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159화 (159/200)

제159화.

중국 요리 협회 서울 지부장이라는 명함을 건넸던 남성재가 반갑다는 듯이 손을 번쩍 들어 보였다.

“오늘은 마감 시간 맞춰서 왔습니다.”

“네, 이쪽으로 잠시 앉으시죠.”

서인우가 이미 깨끗하게 정리된 창가 쪽 테이블로 그를 안내했다.

“지난번에 드린 명함 설마 버리시진 않았죠?”

“그럼요,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협회에서는 한국 사람인 서인우 셰프가 중식도를 다루는 모습에 정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특히 저희 회장님이 죽기 전에 꼭 눈앞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까지 하셨습니다.”

“회장님이요?”

“네, 올해 한국 나이로 일흔여덟입니다.”

서인우는 회장이라는 직함 때문인지 오늘 만나서인지 순간 최만수가 떠올랐다.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말로만은 안 됩니다.”

“네?”

“사실 제가 오늘 서인우 셰프를 다시 찾은 이유는 그 뛰어난 솜씨를 중국에서 꼭 접해보고 싶다는 협회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바로 이해가 되지 않은 서인우가 남성재의 눈을 바라보며 정확히 물었다.

“중식의 본고장인 중국으로 진출을 해보시자는 말씀입니다. 물론 최고의 조건으로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저희라면 중국 요식 협회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저는 회장님과 임원진들 뜻을 전달하는 사람일 뿐이니까요.”

남성재가 두 번이나 그를 찾아온 목적이 이제야 이해가 된 서인우는 뜻밖의 제안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보잘것없는 솜씨를 높게 인정해주시고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솔직히 그 방송을 보기 전에는 저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젊은데 실력이 있어봤자라고 섣불리 판단했으니까요. 이거 너무 솔직했나요?”

“아닙니다.”

남성재가 웃으며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궁금해서 그 영상을 찾아보고 나서는 저까지 서인우 씨 팬이 됐습니다. 정말 최고였어요.”

“쑥스럽습니다. 그런데요….”

서인우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저는 우리 [서풍]을 찾아주시는 손님들께 항상 최고의 맛, 그리고 절대 변하지 않는 맛을 선보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네, 제가 조사한 바로는 많은 손님이 그 부분에 더 큰 감동을 얻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중국 진출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네? 그 최고의 맛을 중국에 있는 교민들과 많은 중국 사람들에게 선보여 줄 수는 있는 좋은 기회가 될텐데요?”

서인우가 작은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시겠지만, 요리라는게 같은 재료 같은 레시피로 만든다해도 그 요리를 만드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나 기본 스킬에 따라 맛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래서 서인우 셰프를 직접 찾아온 거 아닙니까?”

“아쉽지만, 저희는 다음 달에 베트남 진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네? 베트남이요?”

“그렇습니다.”

남성재의 얼굴에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게 사실입니까? 전혀 몰랐었는데요? [서풍]의 해외 진출 관련된 어떤 뉴스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 회사가 개인적으로 진행하는 일이 아니라서요, 지금처럼 여기 MS 백화점 베트남 점에 입점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게 다음 달이라고요?”

“네, 정확히 2월 15일로 오픈일까지 정해졌습니다.”

남성재가 점점 더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 요리를 좋게 봐주시고 그런 제안까지 해주셨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사실 우리 협회에서 서인우 씨를 모시고자 하는 이유는 단지 요리실력만은 아닙니다.”

“네? 그러면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지금 중국은 예전의 유교 사상, 특히 부모나 어른 공경 같은 그런 모습은 점점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런 상황에 서인우 씨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뜻을 이어가려 노력하는 그 효심에 더 감동하였습니다.”

말을 하며 남성재가 서인우의 눈을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중식의 나라에서 서인우 셰프의 실력을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 쉬운 건 아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뭐 그들이 원조다 그런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겠죠.”

“네, 한국으로 넘어온 분들을 통해 많이 변형되긴 했지만, 중국에서 넘어온 음식들이 워낙 많으니까요.”

“그렇죠. 그런데도 서인우 셰프는 요리에 대한 열정을 너무나도 인상 깊게 보여줬어요. 한마디로 다들 반했다니까요.”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남성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을 내밀었다.

“알겠습니다. 서인우 셰프의 상황과 뜻을 잘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절대 안된다고만 생각하시지 말고 한 번 긍정적으로 검토해봐 주세요.”

가볍게 악수를 하고 남성재가 아쉬운 듯 자리를 떠났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카운터 쪽에 서 있던 정다운이 쪼로록 달려왔다.

“사장님,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아니에요. 중국 요리 협회에서 나온 사람이라는데, 우리 [서풍]의 중국 진출을 제안해 왔어요.”

“네? 베트남에 이어서 중국까지 진출하는 거예요?”

“그건 무리죠. 베트남도 어렵게 결정한 거라서….”

“그러면….”

“네,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정말요?”

정다운의 얼굴에 아쉬움이 한가득이었다.

“사장님 실력을 널리 알릴 좋은 기회여서 저는 조금 아쉽기는 한데, 사장님이 그렇게 결정하신 거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죠. 저는 무조건 믿으니까요.”

“항상 힘이 돼줘서 고마워요.”

“제가 항상 감사하죠.”

주방 정리를 마친 직원들이 퇴근 준비를 하고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도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다들 푹 쉬고 내일 보도록 합시다.”

우르르 가게를 빠져나가고 나자 한순간에 적막이 밀려왔다.

“진짜 불 꺼진 밤 같네. 이렇게 갑자기 고요해지냐?”

-내가 그랬지. 이 시간이 좋으면서도 쓸쓸하다고.

“전에 말한 명함 준 사람 오늘 또 찾아왔었어.”

중식도가 서인우의 앞에 둥둥 떠 있었다.

-그래? 그럼 찾아온 이유가 뭐래?

“중국 진출을 제안하던데?”

-이야, 드디어 우리가 중식도의 나라에서 본때를 보여 줄 기회라는 거냐?

“베트남 진출만도 버거워.”

-이게 무슨 만두 속 터지는 소리야? 해보지도 않고 뭐가 버거워?

“그렇게 욕심내다가 초심을 잃게 된다고.”

중식도가 빙그르르 한 바퀴 돌더니 뚝 멈춰 섰다.

-이건 욕심을 내는 게 아니야. 우리를 찾는 많은 굶주린 영혼들에게 환희를 선사하는 거지.

“장난하지 말고.”

-누가 장난이래? 나 지금 진지하거든! 분명 그들이 너한테 뭔가 특별한 점을 찾았기 때문에 그런 제안을 하는 거 아니겠냐?

“내가 아빠의 뜻을 이어가는 모습, 특히 아빠의 요리가 줬던 감동을 그대로 전해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높이 산 것 같아.”

-그치, 그 감동 스토리를 바탕에 깔고 네 뛰어난 실력을 딱 선보이면 그냥 게임 끝이지.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서풍]의 맛을 선보이고 인정받고 싶지만, 한 명이라도 달라진 맛 때문에 불만이 생기면 그건 내가 처음부터 바랐던 게 아니야.”

한참 아무런 반응이 없던 중식도가 작게 한 마디 내뱉었다.

-너 잘났다!

“뭐?”

-들렸냐?

언젠가부터 항상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는 중식도와 함께였다.

문득 중식도가 사라지는 상황이 일어난다면…. 하는 불안함이 서인우의 가슴을 철렁 가라앉게 했다.

“사부!”

-왜? 집에 안 가냐?

“우리 베트남에서도 함께 할 수 있는 거지?”

-내가 말했지? 나 외국어 약하다고!

“나는 말이야. 사부와 함께면 어디든 갈 수 있어.”

-인우야. 나는 말이야 지금이라도 제이의 마이크 속으로 깃들 수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내가 못 살아.”

-키키키, 키키키.

“그 웃음소리 좀 어떻게 해봐!”

-내 맘이거든! 키키키.

조용한 주방에 중식도의 해괴한 웃음소리만 울리고 있었다.

물론 서인우에게만 들리지만.

* * *

오픈 일주일째를 맞고 있는 H 백화점 [만가복].

기념으로 내세운 콴탕빠오가 인기를 끌면서 조금씩 입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워낙 인지도가 있는 중식당인데다가 백화점에 입점하면서 유독 신경을 쓴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한몫하는 듯했다.

“점장님, 3번 테이블 손님이 왜 치즈 치킨밥이 메뉴에 없냐고 항의하셔서 매니저님이 잘 설명해주셨는데도 계속 기사에 나온 내용을 인정하는 거냐고 ….”

홀 직원 이다인이 살짝 흥분한 듯한 얼굴로 다가와 말끝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우선 지금 하는 요리 완성하고 나면 내가 나가서 해결할게요. 신경쓰지 말고 일 봐요.”

“다른 사람들까지 들리게 큰소리로 물어보니까 신경이 쓰여서요.”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매니저님이 메뉴판을 보이며 음식 설명을 자세히 해주고 있어요. ”

이다인의 말이 끝나는 그 순간에 3번 테이블 주문이 들어왔다.

“3번 테이블에 콴탕빠오 하나, 짬뽕하나 그리고 탕수육 소자요.”

“다인씨가 말한 3번 테이블 손님이 몇 분이신가요?”

“나이 좀 있어 보이는 아저씨 혼자 오셨는데요? 대식가인가 보네요.”

차은석이 잠시 고개를 가로젓다 바로 이전 주문 요리인 팔보채를 만들었다.

완성된 요리를 접시에 담자 이다인이 바로 들고 홀로 나갔다.

김도영이 잘 쪄진 콴탕빠오를 접시에 먹음직스럽게 담았다.

불룩하던 만두 속이 푹 가라앉으면서 얇은 피 안에 출렁거리는 육즙이 느껴졌다.

“이거 내가 가지고 나갈 테니까 탕수육 완성해주세요.”

셰프복을 입은 차은석이 직접 홀로 나오자 꽉 찬 홀에 앉아있던 손님들이 힐끗거리며 쳐다봤다.

“여기도 [서풍]처럼 무슨 퍼포먼스 같은 게 있나?”

“아닐걸. 저거 우리 먹은 만두랑 같은 거잖아?”

“그러네. 무슨 특별한 손님이라도 있나 보네. 셰프가 직접 가지고 나온 거 보니까.”

웅성거리는 소리를 뚫고 3번 테이블로 다가갔다.

“손님, 주문하신 콴탕빠오 나왔습니다.”

3번 테이블에 앉아 차은석을 쳐다보는 남자는 다름 아닌 맛 칼럼니스트 박인식이었다.

실제 얼굴을 본 적 없는 차은석이 그를 알아보지 못한 채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만가복] H 백화점 지점 점장을 맡은 차은석 셰프입니다. 치즈 치킨밥에 관해 질문을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깍듯하게 인사를 하는 차은석을 한참 쳐다보던 박인식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같이 인사했다.

“박인식이요. 뭐 하는 사람인지는 알 것 같은데…. 아닌가요?”

박인식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차은석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내가 쓴 기사 때문에 나한테 감정이 안 좋을 거라는 건 아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직접 나온 셰프한테 내가 누군지 숨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기사가 유쾌한 내용은 아니었죠. 하지만, 평론가님한테 감정이 있지는 않습니다. 과정이 어떻게 됐든 사실이니까요.”

예상외로 담담하게 기사 내용을 인정하는 차은석을 보며 조금은 놀란 듯 박인식의 눈이 순간 크게 떠졌다.

“이렇게 직접 인정하니까 좀 당황스러운데요. 내가 누군지 밝히지 않았어도 같은 말을 하러 나온 것 같은데, 맞나요?”

“네, 손님이 치즈 치킨밥 기사 내용을 가지고 항의를 하신다고 전해 듣고 사실을 말씀드리러 나온 겁니다. 인정하고 용서받는 게 속은 더 편하니까요.”

박인식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기사가 나가고 한참 뒤에 그 메뉴는 차 셰프의 의도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 우여곡절을 다시 글로 담느니, 새로 시작된 H 백화점 [만가복]의 맛을 평가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그랬군요. 혼자 와서 여러 개의 메뉴를 시킨 대식가라는 말에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내가 둔했습니다.”

“나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박인식의 말을 급하게 자르며 차은석이 한마디 강하게 남겼다.

“그 어떤 것도 들어가지 않은 오로지 맛으로만 평가하는 사람, 그 소문대로 정확하고 냉정한 평가 바랍니다.”

“그거라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지. 그럼 난 가장 맛있는 온도를 놓칠 수 없어서 이만 앉아서 본업에 충실하겠습니다.”

차은석이 뒤돌아서기 무섭게 콴탕빠오를 숟가락 위에 올린 박인식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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