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176화 (176/200)

제176화

김예은의 말에 서인우와 강진수, 남지운 모두 놀라 그녀를 쳐다봤다.

“간판에 서풍이라고 적혀 있다고요?”

“네, 물론 베트남어로 되어 있긴 했는데요. 그 아래 작게 한국어로도 적혀 있었어요.”

“대박! 누가 그런 얌체 같은 짓을 했을까요? 그놈 얼굴이나 한번 보고 싶네. 사장님, 제가 한 번 가볼까요?”

“됐습니다. 항상 하는 얘기지만 음식 장사는 결국 맛입니다. 맛으로 평가받는 곳이라는 것만 명심하세요.”

심하게 벌게진 얼굴을 숨기려 고개를 돌리고 있던 남지운이 숨소리라도 들릴까 조마조마해 하고 있었다.

‘내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그만둔다고 할 걸 그랬나? 불편해서 오늘 하루 어떻게 일해야 할지 진짜 짜증 나네.’

조용히 움직여 웍에 잘 보이지도 않는 얼룩을 솔로 씻어내기 시작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나둘 다른 직원들도 출근했다.

남지운 곁으로 다가간 서인우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래도 같이 이곳까지 왔는데, 오늘 조촐하게 송별회라도 하면 어떻습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준비할 것들이 많아서 오늘 바쁜 시간까지만 근무하고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편하게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남지운의 표정에서 분위기를 눈치챈 서인우가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

“남지운 씨 뜻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오늘 저녁 주문 들어오는 것까지만 일해 주세요. 다른 직원들한테는 내일 조용히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일손이 부족할 텐데…. 정말 갑자기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내가 좀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됩니다. 그럼 오늘만 잘 부탁드려요.”

강진수가 서인우를 향해 눈빛을 보내왔다.

고개를 가로저어 보인 서인우가 오픈 준비를 서둘렀다.

“자, 이제 곧 오픈입니다. 오늘 하루도 다들 최선을 다해 주세요.”

남지운의 뜻대로 다른 직원들에게는 그의 상황을 얘기하지 않았다.

평상시처럼 첫 주문이 들어오자 모두 바쁘게 움직였다.

“벌써 이렇게 많이 만들어 놓으신 거예요?”

이명옥이 만들어 놓은 만두가 테이블에 가득했다.

“어제도 이 정도 만들어 놓고 시작혔는디, 그래도 나중에는 아슬아슬했당께요. 혹시라도 부족할까 봐 어찌나 거시기 하던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만두를 빚어내는 이명옥이 어느 때보다 든든하고 고마웠다.

남지운의 빈자리가 아무래도 티가 날 텐데, 이렇게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해주는 직원이 있으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다음 주에 주문한 만두 포장지가 나오니까 그때부터는 서울에서처럼 포장 판매도 시작하려 합니다.”

“그래야지유. 우리 [서풍 만두]는 포장해서 집에서 만들어도 똑같은 맛이 가장 큰 장점인디요.”

“네, 두 분만 믿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총주방장님과 제가 최선을 다해 만들 테니까요.”

김명순이 의지를 불태우듯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띵!

강진수가 탕수육을 완성해 벨을 눌렀다.

한눈에 보기에도 바삭해 보이는 탕수육에 소스가 잘 버무려져 윤기가 자르르했다.

-저놈 이제 혼자서도 잘 하는데?

‘뭐든 가르쳐주면 단시간 안에 자기만의 방법으로 습득을 해버리네.’

-완전히 서인우 주니어네. 그나저나, 서풍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내걸었다는 데 그냥 참고 있을 거냐?

‘한국도 아니고 여기서 서풍이라는 이름에 특허를 받아놓은 것도 아니잖아. 우연이겠지.’

-우연이라고? 여기 오픈한 지 한 달도 안 되는 시점에 그것도 이 근처 가까운 곳에다가 같은 간판을 내거는데 그게 우연?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봐야지. 맛이나 정성으로는 절대 지지 않으니까.’

서인우도 신경이 쓰이지 않는 건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다른 곳으로 가게 됐다는 남지운과 근처 가까운 곳에 오픈 준비 중이라는 같은 이름의 중식당!

이게 과연 우연일까?

자꾸 비집고 나오는 안 좋은 생각을 떨쳐 버리려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서인우에게 잡생각 버리고 요리에나 집중하라는 듯 주문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2번 테이블 양장피, 먹물 만두 하나, 백 짬뽕, 홍짬뽕 하나씩입니다. 7번 테이블 누룽지탕, 고추잡채, 볶음밥, 짜장 둘 서두릅시다.”

화라락!

웍에 동시에 불이 올라왔다.

서인우는 여느 때처럼 양장피를 준비했고, 김명순이 만들어 놓은 만두를 끓는 물에 넣었다.

“오상준 씨. 짬뽕 준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오늘 새로운 요리 레시피를 알려주려나?’

내심 기대에 찬 눈으로 서인우를 힐끗거리며 쳐다보던 남지운이 서인우의 이어지는 말이 들리자 실망하는 모습을 역력히 드러냈다.

“남지운 씨. 누룽지 튀겨주세요. 내가 이거 완성하고 바로 소스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뭐? 소스가 아니라 누룽지를 튀기라고?’

[서풍]의 누룽지탕도 인기 메뉴 중 하나였다.

다른 곳처럼 느끼하지 않고, 재료도 훨씬 풍성한 누룽지탕을 마지막으로 배울 기회라고 생각했던 남지운이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순식간에 양장피를 완성해 홀에 나가 선보이고 돌아온 서인우가 바로 채소와 버섯, 해물 등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소스 제가 만들까요? 이미 누룽지 다 튀겨져서 오래 걸리면….”

말을 하던 남지운이 이미 재료 준비가 전부 끝나있는 모습을 보며 말끝을 흐렸다.

“지금 바로 만들 수 있습니다.”

뚝딱 완성한 소스를 담아 누룽지가 담긴 접시와 함께 나란히 준비해놓은 서인우가 벨을 눌렀다.

거의 3시가 다 되어서야 한숨 돌리기 시작한 서인우가 남은 재료 상황을 체크했다.

다른 날보다 손님이 많았던지라 채소와 해물 모두 저녁 장사까지 감당하기에 부족한 듯 보였다.

“강진수씨.”

“재료 추가 주문 들어가라는 말씀이시죠?”

-어쭈, 이제 말하지 않아도 찰떡같이 다 알아듣네?

‘그러니까. 지낼수록 재미있는 녀석이라니까.’

-아무래도 [서풍] 3호점은 저놈 몫인 거 같다.

어린 나이답지 않게 책임감도 뛰어나고 무엇보다 성실하다는 게 서인우에게 가장 크게 어필한 부분이었다.

강진수가 추가 재료 주문을 위해 김 매니저를 찾아 주방을 나갔다.

조용히 그가 연습하고 있던 자리를 본 서인우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얀 연두부가 제법 얇게 잘려져 있었다.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는지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놀라운 발전이었다.

‘사부! 꽤 쓸만하게 보이지?’

-오늘 시간 날 때마다 연두부 한 놈만 붙잡고 있더라니.

‘아직 속도가 붙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워낙 성실하니까 금방 실력이 늘 거라고 믿어.’

-내일부터는 한 명 빠지니까 저놈 연습할 시간이 아예 없겠네.

‘내가 더 많이 해야지. 그리고, 빨리 사람도 구해야 하고.’

서인우가 짬뽕에 들어갈 배추를 손질하고 있던 막내에게 다가갔다.

“일은 할 만합니까?”

“네. 재미있습니다.”

“전에도 식당에서 일했었다고 했죠?”

“베트남 음식점에서 일했습니다.”

“혹시 같이 일했었던 사람 중에 여기서 일할 사람 있으면 소개 좀 해주세요.”

막내가 무슨 일인지 묻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직원 한 명이 내일부터 사정이 생겨 못 나올 것 같다고 해서 급하게 일해 줄 사람을 구해야 해서요.”

“알아보고 내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녁 장사가 다시 시작되려 할 때쯤 추가 주문한 재료가 도착했다.

막내와 오상준, 강진수 모두 재료가 도착하자마자 너나 할 것 없이 손질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던 서인우가 깊이 숨을 들이마시는 듯하더니 급하게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잠시만 멈춰보세요.”

다들 무슨 일인지 몰라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었다.

“강진수씨. 이거 우리가 주문하던 대로 한 거 맞죠?”

“네, 항상 보내주던 거와 똑같은 걸로 부탁했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서인우가 양파와 파가 담겨있는 박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다른 때와 똑같이 싱싱하고 단단한 양파와 푸릇푸릇한 파가 아무리 봐도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간 서인우가 손을 깊숙이 넣어 속에 쌓여있는 재료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하나, 둘씩 무른 양파와 파들이 서인우의 손에 잡혀 나왔다.

“어? 오늘 좀 안 좋은 게 섞여 있네요?”

“아무래도 가게에서 실수한 모양입니다. 다들 신경 써서 다른 재료들도 상태 파악 잘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서인우가 바닥에 박스를 통째로 뒤집었다.

그리고는 조금이라도 무르거나 싱싱하지 않은 건 그대로 골라내어 옆에 따로 모아놓았다.

싱싱한 파와 양파만 박스에 다시 담고 보니 처음보다 확연히 줄어 보였다.

“다른 재료들은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불안한지 서인우가 배추와 당근, 버섯 등 다른 재료들도 꼼꼼하게 체크했다.

크게 문제가 있지는 않았지만, 처음 서인우가 찾아가 [서풍]에 보내주기로 약속했던 것만큼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조금이라도 싱싱하지 않은 채소들은 다 옆으로 빼놓고 요리에 사용하지 않도록 하세요. 음식의 맛은 재료가 가장 중요합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내일 재료 오는 거 봐서 필요하면 내가 직접 통화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오늘은 더 신경 쓰지 말고 빨리 재료 손질 끝내도록 합시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은 실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재료가 가장 중요한 요식업에서는 한 번의 실수도 쉽게 넘길 일은 아니었다.

서인우는 오늘 받은 재료들 상태를 사진으로 찍어 모두 기록해 두었다.

추가 재료 손질과 동시에 밀려 들어오는 저녁 주문에 맞춰 주방에서는 모두 각자 맡은 요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문이 조금 뜸해지기 시작했을 때 서인우가 남지운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제 가보셔야 할 시간인 것 같네요. 다른 직원들이 아는 걸 원하지 않는 것 같아 조용히 보내드립니다. 이번 달 월급은 조금 전에 입금해드렸습니다.”

“아직 한 달이 안 됐는데요.”

서인우가 대답 대신 작은 미소를 보였다.

“숙소는 내일까지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서로 간단히 덕담을 주고받은 후 남지운이 주방을 빠져나갔다.

대화가 얼핏얼핏 들렸는지 오상준이 놀란 눈으로 서인우를 힐끔 쳐다봤다.

다음 날 아침 모든 직원이 출근했을 때 서인우는 차분한 목소리로 남지운이 그만두게 됐다는 사실을 알렸다.

호기롭게 베트남까지 건너와서 같이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지금 시점에 남지운의 이직은 모두에게 실망과 충격을 안겨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서풍]을 찾는 손님은 여전히 많았고, 남지운의 빈자리는 서인우뿐 아니라 남은 직원 모두 바쁘게 메꿔나가야만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갔다.

서인우는 매일 아침 배달되는 채소와 해물, 고기들을 더 꼼꼼히 체크했다.

“강진수. 오늘 받은 해물 다 어디 있지?”

오늘도 한 시간 일찍 출근한 강진수와 막 도착한 재료들을 손질하고 있었다.

“저기 가운데 박스에 있습니다. 지금 열어서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채소 박스를 하나하나 열어 제일 먼저 냄새를 확인한 서인우는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사장님. 또 이상한 냄새가 느껴지시나요?”

“오늘도 분명히 싱싱하지 않은 재료들이 섞여 있어. 해물 박스 이리 가져와 봐.”

강진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해물이 들어있는 스티로폼 박스를 서인우 앞에 내려놓았다.

테이프를 뜯어 뚜껑을 열고 새우와 꽃게, 오징어, 전복 등 해물을 꼼꼼하게 살폈다.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서인우 옆에서 강진수가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장님. 저울 가져올까요?”

서인우가 놀란 듯 강진수를 쳐다봤다.

“왜?”

“잘은 모르겠지만, 해물들이 크기도 개수도 조금씩 달라진 것 같은데…. 아닌가요?”

“전부 처음 계약했던 최상급 상품이 아니야. 한 단계 아래 상품들로 채워져 있어.”

저울을 찾아 들고 온 강진수가 종류별로 하나하나 무게를 측정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서인우가 들고 있는 영수증과 낱낱이 비교하던 강진수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사장님 말씀이 맞아요. 확실히 차이가 나요.”

채소에 안 좋은 게 섞여들어 있고, 해물은 크기와 개수가 조금씩 적게 들어 있었다.

지난주부터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티 나지 않을 정도로 [서풍]에 배달되는 모든 식자재가 아주 조금씩 달라졌다.

‘감히 손님들이 먹을 식자재를 가지고 장난을 쳐?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절대 용서 못 하지.’

찬 바람이 부는 듯한 서인우의 눈빛이 매섭게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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