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167화 (167/200)

제167화.

베트남 점 오픈까지 보름이 채 남지 않았다.

백화점 마감을 안상훈에게 부탁하고 오랜만에 이준형, 윤지영과 회의를 가장한 술자리를 가졌다.

“지영 씨 오랜만이네요. [서풍 만두]는 베트남 진출 차질없이 잘 진행되고 있나요?”

“인테리어도 그렇고 여기도 너무 바쁘고 해서 [서풍 만두] 처음처럼 주방 내 보이는 작업 공간으로 [서풍 TWO]와 함께 하기로 했어요.”

“그러면 베트남에는 누가 가게 되는 건가요?”

“이명옥 총주방장님하고 작년부터 같이 일했던 김명순 씨가 같이 가시기로 했어요.”

윤지영의 픽인 양파가 올라간 후라이드 치킨에 떡볶이를 세트로 시켜 늦은 저녁 겸 안주로 먹고 있던 서인우와 윤지영, 이준형이 얼큰한 나가사끼 짬뽕을 하나 더 주문했다.

“인우 너는 이제 베트남 점 준비는 다 된 거냐?”

“직원도 뽑았고, 거기 인테리어도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내 베트남어 실력도 나날이 늘고 있다.”

“오빠, 정말 대단해. 새벽부터 잘 때까지 계속 베트남어 공부만 한다면서?”

“내가 언어가 돼야 직원이든 손님이든 소통을 하지.”

각종 해물이 올라간 나가사끼 짬뽕이 테이블에 놓이자 세 명의 숟가락이 동시에 움직였다.

추운 날씨에 뜨거운 국물을 보자 반사적으로 나오는 행동들이었다.

“캬! 시원하다. 이건 우리 백 짬뽕하고는 또 다른 맛이란 말이야.”

“개운함이 다르죠. 우리 백 짬뽕이 더 개운한 맛 아니에요?”

“이 집도 불맛이 끝내주는데?”

조용히 듣고 있던 서인우가 국물을 한 숟가락 먹고는 바로 평이 이어졌다.

“보통 나가사끼 짬뽕은 돼지고기 우린 육수를 쓰는데, 이 집은 치킨 수프를 사용했네. 마지막에 토치로 불맛을 살려줬고.”

“서인우 미각 역시 살아있네. 난 한 사발 다 마셔도 절대 모르겠다.”

“그러니 우리 오빠는 요리하고, 준형 씨는 사업을 하는 거죠.”

“그러면 지영 씨는요?”

“음…. 저도 요리는 자신 없어서 사업을 하는 거죠.”

윤지영이 후루룩 면을 먹자마자 국물을 덜어 마셨다.

“[서풍 만두]는 이명옥씨 없어도 차질 없겠어? 워낙 손도 빠르고 정확해서 말이야.”

“지금 은선 언니가 거의 책임지고 만두를 만들고 있어. 그리고 우리는 레시피가 워낙 정확해서 크게 문제는 안 될 것 같아.”

“그렇지. 문제는 속도지. 이명옥 씨야 거의 달인 수준이었으니까.”

서인우와 윤지영이 처음 이명옥을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 상황을 직접 보지 못했던 이준형만이 이것저것 질문하느라 정신없었다.

“세우면은 식품부 구본석 부장님이랑 잘 진행하고 있지?”

“그건 걱정하지 마. 백화점 식품매장이랑 모든 걸 같이 하기로 해서 나는 차질없이 물량만 대주면 되니까. 네가 걱정이지.”

“여기 강남점은 이제 안상훈 셰프님이 완벽하게 맡아서 하고 계셔. 조용히 책임감 있게 잘해주고 있어서 아주 든든해.”

다시 잔을 기울이며 윤지영이 물었다.

“출국은 언제로 생각하고 있어? 거기서도 직원을 채용해야 하지?”

“그렇지. 인건비 생각해서 될 수 있으면 현지에서 채용하려고.”

“그래서 더 베트남어를 죽어라 공부했구나. 내가 아는 서인우 라면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지.”

“일주일 전에는 들어가려고. 가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아.”

“오늘 보면 가기 전에 또 볼 수 있으려나? 한 번 더 보고 싶은데.”

윤지영이 서운함을 잔뜩 표현했다.

“베트남에 여행하러 와! 돈벌어서 뭐 해? 인생 즐기고 살아야지. 이모랑 이모부, 그리고 우리 엄마 모시고 같이 와.”

“호텔 잡아주나? 대표님?”

“엄마 모시고 와준다면 최고 좋은 호텔 잡아주지. 그러려고 돈 버는 건데.”

“좋았어. 꼭 갈게.”

시간이 늦어질수록 세 청춘의 대화도 점점 깊어졌다.

“오빠.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

윤지영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김형식. 곧 나온다고….”

김형식이라는 말에 서인우도 이준형도 순간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았다.

아무 말 없이 멍하니 있는 서인우를 이준형과 윤지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봤다.

“그렇게 볼 거 없어. 이제 다 끝난 일이고, 더는 얽매이지 않고 내 인생을 살 거야.”

“그래. 그런 인간 때문에 괴로워할 가치도 없지.”

빈 잔에 다시 술을 채우며 윤지영이 흘낏 서인우를 쳐다봤다.

“왜 또?”

“제시카는 안 만나보고 갈 거야? 눈치 보니까 먼저 연락 못 하는 것 같던데….”

“내가 연락해볼게. 인사는 하고 가야지.”

시간이 갈수록 아쉬움이 커진 듯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앞날을 계획했다.

* * *

만가복 본사 건물 앞에 멈춰 선 검은색 세단.

그 안에서 유유히 내리는 김형식의 얼굴을 본 직원들이 일제히 당황하며 허리를 꺾어 인사했다.

“회,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이제 회장 아니지. 뭐라 불러야 할지 나도 잘 모르겠군.”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에 도착하자 비서들 또한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회장님.”

뒷말을 잇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는 비서를 보고 기분이 언짢아진 김형식이 물었다.

“안에 있지?”

“아! 네, 회장님 지금 회의 중이십니다.”

“회장님?”

김형식이 매서운 눈으로 비서를 쳐다보며 살짝 웃었다.

그 모습에 소름이 끼친 듯 비서 둘이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안에 누구누구 있지?”

“이사님 두 분이 와 계십니다.”

“그러면 뭐 다 아는 얼굴들이군.”

망설임 없이 문을 열려고 하는 김형식을 가로막은 비서 하나가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작은 소리로 말했다.

“김원상 회장님이 회의 중이니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아무도? 지금 나보고 아무도라고 지껄이는 거야? 양 비서! 내가 누군지 잊었나?”

소란한 소리에 문을 열고 김원상이 밖으로 나왔다.

안에서 회의 중이던 김 이사와 정 이사가 김형식을 발견하고는 눈빛을 피했다.

“아버지, 지금 회의 중이라고 못 들으셨습니까? 중요한 안건이 있어서 회의 중이었는데, 이건 밖이 너무 소란스러워서 집중을 할 수가 있어야죠.”

“뭐? 내가 나오는 줄 알고 있었으면서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지금 뭐라고? 중요한 안건?”

“여기서 이러시지 마시고 안으로 들어가시죠.”

김형식이 보란 듯이 회장실 문을 연 김원상이 안으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김 이사님, 정 이사님. 오늘 회의는 우선 조금 전에 말씀드린 대로 알고 계시고, 다음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니, 둘 다 다시 앉아. 무슨 일인지 나랑 의논하도록 하지.”

두 이사가 잠시 멈칫하더니 김원상에게 인사를 꾸벅하고는 도망치듯 회장실을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김 이사, 정 이사. 지금 둘이 뭐 하자는 건가? 잠깐 사이에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고는 어떻게 내 말을 무시하고 지금 등을 보이는 건가?”

“죄송합니다. 저희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렇게 자꾸 소란 피우시면 곤란합니다. 조용히 들어가시죠.”

김원상의 태연한 얼굴을 본 김형식의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결국 헛기침만 두세 번 하고는 회장실 안으로 들어간 김형식이 항상 그랬듯이 가운데 회장석에 앉았다.

“뭐 오늘은 옛날 생각하며 좀 앉아 계세요. 오늘 이후로 회사 나오는 일도 없을 테니….”

“너 뭘 믿고 이렇게 건방을 떠는 거야? 나 김형식 아직 안 죽었어!”

“이렇게 사태 파악이 안 되시나?”

“뭐야?”

김형식의 눈이 마치 먹이를 빼앗긴 짐승의 것처럼 매섭게 빛났다.

“아버지같이 부와 권력을 다 가지고 계시는 분이 실제로 살인을 한 것도 아니고, 그깟 살인 교사 좀 했다고 거의 2년을 그곳에 있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김원상의 이어지는 말을 기다리고 있는 김형식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 좀 상황이 파악되십니까? 여기 [만가복]에 더는 김형식 사람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네까짓 게 그럴 능력이 있는 줄 알아? 어림도 없지.”

“그 어림도 없는 놈이 방금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계신 두 이사님과 어떤 사이인지 두 눈으로 똑바로 보시지 않았습니까?”

사실 눈치 빠르고 계산적인 김형식이 뭔가 일이 잘못되고 있다고 느낀 건 수감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였다.

처음에는 아내만 찾아와 눈물만 흘리고 가더니, 몇 달 후부터 딸 김서원이 한 번씩 찾아와 울며 원망의 소리를 내뱉고 돌아갔다.

아들 김원상이 회장직을 바로 이어받아 다행히 잘 운영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을 때만 해도 설마 하는 마음이었다.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아들이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두 달 전 딸 김서원이 찾아왔을 때 했던 말들이 이제야 가슴에 박히는 것 같았다.

“맹수가 되라고 하셨다면서요?”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

“상대방을 물어 죽일 수 있는 맹수가 되어야 한다는 아빠의 바람처럼 오빠는 이제 예전의 모습을 전혀 찾을 수 없어요.”

“그래봤자 기본 근성이 틀린 놈이야.”

“아빠가 단 한 번만 믿어줬어도 저렇게 냉혈한이 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제 회사로 돌아가셔도 아빠 자리는 없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몇 개월 있다가 나올 수 있었던 아빠가 해를 넘겨 이년을 이곳에 박혀 있었어요. 이제 그게 오빠의 힘이에요.”

다시 마주친 아들 김원상은 더 이상 겁먹고 주눅이 들어 있던 예전의 눈빛이 아니었다.

* * *

MS 백화점 강남점 [서풍] 주방이 북적북적했다.

서인우가 새로 채용한 주방 직원들에게 일주일간 특훈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안 그래도 할 일 많아 바빠 죽겠는데, 신참 교육까지 해야 하냐?

‘다들 원하는 거라 내가 베트남 가기 전에 꼭 해주겠다고 약속했어.’

-보니까 나이도 많고 경력도 많은 것 같은데, 자기 요리에 취해 있으면 더 가르치기 힘들 텐데….

‘적어도 우리 주방에서는 그런 거 없어. 여기에 서는 순간부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했다고.’

“우리 [서풍]의 가장 대표 메뉴가 뭔지 아십니까?”

“백 짬뽕입니다.”

“볶음 탕수육 아닙니까?”

“뭐니 뭐니 해도 양장피죠. 사장님의 퍼포먼스로 유명하잖아요.”

직원들이 호기롭게 앞다투어 대답했다.

“그리고 또 [서풍]의 시그니처 메뉴가 있죠?”

“먹물 만두입니다.”

“또 하나는?”

“그 기사에도 나왔던 치즈 치킨밥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말한 요리가 총 몇 가지인지 아십니까?”

직원들이 손가락을 접어가며 메뉴 개수를 세고 있었다.

“백짬뽕, 볶음 탕수육, 양장피, 먹물 만두, 치즈 치킨밥…. 적어도 이 메뉴들은 누가 만들어도 똑같은 맛이 나야 합니다. 그게 바로 [서풍]의 맛이니까요.”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강한 의지가 담긴 눈빛을 보냈다.

“물론 다른 메뉴들도 요리하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항상 같은 맛을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시길 바랍니다.”

서인우가 백짬뽕 재료를 하나씩 보인 후 중식도를 들었다.

배추와 양파, 당근, 파 등 채소를 썰어 보이자 직원들의 눈이 튀어나올 듯 크게 변했다.

-아놔. 저 신입들 놀라는 거 봐라. 내가 또 이 맛에 요리하지.

중식도의 말대로 말없이 눈만 깜빡거리고 있는 직원들을 보며 서인우도 속으로 잠시 웃었다.

“지금 이 크기와 속도를 기억하세요.”

“그, 그렇게 빠르고 정확하게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방송에서 봤는데도 너무 신기하네요.”

“연습하면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해물 손질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오징어에 칼집을 내 가지런히 정리해 놓은 서인우가 웍을 들었다.

화라락!

불길을 일으키며 달궈진 웍에 각종 재료를 넣어 재빨리 볶은 후 냉장고에 있던 육수를 꺼내 부었다.

소금과 청양고추 등을 넣어 간을 한 후 작은 그릇에 담아 새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다들 맛보고 이 맛을 정확히 기억해 주십시오.”

새 직원들이 백 짬뽕을 신중하게 음미했다.

-이제 미션 나가나요?

“곧 바쁜 시간 되니까 영업에 지장 가지 않도록 이쪽에서 백 짬뽕 연습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알아내야 할 미션이 있습니다.”

“미션이요? 과제입니까?”

“지금 이 백 짬뽕의 육수 비결을 알아 오면 됩니다.”

다들 경력 많은 중식의 전문가들이다.

이미 자신 있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내일 이 시간까지 이 육수 만드는 비법을 알아 오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혜택이 있을 겁니다.”

“특별한 혜택이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새로 뽑힌 직원들의 눈이 너나 할 것 없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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