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화.
“맞죠? 서인우 셰프님?”
“아, 네. 안녕하세요?”
“그러면 혹시 제이도 여기 오나요?”
“제이 씨요? 그분 스케쥴은 제가 잘 몰라서요.”
여자 둘이 계속 의심스러운 눈으로 서인우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맞은 편에 앉아있는 윤지영과 김서원을 번갈아 쳐다보는 것 같았다.
“제이랑 사귀는 사이 아니에요? 열애설 주인공 맞는데….”
“그 분이 우리 식당 단골이세요. 저도 여기 이분들도 다 제이씨 팬이고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자상하게 대답해주는 서인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결국 서인우와 사진까지 찍고서야 자리로 돌아갔다.
“오빠, 나도 봤어. 제이랑 오빠 열애설. 어떻게 된 거야?”
김서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일에 빠져 다른 것에는 관심도 없을 거로 생각했던 서인우의 열애설 얘기를 들으니 표정 관리가 쉽지 않은 듯 보였다.
“지난번 제이 씨가 우리 식당에 왔을 때 사진을 많이 찍혔어. 그래서 그런 오해가 생겼나 봐.”
“오해는 확실해?”
“그럼, 너도 알다시피 내가 연애할 시간이 어딨냐?”
“아니라 이거지? 그러면 제이 씨 곤란하지 않게 잘 해결해.”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지.”
윤지영이 기어이 한 잔 더 시킨 아인 슈페너를 조금 마신 후 김서원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제시카는 왜 연애 안 해? 혹시 남자친구 있는데, 내가 모르는 건가?”
“지금 한국 생활 너무 바쁘고 재미있어요. 나도 서인우 씨처럼 연애할 시간이 없네요.”
“그러고 보니 나도 이준형 씨도 다 일만 하느라 연애도 안하고 살고 있네.”
서인우가 피식 웃음을 내보였다.
“왜? 이준형 씨는 누구 사귀고 있어?”
“아니, 준형이는 아니고 정다운 씨.”
“정 매니저? 대박!”
“맞죠? 지난번에 봤을 때 얼굴이 환하게 피었더라고요. 너무 잘됐다.”
윤지영의 질문이 끝없이 이어졌다.
오랜만에 밖에서 커피도 마시고 편안한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는 소소한 여유가 좋았다.
* * *
12월 첫날부터 눈이 내렸다.
그것도 함박눈이 소복하게.
겨울, 특히 12월은 부모에게 연인에게 선물하기 위해 백화점을 찾는 사람이 부쩍 더 많은 것 같았다.
그 많은 손님이 비나 눈이 오면 더 생각나는 중식을 먹기 위해 오픈 전부터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오늘은 재료 준비를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대기 손님이 많이 있어요.”
정다운 매니저가 손님 안내를 하고는 주방에 들어와 알렸다.
“1번 테이블에 백 짬뽕 두 개, 탕수육 하나, 먹물 만두 하나요.”
“2번 테이블도 백 짬뽕 하나, 짜장면 하나, 칠리새우 하나요.”
주문이 들어오자마자 웍에 불길이 일며 분주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손질된 고기를 미리 만들어놓은 튀김 반죽에 묻혀 노랗게 튀겼다.
그사이 완성된 소스가 담긴 웍에 튀긴 고기를 넣어 재빨리 볶아서 접시에 담았다.
자르르한 윤기와 고소한 향기가 식욕을 돋게 하는 탕수육을 완성해 벨을 눌렀다.
띵!
채소와 해물을 불향 가득 입혀 볶은 후 육수를 부어 김현수가 막 삶아 담아놓은 면 위에 부었다.
띵!
백 짬뽕이 완성되어 갈 때 매콤하고 달콤한 칠리새우가 완성되어 나갔다.
박인식의 글이 올라온 후 치즈 치킨밥을 찾는 손님이 더 많아졌다.
많은 사람이 SNS 등을 통해 원조의 맛을 강조하며 사진 및 글을 올렸다.
또한, 그런 움직임이 더 많은 사람이 [서풍 TWO]를 찾는 이유가 되었다.
12월 내내 유독 눈이 많이 내렸다.
많은 연인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며 설레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번 크리스마스가 운 좋게 백화점 휴무일이잖아요. 사장님은 뭐 하실 계획이에요?”
한껏 들뜬 듯한 강진수가 잠시 쉬는 시간을 틈타 다가와 물었다.
“나는 데이트를 할 계획인데?”
“정말요? 대박! 사장님 드디어 제이 사귀기로 한 거예요?”
-뭐? 누구를 사귄다고?
중식도가 재빨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엄마랑 데이트 할 생각이다. 너는 계획 잘 세웠어?”
“저야 뭐 감동의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마 나의 매력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하루가 될 거라고요.”
-이벤트 한다고 하다가 깨지는 커플 많이 봤다. 저놈도 어쩐지 좀 불안한데….
‘이쪽으로는 나보다 훨씬 경험 많은 선배라니까 멋지게 준비하고 있겠지.’
다들 기다리던 크리스마스.
백화점 휴무일과 겹치면서 전 직원이 로또라도 맞은 것처럼 신이 났다.
서인우는 오랜만에 엄마와 이모, 이모부를 만나기 위해 대전으로 향했다.
* * *
H 백화점 [만가복] 오픈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백화점 분위기에 맞춰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위해 많은 신경을 집중했다.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인가?”
“네, 내일 조명 설치 마치고 나면 실질적인 인테리어는 거의 끝났다고 생각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차성철이 테블릿을 보이며 진행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MS 백화점 베트남 점에 [서풍]도 같이 진출한다고 최종 결정을 했다던데, 뭐 다른 소식은 없습니까?”
“[서풍 TWO]와 [서풍 만두], 그리고 새우면도 식품관으로 같이 들어간다고 들었습니다.”
“[서풍 만두]까지?”
“네, 서풍에서 하는 사업이 동시에 들어가는 겁니다.”
“사업은 무슨? 장사가 좀 잘된다 싶으니까 무리하게 베트남까지 진출하려나 본데, 그러다가 큰 코 다치지.”
김원상의 불만 섞인 말투에 차성철이 아랑곳하지 않고 테블릿으로 다른 화면을 펼쳐 보였다.
“올해 가장 눈부신 성장을 보인 업체들 리스트입니다. [서풍 만두]가 업계 1위를 차지했습니다.”
“뭐? 그 작은 가게가?”
“아무래도 포장 판매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유리하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차 팀장도 먹어봤겠지?”
“네, 포장해서 집에서 끓는 물에 넣어 익혀 먹는 거라 아주 간단했습니다. 물론 맛은 상상하지 못했던 극강의 감칠맛을 선보이는 만두였습니다.”
김원상의 표정이 그리 밝지는 않았다.
“몸에 좋은 오징어 먹물이 들어갔다는 점과 처음 먹어보는 만두소가 아주 매력적이었습니다.”
“우리 [만가복] 만두도 인기 메뉴 아닌가?”
“물론 [만가복] 만두도 육즙도 풍부하고 맛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흔한 중식 만두입니다. [서풍]의 만두는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하는 특별함이 있었습니다.”
테블릿에 찍힌 숫자들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김원상이 입에서 쩝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우리도 한번 만들어 보면 어떻겠습니까?”
“지금 또다시 [서풍]의 유사품을 만들자고 하시는 겁니까?”
“그런 치욕은 한 번으로 됐어요. 새로운 만두를 개발해 보면 어떻겠냐는 말입니다.”
“그 문제는 차은석 셰프와 의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백화점 입점을 앞두고 메뉴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좋은 일이군. 그러면 뭐든 새로운 일이 있으면 보고하도록 해요.”
회장실을 나온 차성철이 [만가복] 마포점을 향했다.
차은석 셰프를 만나 몇 가지 의논을 하기 위해 브레이크 타임에 맞춰 도착했다.
“이제 일주일 후면 오픈이네요?”
“네, 새로운 환경에서 일해야 한다 생각하니 조금 긴장되네요.”
“우리 매장 최고의 셰프님께서 그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죠.”
테이블에 놓인 따뜻한 차를 마시며 가볍게 대화를 이어갔다.
“이번에 백화점에서 새롭게 개점하면서 준비하고 계시는 신메뉴가 있나요?”
“지금 한가한 시간이나 퇴근 후에 이것저것 만들어 보고 있습니다.”
“오늘 회장님과 회의에서 좀 특별한 [만가복] 만의 만두를 개발해 보면 어떻겠냐고 하셨습니다.”
“만두요? [서풍 만두]같이 이름을 건 만두를 욕심내시는 겁니까?”
차은석이 노골적으로 기분 나쁜 티를 내며 물었다.
“아무래도 경쟁업체다 보니 인기 메뉴나 매출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겠죠.”
“다시는 바보 같은 실수 안 합니다.”
“네, 회장님도 그건 원치 않으십니다. 오롯이 우리 [만가복]만의 특별한 만두를 개발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사실 제가 요즘 개발하고 있는 메뉴 중에 육즙 만두라고 있습니다.”
“육즙 만두요?”
“잠시만 계세요.”
주방으로 들어간 차은석이 접시에 동그랗게 위로 뾰족한 입구가 모인 만두를 들고나왔다.
홍콩이나 중국 여행 가서 한 번쯤은 먹어봤을 듯한 모양이었다.
“이게 콴탕빠오 (灌汤包) 라고 하는건데, 중국 북송시대 황제에게 올리던 만두입니다. 육즙이 가득 들어있어서 그걸 수저 위에 터트려 먹는 만두에요.”
“전에 여행 가서 맛본 것 같은데요. 그럼 감사히 먹어보겠습니다.”
차성철이 만두 하나를 집어 접시에 올렸다.
방금 들은 대로 숟가락 위에 올려 살짝 터트리니 만두 속에서 육즙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우선 그 국물을 쭉 들이켜고 바로 만두를 입에 넣었다.
“차 셰프님. 이 만두 진짜 맛있네요? 우리 [만가복]이름 걸고 대표 메뉴로 내놓으면 좋을 것 같아요. 다른 분들 의견은 어떻습니까?”
“여기 직원들도 다 좋은 평가를 해주기는 했습니다. 딤섬을 판매하는 곳에서는 접할 수 있는 메뉴이긴 합니다.”
“많은 딤섬 중에서 이것만 특화해서 우리 [만가복]메뉴로 내세워도 좋을 것 같아요.”
“이게 만드는 과정이 손이 많이 가는 거라 우선 백화점 오픈하면서 기념으로 한 달만 시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차성철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만두 하나를 더 집어 입에 넣었다.
“조금 식은 후에는 같이 먹어도 부드럽고 좋은데요? 오픈 기념으로 좋을 것 같습니다. 아주 훌륭해요.”
“네, 적극적으로 고려해 보겠습니다.”
“고려하시지 마시고 꼭 만들어서 우리 가게를 찾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세요. 진짜 맛있습니다.”
진심이 느껴지는 차성철의 평가를 듣자 고민했던 부분이 어느 정도는 해소되는 것 같았다.
“이제 거의 준비가 된 거 같으네요. 직원도 다 충원했고, 이렇게 오픈기념 신 메뉴도 만들었고….”
“네, 앞으로 열심히 할 일만 남았습니다.”
차를 마시며 보이는 차은석의 눈에 강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 * *
12월의 마지막 날 백화점 오픈 1시간 전.
MS 백화점 유현주 팀장과 서인우의 간단한 미팅이 있었다.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MS 백화점 베트남점 오픈일이 두 달 안 되게 남았습니다.”
“벌써 그렇게 됐나요?”
“네, 내일이면 1월이 시작되고 우리 오픈일이 2월 15일이니까요.”
다들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고 있는듯했다.
“인테리어는 전에 알아본 현지 업체와 하기로 결정하신거죠?”
“네, 영업에 필요한 서류 통과에 도움될 수 있게 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곳에 나가 있는 우리 직원들과 연락하며 진행 상황을 바로 체크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 컨셉은 전달했는데…믿고 맡겨야죠.”
“그러면 구체적인 진행 일정 나오는 대로 다시 알려 드릴게요.”
“네, 잘 부탁드립니다.”
유현주가 서인우를 흘낏 쳐다보더니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손가락을 테이블에 튕기고 있었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저 내일 [만가복] H 백화점 오픈 날인거 알고 계시죠?”
“네, 들었습니다.”
“오픈 기념으로 [만가복] 만두를 선보인다고 하네요.”
“[만가복] 만두요?”
입을 삐쭉 내밀어 보이더니 유현주가 다시 말을 이었다.
“[서풍 만두]가 인기가 많으니까 흉내내는거 아니겠어요?”
“만두야 워낙 다들 좋아하는 메뉴니까요.”
“무슨 탕빠오인가 뭔가 만두안에 국물이 있는 중국만두 인 것 같아요.”
“아! 샤오롱 빠오 같은 건가 보네요. 정성이 들어가는 만두입니다. 맛있을거에요.”
“그래도 우리 [서풍만두]처럼 독창적이지는 않죠. 우리 [서풍만두]는 국내 유일이니까요.”
서인우는 연신 우리라는 표현을 하며 [서풍]에 애정을 보이는 유현주가 고마웠다.
“내 정신 좀 봐. 시간을 너무 뺏었네요. 일어날까요?”
“괜찮습니다. 아! 회장님은 잘 계시죠?”
“할아버지요? 그럼요, 서산에서 여전히 노익장을 발휘하고 계세요. 오늘 늦게 외삼촌 댁에 오셔서 새해는 같이 보내시기로 했어요.”
“세배드리러 가야겠네요.”
“세배받으러 오실 수도 있어요.”
유현주와 헤어져 식당으로 들어가는 서인우 앞에 낯선 사람이 성큼성큼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