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9화.
먹기 좋게 썰은 돼지 고기를 튀김 반죽에 담갔다가 팔팔 끓는 기름 웍에 하나씩 넣었다.
노르스름하게 튀겨진 고기를 건져 식혔다 다시 튀기기를 세 번.
그냥 보기에도 바삭한 고기 튀김을 소스를 만들어 놓은 웍에 넣고 재빨리 볶아냈다.
자르르한 윤기에 볶았는데도 여전히 바삭함이 느껴지는 탕수육을 완성한 남지운이 벨을 눌렀다.
직원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탕수육을 내갔다.
[서풍]에서 배운 대로 똑같이 만들어 낸 탕수육은 다행히 손님들에게 반응이 좋았다.
서인우와 강진수에게 일대일로 배운 탕수육과 칠리 새우는 오픈한 날부터 이 가게의 인기 메뉴가 되었다.
문제는 가장 기본인 짜장면과 짬뽕이었다.
‘내가 만든 것도 맛만 좋은데, 왜 꼭 [서풍]의 맛이어야 한다는 거야? 괜히 이름을 똑같이 지어서.’
남지운은 중식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더 많은 몸값에 이곳으로 이직했던 것이다.
하필 남지운의 요리가 아닌 서인우의 요리를 흉내 내야 한다는 조건이 이렇게 계속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까짓거. 이것저것 추가해서 만들다 보면 비슷한 맛이 나오지 않겠어? 그래봤자 레시피가 거기서 거기지.’
조금 전 한기태에게 얘기했던 것처럼 배추를 더 추가해서 준비해 놓은 재료를 볶았다.
서인우가 하듯이 화력을 세게 해 불맛이 올라오게 볶은 후 육수를 붓고 간을 했다.
‘칼칼한 맛을 배가시켜주는 후추를 두 배로 넣고, 어디 맛을 다시 볼까?’
젓고 있던 국자로 국물을 떠서 맛을 본 남지운이 슬쩍 주위를 둘러봤다.
‘분명히 이 맛이 아닌데….’
삶은 면을 그릇에 담은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지운은 백 짬뽕을 두 그릇 완성해 벨을 눌렀다.
음식이 테이블에 오르는 순간부터 손님의 입에 들어갈 때 까지 마치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리라 맘먹은 사람처럼 한기태가 3번 테이블에 시선을 고정했다.
탕수육을 맛있게 먹고 있던 손님들이 기대에 찬 눈으로 백 짬뽕을 먹기 시작했다.
“컥!”
“왜 그래?”
“이거 너무 매운 것 같은데? [서풍] 백 짬뽕이 원래 이렇게 매운가?”
“시원하고 칼칼하지. 그래서 해장에 끝내주고.”
옆에 앉아있던 다른 손님이 백 짬뽕 그릇을 조금 당겨 국물을 맛봤다.
“뭐야? 후추를 때려 부었네. [서풍]의 백 짬뽕은 후추 향은 은은하게 나고 재료 자체에서 나오는 시원한 맛인데….”
“아무래도 서인우 셰프가 직접 하는 곳하고는 맛이 아주 다르네.”
“그래도 여기 [서풍]에서 다 배우고 나온 수제자가 총주방장으로 있다던데?”
“나도 들었어. 여기 사장이 중국 사람인데, 서인우가 처음 요리를 중국에서 그 사장한테 배웠다고.”
“그래? 그러면 이게 원조 맛인가?”
“뭐가 원조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맛있는 곳에서 먹을란다. 다음엔 다시 거기로 가자.”
한기태의 얼굴이 순간 심하게 일그러졌다.
‘분명 [서풍]요리 다 할 수 있다고 그렇게 큰소리쳐놓고. 도대체 중식당에서 짜장면하고 짬뽕이 제일 중요하다는 거 모르나?’
주방에서는 남지운 역시 조금 전 맛본 서인우의 백 짬뽕과 방금 내간 자신의 백 짬뽕 맛을 비교하느라 정신없었다.
‘이럴 땐 나도 서인우처럼 절대 미각을 가지고 있으면 얼마나 좋아. 괜히 자신있다고 소리만 쳐놓고….’
투덜거리고만 있을 시간도 없었다.
계속해서 들어오는 주문에 남지운의 한숨이 끊이질 않았다.
* * *
왕타오의 [서풍]이 오픈한 후, 서인우의 [서풍]을 찾는 손님이 조금씩 줄었던 건 사실이었다.
김예은 매니저의 말대로 같은 이름의 가게에서 비슷한 맛을 내고 가격은 저렴했다.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 영향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사장님. 저쪽 가게 오픈하고 손님이 좀 주는 것 같더니, 오늘은 다시 예전처럼 정신없네요.”
“다 맛보고 돌아온 거 아닙니까? 사람은 움직이는 거니까요.”
“강진수 씨. 그거 사랑 아니야?”
김 매니저가 크게 웃으며 주방을 나갔다.
“아! 저 누나. 내 유머를 몰라주네.”
“사랑 얘기 나와서 말인데, 정 매니저와는 아직 잘 지내고 있어?”
“그럼요, 우리 사랑은 절대 움직이지 않습니다.”
“됐다. 내가 실수했다. 요리나 하자.”
잠시 대화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손님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사장님. 여기 백화점 직원분들 오셨어요. 목소리 큰 그분도 같이요.”
“그래요? 나가서 인사해야 하는데….”
“어차피 양장피 주문하셨네요.”
“아! 그럼 빨리 만들어서 내가겠습니다.”
이곳의 인테리어를 체크해주고, 응우엔 민 찐의 비리를 같이 찾아준 이영찬이 왔다는 얘기였다.
오픈 이후 거의 일주일에 한 번은 이곳을 찾아 고향을 향한 향수를 치료하고 갔다.
“오셨습니까? 여기 주문하신 양장피 나왔습니다.”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 여기 오는 낙으로 남은 시간을 버틴다는 거 아닙니까?”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주방으로 향하는 서인우를 따라온 이영찬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 뒤로는 별일 없나요?”
“네?”
“응우엔 민 찐에게 시간을 주자고 하셨잖습니까?”
“안 그래도 요즘 지켜보고 있는 일이 있습니다.”
다시 주위를 둘러본 이영찬이 더 가까이 몸을 붙였다.
“혹시 또 접근하던가요?”
“그건 아니고, 백화점 직원들 가이드로 일을 도와줬던 후인퀑탄이 식자재로 장난을 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네? 아니, 이 사람들이!”
“지금 증거를 수집하는 중입니다. 그 둘이 친한 친구 사이라고 들었는데, 질이 좋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증거 잡는 대로 저에게 넘기세요. 이쪽 법무팀 통해서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어서 식사하세요.”
“저, 그리고….”
이영찬이 뭔가 할 말이 남은 듯 검지로 입술 끝을 매만졌다.
“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소문 들으셨나요? 서풍이라는 간판을 달고 새로 오픈한 중식당 말입니다.”
“아, 네. 직원한테 들었습니다.”
“그곳이 여기 [서풍] 체인점이냐고 우리 백화점에 문의 전화가 자주 옵니다. 아니죠?”
“절대 아닙니다.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제가 한 번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맛있는 밥 먹으러 가보겠습니다.”
주방으로 돌아온 서인우는 자꾸 잡음이 들리는 그 식당이 궁금했다.
다른 건 몰라도 아버지가 피땀 흘려 일궈낸 [서풍]이라는 이미지를 훼손시키는 건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이제 곧 마감할 시간인데, 오늘 마감 후에 회식 가능한 사람은 남으세요.”
“우와! 오늘 회식 하는 겁니까? 어디서 뭐 먹여줍니까?”
신이 난 강진수가 물었다.
“갑자기 하는 회식이라 부담없이 시간 되는 사람만 가볍게 합시다. 메뉴는 중식입니다.”
“네? 중식이요? 설마 우리 가게 같은 중화요리?”
“길 건너에 있다는 서풍에 한 번 가볼까 하는데요.”
“거기라면 저는 무조건 갑니다.”
강진수가 굳은 의지를 보여 주듯 주먹을 쥐어 보였다.
“여기 폐점 시간에 맞춰서 같이 나갈 수 있도록 각자 정리를 서둘러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강진수, 오상준, 김예은 그리고 홀 직원 한 명과 주방 막내 이렇게 같이 왕타오의 서풍을 찾았다.
“어서 오세….”
서인우를 알아본 한기태가 말을 잇지 못하고 놀란 눈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아무 곳에나 앉으면 되는 건가요?”
“네? 아! 이쪽으로 오세요.”
룸으로 안내하려는 한기태를 막아선 서인우가 홀에 있는 6인용 긴 테이블을 가리켰다.
“여기 앉아도 되는 거죠?”
“네? 그, 그럼요.”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펼쳐보던 강진수가 버럭버럭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거 메뉴판까지 완전 똑같이 만들어놨네!”
“그러네요. 좀 심하다.”
김예은이 기분 나쁜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럴 만도 한 게 메뉴판의 글씨 모양, 메뉴 순서, 하물며 코스 요리 종류까지 완전 그대로 옮겨놓았다.
“우선 이곳이 서풍이라는 이름을 걸만한 건지 맛을 한 번 보도록 합시다. 각자 원하는 음식 주문하세요.”
탕수육과 양장피, 그리고 백 짬뽕과 짜장면, 삼선볶음밥 등 골고루 주문했다.
주문지를 가지고 직접 주방으로 들어간 한기태가 급하게 남지운을 찾았다.
“남셰프님! 탕수육 하나, 양장피 하나, 그리고 백 짬뽕 둘, 짜장면 하나, 삼선볶음밥 둘 주문입니다.”
“알겠습니다. 단체로 왔나 보네요?”
“네. 총 여섯 명이 왔네요. 서인우씨 하고 같이.”
“누, 누구요? 백화점 [서풍] 서인우 셰프요?”
“그렇습니다. 특별히 신경 써서….”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해대자 얼굴이 벌게진 남지운의 모습에 한기태가 말을 하다 멈췄다.
“평상시 하던 대로 해주세요.”
“분명히 내가 여기 있는 거 알고 왔을 겁니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남셰프님 아니면 누가 서풍의 맛을 낼 수 있겠어요?”
‘이건 분명히 내가 얼마나 그들을 흉내 내고 있는지 염탐하러 온 걸 거야. 까짓거, 보여 주면 되지 뭐가 문제야? 내가 뭐 죄지었어?’
속으로 자기 세뇌를 하듯 몇 번이나 다짐을 한 후 요리를 시작했다.
탕수육은 [서풍]과 완벽하게 같은 맛을 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양장피와 백 짬뽕은 아무리 이전에 본대로 연습을 해도 그 맛을 낼 수 없었다.
제일 먼저 자신 있는 탕수육을 완성해 벨을 눌렀다.
“사장님, 먼저 맛을 보세요.”
“모양이나 냄새는 우리 [서풍]의 탕수육하고 완전히 흡사한 것 같은데요. 다 같이 먹어봅시다.”
각자 작은 그릇에 덜어 탕수육을 먹어보았다.
바삭한 식감과 소스의 질감, 맛까지 [서풍]의 탕수육을 제법 비슷하게 만들어 냈다.
‘남지운 씨가 탕수육은 배우고 나갔었지. 그래도 기본기가 잘 되어 있는 사람이라 가르쳐준 대로 잘 만들고 있군.’
“탕수육 맛있는데요? 우리 [서풍]에서 하는 방식 그대로 만들어 냈습니다. 역시 누가 만들었는지 알 것 같네요.”
모두 인정한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양장피가 테이블에 올라왔을 때는 누구도 먼저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서풍]의 양장피와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따로 나온 소스를 살짝 부어 잽싸게 섞은 서인우가 직원들의 앞접시에 조금씩 덜어주었다.
“우선 모양은 완전 다른데, 맛을 한 번 볼까요?”
가장 먼저 서인우가 양장피를 입에 넣었다.
“그냥 채 썰어 올린 차가운 재료와 볶아서 올린 따뜻한 재료, 그리고 그사이 올려져 있는 양장피가 소스와 만나 어울리는 맛과 식감. 그게 우리 [서풍]의 맛이죠.”
“네. 이건 그냥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애매한 요리네요. 게다가 소스 맛도 일반 겨자 맛만 강하게 느껴집니다.”
“소스 맛을 내는 비율은 아직 배우지 못했으니까요.”
서인우의 말에 다들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남지운을 떠올렸다.
직원이 주문한 식사를 가지고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 셰프가 백 짬뽕을 마음대로 만들어 버렸군요. 후추 향이 너무 강하고, 해물 비린내까지.”
“네? 아직 테이블에 올리지도 않았는데….”
“먹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올려 주시죠.”
강진수를 포함해 [서풍] 직원들이 다시 한번 놀라 서인우를 쳐다봤다.
백 짬뽕, 짜장면, 삼선볶음밥 모두 [서풍]에서 만들었던 모양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든 듯 보였다.
“사장님. 맛보기 전에는 정말 [서풍]의 요리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아요.”
“그러니 맛을 봅시다. 우선 느껴지는 향은 짜장면은 살짝 탄내가 올라오고, 볶음밥은 기름진 느낌이 많이 나긴 합니다.”
각자 골고루 덜어 식사를 시작했다.
백 짬뽕을 먹던 강진수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국물을 통째로 들이켰다.
“이건 우리 [서풍] 백 짬뽕하고 완전 다른 맛인데요?”
“맞아요. 해물과 배추에서 나오는 시원함도 없고, 후추를 너무 많이 넣어 칼칼함보다는 독한 매운맛이 올라옵니다.”
“짜장면도 모양은 완전 똑같은데 여기는 불맛을 내고 싶었는지 탄 맛이 나는 것 같아요.”
서인우가 맛의 차이를 바로바로 알아맞히는 모습을 얼빠진 듯 쳐다보고 있던 한기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게임이 안 되네. 완전 다른 차원의 사람이야. 중화요리 최고의 고수라는 타이틀이 그냥 붙은 건 아니었어.’
식사를 마친 서인우가 넋 놓고 그들을 보고 있던 한기태를 향해 손을 들었다.
“여기 사장님과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안에 있는 남지운 셰프도 같이 봤으면 합니다.”
“네? 사장님은 지금 외출 중이라서….”
그때 가게 문을 열고 신이 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왕타오가 모습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