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162화 (162/200)

제162화.

박은식의 이어지는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새해가 시작되는 1월 1일에 오픈한 H 백화점 [만가복]은 차은석 셰프가 오픈 기념으로 내세운 새로운 메뉴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육즙이 가득 차 있는 꽃 모양 같기도 하고 복주머니 모양 같기도 한 콴탕빠오.

그 맛을 보니 입소문이 빨리 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숟가락이나 그릇 위에 올려 살짝 터트리면 진한 육즙이 흘러내린다.

그 국물을 쭉 들이켜고 만두를 한입에 넣으면 고기와 채소가 마치 하나가 된 듯 부드럽게 어우러진 맛을 느낄 수 있다.

[서풍]에 [서풍 만두]가 있다면, [만가복]에는 콴탕빠오가 있었다.

만두에 푹 빠져있을 때 나온 탕수육 또한 신선한 고기에서 느껴지는 육즙과 바삭함이 일품이었다.

재료를 아끼지 않은 짬뽕은 얼큰하며 시원했다.

빨간 국물로 식사를 마무리하며 차은석 셰프의 [만가복]이 필자의 중식 리스트에 새로이 이름을 올렸다.

다른 메뉴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차은석이 기사를 다 볼 때까지 꾹 참고 기다리고 있던 이다인이 슬쩍 눈치를 봤다.

“점장님, 이 사람 정말 아무런 편견 없이 글 쓰는 사람 맞는 것 같아요. 지난번에 마포점 오 매니저님이랑 엄청나게 욕했는데….”

“네, 오로지 혀끝에서 느껴지는 맛으로만 평가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이제라도 차 셰프님의 요리를 정확히 평가해줘서 정말 기분 좋아요.”

“그럴수록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책임감도 생깁니다.”

“저도 열심히 할게요. 내일부터 더 바빠질 테니까요.”

홀 정리를 위해 이다인이 주방을 나가자 김도영을 비롯한 다른 주방 직원들이 일제히 몰려와 기사에 관해 한마디씩 늘어놓았다.

“오픈 기념으로 내건 콴탕빠오를 아무래도 메뉴에 올려야 할 것 같은데요?”

“오늘 나온 기사 영향이 좀 있겠죠? 내일은 더 바빠지겠네요.”

“지난번 기사 보고 열받았었는데, 그래도 아주 형편없는 사람은 아니었나 봅니다.”

아무 말 없이 직원들의 얘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차은석이 그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오늘 기사를 올린 박인식이라는 사람은 뛰어난 미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조금만 맛이 달라져도 알아낸다는 거죠.”

“지금 이 맛에서 변하지 말라는 말씀이신 거죠?”

“네, 항상 초심을 잃지 말도록 합시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콴탕빠오는 계속 메뉴에 올리는 거겠죠?”

차은석이 김도영을 쳐다봤다.

“지금처럼 콴탕빠오를 전담해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 싶습니다. 눈 감고도 뚝딱 만들어 낼 수 있을 때까지 해볼랍니다.”

“알겠습니다. 직원 한 명을 더 채용해서 일에 지장 주지 않도록 진행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큰 소리로 서로 수고 했다는 인사를 하며 각자 정리를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차은석은 뭔지 모를 감정이 훅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내 이름의 가게를 내게 되면 이런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는데….’

비록 자신의 이름을 걸지는 못했지만, 그의 말을 따르며 열심히 일해 주는 직원들이 고맙고 든든했다.

[서풍]의 메뉴를 따라 했다는 치욕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했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서인우와 같은 위치가 된 것 같아 흥분되고 가슴 뛰는 밤이었다.

* * *

잠시 카페에 들어간 서인우는 인테리어 업자 미스터 찐의 영수증 사진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그가 새로운 견적서를 보내오면 한눈에 이중장부라는 걸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인테리어는 반도 진행이 안 된 상태에다가 지금 업체를 바꾼다면 서인우에게도 손해가 크다.

우선은 그가 하는 걸 지켜보기로 마음먹은 서인우는 끝까지 베트남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바보로 남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꼼짝 못 하게 할 증거들을 모아놓아야 했다.

지금 이곳에서 아는 사람이라고는 어제 만난 이승환이 전부다.

그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고 의논하기에는 그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뭔가 확실한 증거를 더 만들어 놔야 하는데….’

머릿속이 복잡했다.

간신히 알아듣는 낯선 언어와 아는 사람 전혀 없는 이곳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생각했다.

다시 핸드폰에 저장된 영수증 사진을 꼼꼼하게 보던 서인우가 영수증 위에 적혀있는 상호를 유심히 쳐다봤다.

뭐라고 읽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 영수증을 보낸 곳의 상호인 듯 보였다.

하나는 몰딩 및 목재를 판매하는 곳인 듯했고, 또 하나는 서인우가 요구한 조명을 구매한 곳으로 보였다.

그것 또한 몇몇 단어로 미루어 짐작해 볼 뿐 정확한 건 아니었다.

현재로는 영수증에 적힌 상호로 그 가게를 찾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진한 커피를 마시며 서인우는 다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늘 오후에 자재가 들어온다고 했으니까 다시 백화점으로 들어가서 자재를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리고는 밤을 새우더라도 그 가게를 찾아 가격 확인을 하고 그걸 서류로 남겨놔야 나중에 증거로 내밀 수 있을 거였다.

어느 정도 계획이 세워진 서인우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현지 시각 3시 20분이었다.

새벽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가려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커피를 마셔버리고 다시 MS 백화점으로 향했다.

[서풍] 인테리어를 하고 있는 5층에 도착했을 때는 안쪽에 배달된 목재가 가득 쌓여있었다.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았다.

미스터 찐은 지금 막 도착했는지 조명을 확인하고 있었다.

다시 등장한 서인우를 알아본 미스터 찐이 실실 웃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마침 자재가 도착했는데, 한 번 보세요.”

서인우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것처럼 다른 곳만 쳐다보고 멀뚱멀뚱 서 있자, 미스터 찐이 서인우의 팔을 슬쩍 잡아끌었다.

“이거 인테리어 . 조명 . 라이트 . 오케이?”

서인우가 알아들을 만한 영어 단어를 하나씩 큰 소리로 말하며 자재들을 일일이 손으로 가리켰다.

“아! 오케이.”

서인우 또한 간단하게 답한 뒤 짧은 단어를 하나 더 붙여 물었다.

“포토. 오케이?”

이건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지금 베트남어를 한마디라도 한다면 의심을 받을 수도 있었다.

“이 바보가 뭐라는 거야? 사진을 찍고 싶다고?”

미스터 찐이 베트남어로 작게 웅얼거렸다.

그리고는 짧게 대답했다.

“포토, 오케이. 얼마든지 찍어라. 바보 같은 놈.”

서인우가 다시 한번 핸드폰으로 사진 찍는 시늉을 하자 미스터 찐이 고개를 끄덕였다.

몰딩에 쓰일 목재들과 조명의 사진을 꼼꼼하게 찍은 서인우는 손을 내밀어 미스터 찐에게 악수를 청했다.

간단한 영어로 이제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고 했다.

미스터 찐이 지금까지 중 가장 밝은 얼굴을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내가 있으면 걸리적거리겠지. 우선 너는 최선을 다해 내 가게를 완성해놔. 정산은 그 뒤에 하자고.’

뒤돌아서며 피식 한번 웃고는 바로 백화점을 빠져나와 택시를 잡았다.

“이곳에 가려고 합니다.”

서인우가 핸드폰에 찍힌 영수증을 기사에게 보여주자 잠시 멈춰 영수증에 적힌 주소를 확인하더니 바로 출발했다.

한참을 가던 택시가 멈췄다.

차에서 내린 기사가 친절하게 영수증에 적힌 상호와 같은 곳임을 확인까지 시켜주었다.

“안녕하세요.”

외모나 말투로 보아 외국인임을 바로 알아챈 가게 주인이 간단한 영어로 물었다.

“뭐가 필요하세요?”

서인우는 가게를 쭉 둘러보며 조금 전 백화점에서 본 자재들을 떠올렸다.

분명 같은 게 어딘가에 있을 텐데….

한참을 둘러보다 보니 오른쪽 벽 쪽에 전시된 것들이 보였다.

서인우는 우선 그 옆에 있는 다른 모양의 목재를 가리켰다.

그리고는 그 아래 적혀있는 단가를 확인했다.

“이 가격인가요?”

“예스.”

“여기서 할인은….?”

“노우! 이게 도매가라 더 싸게는 안 돼.”

서인우는 떠듬떠듬 묻고 대충 알아들으며 짧은 대화를 이어갔다.

세 가지 목재를 마음에 드는 척하며 단가가 나오게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내일 다시 오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주인이 뭐라고 계속 말을 했지만,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급하게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온 서인우는 다시 큰길가로 향했다.

시간은 이미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진 서인우는 곧장 택시를 타고 또 다른 영수증에 적힌 상호를 보여주었다.

택시 기사가 여기서 멀지 않다고 말하며 바로 운전을 시작했다.

정말 10분도 가지 않아 택시가 멈췄다.

골목 전체에 조명기구들이 가득했다.

서인우는 택시 기사에게 다시 영수증을 보이며 정확한 위치를 확인했다.

차에서 내려 곧장 가게로 들어간 서인우는 어렵지 않게 그가 찾는 조명 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홍등 모양을 하고 있어서 특이하기도 했고, 오늘 백화점에 물건을 보내면서 잘 보이는 곳에 빼놓은 것 같기도 했다.

운이 좋았다.

등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서인우는 조금 전 목재 가게에서처럼 가격표를 보고 물었다.

“이 가격인가요?”

“예스.”

“좀 싸게 해주세요.”

“안 돼요. 이게 할인한 가격이에요.”

서인우는 한국에서 새벽시장 돌던 노하우를 한껏 발휘했다.

“너무 비싸다. 많이 필요한데….”

한마디 던지고는 가게를 빠져나가려 하자 주인이 급하게 그를 불렀다.

“얼마나 살 건데?”

“스무 개? 아니 서른 개?”

주인의 눈빛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러면 20프로 디스카운트.”

분명 미스터 찐의 영수증에서 본 가격은 더 싸게 적혀있었다.

‘좋았어. 이 가격으로만 해도 얼마나 차이 나게 영수증을 만들어 보낼지 비교할 수 있을 거야.’

서인우는 주인에게 손짓·발짓해가며 그 조명을 30개 사면 얼마인지, 그리고 언제까지 가능한지 영수증에 적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외국인이 와서 조명을 대량 구매하겠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주인이 친절하게 단가와 할인액, 총 판매액을 적어 서인우에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내일 직원하고 같이 오겠습니다.”

회화책에서 외워둔 문장들은 이미 다 나온 것 같았다.

그 뒤로는 더는 길게 대화가 불가능했다.

서인우는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하고 내일 온다는 말도 한 번 더 해서 주인을 안심시켰다.

가게 밖까지 나와서 손을 흔드는 주인을 보니 마음이 조금 안 좋기는 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핸드폰에 저장해 놓은 사진들과 방금 받은 영수증을 자세히 살펴봤다.

우선 현재 서인우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듯싶었다.

‘이제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자.’

이번에 급하게 베트남행을 선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현지 식자재를 직접 확인하는 거였다.

그 목적은 충분히 이뤘지만, 생각지 못한 인테리어 업자의 속임수를 알게 된 이상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이후의 일들은 [서풍]을 함께 고민하며 키워가는 직원들과 함께라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을 거였다.

호텔로 돌아온 서인우는 간단히 씻고 저녁을 해결했다.

가져온 짐도 별로 없어 챙길 것도 거의 없었다.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떠오르자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서풍]을 비운 것도 처음이지만, 중식도를 알게 된 이후 처음으로 중식도와 떨어진 이틀이었다.

‘사부와 함께였으면 좋았을걸….’

서인우는 이제 어디를 가더라도 반드시 중식도와 함께 할 거라는 다짐을 하며 곧장 출근을 위해 잠시 잠을 청했다.

피곤해서였는지 마치 자기 집인 것처럼 깊은 잠을 잤다.

꿈도 꾸지 않고 푹 자고 일어나자 도착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공항 밖으로 나온 서인우는 차가운 아침 공기를 맡으며 백화점으로 향했다.

비행기 타면서 꺼둔 핸드폰을 켜고 택시 안에서 이것저것 무심하게 보던 그의 눈이 순간 진지하게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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