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170화 (170/200)

제170화.

직원들과 함께 도착한 베트남 호치민.

공항에 도착해서부터 들리는 낯선 언어와 강한 향신료 냄새가 이국땅에 도착했음을 강하게 인식시켜 주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이 긴장하고 있다는 걸 그대로 보여 주는 강진수를 비롯해 오상준과 새로 채용한 남지운, 홀 매니저 김예은까지 함께 출발한 베트남 행이었다.

서인우는 무엇보다 짐 부치면서 따로 부친 중식도가 걱정되었다.

직원들과 함께 짐을 기다리면서 서인우의 눈이 정신없이 중식도를 찾았다.

“지금 저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김예은 매니저밖에 없는 거죠?”

공식적으로 당분간은 베트남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되야하는 서인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이쪽으로….”

강진수가 자연스럽게 김예은 옆에 붙었다.

그런 강진수를 마치 아들 쳐다보듯 보던 남지운이 애써 여유 있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타지에 도착한 첫날이 주는 긴장감은 누구도 숨길 수는 없었다.

다행히 문제없이 모든 짐을 찾아 공항을 빠져나왔다.

백화점 파견 직원들의 도움으로 구해놓은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 서인우는 마음이 급해져 먼저 백화점으로 향했다.

인테리어는 원하는 컨셉으로 잘 나왔다.

선금으로 반은 이미 지급한 상태였고, 나머지 반을 어떻게 처리할지 골치가 아팠다.

이곳저곳 살펴보고 있는 서인우 앞에 낯선 남자가 하나 다가왔다.

“서인우 셰프님, 맞죠?”

“네, 혹시…. 이영찬씨?”

“맞아요. 저야 방송에서 서인우 씨를 봤지만, 어떻게 저를 단번에 알아보세요?”

단번에 알아본 건 아니었다.

목소리.

전화 통화를 하면서 느꼈던 구본석 부장처럼 소리통이 크게 울리는 그 목소리를 듣고 혹시나 질러봤다.

이영찬의 모습은 상상했던 것과 정반대였다.

사람의 선입견이 무섭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유현주로부터 제2의 구본석이라는 얘기를 들은 순간 배가 나오고 덩치 큰 사내로 상상을 하고 있었나 보다.

왜소한 체구에 특히 반소매 아래로 가느다랗고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난 팔이 구본석과는 정반대의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전화 통화하면서 기억했던 목소리라서요. 유독 음성이 크신 편이라서.”

“맞아요. 다들 제 몸속 어디서 이런 큰 목소리가 나오느냐고 묻습니다. 그건 그렇고 오늘 오신 거죠?”

“네, 막 도착했어요. 궁금해서 저만 먼저 와봤습니다.”

“인테리어는 잘 나온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우리가 원하는 컨셉대로 잘 된 것 같습니다.”

이영찬이 내부를 꼼꼼히 가리켜가며 설명했다.

“오늘 들어오신다는 연락 받고 내일 오전 10시에 서류작업을 잡아놨습니다. 오래 걸리면 오후로 넘어가야 할 수도 있어서요.”

“하루빨리 진행하고 정산 끝내야죠. 그래야 요리에만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요.”

“네, 서류작업만 끝내면 더 신경 쓸 일 없을 겁니다. 응우엔 민 찐 씨가 잔금 받으려고 내일 최선을 다해 줄 겁니다.”

서인우와 단둘만이 뭔가 비밀을 공유한다는 생각에서인지 이영찬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직원들 불편하지 않게 이것저것 정리해 놓고 내일 시간 맞춰 나오겠습니다.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결국 우리 백화점 일이기도 합니다. 서로 돕는 거죠. 그 외에도 뭐든 도울 일 있으면 편하게 연락하세요. 그러면 내일 뵙겠습니다.”

이영찬의 믿음직스러운 말을 들으니 조급하고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 것 같았다.

직원들 각자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생활공간을 정리했다.

서인우는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짐을 풀어 중식도를 꺼내 들었다.

-에휴.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 반갑다, 서인우.

‘사부. 이 먼 곳까지 무사히 와줘서 고마워. 비행기에 가지고 탈 수 없어서 너무 걱정됐거든.’

-걱정하긴 했냐? 나는 어두운 곳에 박아놓고 잊어버리고 있었던 건 아니고?

‘그럴 리가. 사부와 함께 이곳에서 새로 시작할 생각에 얼마나 흥분되고 긴장된 시간이었는데.’

중식도가 꿈틀거리더니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군. 여기보다 식당이 궁금한데, 거긴 언제 가보나?

‘내일 10시에 서류 작업을 위해 그때 말한 인테리어 업체 사장이랑 만나기로 했어.’

-그 서류작업이 끝나야 모든 게 마무리 되겠군.

‘그렇지. 그 인간 내가 갑자기 베트남어를 하면 어떤 얼굴을 할지 궁금하긴 해.’

낯설고 피곤한 베트남에서의 첫날이 지나가고 새로운 아침을 맞았다.

서인우는 한국에서 해왔던 운동 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익숙하지 않은 주변을 힘껏 달렸다.

이상하게 쳐다보는 현지인들에게는 그저 웃어 보였다.

‘앞으로 매일 이 시간이면 보게 될 테니 이상해할 것 없어요.’

어제 아침까지 추운 날씨에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었는데, 하루 사이에 얇은 점퍼만 입어도 더운 곳에 와 있다는 게 뛰다 보니 실감이 났다.

땀으로 목 주변이 다 젖어 숙소로 돌아온 서인우는 개운하게 샤워를 했다.

항상 일찍 준비하는 게 습관이라 20분 전에 백화점에 도착했다.

다음 주면 오픈인 백화점은 거의 준비가 끝난 듯 보였다.

이 거대한 건물 안에서 새롭게 시작할 [서풍]을 생각하며 주방 이곳저곳을 체크하고 있을 때였다.

띄엄띄엄 알아들을 수 있는 베트남어가 들렸다.

“오늘 여기 사장이랑 서류 끝내놓으면 나머지 잔금을 받기로 되어있어. 내가 얘기 잘해놓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구석으로 몸을 숨기고 살짝 내다보니 응우엔 민 찐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더 할 게 없으니까 앞으로 잘 구슬려서 돈 좀 벌어보라고. 많이 남기면 밥도 자주 사고 말이야.”

10시가 다 되어가자 전화를 끊은 응우엔 민 찐이 가게를 두리번거리다 주방 안으로 들어왔다.

일부러 반대편 끝으로 달려간 서인우가 벽 쪽에 붙어있는 조명을 살피는 척 붙잡고 있었다.

“뭐야? 저 바보는 언제부터 있었던 거야?”

미스터 찐이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작게 웅얼거렸다.

“안녕하세요.”

인사 소리에 자연스럽게 조명을 만지던 손을 내려놓은 서인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왔어요?”

미스터 찐이 찝찝한 표정으로 물었다.

서인우는 눈으로 뭐라 하는 건지 되묻고 있었다.

“저놈은 아직도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네. 작업비를 더 부를 걸 그랬나?”

답답한 척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서인우가 연신 웃어 보였다.

‘그래, 그렇게 계속 마음대로 지껄여. 조금 있다 서류작업 완벽히 끝내놓고 깨끗하고 시원하게 마무리해 줄게.’

서인우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미스터 찐이 손을 뻗어 입구로 나가자는 동작을 해 보였다.

아무래도 이영찬이 오는지 확인하려는 듯했다.

정확히 10시가 되자 이영찬이 빠른 걸음으로 가게로 들어왔다.

“일찍 오셨네요?”

서인우와 눈을 마주치고는 바로 베트남어로 미스터 찐과 인사를 나눴다.

“여기 사장님이 오늘 최대한 완벽하게 서류작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바로 장사 준비 들어가야 해서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얘기는 다 해놨고, 오늘 본인 확인하면서 몇 가지 적기만 하면 끝나요.”

이영찬이 그의 말을 토씨 하나 빼지 않고 자상하게 통역해주었다.

물론 서인우 역시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소방국으로부터 시작해서 여러 군데 관공서를 들렀다.

이영찬의 말대로 오전에 시작한 일이 결국 오후까지 넘어가서 끝났다.

다시 백화점으로 돌아온 세 사람은 서인우가 사 온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이제 또 뭐가 남아있나요?”

서인우가 질문을 하자 이영찬이 그대로 베트남어로 번역해 미스터 찐에게 물었다.

“이미 나랑 잘 아는 곳들이라 얘기는 다 끝났어요. 가게 와서 화재시설 확인도 마쳤고, 직원들 식품 안전 조건 증명서도 내 덕분에 쉽게 받는 줄 아쇼.”

“감사합니다.”

‘그것까지 다 계산해서 견적에 넣었잖아?’

다 돈 받고 하면서도 끝까지 생색내는 걸 잊지 않는 미스터 찐이 역겨웠다.

이런 식으로 일 도와준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 돈을 갈취했을지….

막상 같이 일을 해보니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다 한 것 같은데, 잔금은 언제 처리해 줄 거요?”

“안 그래도 그 비용에 대해 할 말이 좀 있는데요.”

갑자기 베트남어를 술술 말하는 서인우를 미스터 찐이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놀라 쳐다봤다.

“다, 당신 뭐야? 베트남어를 할 줄 아는 거야?”

“그럼 설마 이곳에서 사업을 할 사람이 언어도 모르고 시작하겠어? 바보같이?”

일부러 바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하자 미스터 찐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난리가 났다.

당황했는지 바로 말을 잇지 못하는 미스터 찐을 노려보며 서인우가 정확한 발음으로 또박또박 얘기를 시작했다.

“지난번 왔을 때 여기 인테리어 자재 비용 영수증을 다시 청구해서 나에게 보냈었지?”

“그, 그랬지. 그게….”

“자재 업체에서 보낸 영수증 말고 그 두 배 되는 영수증을 다시 보내달라고 당신이 요청해서 말이야.”

“뭐?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놀라서 말을 버벅거리면서도 기에 눌리지 않으려 화를 내는 미스터 찐의 눈을 서인우가 가까이 다가가 더 매섭게 노려봤다.

“그날 오전에 분명 그랬잖아. 여기서 장사한다는 사람들 어차피 아무것도 모른다고. 당신이 말한 대로 자재 가격 장부를 다시 작성해서 가져오라고 말이야!”

미스터 찐의 놀라 벌어진 입이 다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신네 나라에 와서 열심히 일해보려는 사람들 도와준다면서 이렇게 자잿값이나 속이면서 바보 취급이나 하면 되겠어? 서로 믿고 의지해야 할 상황에!”

“증, 증거 있어? 내가 자잿값을 속였다는 증거 있냐고? 어디서 도와줬더니 이제 와 모함이야?”

옆에 서 있던 이영찬의 불끈 쥔 주먹이 부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서인우가 눈빛을 건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증거? 원한다면 보여 주지. 하지만, 이 증거는 법적 효력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거야.”

마지막 문장에 몸을 움찔한 미스터 찐이 연신 눈을 깜빡였다.

핸드폰을 켜서 저장해 놓은 장부 사진을 천천히 보여 주었다.

“여기 날짜, 그리고 이 자재, 그리고 여기 당신 이름 보이지?”

영수증에 날짜와 상호, 응우엔 민 찐의 이름까지 상세하게 적혀있었다.

미스터 찐의 얼굴이 피를 청소기로 다 빨아들인 듯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 이건 오, 오해야. 그 업체 사장이 갑자기 자잿값을 올려 요구해서….”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그래? 내가 이렇게 나올 줄 알고 그날 그 업체들을 직접 다 갔었지. 물론 단가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서인우가 업체에서 찍은 단가 사진과 견적서 사진을 하나씩 보여줬다.

여전히 하얗게 질린 얼굴에 손까지 바들바들 떨며 미스터 찐이 다급하게 변명을 시작했다.

“자, 잘못했습니다. 내, 내가 순간 돈 욕심에 실수했습니다. 아직 정산이 다 끝난 건 아니니까….”

“인제 와서 말을 바꾸시겠다?”

“그, 그게 아니라….”

미스터 찐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아무리 잠도 안 자고 공부했다지만 미스터 찐이 하는 말을 완전히 다 알아듣지는 못했다.

물론 서인우가 해야 할 말은 미리 원고 작성을 해서 몇 날 며칠 외운 내용이었다.

“똑바로 말씀해 보세요.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당신이 말한 이 증거 법적 효력도 있는 거라는 거 명심하세요!”

“내, 내가 다시 보낸 자재 영수증 제발 없애주시고, 처음 꺼 여, 여기 핸드폰에 있는 이걸로 다시 계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그리고….”

미스터 찐이 이영찬을 슬쩍 쳐다봤다.

“다, 다른 일 뭐든지 부탁하시면 성심성의껏 도와 드리겠습니다.”

서인우는 눈치껏 대충 내용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었다.

“우리 백화점 차원에서도 이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오늘 오후에 바로 응우엔 민 찐 씨가 행한 짓들에 대해 회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요.”

서인우가 잠시 이영찬에게 미스터 찐이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얘기했다.

“여기 서인우 사장님이 우선 미스터 찐에게 잘못을 용서받을 기회를 주자고 하십니다.”

“네?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서인우가 미스터 찐의 눈을 응시하며 강한 어조로 또박또박 한마디씩 정확히 설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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