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H 백화점에서 본격적으로 처음 선보이는 [만가복]의 양장피였다.
사실 양장피는 많은 손님이 좋아하는 메뉴이지만, 주방에서는 그리 반가운 메뉴는 아니었다.
유독 재료가 많고 손이 많은 요리기 때문이었다.
차은석은 주문이 들어오자 칼판 직원이 준비해 준 채소들을 가지런히 담기 시작했다.
색의 조화를 생각하며 당근과 오이, 게살과 계란 지단, 데친 오징어와 새우를 나란히 접시에 담았다.
그 위에 겨자소스로 버무린 양장피를 올렸다.
그리고는 바로 웍에 기름을 두른 후 파와 다진 생강을 볶다가 채썬 고기와 양파, 당근, 오징어 등을 넣어 볶았다.
금세 주방에 맛있는 향이 퍼졌다.
준비해놓은 각종 버섯을 넣고 간장, 굴 소스로 간을 해 볶은 요리를 마지막으로 올린 후 겨자소스를 부어 양장피를 완성했다.
띵!
수없이 만들었던 양장피였지만, 차은석이 유독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백화점에 입점한 후 처음 선보이는 음식이라 또다른 백화점에 입점한 [서풍]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는 [서풍]처럼 셰프의 퍼포먼스 같은 건 없나 보네.”
“그건 [서풍]의 시그니처지.”
“그런 건가?”
“게다가 여긴 매번 소스가 이미 뿌려져서 나오잖아.”
“맞아, 그랬지. 워낙 [서풍]의 양장피가 강하게 기억에 남아있어서 말이야.”
양복을 차려입은 직장인으로 보이는 세 명의 남자가 방금 올라온 양장피를 보며 각자 한마디씩 하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앞접시에 양장피를 덜어 나머지 두 명에게 건넸다.
“그럼 한번 맛을 볼까? [만가복] 양장피는 오랜만이네.”
“하긴 요즘 MS 백화점에만 가면 항상 [서풍]에 가서 먹는 바람에 나도 [만가복]은 한참 못 갔던 것 같은데?”
여러 가지 색깔로 채썰어진 모든 채소와 해물을 한데 섞어 입에 넣은 세 명의 남자가 또 제각각 음식평을 펼치기 시작했다.
“아주 간이 딱 맞아서 맛있는데? 여기 셰프도 솜씨가 장난 아니야.”
“난 다 좋은데, 소스가 뿌려져서 나오는 게 좀 아쉽네. 겨자 맛을 조절하지 못해서 말이야.”
“맛있긴 한데, 그래도 양장피는 [서풍]을 못 따라가지.”
“우리 또 뭐 시켰지?”
“삼선 짜장하고 새우 볶음밥 시켰잖아? 뭐야? 벌써 치매야?”
남자 하나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양장피가 조금 오래 걸려서 순간 잊어버린 거지, 무슨 사십 대에 치매냐?”
“[서풍]의 그 서인우인가 하는 셰프가 워낙 빠른 거지, 양장피는 재료가 많아서 어디서든 좀 시간이 걸려.”
“맞아. 그 셰프는 요리할 때 중식도가 아주 춤을 추던데?”
마포점 홀 직원이었던 이다인은 순간순간 들려오는 남자들의 대화가 계속 신경이 쓰였다.
[만가복]을 찾아와 식사하면서 연신 [서풍]을 얘기하고 있는 모습이 이전 마포점에서 흔히 있던 일들이라 더 짜증이 났다.
“우리 점장님 요리 정말 맛있는데, 저 분들은 매너없이 계속 [서풍]하고 비교하네요.”
이다인이 옆에 서 있던 홀 매니저 정윤주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그런 그녀의 팔을 살짝 잡아 그들에게서 조금 멀리 끌고나온 정윤주가 미소를 보이고 있지만 강한 눈빛을 보이며 작게 말했다.
“이다인씨. 손님들이 하는 얘기 절대 옮기지 마세요. 여기서든 주방에서든요. 괜히 불편한 일이 생길 수도 있어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만가복]에는 처음이지만, 중식당 홀 매니저로 10년을 넘게 해온 베테랑 정윤주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띵!
주방에서 요리가 완성됐다는 벨소리가 들리자 눈치껏 달려간 이다인이 완성된 콴탕빠오가 먹음직스럽게 담긴 접시를 3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주문하신 오픈 기념 스페셜 메뉴인 콴탕빠오입니다.”
“우와, 진짜 예쁘다. 빨리 먹어보자.”
음식이 나오자 사진을 찍으며 반기던 젊은 여자가 만두를 막 가져갔을 때 이다인이 급하게 말을 더했다.
“손님, 보시다시피 이 만두는 안에 육즙이 가득 담겨있습니다.”
“그러네요. 만두가 물컹물컹 안에 물이 들어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숟가락 위에 만두를 올려 살짝 터트려 육즙을 조금 마신 다음 한 김 식은 후 드시면 됩니다. 입에 통째로 넣으면 뜨거운 국물에 자칫 델 수도 있어서요.”
“아! 정말요? 너무 신기하고 기대된다. 우리 지금 배운 대로 빨리 먹어보자.”
숟가락 위에 올린 만두를 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툭 터트리자 갈색 기름진 육즙이 자르르 흘러나왔다.
추릅.
육즙을 먼저 맛본 젊은 여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어머, 이거 너무 맛있어. 너희도 빨리 먹어봐.”
친구의 호들갑에 바로 만두를 입에 넣은 다른 여자도 맛있다며 엄지를 올려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테이블 여기저기에서 콴탕빠오 주문이 계속 들어왔다.
“당신이 세상에서 [서풍 만두]가 가장 맛있다고 했지? 우리도 한 번 시켜서 비교해보자.”
부부인 듯 보이는 젊은 커플이 콴탕빠오와 짬뽕 두 개를 주문했다.
“점장님, 오후에 만두 더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요?”
정재원 셰프가 요리를 마무리하고 있는 차은석에게 다가와 물었다.
“지금 얼마나 남아있죠?”
“방금 주문 들어온 거 제하면 10인분 정도 남아있습니다.”
“그럼 김도영 씨!”
“네, 점장님.”
“지금부터 주문 신경 쓰지 말고 콴탕빠오 만들어 주세요. 저녁 장사 생각해서 좀 더 만들어놔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만가복] 만두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만가복] 만두요?”
“네, 우리 가게 대표 만두니까요.”
주방 직원 모두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만가복] 만두 잘 부탁합니다.”
말하는 차은석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
새해가 되어서도 [서풍]을 찾는 손님은 여전히 많았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만가복]과 비교를 하기 시작했다.
[만가복]이 새로 생긴 식당도 아닌데, [서풍]에 이어 백화점에 입점해서 그런지 이상하리만큼 너나 할 것 없이 맛이며 분위기, 심지어 직원들 외모까지 비교하며 화제에 올랐다.
“사장님, 어제 오픈 한 H 백화점 [만가복]하고 우리 [서풍]하고 벌써 비교하는 손님들이 있어요.”
저녁 장사가 시작되기 전 잠시 한가한 시간에 주방에 들어온 정다운 매니저가 하는 말이었다.
“아무래도 요리경연대회 때부터 비교됐던 곳이니까 그렇겠지. 신경 쓰지 마세요.”
“신경 안 쓰려고 해도 자꾸 들려서요. 특히 이번에 오픈하면서 기념으로 내세운 만두가 인기 폭발인 것 같아요. 물론 우리 만두가 더 맛있지만 말이에요.”
손님들이 지나가는 말처럼 가끔 하는 [만가복] 얘기가 계속 신경이 쓰였는지 정다운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우리는 누구와 경쟁하며 일하는 거 아닙니다. 항상 [서풍]의 맛을 잊지 않으면 되는 거예요. 그러니, 신나게 일합시다!”
서인우가 말을 마치는 순간 새로운 주문이 들어왔다.
“12번 테이블에 백짬뽕 둘, 먹물 만두 하나, 양장피 하나요.”
김현수가 끓는 물에 만두를 넣기 시작하자, 안상훈이 백짬뽕을 만들었다.
양장피는 항상 그랬듯이 서인우가 맡았다.
-직원 1호 얘기 들으니까 갑자기 전투력이 막 샘솟네.
중식도가 작게 한마디 내뱉고는 오이와 당근 등 채소부터 가늘고 일정하게 채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모든 재료를 준비해놓은 서인우의 모습에 근처에 있던 강진수가 넋을 잃고 보고 있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이 많은 재료를 그렇게 빨리 만들어 내는 겁니까? 그 비결 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천기누설이라고 전해라.
“중식도 연습부터 다시 하고 싶다는 얘기야?”
“아무리 연습해도 이렇게는 안 되던데…. 저 사실 아직도 집에서 연습하거든요.”
-고놈 기특하네. 내 이 재주를 한 번 확 보여주고 싶은 충동이….
‘생각도 하지 마! 그러다 애 기절해.’
“그렇게 꾸준히 연습하다 보면 좋은 결과 있을 거다. 그럼 나는 지금 가장 맛있을 때 손님한테 가져다드려야 해서.”
12번 테이블로 향하던 서인우가 그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는 최만수와 장 비서를 발견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회장님, 장 비서님. 언제 오셨어요?”
“내가 말하지 말라 했네. 한창 바쁠 테니까.”
“오늘 제가 늦게라도 세배드리러 간다니까요. 이렇게 오시면 너무 죄송하죠.”
“전에도 말했지만, 한가한 늙은이가 움직이는 게 맞아. 운동도 할 겸.”
서인우는 어제 새해 인사 통화하며 가족들과의 시간에 방해 안 되게 오늘 퇴근 후 찾아뵙기로 약속했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등장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친 할아버지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세배드려야 하는데요.”
“됐고, 그거나 빨리 내려놓지. 배고픈데.”
반가운 마음에 손에 들고 있던 접시도 깜빡 잊은 서인우가 그제야 재빨리 소스를 부어 섞어 주었다.
“잠시 얘기할 시간이 되겠나?”
“네, 그럼요.”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겼군.”
의자를 빼 앉은 서인우가 양장피를 둘의 앞접시에 덜어 주었다,
“지금이 가장 맛있습니다.”
“그럼 한 젓가락만 먼저 먹고. 장비서 들지.”
역시 만족하는 표정과 함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베트남 진출은 준비 잘하고 있는 건가?”
“이제 곧 인테리어 들어갈 것 같습니다. 제가 시간을 못 내서 현지에 나가 있는 백화점 직원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실력 있는 사람들이니까 꼼꼼하게 잘 체크해 줄 거네.”
최만수가 아쉬운지 양장피를 한 젓가락 더 집어 입에 넣었다.
“이 감칠맛이 잠시도 참을 수가 없게 만드네. 역시 이 맛이면 세계 어디를 가도 성공할 거야. 내가 장담해.”
“감사합니다. 제 요리를 접하는 누구라도 맛있게 먹어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음식에 그 열정과 노력이 보인다니까. 이 자로 잰 듯한 정확한 크기와 깔끔하고 톡 쏘는 매력이 언제 먹어도 끝내주네. 안 그런가, 장비서?”
장 비서는 연신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금이 가장 맛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빨리 드세요.”
“우리도 가을에 베트남에 잠시 갔다 왔었네. 이것저것 알아볼 것도 있고 여행 삼아.”
“그러셨어요?”
“거기서 유명한 중식당에 가보고 더 확신했지. 자네가 그곳에 식당을 연다면 현지 교민뿐 아니라 베트남 사람들 입맛까지 확실히 잡겠다고 말이야.”
서인우는 항상 칭찬을 아끼지 않고 해주는 최만수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더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그래서 일부러 왔어. 얼굴도 한번 보고 싶었지만, 베트남 진출 혹시라도 겁먹지 말라고 말이야.”
“결정은 했지만 계속 신경 쓰였던 게 사실입니다. 오늘 회장님 말씀 듣고 이제는 쓸데없는 걱정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 그럼 바쁜데 들어가서 일 봐. 내 양장피 퍼지면 안 되니까.”
“네, 천천히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깊이 숙여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한 서인우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와 여느 때보다 더 열심히 음식을 만들었다.
끊이지 않고 들어오는 주문에 주방 직원들이 땀 닦을 시간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여름 같은 주방의 열기가 마감 시간이 되면서 점차 가라앉고 있었다.
“이제 정리합시다.”
백화점의 마감을 알리는 멘트가 울려 나오고 한창 사용한 웍을 정리하고 있는데, 정다운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사장님, 누가 찾아오셨는데요?”
“네? 누구요?”
“며칠 전에 봤던 사람이라고 하면 아실 거라 하셨어요.”
남은 직원들에게 주방 마무리를 부탁하고 나간 서인우의 앞에 며칠 전 명함을 건넸던 그 남자가 웃으며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