 좋은 재료에서 최고의 맛이 나오는 겁니다.”

서인우가 막 들어온 주문지를 살폈다.

“주문 들어왔네요. 고추잡채, 누룽지탕, 백짬뽕 둘, 짜장면 하나. 바로 시작합시다.”

서인우가 오상준 옆으로 다가가 고추잡채를 만들도록 했다.

“우리 [서풍]의 고추잡채는 각 재료의 식감과 고추기름의 양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럼 지금 바로 시작해 봅시다.”

오상준이 고기를 채썰어 다진 마늘과 후추, 소금 약간으로 간을 했다.

그리고 전분 가루를 묻혀 버무려놓았다.

“달걀흰자를 조금씩 묻혀 가면서 채를 썬 고기에 수분을 넣어 주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고기가 부드러워지니까요.”

고기를 한쪽으로 밀어놓고, 청홍피망과 양파, 표고버섯을 가늘게 채 썰어 준비했다.

웍에 기를을 넉넉히 부어 준비해 놓은 고기를 부드럽게 볶았다.

“완전히 익힐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 고기를 다른 그릇에 부어 놓고 웍을 간단히 정리 합니다.”

기름이 흥건한 고기를 다른 그릇에 덜어놓고 고추기름을 손에 든 오상준이 서인우의 눈을 바라봤다.

“이 정도 양이면 고추기름 두 스푼을 넣어 주세요.”

달궈진 웍에 고추기름을 넣자 매콤한 향이 코를 자극했다.

채썰어 준비해둔 채소들을 모두 넣어 볶았다.

“채소를 볶을 때 잘 볶지 않으면 풋내가 날 수 있습니다. 고기 볶은 기름도 조금 첨가해서 잘 볶아주세요.”

오상준이 서인우의 설명을 하나하나 기억하려 애쓰며 순서대로 요리해나갔다.

[서풍]에 오기 전 해본 적이 있었던 메뉴지만, 비슷한 듯 다른 레시피가 과연 어떤 맛의 차이를 보여줄지 궁금했다.

마지막으로 미리 볶아놓은 고기까지 넣어 함께 볶으며 소금과 후추, 굴소스로 간을 했다.

살짝 개운하게 매콤하면서 짭조름한 감칠맛이 일품이었다.

잘 쪄진 꽃빵과 함께 접시에 담자 근사한 요리가 완성되었다.

“다음에 똑같이 만들 수 있겠습니까?”

“네, 정확히 머릿속에 저장해두었습니다.”

그 모습을 강진수가 부러운 듯 쳐다보고 있었다.

“강진수 씨는 이미 한참 전에 배운 요리 아닙니까? 뭘 그렇게 부러운 눈으로 쳐다봅니까?”

“저 형의 머리가 부러운 거죠. 내가 가까이서 보니까 한 번 가르쳐주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아요. 천재예요, 천재.”

-네가 저놈한테 한 말 아니었나? 한번 가르쳐 주면 자기 것으로 만든다고.

‘진수는 피나는 노력으로 해내는 거고, 여기 오상준씨는 워낙 타고난 머리가 좋기는 해. 결국 누가 더 유리한지는 알 수 없겠지.’

-그래서 네가 유리한 거지.

‘응?’

-내 입으로 이런 말 하는 건 좀 별로인데, 넌 타고난 머리도 좋은 놈이 죽어라 하고 노력까지 하니까.

“강진수 씨의 장점은 한 번 가르쳐 주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지는 내가 확인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배우면 바로 자기 것으로 익힌다는 겁니다.”

강진수가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꾹꾹 눌렀다.

“오상준씨도 머릿속에 기억해둔 것들을 꾸준히 연습해서 내것으로 만들어 보세요. 그래야 어떤 상황에서도 똑같은 맛을 낼 수 있는 최고의 요리사가 되는 겁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강진수 씨. 이리 와서 백 짬뽕 만드는 것도 지켜보고 얘기해 줄 부분 있으면 알려주세요.”

오상준의 얼굴이 벌겋게 흥분된 듯 보였다.

-오늘 저 과학 돌이 일기 좀 쓰겠는데?

‘이제 하나씩 직접 만들어 볼 때 됐지.’

-확실히 머리는 좋은 놈이야.

‘왜? 그게 느껴져?’

-굳이 베트남행을 선택한 이유가 너에게 다이렉트로 요리를 배울 기회라고 생각한 거지. 아무래도 직접 배우는 게 더 확실하다는 판단을 한 거 아니겠냐?

오상준은 서인우가 베트남 진출을 계획했을 때 바로 흔쾌히 따라갈 결심을 보였었다.

괴짜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왔다는 그에게 과연 [서풍]이 어떤 의미일지는 알 수 없다.

서인우는 안상훈, 강진수도 또 오상준도 그저 요리에 진심이면서 성실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의 전부인 [서풍] 이라는 이름을 얻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들이었다.

오상준의 짧은 옆머리가 땀에 흠뻑 젖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웍을 정리하고 있던 서인우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어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