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화.
베트남에 답사 간 안상훈에게서 전화가 왔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문제가 생겼다는 말을 전하는 안상훈의 목소리가 잔뜩 긴장한 듯 느껴졌다.
“안셰프님. 문제가 생겼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여기 백화점에 입점하기 위한 인테리어를 무조건 현지 업체와 해야 한다고 합니다.
“네? 현지 업체와요?”
-네, 현지 업체와 일을 진행해서 반드시 여기 식당 소방증명서를 획득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건 그쪽 관련된 사람들을 끼고 진행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것뿐 아니라 식품 안전 위생 증명서를 획득해야 하는 문제까지 있어서 그런 것들을 다 잘 아는 현지 업체와 작업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서인우의 머릿속에 오늘 만난 김서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베트남 [서풍]도 그녀와 함께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을 때 기뻐하던 그 얼굴이.
“좀 더 알아봐 주세요. 저도 여기서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예상했지만, 많이 복잡하네요.
“아무래도 내 나라가 아니니까요.”
-그래도 지금 우리를 가이드해주는 직원이 워낙 친절해서 자세히 알려준다고 했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계속 애써주세요.”
-네, 사장님도 수고하세요.
전화가 끊겼는데도 한참 멍하니 있는 서인우의 앞에 중식도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멍 때리고 있냐?
“막상 베트남 진출을 하려니까 복잡한 일이 많네.”
-외국에 일주일 여행만 가려 해도 신경 쓸 일이 태산인데, 그곳에서 사업하는 게 뭐 쉬운 줄 알았냐?
“각오하고 시작했지만, 생각지 못한 변수들이 계속 생길 것 같아.”
-짬짬이 베트남어도 공부해둬. 아무리 친절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 도와준다고 해도 내가 알아야 속 시원하지.
“안 그래도 요즘 시장 오갈 때 차 안에서, 그리고 퇴근 후 집에서 계속 베트남어 공부하고 있어.”
중식도가 다시 한 바퀴 휙 돌더니 서인우 눈앞에 알짱거렸다.
-이 사부가 재주 하나 부려줘? 자고 일어나면 베트남어를 술술 할 수 있게 해줘?
“정말? 그게 가능해?”
-원해? 원하면 큰 소리로 ‘사부! 간절히 원합니다.’ 그렇게 해봐.
서인우는 믿기지 않는 사부의 제안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재주를 넣어줘, 말아?
“사부! 간절히 원합니다!”
-키키. 키키키.
“무슨 웃음소리가 그래?”
-고것 참 재미지네.
“뭐야? 장난이었어?”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지금 나랑 장난하냐? 내가 그런 능력이 있으면 이 주방에 박혀서 이러고 있겠냐?
“지금 나 놀린 거지?”
-오래간만에 재밌었다. 그럼 난 이만….
서인우가 꿈틀거리는 중식도를 잡아챘다.
“어디 가시려고?”
-영업 끝났습니다. 손님.
“나한테 그런 장난을 치고 무사할 줄 알았어?”
-에이. 우리 사이에 뭘 또 정색하고 그러나? 남자가 쪼잔하게.
“쪼잔? 정말 쪼잔이 뭔지 보여주지. 안 그래도 곧 더 추워지고 눈도 오고 할 텐데, 우리 가게 신메뉴를 좀 연구해봐야겠다 생각하고 있었거든.”
“그런 거는 딱 생각만 하는 거야. 지금도 메뉴 매우 많아. 아니, 넘쳐 넘쳐.”
중식도가 그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는 서인우 팔을 툭툭 쳤다.
-에이, 장난이지? 나 오늘 과로했어. 이제 쉴 시간이야.
“전에 아빠 일기장에서 봤던 음식. 당연히 사부도 아는 요리일 텐데, 구전대장 (지우좐따창 ,九转大肠).”
-그, 그런데? 나 왜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지?
“아빠가 중국 사부님한테 배워서 또 그 맛을 기억해 만든 그 요리를 언젠가 꼭 해보고 싶었어.”
-그러니까 그게 왜 지금이냐고?
서인우가 중식도를 강렬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렇게 보지 마. 네가 그런 눈으로 보면 내가 배 째라 하고 드러누울 수가 없잖아?
“구전대장, 어떻게 만드는지 사부는 알지?”
갑자기 중식도의 소리가 낮게 깔렸다.
-구전대장이라 하면 중국어 발음으로는 지우좐따창이라는 거다. 중국에서도 특히 산동지역의 유명한 요리이지.
“사부! 대단한데? 그래서, 어떻게 만드는 건데?”
-산둥 요리의 특징은 향기가 좋고, 짜고, 씹는 맛은 부드럽고, 채색이 선명하고, 구조는 섬세하다. 파와 같은 향신료를 주로 사용하지. 또 바다가 가까워 생선과 어패류를 사용한 요리가 많은 것도 특징이라고나 할까?
서인우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중식도를 빤히 쳐다봤다.
-야! 인우야? 나 이런 걸 어떻게 알고 있지? 그냥 술술 나오는데?
“사부의 잊고 있던 기억이 하나씩 떠오르는 거 아니야?”
-와씨. 나라는 존재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인물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특별히 존경하는 마음을 갖도록….
“됐고. 그래서 구전대장 레시피는?”
-오늘은 연습 못 해. 그건 대장, 즉 돼지 곱창이 있어야 가능하거든.
“나도 아빠 일기 보고 좀 알아봤었어. 요즘 나이에 상관없이 곱창 요리가 워낙 인기라서, 그래서 시도해보려고 마음먹었거든.”
서인우가 재료 리스트를 적어놓은 노트의 새로운 페이지를 펼쳤다.
“돼지 곱창만 있으면 되는 거지?”
-이 요리는 너무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려서 쉽지 않아. 쉬운 요리 많은데, 왜 굳이 이런 복잡한 요리를 하려고 하는거냐?
“아빠가 꼭 선보이고 싶었던 요리라고 했잖아. 나도 정말 만들어 보고 싶었어. 시도해보고 반응이 좋으면 스페셜 요리로 내놓을 생각이야.”
-이미 마음을 먹었군. 그러면 내일 돼지 곱창 싱싱하고 손질 잘 되어 있는 걸로 사와. 내가 특별히 가르쳐주지. 대한민국에서 여기 [서풍]에서만 맛볼 수 있는 요리가 탄생하게 될 거다.
“좋았어. 내일이 기대되는군.”
-안 그래도 과로사하게 생겼는데…더 바빠지겠군.
집에 돌아온 서인우는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오늘 안상훈이 전화 통화로 말했던 내용도 점검해봐야 하고, 무엇보다 아빠가 며칠 밤을 새워가면서 만들어 보이고 싶어 했던 그 요리를 공부해야 했다.
피곤한 몸, 졸린 눈과 씨름하며 한참 밤이 깊어서 잠을 청했다.
어김없이 어둠을 뚫고 도착한 새벽시장.
수산물 가게 오사장이 서인우를 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서 사장! 이제 새벽에 직접 장 보는 건 좀 그만해도 되지 않나? 그러다 쓰러져!”
“네. 이제 확실한 단골도 됐고, 사장님들도 제 요구 잘 맞춰주셔서 주문 넣고 물건 받아야죠.”
“그렇게 해. 새벽 시장 직접 도는 것도 정말 오래했구만. 하루도 빠짐없이 말이야.”
서인우가 주문지를 다시 꼼꼼하게 확인했다.
항상 하던 대로 채소와 해물을 꼼꼼하게 골라 주문하고는 수산물 가게 오사장이 소개해준 곳에서 깨끗하게 손질된 돼지 막창을 사서 차에 실었다.
“사부, 재료 준비 완료!”
-오늘은 더 일찍 왔네. 진짜 못 말린다.
“내가 머릿속으로 요리과정을 수없이 상상해봤는데, 이건 만들어서 맛을 봐야 알 것 같아.”
-중국 요리 중에 홍샤오( 红烧, 홍소) 라는 말이 붙은 요리들이 많이 있지?
“그렇지, 대표적으로 홍샤오 러우 (红烧肉, 홍소육) 가 유명하지.”
홍샤오 러우는 돼지비계가 달린 두툼한 삼겹살을 살짝 튀긴 뒤 팔각, 계피, 홍고추 등 향신료를 넣고 간장에 조리다가 다시 쪄낸 요리이다.
흔히 알고 있는 동파러우 ( 东扒肉,동파육 ) 랑 비슷하다.
-이 구전대장도 일종의 홍샤오 요리라고 할 수 있지. 그럼 한 번 만들어 볼까?
“좋았어!”
-창자를 깨끗이 씻어서 한 번 삶아내. 그리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다음 다시 끓는 물에 데쳐야 해.
삶아 낸 창자를 도마 위에 올리자 중식도가 순식간에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그리고 다시 끓는 물에 데쳐 놓으니 창자의 크기가 확 줄어있었다.
“사부, 아무래도 삶고 데치고 하니까 크기가 아주 작아지네.”
-그래서, 그걸 고려해 양을 정해야 해.
“이제 돼지기름에 볶는 거지?”
-그렇지, 한 번 볶은 후 꺼내서 돼지기름 약간에 다진 파, 생강, 마늘, 식초, 황주, 소금, 간장과 함께 마지막으로 1시간 정도 졸여주면 완성이지.
“진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긴 하네.”
-그러니까 뭐 하려고 이런 복잡하고 손 많이 가는 요리를 하려고 해?
“상관없어.”
-뭐?
“맛만 있으면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상관없다고. 방법은 찾으면 되니까.”
오픈 준비를 위해 채소와 해물 등을 손질하며 간간이 맛있게 졸여지는 과정을 지켜봤다.
-얼추 된 것 같은데? 딱 맛있게 졸여진 색깔이야. 어때? 느낌이 홍샤오 러우랑 비슷하지?
“그러네. 그럼 한 번 맛을 볼까?”
서인우는 아빠 일기장에서 본 그 순간부터 너무 궁금했던 요리를 드디어 처음으로 먹어보았다.
“너무 부드럽다. 이 맛이 신기하게 약간 짭조름하면서 또 매콤한 것도 같고, 신맛도 좀 나기도 하고….”
-이 요리의 특징이 신맛, 매운맛, 고소한 맛, 짠맛, 단맛이 다 나는 거야. 느껴지냐?
“정말 그래. 진짜 신기하네. 이거 너무 매력적인데?”
-그러면 안 되는데…. 내가 너무 실력 발휘를 했군. 맛이 없어야 이 요리를 포기하는 건데.
“직원들 오면 평가해보라고 해야겠어. 만약 다들 찬성하면 우리 [서풍TWO]의 겨울맞이 신메뉴로 내놓을 거야.”
-아! 진짜. 학생들은 방학이 있고, 직장인들은 휴가라도 있는데, 나는 이거 노동력 착취라고.
“사랑합니다, 사부!”
“사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부지런한 강진수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어? 이거 무슨 요리에요? 처음 보는 건데?”
“나중에 다들 오면 시식해보도록 하자.”
“궁금한데, 저 먼저 하나 먹어보면….”
“응, 안돼!”
“쩝! 알겠습니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강진수가 시키지 않아도 척척 오늘 사용할 주방 도구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잠시 후.
출근을 마친 차민정, 오상준, 김현수 그리고 강진수 앞에 만들어 놓은 구전대장을 조금씩 덜어주었다.
“조금 전에 만들어 본 음식입니다. 우선 시식부터 해보세요.”
다들 뭔지 궁금해하며 향부터 맡아보고, 맛을 보기 시작했다.
“곱창 같긴 한데 그렇다기에는 너무 부드럽고, 또 계속 씹으면 고소한 뒷맛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맛도 신기하게 짠듯하면서 달고, 그러면서 매콤하기도 하고 하여튼 아주 맛있습니다.”
강진수의 평이었다.
“곱창은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요리하면 이렇게 부드러우면서 단짠단짠이 살아있을 수 있죠? 진짜 신기한 맛이에요.”
“이건 뜨거운 물에 데쳐낸 음식입니다. 그리고 아주 오래 졸인듯한데요? 중국 요리는 아주 과학적입니다. 살짝 데쳐낸 요리를 다시 졸이거나 기름에 볶아 식감을 살려줍니다.”
차민정과 오상준의 평이었다.
“이게 곱창이라고요? 내가 먹어본 곱창 요리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맛입니다. 중화요리에 곱창이라…. 정말 특색있는 요리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 김현수의 평이었다.
“지금 여러분들이 말씀하신 것들을 종합해보면 이 음식의 레시피가 나옵니다.”
그때 막 출근한 정다운이 접시에 담긴 음식을 넋을 놓고 쳐다봤다.
“정다운 매니저도 한번 먹어볼래요?”
“그래도 돼요? 이거 처음 보는 음식 같은데, 맛있어 보여요.”
서인우가 작은 접시에 덜어준 구전대장을 맛본 정다운이 수줍게 엄지를 들어 올렸다.
“이거 뭔데 꼭 곱창처럼 생겼어요. 정말 맛있어요. 제가 사실 곱창을 못 먹어서 처음에 비슷하게 생긴 모양 보고 좀 꺼려졌거든요. 그런데, 먹어보니 다행히 곱창은 아니네요.”
곱창을 곱창처럼 생겼다고 하면서, 또 그 곱창을 못 먹는 다는 사람이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
“그런데, 이거 뭐로 만든 거예요? 너무 부드럽고 감칠맛이 끝내줘요.”
“응, 정 매니저. 그거 곱창이야. 정확히는 돼지 창자.”
“네?”
정다운이 계속해서 입에 남아있는 맛을 느껴보려는 듯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내가 비위가 약해서 내장 같은 거 입도 못 대는데…정말인데….”
정다운이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강진수는 또 왜 그러는지.
정다운이 말할 때마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강한 리액션을 보여 주었다.
평가 결과 겨울 한정 메뉴로 구전대장을 올려보기로 했다.
조리과정이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요리지만, 손님들이 맛있게 먹어준다면 전혀 힘들지 않을 것 같았다.
서인우는 아빠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던 이 요리를 손님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판매는 다음 주 시작되는 11월부터 하기로 정하고 직원들에게 다시 한번 레시피를 알려주며 구전대장을 만들었다.
처음 만드는 요리에 전 직원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듯했다.
이번 새로운 메뉴에 대한 고민은 우선 일단락됐다.
문제는 베트남에 오픈할 [서풍 TWO]의 인테리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