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178화 (178/200)

제178화.

서인우가 양장피를 만드는 동안 강진수가 유산슬을 만들기 위해 고기와 버섯 등을 가늘게 채를 썰고 있었다.

-저놈 언제 저렇게 속도가 빨라진 거지? 게다가 모양도 아주 가늘고 균일한데?

중식도의 말처럼 가늘게 채를 썰어 준비해놓은 재료들이 한눈에 확 들어왔다.

잠시 칭찬해 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요리가 우선이다.

완성된 양장피를 들고 서인우가 홀에 나가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50대로 보이는 여자 셋이 기대에 찬 눈빛을 보였다.

“그래도 원조가 훨씬 낫겠지?”

“그걸 말이라고 해? 우리 애 아빠가 맛이 완전 다르다던데?”

서인우가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주문하신 양장피입니다.”

소스를 부어 맛있게 섞어 내려놓자 손님 중 한 명이 바로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었다.

“그래. 이 맛이지. 서인우 셰프님이 원조 맞죠?”

“네? 무슨 말씀이신지….”

“저 아래 골목에 새로 생긴 [서풍]이 더 원조라는 소문이 있어서요.”

“새로 생긴 [서풍]이요?”

“어머 어머. 우리 멋진 사장님도 모르는 사실인가 보다. 그러면 거기 사장은 뭐예요? 서인우 셰프님이 그곳 사장님한테 요리를 배운 거라는 소문이 꽤 많이 퍼졌던데….”

그제야 지난주에 김예은 매니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새로 오픈 준비한다는 식당 이름이 서풍이라고 했었는데, 최근 식자재 문제로 정신이 없어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 소문이 있나요? 직원들하고 한 번 가서 먹어봐야겠습니다. 저도 모르는 내 요리 스승이 있다는데 궁금하네요.”

“잘생긴 사장이 말도 재미나게 하네. 가볼 필요도 없어요. 딱 먹어보니까 알겠는데 뭐. 맛의 깊이가 달라.”

옆에서 먹고 있던 일행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급하게 인사를 하고 주방으로 돌아온 서인우는 잠시 멈춰서서 조금 전 들은 얘기를 곱씹었다.

‘이름을 서풍으로 한 것도 모자라서, 나에게 요리를 가르쳐준 스승이 하는 가게라고 소문이 났다 이거지?’

-뭐? 누가 그런 헛소리를 떠들고 있어?

‘아, 깜짝이야.’

중식도가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걸 깜빡한 서인우가 갑자기 소리쳐대는 중식도의 목소리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누가 그래? 감히 누가 나를 사칭하는 거야?

‘처음부터 서풍이라는 간판을 단것부터 뭔가 의도가 있었던 모양인데,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다 맛보면 알 수 있으니까.’

강진수가 전분과 흰자에 버무린 고기와 새우를 넉넉한 기름에 튀기듯이 볶아 내놓았다.

그리고는 바로 기름을 두른 팬에 대파, 마늘, 생강을 넣어서 볶다가 청주, 간장을 넣어서 향을 내기 시작했다.

데친 해삼, 표고, 죽순에 새우, 고기, 팽이버섯, 부추를 넣어서 볶은 다음 굴 소스로 간을 보고 닭 육수를 부었다.

“이제 마무리!”

“네. 셰프!”

끓기 시작하자 강진수가 물 전분을 넣어 걸쭉하게 만들고 마지막에 참기름을 휙 둘렀다.

띵!

요리를 내가자 서인우가 강진수의 어깨를 툭 쳤다.

“칼질이 많이 늘었는데?”

“사실 힘없고 부드러운 연두부로 계속 연습하다 보니까 칼질이 아주 많이 쉬워졌어요.”

-하긴, 연두부 채썰기 하다가 다른 재료 썰라니까 완전 껌이지. 그래서 그 요리가 필살기 인거고.

“연습을 많이 했나 보네?”

“매일 저녁 연두부 한 박스 정도? 덕분에 연두부는 질리게 먹었습니다. 저 본의 아니게 다이어트 했어요. 이거 봐요. 살 빠졌죠?”

일부러 볼을 쏙 집어넣은 얼굴을 들이밀자 옆에서 요리하고 있던 오상준과 베트남 직원이 실실 웃었다.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주문이 들어왔다.

“이번 주문 끝내놓고 남은 재료 체크해 추가 주문 넣어주세요.”

“네! 셰프!”

강진수가 대답과 동시에 남은 식자재들을 꼼꼼하게 체크하고 돌아왔다.

서인우가 거래처를 찾아가 담판을 지은 뒤로 하나같이 더 좋은 재료들을 보내왔다.

다행히 더는 식자재로 장난치지는 않았다.

“오늘은 추가 주문 들어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

강진수가 주문 얘기를 할 때 마침 완성된 요리를 가지러 들어온 김 매니저가 서인우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사장님, 요즘 가게에 손님이 조금 준 것 같아요. 식사 시간 외에는 비어있는 테이블도 있을 정도예요.”

“그래서 재료도 아직 남아있나 보네요.”

“알겠습니다. 손님이 많은 날도 있고 적은 날도 있는 거죠.”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고 넘길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잠시만요, 요리 내놓고 다시 올게요.”

김 매니저가 홀에 나갔다가 바로 돌아왔다.

“홀에서 손님들이 하는 소리 중에 새로 생긴 서풍 얘기가 자주 들려요.”

“뭐래요, 매니저 누나? 거기 맛있대요?”

강진수가 바짝 다가와 물었다.

“맛있다는 손님도 있고, 여기 맛은 못 따라간다는 손님도 있어요. 하지만, 중요한 건 그곳이 마치 우리[서풍]하고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 곳처럼 헛소문이 났다는 거죠.”

“헛소문이라니, 뭐라고 났는데요?”

“뭐 그곳이 원조라느니, 우리 사장님을 가르쳐준 스승이 낸 가게라느니 하는 소문이 났데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손님을 끌려는 작전이군. 그래도 먹어보면 차이를 느끼겠죠? 매니저 누나 우리가 한 번 가볼까요?”

“자자, 됐습니다. 방금 한 얘기처럼 먹어보면 차이를 느낄 겁니다.”

김 매니저가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입술 끝을 살짝 깨물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런데요, 사장님.”

“왜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손님들 말이 몇몇 메뉴는 진짜 여기랑 맛이 똑같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가격은 조금 더 싸니까 그냥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 같아요.”

“어떻게 우리 [서풍] 맛을 낼 수 있지? 그건 나처럼 여기서 배운 사람 아니고는….”

흥분해서 큰 소리로 떠들어대던 강진수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강진수뿐 아니라 지금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갑자기 이곳을 떠난 한 사람, 바로 남지운을 의심하는 듯했다.

“강진수씨. 바로 주문 준비하세요.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우리 또한 헛소문 만들지 맙시다.”

“네, 셰프!”

강진수의 우렁찬 대답과 동시에 다들 각자 맡은 일에 전념했다.

* * *

주말에 오픈한 왕타오의 가게는 그야말로 서인우의 [서풍] 복사판이었다.

간판뿐 아니라 메뉴까지 똑같은 데다가, 왕타오가 서인우의 요리 선생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곳에서 [서풍]의 요리를 똑같이 해내려고 애쓰고 있는 남지운 또한 그 소문이 궁금했다.

“왕타오가 정말 MS 백화점 [서풍] 서인우 셰프의 스승이십니까? 요리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요?”

식당의 총 운영을 맡은 한기태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실실 웃었다.

그 웃음에 역겨울 만큼 비릿함이 느껴졌다.

“나도 몰라요. 어디서 그런 소문이 퍼졌는지…. 아무래도 왕타오가 중국 사람이고 끝내주는 요리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소문이 잘못 퍼진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요리를 잘합니까?”

“전에 중국에서 아주 유명한 식당 셰프였다고 하던데, 무슨 사고로 손목이 나가서 웍을 잡지 못한다네요.”

‘그래서 음식을 한 번 맛보고 그렇게 정확한 평가를 했던 거구나.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내가 서인우 대신 그 스승한테 요리 배울 기회를 잡은 거네. 이건 더 대박인데?’

왠지 가까이서 서인우의 요리를 따라 하는 것 같아 영 마음이 안 좋았던 남지운은 그 스승에게 요리를 배우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저녁 식사 시간이라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손님이 밀려 들어왔다.

“총주방장님. 칠리 새우랑 백 짬뽕 두 개요. [서풍]하고 완전히 똑같은 맛으로 해달라네요.”

매니저의 특별한 요청이었다.

“지난번 백 짬뽕은 조금 맛이 달랐다고, 오늘은 [서풍]에서 먹었던 것처럼 맛있게 해달라고 특별히 부탁한답니다.”

“네, 알겠습니다.”

‘분명 [서풍]에서 했던 대로 만든 것 같은데…. 뭐가 문제인 거지?’

남지운은 육수 비법도 그대로 따라 하고, 재료도 똑같이 했는데 손님들이 맛이 다르다고 평가할 때마다 짜증이 올라왔다.

‘설마 내가 모르는 다른 특별한 비법이 있는 건가?’

[서풍]에서 백 짬뽕을 만들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육수는 이미 만들어 놓은 걸 사용했고, 재료 손질도 직접 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항상 제일 먼저 와있는 서인우가 준비해놓은 재료와 육수를 사용할 때가 많았다.

그래봤자 아는 육수와 늘 쓰는 같은 재료였다.

‘괜히 사람들이 트집을 잡는 거지. 원래 인간은 다 비교하고 평가하는 걸 좋아하니까.’

특별히 더 신경 써서 칠리 새우와 백 짬뽕을 만들었다.

요리를 내가는 직원을 보고 있자니, 왠지 더 긴장되는 것 같았다.

“칠리 새우는 비슷한데, 백 짬뽕은 맛이 다르지 않아?”

부부인 듯 보이는 30대 커플이 마주 보고 앉아 식사하고 있었다.

“시원한 맛도 덜하고, 칼칼하지도 않고.”

“자기도 그래? 나도 조금 느끼한 것 같은데….”

“확실히 MS 백화점 [서풍]의 맛하고는 다른 것 같아. 우리 주말에 거기로 가서 비교해보자.”

“주말에 또 먹어?”

“궁금하잖아. 여기 이름만 [서풍]인 거 아니야?”

결국 식사하던 여자가 직원을 불렀다.

“네, 손님.”

“저 혹시 여기 진짜 [서풍] 맞아요? MS 백화점[서풍]하고 같은 식당 맞냐고요?”

“여기 총주방장님이 [서풍]에 계셨던 분입니다.”

“그래요? 이상하네…. 알겠습니다.”

직원이 자리로 돌아가자 남편이 한마디 더 했다.

“누가 요리하느냐에 따라 맛도 조금씩 달라지는 거지. 그래도 이 칠리 새우는 정말 맛있어.”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기태가 굳어진 얼굴로 주방을 쳐다봤다.

‘얼마를 주고 데려왔는데, 가장 인기 메뉴인 백 짬뽕 맛을 못 내면 어쩌라는 거야?’

핸드폰을 들고 조용히 복도로 나온 한기태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난데, MS 백화점 중식당 [서풍]에 가서 백 짬뽕이랑 먹물 만두 넉넉하게 포장 좀 해와.”

오래 걸리지 않아 남자 하나가 포장된 음식을 가지고 조용히 한기태를 찾았다.

음식을 받은 한기태가 손님들 눈을 피해 잽싸게 주방으로 들어갔다.

“이게 뭡니까?”

남지운이 얼핏 느껴지는 음식 냄새에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조금 있으면 바빠질 테니까 지금 이것 좀 먹으라고.”

“네?”

포장지에 버젓이 [서풍]이라는 글자가 찍혀있었다.

“설마 이거 저쪽 [서풍]에서 사 온 겁니까?”

“그래요. 왜 이 간단한 백 짬뽕 맛을 못 내는지 하도 궁금해서 내가 포장해오라 시켰습니다.”

기가 막힌 표정으로 한기태를 쳐다본 남지운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음식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다른 직원들을 보고 더 기분이 나빠졌다.

작은 그릇에 덜어 백 짬뽕을 맛본 직원들이 남지운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거 국물이 확실히 시원한데요? 칼칼하면서도 개운하고 깊은 감칠맛까지….”

옆에서 맛을 본 직원이 말끝을 흐렸다.

다른 사람들은 정신없이 음식을 먹었다.

국물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표정으로.

어쩔 수 없이 자기 몫을 먹은 남지운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뭐가 다른 거야? 재료는 똑같은데….’

답답해 죽겠는데, 아무리 맛을 봐도 비결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남 셰프님. 셰프님 정도면 맛보면 바로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도대체 무슨 차이인지….”

한기태의 한마디가 답답한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그럼요. 지금 먹어보니까 후추의 양과 시원한 맛을 내주는 배추의 양이 부족했네요.”

“역시, 남 셰프님 실력이면 금방 알아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럼 오늘 저녁 주문부터 제대로 부탁합니다.”

한기태가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어 보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이런 젠장. 나도 차이를 몰라 궁금해 죽겠다고. 그래도 후추와 배추를 많이 넣어서 나쁠 건 없을 거야.’

“3번 테이블. 탕수육 하나. 짜장 하나 백 짬뽕 둘이요.”

백 짬뽕 주문이 새로 들어왔다.

과연 [서풍]의 맛을 똑같이 낼 수 있을지 주방을 노려보는 한기태의 눈이 반짝 푸른 빛을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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