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164화 (164/200)

제164화.

눈에 엄청난 살기를 띠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어깨가 딱 벌어진 남자.

점점 가까워진 얼굴을 자세히 보니 이마와 콧등에 빨간 여드름이 딱!

강진수였다.

“왜 연약한 여자를 울리고 그래요? 사장님이면 다예요?”

“어머 진수 씨, 사장님한테 그게 무슨 버릇없는 말이에요?”

그런데, 이해되지 않는 건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정다운의 표정이었다.

분명 강진수한테 뭐라고 하는 듯한 말투였는데, 좋아 죽겠다는 표정에 몸은 또 왜 자꾸 비비 꼬는지.

“내가 우리 사장님한테 감사한 일이 너무 많아서 울컥했던 거야.”

“그런 거였어? 사장님이 혼내고 그런 건 아니지?”

“둘 다 가라.”

서인우가 둘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크리스마스 이벤트로 서로 말을 하네 안 하네 하더니 이제 주위 사람한테 공개적으로 사귀는 티를 내고 있다.

정말 남녀 사이란 알다가도 모를 신비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나저나 둘이 저렇게 좋은데, 다음 달이면 헤어져야 해서...이 일을 어쩌나?

“사장님, 그러면 방금 얘기한 직원 면접은 월요일 오픈 전으로 잡아 놓겠습니다.”

“그래, 정 매니저가 수고 좀 해줘요.”

“저, 사장님.”

옆에서 듣고 있던 강진수가 쭈뼛쭈뼛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눈치를 실실 봤다.

“왜?”

“여기 홀 직원은 다 여자분으로 채용하실 계획이시죠? 그리고, 또 하나 주방 직원은 몇 명이나 더 충원하실 건가요?”

“홀 직원은 성별은 전혀 상관없이 정 매니저처럼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충분하지. 주방 직원은 여기는 세 명, 베트남 파견 직원 한 명 우선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서인우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이번에는 정다운의 질문이 이어졌다.

“베트남에 같이 갈 홀 매니저는 당연히 여자겠죠? 아무래도 경력도 많고 나이도 좀 있는 사람이 좋겠죠?”

이게 뭐 하자는 시츄에이션?

이쯤 되니 둘의 속셈이 빤히 보였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거부할 수 없는 진리에 불안해진 두 청춘.

그 심리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서인우가 도와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저 그들의 청춘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기회를 주려는 것, 그게 서인우가 하려는 최선이었다.

다행히 정다운은 이제 혼자서도 가게를 맡아 이끌어갈 수 있을 만큼 성장했고, 예전의 까칠하던 모습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원래 타고난 감각이 뛰어났던 강진수는 서인우가 특별히 그의 수제자로 키워가는 중이었다.

그 때문에 막 들어와 한참 동안 남들보다 몇 배 고생했지만, 지금은 서인우의 맛을 거의 완벽하게 흉내 내고 있었다.

“그럼 저희는 사라져 드리겠습니다.”

“강진수, 주방 정리는 다 끝냈겠지?”

“그럼요, 내일 쉬니까 더 완벽하게 끝내놨습니다.”

“내일 휴무던가?”

“네. 할머니랑 데이트 할 겁니다.”

할머니라는 말에 서인우가 잠시 멈칫하더니 강진수를 향해 다른 때보다 더 환한 미소를 보냈다.

“맛있는 거 많이 준비해 가라. 좋은 시간 많이 보내고.”

하나씩 빠져나간 주방에 또다시 서인우와 중식도만이 남았다.

“사부!”

-이제 말해봐. 베트남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거기서 우리 인테리어 해주는 업자가 내가 베트남어를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하고 자잿값을 속이고 있더라.”

-뭐? 이런 십장생! 너 베트남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놓고 한마디도 못 알아들었어?

“아니, 어차피 내가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하고 맘껏 지껄이더라고. 끝까지 모르는 척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발뺌 못 하게 해야지.”

-아! 내가 같이 갔어야 했는데. 그놈 자고 있을 때 내가 깨워 허공에서 한 바퀴만 돌아 보여도 기절을 했을 텐데 말이야.

서인우가 중식도를 빤히 쳐다봤다.

-그 아련한 눈빛은 뭐냐?

“안 그래도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도 같은 생각 했어. 이제 어디를 가더라도 사부와 함께 가야겠다고.”

-그래서 옛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다니까. 이렇게 꼭 없어져 봐야 소중함을 알아.

“맞아. 난 사부가 너무 소중해. 이제 항상 함께하자.”

-우리가 앞날을 어찌 장담해? 다 운명에 맡기는 거지. 지금 너와 내가 함께 있는 게 운명인 것처럼.

운명!

앞으로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펼쳐질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지 서인우는 그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 서인우는 계속 중식도가 말한 운명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항상 바쁘고 정신없는 [서풍]이지만, 유독 바쁜 주말이다.

착착착. 샥샥샥.

채소와 해물 등을 손질하는 소리.

쏴아아.

웍과 도마 등을 씻는 소리.

활기찬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서인우는 그 소리를 들으며 시작하는 하루가 좋았다.

“오늘도 신나게 하루를 시작해 봅시다.”

“네. 파이팅!”

직원들의 외침을 들은 듯 핸드폰이 파이팅 넘치게 울어댔다.

유현주였다.

“안녕하세요. 유 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네, 좋은 아침이에요. 사실 저는 아니지만요.

“네?”

-어제 서인우 사장님 얘기 듣고 화가 나서 잠을 잘 수가 없겠더라고요. 어떻게 혼쭐을 내줘야 할지 답답하기도 하고.

“이런. 괜한 얘기에 스트레스만 쌓이게 해드렸네요.”

유현주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제가 그래서 베트남 파견 직원 리스트를 찾아서 밤새 살펴봤는데, 이런 일에 딱인 사람이 있어서 바로 연락드렸어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구본석 부장님 잘 아시죠?

“그럼요. 잘 알고 저한테는 정말 고마운 분이죠.”

-해외 영업 팀에 제 2의 구본석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어요. 이름은 이영찬이고요. 뭐든 소신이 있게 행동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제2의 구본석이라고 하시니까 바로 이해가 되는데요?”

[서풍]의 입점 심사 때, 아니 그 전부터 워낙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는 구본석 부장.

그런 성격의 사람이라면 믿고 일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가 통화 마치는 대로 이영찬씨 핸드폰 번호와 메일 주소 보내드릴게요. 간단한 내용은 제가 오늘 안에 전달해 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매번 큰 힘이 됩니다.”

-정말요? 앗싸!

유현주 성격은 외탁이 확실한 듯했다.

할아버지의 열정을 닮은 모습이 주위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1번 테이블에 탕수육 하나, 삼선볶음밥, 백 짬뽕 하나요.”

“3번 테이블 칠리 새우 하나, 서풍 만두 하나, 짬뽕 둘이요.”

주문이 쉴 새 없이 들어왔다.

이제 완전히 자리 잡은 주방 직원들이 각자 자신이 할 일을 착착 맡아서 하기 시작했다.

“오상준 씨, 탕수육 준비해 주세요.”

“네, 지금 바로 고기 튀기겠습니다.”

“소스도 자신 있죠?”

서인우의 질문에 오상준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 모두 귀를 의심했다.

“네? 저 혼자 탕수육을 만들라는 말씀이신가요?”

“우리 가게 처음 온 날 기억하시죠? 언제든지 혼자 요리를 할 수 있는 분들입니다. 보조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죠?”

“그러기는 했지만.”

“나와 함께 만들 겁니다.”

오상준의 눈빛이 오묘하게 빛났다.

그런 그를 쳐다보는 김현수의 눈빛 또한 알 수 없이 일렁였다.

“김현수 씨는 칠리 새우 준비해 주세요.”

“제, 제가요?”

“내가 없을 때 [서풍]의 맛을 똑같이 낼 수 있을 사람들만 채용했습니다. 재료 준비만을 위해 여러분을 채용한 게 아닙니다.”

“물론 그렇기는 한데….”

“자신 없습니까?”

“지금 바로 하겠습니다.”

서인우 역시 이들에게 요리를 다 맡길 생각은 없었다.

그들 옆에 밀착해 일대일로 비법을 전수해 줄 생각이었다.

베트남 진출이 점점 다가오자 지금 같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게 느껴졌다.

오상준이 준비해놓은 돼지고기에 튀김 반죽을 묻혀 끓는 기름에 넣었다.

“이렇게 위로 올라오면 바로 건져서 툭툭 쳐주세요.”

오상준이 노르스름하게 튀겨진 고기를 툭툭 치는 모습을 보고 있던 서인우가 김현수 앞으로 다가가며 한 마디 더했다.

“그렇게 세 번 튀겨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차민정과 안상훈은 나머지 주문 들어온 요리에 몰두했다.

“칠리 새우 소스는 너무 맵거나 달지 않게 하는 게 포인트입니다. 어린아이부터 어른들까지 다 좋아하는 메뉴니까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마치 훈련소에 막 입소한 훈련병같이 잔뜩 긴장한 김현수를 보며 서인우가 가볍게 어깨를 두드렸다.

“조금 있다가 더 바쁜 시간 되면 이렇게 자세히 봐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제대로 배워 두세요.”

“네.”

세 번 튀겨 바삭해진 돼지고기를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소스에 막 부으려는 오상준에게 서인우가 다급하게 말했다.

“재빨리 볶아 이 바삭함을 잘 살리는 게 우리 [서풍] 탕수육의 특징입니다. 지금 이 속도를 잘 기억하세요.”

오상준은 서인우와 함께 하긴 했지만, [서풍]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완성한 요리를 보며 감격한 듯 보였다.

과학 영재라는 소리를 들었던 사람이 고작 탕수육 하나 완성해놓고 저런 표정을 짓다니.

-저 과학돌이는 지금 인우 네가 하는 요리 과정이 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거 같더라.

‘맞아. 내가 무엇을 할지 이미 다 알고 있더라고.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다들 최고의 실력자들이야.’

-저 둘은 오늘 잠 못자겄다.

‘여기 있는 동안 최대한 많은 걸 가르쳐 줄 생각이야. 저들이 각자 독립해서 나갈 수 있을 때까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서인우가 완성된 요리를 접시에 담는 것까지 확인한 후 고개를 끄덕이자 오상준과 김현수가 동시에 벨을 눌렀다.

‘뭐가 궁금한데?’

-너한테 요리비법 다 전수받고 그만두면 넌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뭐가 걱정이야? 그러면 또 새로운 사람 채용해서 같이 일하면 좋지.’

-이 답답. 그럼 너만 겁나 바쁘고 피곤하잖아? 지금 저 안셰프처럼 완벽하게 요리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너도 이제 겨우 여유가 생겼는데.

‘난 사부만 있으면 돼. 난 말이야, 내 직원들이 하루 빨리 성장해서 독립하는 게 목표야.’

중식도의 말이 바로 건너오지 않았다.

‘왜 갑자기 조용해?’

-너 잘났다.

“푸흡!”

이런.

서인우 입에서 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주위 직원들이 다행히 바빠서 잘 못 들은 것 같았다.

본격적인 저녁 식사 시간이 되면서 주방에서는 주문지를 외치는 소리 외에 어떤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들 재료 준비해서 요리하고, 또 요리한 웍을 솔로 박박 씻느라 정신없었다.

“12번 테이블에 서풍 만두 추가요. 서풍 만두 인기는 여전한데, 요즘에는 손님들이 먹으면서 [만가복] 만두랑 비교를 많이 하네요.”

홀 직원 박진주도 언젠가 정다운이 했던 말과 같은 얘기를 했다.

예리하고 냉정한 평가로 유명한 박인식의 호평이 있었던 [만가복]의 만두다.

입맛은 매우 주관적이지만, 대부분의 입맛을 만족시켰다는 건 그만큼 맛이 있다는 얘기였다.

서인우는 그런 얘기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누구보다 더 잘 만들기 위해 시작한 요리가 아니다.

다른 가게보다 더 인기를 끌기 위해서 시작한 요리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서풍]의 맛을, 아빠의 명성을 이어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가장 맛있는 요리를 하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찾는 [서풍]의 맛을 변치 않게 선보이는 것 그거면 됩니다.”

“그럼요, 어차피 [서풍]의 맛이 가장 맛있는 맛이니까요.”

주방 안이 아닌 입구 쪽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직원들의 귀에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바쁜 와중에 일제히 주방 입구 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입구로 뛰어 들어오며 강진수가 서인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강진수! 오늘 휴무 아닌가? 쉬는 날 여기는 뭐 하러 왔어?”

“사장님!”

키 크고 어깨 딱 벌어진 이십 대 남자가 갑자기 달려와 서인우를 왈칵 껴안았다.

아직 주문지가 밀려 있는 상황에 궁금해 죽겠는데도 말 한마디 못 하고 여기저기서 직원들이 눈동자만 데구루루 굴리고 있었다.

“나 바빠. 그리고, 징그러운데 좀 떨어지지.”

“사장님!”

억지로 떼어낸 강진수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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