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165화 (165/200)

제165화.

“사장님!”

덩치 큰 어린아이처럼 서인우를 끌어안고 있던 강진수가 말을 잇지 못하고 서 있었다.

“잠깐 기다려. 이 요리만 완성하고.”

서인우는 주말 저녁에 특히 인기가 많은 구전대장을 만들어 접시에 보기 좋게 담았다.

빨간 대창이 보는 이의 목젖을 자동으로 움직이게 했다.

띵!

홀 직원이 요리를 가지고 나가자 서인우가 멀뚱멀뚱 서 있는 강진수에게로 몸을 틀었다.

“쉬는 날 이 시간에 여긴 왜 나왔는데? 누구 기다리는 중인가?”

서인우가 말하는 누구가 누구인지는 이제 다들 말하지 않아도 아는 눈치였다.

“오늘 할머니 만나러 요양원에 갔었습니다.”

“아! 그 얘기면 나중에….”

“정말 감사합니다, 사장님. 제가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고 갚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직원들의 궁금함은 폭발해버렸다.

웍을 만지던 손이 두 배는 빨라진 직원들이 하나같이 요리를 완성해 벨을 누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다가온 사람은 김현수였다.

“강진수 씨. 그게 무슨 얘기야? 자세히 좀 말해봐.”

“오늘 휴무라 요양원에 계시는 할머니 만나러 갔었어요. 베트남에 가면 아무래도 자주 못 뵐 것 같아서요.”

“나랑 나가서 얘기하지.”

서인우가 밖으로 나가자며 강진수의 팔을 잡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고 서 있던 강진수가 더 큰 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장님이 지난주에 오셔서 우리 할머니 방을 1인실 남향으로 바꿔주셨어요. 게다가 1년 치 비용까지 이미 다 지급하셨다고….”

결국 오늘만은 덩치 큰 어린아이 같은 강진수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렸다.

“어려서 부모님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정말 고생 많이 했어요. 힘든 일도 많았고 멸시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서인우가 강진수의 등을 강제로 떠밀어 직원 통로로 데리고 나왔다.

“진수야. 친동생처럼 편하게 불러도 되지?”

“그럼요, 사장님.”

“네가 베트남에 같이 가겠다고 했을 때 내가 혼자 고민이 많았어. 할머니가 걱정돼서 말이야.”

“사장님!”

“이제 눈물은 좀 참아줄래? 부담스럽다.”

서인우가 환하게 웃으며 농담을 건네자 그제야 피식 웃어 보인 강진수가 주먹으로 눈물을 씩 닦았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편찮으신 할머니를 남겨두고 외국에 간다는 게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텐데, 내가 함부로 단정을 지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말이야.”

“저도 정말 고민 많이 했었어요.”

“그랬을 거야. 그래서 나도 할머니 상태를 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어.”

강진수가 울컥하는 감정을 애써 참느라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다.

“다행히 할머니가 다리가 불편하셔서 그렇지 정신도 또렷하시고, 건강 상태도 양호하신 것 같았어.”

“네, 사실 요양원에 가시기 전까지는 그 다리로 매일 시장에서 장사하셨어요. 의사 선생님 말씀이 아무래도 쭈그리고 앉지 않으시니까 훨씬 좋아지시는 것 같다고 그랬어요.”

“처음에 얘기한 것처럼 휴가 때마다 할머니 꼭 찾아뵙고 빨리 일 배워. 그래서 한 해라도 서둘러 성공하는 모습 보여드려. 그게 내가 너한테 바라는 거야.”

“흐흑, 사장님!”

간신히 떼어냈는데, 덩치 큰 강진수가 또 엉겨 붙었다.

서인우를 꼭 끌어안은 강진수의 등을 토닥이며 갑작스러운 아빠의 죽음과 맞닥뜨렸던 그 날의 자신이 떠올랐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안겨서 울 수도 없었던 어린 서인우가.

그렇게 한참을 강진수의 넓적한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 * *

“안녕하십니까?”

홀 직원들이 단체로 인사하는 소리가 주방까지 들렸다.

차은석을 비롯한 주방 직원들이 궁금해하고 있을 때 홀 직원 이다인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점장님, 마포점, 아니 [만가복] 본사 김원상 회장님 오셨어요.”

“회장님이요?”

“네, 갑자기 오셔서 지금 홀도 전부 긴장 상태에요.”

셰프복과 앞치마를 점검하고 밖으로 나간 차은석의 눈에 김원상과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김서원이 눈에 들어왔다.

“회장님, 나오셨습니까?”

“차 셰프. 오늘 그 유명한 [만가복] 만두 좀 맛보려고 나왔습니다. 내 동생하고는 인사한 적이 있었나?”

“얼굴은 뵌 적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차은석입니다.”

“안녕하세요. 김서원입니다. 콴탕빠오 궁금해서 왔어요. 혼자 오려 했는데….”

김서원이 김원상을 한번 흘낏 쳐다보고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요즘 우리 [만가복] 중에서 여기 지점이 가장 인기가 많다는 소식 들었습니까? 그만큼 매출도 좋은 성과를 내고 있고 말이에요.”

“다행히 손님들이 여기 음식을 좋아해 주십니다. 감사할 뿐이죠.”

“이제 차 셰프가 내놓은 콴탕빠오인가 그 만두가 우리 [만가복]의 대표 메뉴가 됐어요. 나는 그 점이 아주 마음에 든단 말이지.”

차성철을 통해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서풍 만두]처럼 [만가복] 이름을 내걸 수 있는 만두를 개발했으면 좋겠다는 김원상의 욕심을.

하지만, 이번 만두는 절대 그의 욕심을 채워주기 위해서 만든 건 아니었다.

어차피 시작된 경쟁이라면 [서풍]과 견줄만한 메뉴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잘 해낼 자신도 있었다.

“그 박인식인가 하는 평론가가 이번엔 제정신으로 글을 썼더군. 돈의 흐름을 귀신같이 꿰고 있는 인간이야.”

“오빠. 돈의 흐름이 아니라 정확한 맛을 평가할 줄 아는 사람인 거지.”

듣다못해 김서원이 한마디 톡 쏘아붙였다.

“바쁘신데 여기 신경 쓰시지 마시고 들어가서 일 보세요. 아! 우리 만두랑 요리는 신경 쓰셔서 더 맛있게 부탁드려요.”

웃는 미소가 무척 아름다운 김서원이 적당한 시점에서 얘기를 끊어주었다.

김원상의 못마땅해하는 표정을 못 본 척 차은석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고 주방으로 향했다.

“너는 내가 한창 얘기하고 있는데, 뭐 하는 거야?”

“지금 나랑 여기서 회의하러 왔어? 그러면 나 그냥 돌아가고.”

“너 요즘 왜 더 까칠해졌어? 회사에는 아예 나오지도 않고 말이야.”

“엄마 보러 집에는 자주 가. 그러는 오빠는 엄마 본 지 얼마나 됐는지 기억해?”

순간 주위를 의식한 김원상이 인상을 쓰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여기 다 내 직원들이다. 작게 말해.”

김서원이 앞에 놓인 차를 마시고는 낮은 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아버지 다음 달이면 나오신다고 들었어.”

“뭐? 너 누구한테 들은 거야?”

“왜? 내가 알면 안 되는 소식인가? 내 아버지에 관한 일인데?”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비릿하게 웃던 김원상이 다시 정색하고는 김서원을 쳐다봤다.

“그럴 리가? 그런 기쁜 소식은 내가 먼저 알려주려고 했는데, 네가 알고 있으니까 김새서 그러지.”

김서원은 점점 더 낯설어지는 오빠의 눈빛이 버거웠다.

처음 회장직을 맡고는 아버지 김형식의 눈빛을 닮아가는 것 같아서 소름이 끼쳤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보다 더 잔인하고 매서운 눈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한가지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

“뭔데?”

“아버지 말이야.”

말을 하며 김서원이 오빠 김원상의 표정을 살폈다.

“내가 처음 듣기로는 일 년 안에 나오신다고 들었거든. 그런데,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말이야.”

“아무리 권력이 있고 돈이 있어도 뉴스에 다 나와서 온 세상 사람들이 전부 알게 됐는데, 방법이 없었어.”

“그래? 그러니까 오빠는 최선을 다했다는 말이지?”

“이게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김원상이 눈 밑을 파르르 떨며 김서원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다음에 친구랑 다시 와야겠다. 오빠랑 마주 앉아 식사하다가는 숨 막혀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가기 전에 한마디만 듣고 가. 네가 누구한테 어떤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너한테 하나뿐인 아버지인 것처럼 나한테도 똑같아. 아무리 죄인이라지만.”

김서원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김원상의 눈만 한참 응시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보이며 걸어 나갔다.

“조심해. 그런 아버지처럼 너도 하나뿐인 동생이지만, 나를 화나게 만들면 좋은 거 없단 말이야.”

혼잣말처럼 작게 내뱉은 말은 아무도 듣지 못했다.

* * *

월요일 아침 오픈 시간 전.

서인우와 안상훈, 정다운 이렇게 셋이 면접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미리 받아본 이력서는 그들의 눈을 의심하게 했다.

모두 경력이 최소 5년은 넘은 중식의 베테랑들이었다.

이미 자기 이름의 가게를 냈던 경험이 있는 사람도 있었다.

“사장님. 저보다 더 경력 많은 사람을 면접 보고 합격 불합격을 논할 자격이 과연 저한테 있을까요?”

표정이 어두워진 안상훈의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안셰프님 처음 만났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안 셰프님이 저보다 훨씬 경력이 많으셨습니다. 기억하시죠?”

“에이, 사장님은 워낙 실력이 뛰어나시니까.”

“네. 안 셰프님도 워낙 실력이 뛰어나시니까 그런 걱정은 절대 하지 마세요.”

“맞아요. 요즘 손님들이 안셰프님 칭찬 정말 많이 하세요. [서풍]의 맛을 완벽히 만들어내는 유일한 분이시라고요.”

정다운이 걱정하고 있는 안상훈에게 다가와 응원해 주었다.

시간이 되어가자 면접을 보려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주방 직원 면접 후 홀 직원 면접이 예정되어 있었다.

베트남 [서풍]에서 같이 일할 주방 직원 한 명과 지금 이곳에서 일해 줄 주방 직원 세 명을 충원해야 했다.

많은 지원자 중에서 거르고 걸러 최종 여섯 명이 면접을 위해 모였다.

“서류를 통해 경력은 이미 다 확인한 사항이니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워낙 경험이 많으신 분들이 와주셔서 제가 면접을 본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스럽습니다.”

서인우가 주방에 일렬로 서있는 지원자들을 보며 가볍게 말을 꺼냈다.

“이미 다들 중식에는 어느 정도 전문가들이신데, 이번에 저희 [서풍]을 지원한 지원동기만 한 말씀씩 부탁드립니다.”

제일 왼쪽에 서 있던 1번 지원자부터 답변이 시작됐다.

“중식 웍을 잡은 지 올해로 7년 됐습니다. 하지만, 항상 내 요리에 자부심이 없었습니다. 손님은 점점 줄어들고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들더라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내 요리를 떳떳하게 내놓고 싶어서 지원했습니다.”

경력 7년이라는 1번 지원자는 3년간 전문 주방장 밑에서 독하게 배운 뒤 동네에 작은 가게까지 열었던 사람이었다.

“내 가게를 가지고 계셨던 분이 여기서 직원으로 일하실 수 있겠습니까?”

“부끄럽지만 여기 [서풍]에서 제시한 월급이 내가 매달 벌어들이는 수익보다 훨씬 높습니다. 다시 열심히 배우고 돈도 꼬박꼬박 모아서 새로운 마음으로 가게를 시작하려 합니다.”

2번 지원자는 베트남 점을 지원한 40대의 남자였다.

“이전에 꽤 큰 중식당에서 일하신 경력이 있으신데, 특히 베트남 지점을 지원한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우선 [서풍]에 지원한 동기는 방송 때문입니다. 그 요리경연 방송을 보고 죽기 전에 저도 저런 요리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2번 지원자가 멋쩍은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다 말을 이었다.

“사실 작년부터 해외로 나가볼까 알아보던 중이었습니다. 바로 내 가게를 내는 게 부담스러워서 결정을 못 하고 있었던 터라 저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지원했습니다. 솔직히 서인우 셰프님 요리도 배우고 베트남도 배우고 정말 꼭 가고 싶습니다.”

큰 소리로 어필하는 2번 지원자가 주위에 이상한 바이러스를 퍼트렸다.

면접이 진행될수록 지원자의 목소리가 점점 훈련병 대답처럼 커졌다.

그렇게 면접은 계속됐다.

간단하지만 그들의 말과 눈빛 속에서 삶의 흔적이 엿보였다.

마지막 여섯 번째 지원자의 순서가 됐을 때였다.

다른 면접자보다 유독 절실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지원자가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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