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157화 (157/200)

제157화.

유현주와 짧은 미팅을 끝내고 오픈 시간이 다 되어가자 마음이 급해진 서인우가 빠른 걸음으로 식당으로 막 들어서려 할 때였다.

“서인우 셰프님 맞으시죠?”

처음 보는 얼굴의 남자가 그를 향해 다가와 물었다.

“네, 그런데요? 무슨 일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우선 제 명함부터 드리겠습니다.”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안주머니에서 명함 지갑을 꺼내 명함을 한 장 건넸다.

[중국 요리 협회 ( China Cuisine Association) 서울 지부장. 남성재.]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중국에서 가장 큰 요리협회에서 서인우 씨를 만나보고 싶어 해서 찾아왔습니다.”

“저를요? 중국에서 저를 어떻게 알고….”

“[중화요리 최고의 고수를 찾아서] 그 방송이 작년 상반기 중국 전역에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서인우는 갑작스러운 남자의 등장에 조금은 정신이 없었다.

“그 방송이 중국에서까지 방영이 됐나요?”

“네, 워낙 인기도 있었지만, 특히 서인우 씨의 중식도를 다루는 모습에 많은 사람이 열광했습니다.”

“전혀 몰랐던 사실이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죄송합니다만, 제가 오픈 준비를 해야 해서….”

남성재가 손목시계를 자세히 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오픈 전이나 마감 후 밖에는 시간 내기가 힘들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찍 왔는데, 벌써 오픈 시간이 다 되어가네요.”

“오늘은 제가 회의가 좀 있어서 자리를 비웠습니다.”

“약속 없이 왔으니까 할 수 없죠. 우선 오늘은 제 명함 전해드린 걸로 만족하고, 며칠 내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남성재가 돌아가는 모습을 잠시 보고 있던 서인우는 명함을 주머니에 넣고는 급하게 주방으로 들어갔다.

-왜 이제 와? 심심해 죽는 줄 알았네.

‘회의가 있어서. 그리고, 가게 앞에서 누굴 좀 만나느라.’

-누구? 아침부터 누굴 만나?

‘사부, 혹시 중국 요리 협회라고 알아?’

-CCA?

‘영어로는 그렇게 불리는 것 같더라고.’

-모르긴 몰라도 중국에서 아마 상당히 큰 요리협회일걸? 그런데, 그건 왜 묻는데?

서인우는 잠시 다른 직원들이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한두 가지 잘못된 것들을 시정해 주었다.

‘그 협회 서울 지부장이라는 사람이 찾아왔어.’

-무슨 일로? 혹시 나를 찾던?

‘뭐래? 사부를 왜 찾아?’

-워낙 뛰어난 기술을 선보이는 중식도의 비밀을 알고 싶어 찾아온 거 아니냐고.

‘하긴, 우리가 나갔던 경연 방송이 중국에서도 방영됐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찾아오긴 했더라고.’

-거봐. 이 몸이 아무리 숨어있어도 티가 난다니까. 빛보다 빠른 칼솜씨를 보여줬으니 중식도의 나라에서 놀랄 수밖에 없지.

서인우는 다시 시작된 사부의 자기 자랑 타임을 그러려니 하고 웃어넘겼다.

-너 그 웃음은 뭐냐? 분명 내 뛰어난 솜씨가 궁금해서 찾아온 걸 거야.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는데?

‘내가 오픈 준비해야 해서 명함만 받고 보냈어.’

-에이, 궁금하게 왜 그냥 보내? 자세히 좀 물어보지.

‘며칠 내에 다시 온다고 했으니까 그때 나를 찾아온 목적을 자세히 얘기하겠지. 됐지? 나 이제 일해야 해.’

-어차피 네가 일하면 나도 일하거든.

중식도의 말처럼 중식도를 들고 재빨리 몇몇 재료들을 썰어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

“오픈 준비 다 끝났는데요?”

연신 칼질을 하는 서인우에게 강진수가 다가와 물었다.

“양파와 배추량이 좀 적게 느껴져서. 요즘 짬뽕 찾는 손님들이 늘었다는 걸 고려해야겠지.”

“아. 네.”

“그런데, 요 며칠 왜 이렇게 표정이 안 좋아?”

“저요? 에휴.”

강진수의 한숨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뭔데 그래?”

“요즘 다운 씨랑…. 아니에요, 얘기하지 않는 게 낫겠어요.”

-무슨 말을 하다 말아? 궁금해 죽겠구만.

“정 매니저랑 싸웠구나?”

“싸우기나 했으면 억울하지나 않죠. 크리스 마스 이후로 말을 안 해요, 말을.”

-내가 그랬지? 이벤트 잘못해서 싸우는 커플 많이 봤다고. 고것 참 쌤통이다.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차민정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진수씨 설마 카페나 술집 뭐 이런 데서 노래하고 뭐 그런 건 하지 않았지? 정 매니저 이름 불러가면서 막…. 설마, 아니지?”

“어떻게 알았어요? 내가 그날을 위해서 바쁜 와중에 노래방에서 한 달을 연습했는데….”

“노래 사이사이 정 매니저 이름 넣어가면서?”

“아주 귀신이네. 맞아요.”

“오늘 마감하고 만나서 다시는 그런 이벤트 하지 않겠다고 말해. 다운 씨 잘은 몰라도 그런 이벤트 하면 도망갈 스타일이던데?”

“네?”

이를 어쩌나?

강진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커멓게 변해 버렸다.

그 이벤트를 준비한다고 얼마나 애썼을지 생각하면 안쓰럽다는 마음도 들지만, 정다운이라면 분명 도망갔을 건 확실했다.

여자의 심리는 전문가네 뭐네 하더니.

서인우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웃었다.

“사장님. 지금 설마 웃는 거예요? 저는 이렇게 심각한데요?”

“미안, 그 상황을 상상해 버렸네. 둘 문제는 알아서 정리하시고, 첫 주문 들어왔습니다. 오늘도 수고해 주세요.”

“네. 파이팅!”

웍에 불길을 일으키며 재빨리 볶은 채소와 해물에 고춧가루를 넣고 빨간 짬뽕을 완성했다.

차민정이 완성한 탕수육이 나가고 바로 준비된 짬뽕이 홀직원 손에 들려 테이블로 나갔다.

그리고, 곧장 이어서 들어온 주문을 만들기 시작했다.

“3번 테이블에 양장피 하나, 백 짬뽕 하나 그리고 삼선볶음밥 하나요.”

“5번 테이블에 고추잡채 하나, 짜장면 둘, 새우볶음밥 하나요.”

주문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서인우와 주방 직원들은 항상 그래왔듯이 한여름 같은 열기를 느끼며 최선을 다해 음식을 만들었다.

완성된 양장피를 가지고 홀에 나갔을 때였다.

소스를 부어 잽싸게 섞어 테이블에 내려놓는 서인우의 귀에 뒷좌석에 앉은 사람들의 대화가 작게 들렸다.

“내일 [만가복] H 백화점 오픈날이지? 내일은 거기에 가볼까? 오픈 기념으로 한 달간 내놓는 만두가 끝내준다는데?”

“[서풍 만두]보다 더 맛있으려나?”

“먹어봐야 알지. 그래도 거기 셰프 실력도 끝내주잖아. 비교하는 재미가 있겠어.”

주방으로 돌아오는 서인우의 미간이 아주 작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 * *

새해의 아침이 밝았다.

새벽부터 일어나 재료 주문을 두 번 세 번 확인한 차은석이 백화점으로 향했다.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는 긴장으로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아직 일곱 시도 되지 않은 시간.

대형 백화점 이름과 [만가복] 이름, 특히 차은석 셰프라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새롭게 시작하는 첫날이다.

어슴푸레한 공기 속에 차창 밖으로 며칠째 내린 눈이 골목골목 쌓여있는 게 보였다.

도착해 마주한 주방은 눈 감고도 찾을 수 있을 만큼 익숙했던 [만가복] 마포점 주방과는 달리 모든 게 낯설었다.

차은석은 하루빨리 익숙해지기 위해 수없이 화력도 체크하고 주방기기의 위치도 익혔다.

또한 시간 단축을 위해 자신의 동선도 이리저리 체크하며 아무도 없는 주방에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제일 먼저 얼굴을 보인 사람은 새로 채용한 보조셰프 중 한 명인 김도영이었다.

“일찍 나왔네요?”

“긴장돼서 잠이 잘 오지 않더라고요.”

올해 서른이 된 김도영은 야심 차게 시작한 호텔 중식당 보조 생활을 6개월 만에 그만두고 [만가복]을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선배들의 텃세가 너무 심해서 자신이 진심으로 하고 싶은 요리가 싫어지려 했단다.

오픈 준비 기간 동안 마포점에서 일주일 일을 해보면서 이런 분위기라면 열심히 해서 자기 가게를 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고 했다.

“오픈 기념 콴탕빠오 준비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일찍 나온 거예요?”

“네, 일찍 일어나는 새가 피곤하다지만, 그게 다 일을 배우게 되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요?”

농담하며 냉장고를 열어 돼지 껍데기를 꺼낸 김도영이 자연스럽게 손질을 시작했다.

“돼지 껍데기 손질 이제 확실히 익혔습니까?”

“네, 사실 어제 집에서 콴탕빠오 만들어 부모님께 대접해 드렸습니다.”

“반응이 괜찮았나 보네요?”

“끝내줬습니다. 자신 있습니다.”

“좋아요. 그럼 다른 직원들 올 때까지 둘이 콴탕빠오 준비를 해놓도록 합시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도영이 돼지 껍데기를 칼로 쓱쓱 밀며 손질했다.

깨끗이 손질된 돼지 껍데기를 넓적하게 잘라 웍에 넣고 물을 부어 팔팔 끓였다.

잡내를 제거하기 위해 청주를 넣고 거품이 생기는 즉시 걷어냈다.

건져낸 껍데기를 콜라겐이 더 많이 빠져나올 수 있도록 작은 크기로 잘라 중불에 더 끓여주었다.

불을 끄고 건더기를 걸러낸 국물을 냉장고에 넣었다.

차은석이 만들어서 냉장고에 숙성시켜 놓은 만두피를 꺼냈다.

“어제 만들어놓은 콜라겐으로 우선 만두부터 빚도록 합시다.”

“네. 이것만 더 걸러서 냉장고에 넣고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다진 돼지고기에 후추와 굴 소스, 다진 쪽파와 생강을 넣고 김도영이 막 저으려고 하자 차은석이 급하게 손에 쥐고 있던 젓가락을 잡았다.

“반드시 한 방향으로 저어주어야만 합니다.”

“그냥 섞는 게 아닌가요?”

“한 방향으로 저어야 잘 뭉치고 어우러지게 되는 거니까 명심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차은석이 콜라겐을 꺼내 작게 다졌다.

만들어놓은 만두소와 거의 동량을 준비해 한 데 섞어 식용유와 소금 등을 넣은 후 역시 한 방향으로 다시 저어주었다.

얇게 핀 만두피에 방금 만든 소를 넣어 차은석이 솜씨 좋게 만두를 만들었다.

“어제 분명 점장님하고 똑같이 만들었는데, 막상 불을 끄고 꺼내려고 보니까 몇 개가 터져서 육즙이 밖으로 나왔더라고요.”

“만약에 불 조절에 자신 없으면 지금 이렇게 윗부분을 열리게 만들면 터져 나오지 않습니다.”

“아! 그런 방법이 있네요?”

“하지만, 꼭 닫게 빚는 게 향을 더 꽉 잡아줄 수 있으니까 우리는 지금 내가 하는 것처럼 이렇게 만들도록 합시다.”

차은석이 왼 손바닥에 만두피를 펼쳐 그 위에 만두소를 올리고 오른손 엄지를 그대로 둔 채 검지만 이용해 만두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꽃봉오리처럼 주름이 잡히며 예쁜 만두가 완성됐다.

“역시 어제 제가 만든 거랑은 차원이 다르네요. 한 번만 더 보여주세요.”

“왼 손바닥에 만두피를 올리고 이렇게 해보세요.”

차은석이 하는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대로 흉내 내고 있는 김도영의 눈빛이 사뭇 진지했다.

“잘하고 있습니다.”

둘이 한참 만두를 빚고 있는데, 웅성웅성 소리가 들리며 정재원 셰프와 다른 보조들이 하나씩 도착했다.

차은석을 중심으로 이전 마포점에서 같이 온 정재원 보조 셰프, 그리고 새로 충원된 김도영과 윤다연, 마지막으로 칼판 세 명까지 전원 출근했다.

“오늘 우리 [만가복] H 백화점 오픈 멋지게 해내도록 파이팅 한 번 합시다!”

차은석이 약간 상기된 얼굴로 외치자 다른 직원 모두 큰소리로 파이팅을 외쳤다.

각자 주방 기구 정리를 하고, 화력 체크도 하면서 재료가 도착하는 즉시 하나씩 손질을 시작했다.

주방 안에 경쾌한 도마소리와 웍을 씻고 달구는 소리 등 시끌벅적한 게 생기가 넘쳐흘렀다.

홀 매니저 정윤주가 경력 많은 베테랑답게 홀 직원들을 간단히 교육하고는 주방과 여러 가지 사인을 맞추고 있었다.

드디어 오픈 시간.

아직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있지는 않았다.

11시가 넘어가면서 드디어 첫 주문이 시작됐다.

“첫 주문입니다. 삼선 짜장 하나, 새우볶음밥 하나 그리고…. 양장피 하나요.”

[서풍]의 대표 메뉴인 양장피가 첫 주문으로 들어왔다.

마치 본격적인 경쟁의 시작을 알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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