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화.
윤지영과 안상훈이 답사를 다녀온 지 이틀째다.
하루 쉬고 출근하라고 했지만, 바로 다음 날부터 출근한 안상훈이 새 메뉴인 구전대장을 연습하고 있었다.
“사장님. 이 메뉴 너무 매력 있습니다. 내가 뭐 원래 곱창 요리를 좋아하기는 하는데, 이런 메뉴는 처음입니다.”
“바로 다음 주부터 판매를 시작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완벽하게 손에 익혀놓도록 해두세요. 이제 여기는 안셰프님이 총괄하신다 생각하시고요.”
안상훈이 뭔가 할 얘기가 있는 듯 망설이고 있었다.
“뭐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제가 좀 더 열심히 해볼 테니, 이른 시일 내에 베트남에 다녀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새벽시장이나 주변 상권들, 동종 업체들을 사장님이 직접 보시면 또 느낌이 다를 듯해서요.”
“안 셰프님이 잘 알아봐 주셔서 걱정 없습니다. 인테리어 시작하면 봐서 하루라도 다녀오도록 해보겠습니다. 그러려면….”
“사장님하고 똑같이는 힘들어도 최대한 비슷하게 해보겠습니다.”
이제 조금만 얘기해도 서인우가 하려는 말을 다 알고 있는 안상훈이 수줍게 웃어 보였다.
“6시부터 단체 예약 손님 있습니다. 다들 내 요리는 작품이라는 생각 잊지 말고 최선을 다해 주세요.”
“네, 셰프.”
이번에도 강진수의 목소리가 제일 컸다.
방금 내간 팔보채를 만든 웍을 정리하고 있던 차민정이 강진수를 향해 피식 웃어 보였다.
강진수보다 몇 년이나 더 많은 경력이지만, 무시하지 않고 서로 가르쳐 주고 보완하는 둘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렇게 썰면 재료에 간이 잘 배지 않습니다. 웍에 닿는 면적이 크니까 과학적으로 좀 얇게 저며줘야 재료에서 양념 맛이 살아납니다.”
“그렇게 얇으면 쉽게 으깨지고 음식을 씹을 때 아삭함이 덜해진단 말입니다.”
가끔 잡음을 만드는 건 김현수와 오상준이었다.
실 경험이 많은 김현수와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오상준이 오늘도 가볍게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서인우가 잠시 보고 있는 사이 안상훈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두 분 다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풍]의 요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맛은 당연하지만, 채소와 고기, 해물의 크기까지 일정하게 만들어 식감까지 똑같아야 진정한 [서풍]의 맛이라는 걸 명심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주방의 질서가 잡혀가고 있었다.
6시도 되지 않아서 이미 홀이 꽉 찬 상태였다.
다음 주면 11월이지만, 주방은 한여름처럼 뜨거웠다.
주문 들어온 크림 새우를 만들어 벨을 누른 차민정이 양장피가 찍힌 주문을 보고 서인우와 안상훈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번에는 누가 만드실 건가요?”
“안 셰프님이 만드실 겁니다.”
“그건 좀….”
안상훈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미 [서풍]의 대표 메뉴인 양장피를 완벽하게 만들어 내는 안상훈이 뭔가 자신 없는 듯한 표정이었다.
“안 셰프님. 이제 완벽합니다. 얼마든지 맡아서 하셔도 되는 실력이시라는 사실 잊지 마세요.”
“그게 아니라, 사장님이 베트남점 맡아 하시기 전까지는 손님들께 얼굴을 보여주시는 게 낫지 않을까 해서요. 사실 우리 가게에서 양장피를 찾는 손님 대부분이 사장님의 퍼포먼스 때문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네요. 사장님이 안 계실 때는 할 수 없지만, 주방에 계시면서 다른 사람이 나와 양장피를 선보이면 서운해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안상훈과 차민정의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었다.
“제가 그 생각은 못 했네요. 안 셰프님께 한 번이라도 더 기회를 드릴 생각만 했어요. 있는 동안 양장피는 무조건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하긴, 지난번 보니까 양장피 안 좋아하는데 네 얼굴 보려고 시키는 손님도 있더만. 재수 없지만, 인정해야지 뭐.
중식도까지 거들었다.
“알았어. 사부, 뭐해? 실력 발휘 해야지?”
-이제 저 친구 시켜. 과학 돌이.
“누구?”
-칼판 있잖아. 잘하면 자로 재려 들 기세던데.
“됐고, 빨리 만들어 내가자고.”
서인우가 중식도를 잡아 엄청난 속도로 각종 채소와 해물들을 잘라 놓았다.
그리고는 바로 웍에 해물들을 재빨리 볶아 채소와 해물들을 순서대로 가지런히 놓았다.
완성된 소스와 함께 양장피를 들고 주문한 테이블로 나간 서인우를 발견한 손님들이 단지 고개 숙여 인사만 했는데도 벌써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휘릭 소스를 부어 양장피를 섞어 보이자 결국에 환호성까지 질렀다.
주방으로 들어온 서인우를 향한 직원들의 눈빛이 존경과 부러움 그 어딘가쯤인 듯 보였다.
* * *
“3번 테이블 누룽지탕하고 고추잡채 아직 안된 거야?”
차은석이 완성된 게살수프를 작은 그릇 네 개에 나눠 담으며 물었다.
“거의 다 됐습니다.”
김지호와 새로 들어온 보조셰프 정재원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완성된 누룽지탕의 맛을 보던 차은석이 순간 인상을 쓰며 방금 입에 넣은 것을 하수구에 뱉었다.
“누구야? 누룽지탕 소스 누가 만들었어?”
김지호가 슬쩍 차은석의 눈치를 보더니 작은 그릇에 덜어 조심스럽게 맛을 봤다.
그리고는 보조셰프 정재원을 노려봤다.
“지금 누룽지탕을 재원이한테 완성하라고 시킨 거야? 이제 들어온 지 3개월 된 보조한테?”
“아닙니다. 제가 다 만들었습니다. 좀 싱거운 듯해서 간만 살짝 더해달라고 부탁을 ….”
“뭐야? 제일 중요한 간을 부탁했단 말이야?”
“주문이 밀려 정신이 없어서 제가 실수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차은석이 여전히 화난 얼굴로 누룽지탕 소스에 청경채를 추가하고 전분물을 슬쩍슬쩍 흘려 넣었다.
그리고, 다시 간을 본 후 완성을 알리는 벨을 눌렀다.
“갑자기 단체 손님이 들이닥쳐 바쁘다는 거 인정한다. 하지만, 맛없는 걸 내놓느니 차라리 음식이 늦어지는 게 낫다고 내가 여러 번 강조했을 텐데….”
“네, 분명히 기억합니다. 제 실수입니다.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반성하는 김지호의 눈을 잠시 쳐다본 차은석이 바로 다음 요리를 준비했다.
정신없이 요리를 만들었고, 연신 벨을 눌러 홀 직원들이 완성된 요리를 가지고 갔다.
저녁 장사가 거의 마무리 될 때쯤이었다.
홀 매니저 오승연이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주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차 셰프님. 이거, 이것 좀 보세요.”
“왜 그래요? 오 매니저님.”
오승연이 들이민 핸드폰에 [만가복] 과 [서풍]에 관련된 글이 올라와 있었다.
[치즈 치킨밥 원조 논란]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벌써 차은석의 미간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치즈 치킨밥 원조 논란]
우리나라 중식당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어디가 먼저 생각날까?
아마도 서울에 여러 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는 [만가복]과 MS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서풍TWO]를 떠올릴 것이다.
두 식당 모두 최고 실력 있는 셰프들이 한 번 먹으면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만큼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내는 곳이다.
물론 경연 방송에서 [서풍]의 서인우 셰프가 우승하며 중화요리 최고의 고수 자리를 차지했다.
MS 백화점 입점 경쟁에서 [만가복]이 [서풍]에 밀렸다는 사실도 업계에서는 이미 암암리에 소문이 난 상태다.
그런 현시점에서 맛 칼럼니스트인 필자의 이름을 걸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
두 식당에서 맛본 치즈 치킨밥이 너무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먹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마치 이탈리아 음식 같은 비쥬얼에 찐 밥이 들어있다는 반전 매력과 사이드로 나오는 음식을 올려 먹을 때 다시 중식임을 확인시켜주는 카멜레온 같은 메뉴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나라에 딱 두 군데 [만가복]과 [서풍]에만 있는 이 메뉴가 조리 방법부터 맛까지 너무 비슷하다는 거다.
물론 사이드로 올라가는 음식이 [만가복]은 사천식 청경채 볶음이, [서풍]은 오리지널 청경채 볶음이 올라갔다는 차이는 있었다.
맛있는 거 못 참고, 궁금한 거 못 참는 필자가 [서풍]의 서인우 셰프를 만나 인터뷰를 해봤다.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 내용을 간략히 정리한 글이다.
필자 : 지난번 먹었던 치즈 치킨밥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서 직접 찾아왔습니다. 그게 [만가복]에도 거의 비슷한 메뉴가 있던데, 알고 계십니까?
서인우 : 네, 알고 있습니다. [서풍]의 치즈 치킨밥 유사품을 만들어 내놓고 있는 거로 압니다.
필자 : 유사품이라고요?
서인우 : 치즈 치킨밥은 MS 백화점 입점 심사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메뉴입니다. 그 메뉴로 [만가복]이 보기 좋게 미끄러졌던 거고요. [만가복]에도 훌륭하고 실력 있는 셰프가 있으니 그날 본 메뉴를 흉내는 낼 수 있을 겁니다. 셰프가 직접 만드는 과정까지 본 음식을 흉내도 못 내면 그건 자격 미달인 거죠.
필자 : 그러니까 치즈 치킨밥은 [서풍]이 원조다 이 말씀이신 거죠?
서인우 : 그 답은 두 식당의 음식을 먹어봤으면 바로 알 수 있었을 텐데요?
서인우 셰프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필자가 이 글을 올려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자존심 때문이다.
최소한 국민의 사랑을 받는 셰프라면 내 요리에 대한 자부심을 품고 최선을 다하는 게 인정받는 요리사의 자존심이 아닐까?
서인우 셰프가 했던 많은 말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을 마지막으로 적어본다.
“요리가 전부인 가진 거 없는 제가 [만가복]을 이길 수 있었던 건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실력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그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습니다. 하루에 4시간도 채 못 자면서 직접 새벽시장까지 돌며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 [서풍]을 찾아주는 모든 분께 최고의 맛을, 바로 아버지가 해주셨던 감동의 맛을 느끼게 해주겠다는 그 일념으로 말입니다.”
항상 날카로운 비난 섞인 글로 요식업계의 원망을 받던 필자가 이름 석 자를 걸며 이런 칭찬 일색인 글을 남긴 이유다.
가장 정확한 혀끝에 모든 답은 들어있다.
맛 칼럼니스트 박인식.
멈추지도 않고 끝까지 긴 글을 읽은 차은석의 눈은 이미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김원상과의 갈등을 일으켰던 그 메뉴가 결국 자신을 바닥으로 끌어 내렸다는 생각에 화가 나 미칠 것만 같았다.
누구보다 요리에 자신이 있었다.
또한, 자신의 실력과 끊임없는 노력을 알아주는 손님들 덕에 자존심 하나는 확실히 지키며 살아왔다고 확신했었다.
그런 그에게 지금 이 기사는 차은석이 끝까지 붙잡고 있던 신념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는 글이었다.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야! 당신이 뭘 안다고 나를 이따위로 평가해? 그 메뉴는 내가 원해서 만든 게 아니란 말이야!’
화가 나 소리치고 싶었다.
누군가를 붙잡고 사실이 아니라고, 나는 떳떳하다고 외치고 싶었다.
그때 더 강하게 거절했어야 했는데….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온몸에서 피가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밖으로 나와 김원상의 번호를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차은석입니다.”
-먼저 연락을 줬네요. 내일이 일주일 되는 날인데….
“오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기사를 아직 못 본 겁니까?”
-그 칼럼니스트 양반 말입니까? [서풍]에서 돈 받고 글 쓰는 그 재수 없는 글쟁이?
차은석의 한숨 소리가 거칠게 넘어왔다.
“그런 사람 아니라고 몇 번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 사람 음식 칼럼을 쓴 지 이미 20년이 넘는 베테랑입니다. 누구에게도 포섭되거나 뜻을 굽혔던 적 한 번도 없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사람은 다 변해요. 점점 일이 줄었거나, 돈이 필요하면….
“됐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중요한 건 나 차은석의 명예입니다.”
-그 인터뷰에 적은 것처럼 실력 있는 셰프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차은석의 목소리가 핸드폰에 쩌렁쩌렁 울렸다.
-흥분하지 말고 잘 생각해보세요. 차 셰프 정말 실력 하나는 내가 인정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런 대답도 넘어오지 않았다.
-그러니, 이 억울한 상황을 실력으로 뒤집어 버리세요. 차 셰프는 분명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서인우 그놈이 아무리 날고 겨도 경력 있는 차 셰프를 따라가지 못한단 말입니다.
차은석이 또다시 큰 숨을 뱉어냈다.
그리고는 낮게 깔린 목소리가 넘어왔다.
“좋아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실력으로 보여주겠습니다 …. H 백화점 내가 해보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김원상의 입꼬리가 조금씩 위로 말아 올라갔다.
그리고는 바로 데스크 위에 놓인 전화의 수화기를 들었다.
“차 팀장, 오후에 보여줬던 그 기사 이제 완전히 내리도록 홍보부에 지시하도록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