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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172화 (172/200)

제172화.

김원상이 찾아온 이후 며칠째 뭔지 모를 찜찜함이 차은석을 괴롭혔다.

그 뱀 같은 교활한 눈빛.

자신 있게 서인우가 쉽게 돌아오지 못할 거라 말하는 그 말투.

그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속내를 알기는 어려웠다.

‘뭘까? 이 찜찜함은 왜 사라지지 않는 걸까? 내가 예민해졌나?’

언젠가부터 서인우나 [서풍]에 관한 얘기를 들으면 신경이 곤두섰다.

어떨 때는 열등감으로, 또 어떨 때는 경쟁심으로.

이제는 그 서인우가 가까이 있지도 않은데, 오히려 더 신경이 쓰이는 것 같았다.

출근하며 얼었던 몸을 따뜻한 커피로 녹이며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잡생각도 날려버렸다.

“좋은 아침입니다.”

항상 부지런한 김도영이 오늘도 제일 일찍 출근했다.

“커피 마셨어요?”

“네, 저는 일어나자마자 모닝커피를 마셔야 화장실을 가서….”

김도영이 쑥스러운지 말끝을 흐렸다.

차은석이 피식 웃어 보였다.

“아직 2월이라 그런지 춥네요. 혹시 [서풍] 얘기 들으셨어요?”

“[서풍]이요?”

“여기 말고 베트남에 간 서인우 셰프요.”

간신히 커피로 서인우 생각을 지우고 있었는데, 또다시 들려오는 그의 이름에 차은석이 허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베트남에 내 친구가 있는데, 거기 백화점 오픈하기 전부터 서인우의 [서풍]이 들어온다고 교민들 사이에 난리였다네요.”

“그래요? 하긴, 방송 때문인지 워낙 인지도가 있긴 하죠.”

“백화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도 [서풍] 때문에 그 백화점에 간다네요.”

MS 백화점의 전략이 맞아떨어진 듯했다.

맛집이라면 지방까지 망설임 없이 가는 세상이다.

외국에 살면서 꼭 가고 싶었던 한국 음식점이 들어온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가서 맛보고 싶을 거였다.

차은석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에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현지인들 사이에도 꽤 인정받은 것 같더라고요. 사실 중식은 세계 사람 모두 좋아하는 메뉴잖아요.”

“그렇죠.”

“아마 우리 [만가복]이 들어갔어도 똑같이 인기를 끌었을 겁니다.”

[만가복]이 들어갔어도 과연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었을까?

김도영의 말에 선뜻 대답하지 못한 차은석이 남은 커피를 마셨다.

조금 전까지 향긋하던 커피 맛이 갑자기 쓰게 느껴졌다.

* * *

베트남에서의 일주일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동선이 부딪치고, 베트남 직원이 주문을 잘못 받는 등 실수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서인우는 누가 다치거나 하는 큰 사고 없이 일주일을 보낸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시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오픈 전 모든 직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일주일간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이제 좀 적응이 됐나요?”

“다 적응되는데 언어가 문제입니다. 뭐라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요.”

“맞아요. 그냥 외계어에요, 외계어.”

강진수와 남지운이 서로 이해한다는 눈빛을 교환했다.

-나도 머리 아파 죽겠다. 어떻게 한 마디도 못 알아듣겠냐?

‘사부는 나랑만 대화하는데 못 알아들으면 어때?’

-그래도 세상만사 돌아가는 얘기는 알아야 재미진데.

“오상준 씨는 어떻습니까?”

“이게 언어는 다 규칙이라서 지금 그 규칙을 공부하는 중입니다.”

“아! 역시 과학영재.”

-아! 정말 재수 없어.

서인우가 중식도의 말에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베트남 직원이 강진수와 남지운이 나누는 대화를 조금씩 알아듣고 픽픽 웃고 있었다.

“앞으로 한국 교민들 주문은 김 매니저가 전담하던지, 바쁘면 확인 절차를 꼭 하도록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베트남어가 알아듣기 어렵듯이 여기 현지 직원들은 한국어를 조금은 하지만, 그래도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힘들 겁니다.”

직원들 모두 공감하는 말이었다.

“상대방 처지에서 조금만 더 배려하고 도와주도록 합시다.”

“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도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더 큰 배려가 절실했다.

새로 채용한 김예은 매니저의 베트남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그녀가 현지 손님들과 대화할 때마다 서인우 뿐 아니라 동료들의 부러운 눈총이 정신없이 쏟아졌다.

그중 이명옥이 가장 부러운 티를 냈다.

“나는 영어만 섞어 써도 억수로 거시기 헌디, 어떻게 베트남어를 우리 말처럼 한댜? 용하네.”

혹시라도 현지 사람이 다가오기만 해도 줄행랑을 치는 이명옥의 눈에는 김예은을 향한 부러움이 뚝뚝 묻어났다.

“제가 매일 1시간씩 가르쳐드릴까요?”

친절한 김예은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난 머리가 빠가사리라 힘들어라. 기냥 이렇게 살다 죽을겨.”

이명옥 덕분에 회의 끝을 큰 웃음으로 장식했다.

주문이 들어오고 각자 맡은 대로 자기 몫을 하기 위해 오늘도 분주히 움직였다.

“오늘 단체 예약이 많이 있습니다. 강진수 씨, 중간에 재료 상황 잘 체크해서 필요하면 추가 주문 넣도록 하세요.”

“네? 체크는 하는데 주문은….”

강진수가 자신 없는 말투로 말을 잇지 못했다.

배트남어를 전혀 모르는 강진수에게 직접 주문하라는 것으로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당연히 주문은 김 매니저와 함께해야죠?”

“그렇죠? 그런 거죠?”

그새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강진수가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띵!

주문 들어온 먹물 만두가 나가고, 바로 짬뽕과 새우볶음밥이 완성됐다.

“1번 테이블 칠리 새우 하나, 서풍 만두 하나, 짜장 둘, 백 짬뽕 둘이요.”

“남지운 씨 칠리 새우 준비하세요. 강진수 씨가 옆에서 서풍의 레시피로 다시 체크 해주시고요.”

“네! 셰프!”

강진수가 큰소리로 대답하고는 방긋 웃으며 남지운 옆으로 다가왔다.

새로 뽑혀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강진수보다 스무 살도 훨씬 넘게 차이가 나는 남지운을 가르쳐야 한다는 게 부담되는 눈치였다.

남지운이 손질된 새우를 노릇노릇하게 튀겨 기름을 빼는 동안 소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적당히 매콤하면서 새콤달콤한 소스의 맛을 잘 살려야 느끼하지 않고 또 너무 자극적이지 않은 칠리 새우가 완성된다.

강진수가 알려준 레시피대로 소스를 만들어 간을 본 남지운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내가 만들었던 칠리 새우와 크게 차이는 없는데, 맛은 확실히 다르네. 케첩과 설탕, 칠리소스의 양이 달라진다고 이렇게 맛이 깔끔하게 바뀌다니….”

“마지막에 이 라임즙이 또 새콤함과 개운한 뒷맛을 책임져 주는 거죠.”

완성된 소스에 잘 튀겨진 새우를 휘릭 볶아 접시에 보기 좋게 담았다.

띵!

홀 직원이 재빨리 들어와 요리를 내갔다.

그사이 서인우와 오상준이 윤기 잘잘 흐르는 짜장면과 입에

침이 고일 정도로 빨간 짬뽕을 완성했다.

홀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은 한국 사람 베트남 사람 할 것 없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식사를 했다.

“이게 그 유명한 [서풍]의 맛인가 보네.”

“나 여름에 파견 끝나는데, 연장 신청할까 고민 중이다. 여기 셰프가 만들어 주는 양장피에 술 한잔하고, 다음날 백 짬뽕에 해장하면 정말 완벽하다니까.”

“우리 애들도 이틀 전에 여기서 짜장면 먹고는 주말에 또 오자고 난리야.”

방금 말을 마친 남자가 손을 들어 직원을 불렀다.

“네, 손님. 뭐 필요한 거 있으신가요?”

“혹시 여기도 한국에서처럼 저 만두 포장이 됩니까?”

“포장이요? 잠시만요, 사장님께 여쭤보겠습니다.”

김예은 매니저가 주방으로 뛰어 들어와 서인우를 찾았다.

“사장님, 우리 먹물 만두 포장 되냐고 묻는데요?”

“다른 음식처럼 조리 후 포장 가능합니다. 한국처럼 대량으로 만들어 냉동해 판매하는 건 아직 힘들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서인우의 말을 그대로 전하자 질문했던 남자가 먹물 만두 2인분 포장을 주문했다.

가게로 들어오며 잘 쪄진 만두 2인분을 포장해가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왕타오가 눈동자를 정신없이 굴리며 테이블에 앉았다.

“매니저님. 저 손님 오픈하고 벌써 오늘이 세 번째 오신 거예요.”

“그래요?”

“매번 혼자 두, 세 가지 음식을 시켜서 먹고, 주방을 뚫어져라 하고 쳐다봐서 눈에 띄는 사람이었거든요.”

김예은 역시 낯이 익은 듯한 얼굴이라고 느끼기는 했다.

“한국 사람도 여기 베트남 사람도 아닌 것 같은데….”

“아무래도 중국 사람 같아요.”

“중국 음식이라 반가워서 자주 오나 보네요. 고향 생각나나?”

김예은이 웃으며 왕타오에게 다가갔다.

“손님, 주문하시겠어요?”

“칠리 새우 하나하고, 삼선볶음밥 하나 주세요. 그리고 갈 때 먹물 만두 하나 포장해 주세요.”

주문은 베트남어로 했지만, 확실히 현지 발음은 아니었다.

주문이 들어오자마자 남지운이 칠리 새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조금 전에 강진수가 알려줬던 레시피대로 혼자 소스까지 만들어 냈다.

완성된 칠리 새우를 홀 직원이 가지고 나가 왕타오의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주문하신 칠리 새우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왕타오가 목젖이 크게 울릴 정도로 침을 꼴깍 삼키고는 칠리 새우를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이건 살짝 매콤하면서 너무 달지도 않고 새콤한 맛까지 정말 완벽한 맛의 조화야. 진짜 최고의 칠리 새우를 만들어 냈어.’

칠리 새우를 하나 더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어 막 삼킨 왕타오가 매니저를 불렀다.

“이 칠리 새우를 만든 셰프를 잠시 만나볼 수 있을까요?”

“네? 혹시 음식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닙니다. 너무 맛있어서 얼굴이라도 꼭 보고 싶어서요.”

“잠시만요.”

김예은이 주방으로 들어와 조금 전 왕타오와 나눈 대화를 서인우에게 전했다.

손님에게 [서풍]의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인사라도 하고 싶다는 말을 들은 서인우의 입꼬리가 기분 좋게 올라갔다.

“남지운씨. 칠리 새우가 아주 맛있나 보네요. 밖에 손님이 요리해준 셰프에게 인사하고 싶다고 하는데…. 나가 보시겠어요?”

“네? 정말이요?”

기분 좋아진 남지운이 앞치마를 반듯하게 다시 묶고는 김 매니저를 따라 나갔다.

“손님, 이분이 요리해주신 남지운 셰프님입니다.”

“안뇽하세요.”

왕타오가 이상한 한국어 발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남지운입니다.”

더는 한국어가 안되는지 왕타오가 베트남어로 말을 이었다.

“저는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온 지 12년 됐습니다. 오늘 이 칠리 새우 정말 최고입니다. 꼭 셰프님 얼굴 보고 맛있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김예은이 그대로 통역해주자 슬슬 볼이 붉어진 남지운이 감격하는 눈빛을 보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더 맛있는 요리를 선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예은을 통해 감사 인사를 하고는 다시 주방으로 돌아온 남지운의 입이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이렇게 계속 [서풍]의 레시피 대로 음식을 만들 수만 있다면 여기서 얼마든지 내 가게를 낼 수 있겠어.’

면접 때부터 해외 진출에 관한 계획을 말했던 남지운이 그의 목표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에 흥분하고 있었다.

“남지운 씨. 오늘 [서풍]의 칠리 새우는 처음 만들어 본 거죠?”

“칠리 새우야 수도 없이 만들었지만, [서풍]의 레시피는 오늘이 처음입니다.”

“첫 실전에 바로 손님에게 엄청난 칭찬까지 받으신 건 워낙 기본기가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직접 얼굴 보고 맛있다고 해주니까 정말 기분 째집니다.”

매일 같이 감사 인사를 들었던 서인우가 누구보다 더 잘 아는 감정이었다.

남지운의 행복한 얼굴을 보니 서인우 역시 괜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모두 내 요리를 먹고 행복해하고 감사해하는 고객들을 생각하며 더 맛있게 만들도록 최선을 다해 봅시다.”

“네!”

“알겠습니다!”

“파이팅!”

직원들 모두의 사기가 주방 천장을 뚫는 듯했다.

백화점 마감 시간까지 정신없이 음식을 만들고, 그릇이며 웍을 씻고 정리했다.

다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가 노곤한 몸을 침대에 맡겼다.

다음 날 아침.

기분 좋게 출근하러 백화점으로 향하는 남지운의 앞에 두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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