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149화 (149/200)

제149화

카페를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선 윤지영 일행은 갑자기 다가오는 셰프복을 입은 남자와 마주하고 서 있었다.

그 남자의 입이 열리며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베트남어가 쏟아져 나왔다.

당황한 일행이 미스터 탄만 쳐다봤다.

“뭐라고 하는 거예요?”

“우선 음식은 맛있었냐고 물었솜니다. 그래서, 다들 맛있게 잘 목었다고 전달했솝니다.”

“good!”

오진수가 엄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남자가 다시 뭐라 말을 하는데,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눈빛이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순간 미스터 탄의 얼굴에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왜요? 뭐 문제 있어요?”

“조금 전에 왜 주방을 보자 했는지 물었솜니다. 그리고….”

미스터 탄이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모하는 사람들인데 주방을 보고 싶오하냐고, 혹시 식당을 내려고 하는 사람들이냐고 물었솜니다.”

셰프 복을 입은 남자의 눈치를 슬쩍슬쩍 보며 말하는 미스터 탄이 대답을 머뭇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안상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하려는 순간 미스터 탄이 재빨리 뭐라 대답을 했다.

그 말을 들은 남자가 그제야 살짝 구기고 있던 인상을 피기 시작했다.

“뭐라고 답하신 거예요?”

“여기 음식이 너모 맛있어서 훌륭한 셰프가 요리하는 모습을 직좁 보고 싶어서 그랬다고 말했솝니다.”

“그건 사실이 아닌데요? 우리는 여기 가까운 곳 백화점에 식당을 차릴 사람들입니다. 속이고 싶지 않습니다.”

윤지영이 지금까지 웃고 있던 미소를 집어넣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어차피 또 만날 사람도 아니지 않솝니까? 괜히 피곤하게….”

“이 사람도 우리 백화점의 손님이 될 수 있습니다. 정확히 전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기회에 인사도 하면 좋겠네요.”

유현주 또한 윤지영과 같은 뜻을 밝혔다.

살짝 얼굴이 붉어진 미스터 탄이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길게 뭐라 말을 하자, 그 남자의 미간이 순간 일그러졌다.

그 표정을 살핀 유현주가 유창한 영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MS 백화점 유현주입니다. 오늘이 베트남 첫날인데 덕분에 식사 맛있게 했습니다. 여기 이분들도 요리하는 분들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남자 또한 간단한 영어로 답하면서 안상훈과 윤지영의 얼굴을 다시 한번 쳐다봤다.

어색하게 서로 인사를 하고 식당을 나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제일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윤지영이었다.

“미스터 탄. 여기 카페는 어디가 맛있어요?”

잠시 언짢은 듯 보였던 미스터 탄이 금세 표정을 바꾸며 대답했다.

“여기 카페는 다 유묭합니다. 손님이 골고로 많은 곳이라서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가면 될 것 같솝니다.”

마치 정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각자 원하는 음료를 주문했다.

“안 셰프님, 이제 평가를 좀 해볼까요? 여기 중식당은 어땠어요?”

안상훈이 열심히 적어놓은 노트를 펼쳤다.

“다들 아시겠지만, 우선 여기는 한국식 중화요리가 아니라 중국 현지 음식이어서 우리 [서풍]과는 메뉴가 다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약간씩 맛이 달랐어요. 특히 처음에 먹은 냉채인 그 면인지 떡인지 그건 처음 보는 맛이었어요.”

“네, 그 요리가 가장 중국 현지 맛이 났던 것 같아요. 나머지는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도 잘 맞을 것 같았습니다.”

오진수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도 같아요. 특별히 현지화하지 않은 것 같은데…미스터 탄 생각은 어때요?”

“요기 식당은 중국식당입니다. 베트남 음식하고 달라요.”

윤지영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우리가 한국에서 베트남 음식을 먹으러 간다면 당연히 현지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걸 찾겠죠. 그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저는 [서풍]의 맛을 그대로 고수하는 게 좋겠다에 한 표입니다.”

“나도 한 표.”

유현주 또한 같은 생각임을 표현했다.

“좋아요. 내일 또 다른 식당 가보고 최종 결정들 하시고, 이제 여러분들이 일하게 될 우리 백화점을 가봅시다.”

오진수가 상황을 정리했다.

호텔에서 10분 채 되지 않았던 베트남 최고 럭셔리 백화점에서 5분 정도 가다 차가 멈췄다.

마치 두 개가 겹쳐 있는 듯한 건물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 건물은 아니죠?”

“여기 맞습니다. 호치민 시 가장 번화한 중심에 있는 이 건물을 우리 백화점에서 인수했습니다.”

조금 전 백화점보다는 건물이 살짝 낡은 느낌이 들었지만, 정말이지 가장 유동 인구가 많은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새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인테리어만 작업 중인 안으로 들어가보니 그 규모가 또 엄청났다.

“이 건물에 우리 MS 백화점이 들어가는 이상 우리 백화점 뿐아니라 같이 입점하는 모든 매장이 틀림없이 좋은 성과를 이뤄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오진수가 연신 건물을 두리번거리며 흥분한 듯 말했다.

“지금 계획으로는 1층에 해외패션과 화장품 매장이 들어올 겁니다. 그리고, 2, 3층은 패션, 4층은 생활가전이 들어갑니다.”

“그러면 식당들은 몇 층에 들어가게 되나요?”

“현재 4층에 슈퍼마켓과 푸드코트, 5층에 다양한 F&B 매장으로 구성될 것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서풍]이 들어갈 자리 한 번 볼까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윤지영이 5층을 누르자 유현주가 바로 3층을 다시 눌렀다.

“3층은 왜요?”

“우선 3층부터 구경하고 가시죠.”

도착한 3층은 화려하고 세련된 인테리어가 한참 진행 중이었다.

“여기 3층에 VIP를 위한 라운지를 계획하고 있어요. 앞으로 VIP 고객 관리와 멤버십 제도, 고객 서비스에 중점을 두고 백화점 운영을 할 계획이랍니다.”

처음 회의할 때 말했던 백화점 고객들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5층에는 이미 입점이 정해진 몇몇 업체가 인테리어를 진행하고 있었다.

윤지영이 여기저기 사진을 찍어 서인우에게 바로 전송했다.

그리고 잠시 후 통화버튼을 눌렀다.

-오빠, 사진 봤어?

“나 지금 바쁜데…. 강진수, 이거 마무리 좀 해줘요. 지금 사진 볼게.”

-그 사진에 나온 곳이 우리 가게가 들어갈 백화점 층을 찍은거야. 벌써 인테리어 작업 시작한 곳도 보이네.

“우리도 제시카 씨랑 계획 세워봐야겠다. 언제까지 해야 하는 지 알아봐 줘.”

-알았어. 나 없어도 별일 없지?

“바쁘다. 끊는다. 건강 조심하고.”

윤지영이 뚝 끊긴 핸드폰을 노려보더니 입을 삐죽 내밀었다.

“새로 직원 들어와서 이제 좀 한가해지나 했더니 여전히 정신없네요. 여기 인테리어는 우리가 해온 업체랑 해도 되는 거죠?”

유현주가 오진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부분은 더 정확히 알아보고 알려 드리겠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여기 현지에서….”

그때 미스터 탄이 단호하게 말을 자르며 치고 들어왔다.

“안 됩니다. 인테리어는 반드시 현지 업체가 해야 홉니다.”

* * *

항상 묵묵히 도왔던 안상훈이 자리를 비운 지금 서인우는 평상시보다 더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사부, 분명 혼자서도 해냈던 일인데, 안 셰프님 없다고 이렇게 정신이 없네.’

-그만큼 네가 의지를 많이 하고 있었다는 거겠지. 게다가 손님도 점점 더 많아지고 말이야.

강진수와 차민정이 그 역할을 대신하려 애쓰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았다.

게다가 오늘따라 단체 예약 손님까지 많아 더 정신없었다.

“곧 열두 명 단체 예약, 여섯 명 예약 손님이 동시에 들이닥칠 겁니다. 김현수, 오상준씨.”

“네, 사장님.”

“주문 들어오면 바로 인원수에 맞게 재료 준비 부탁합니다.”

“그리고 강진수, 차민정 씨.”

“네.”

“오늘 나하고 셋이 모든 주문 요리를 동시에 진행하도록 할 겁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절대 실수는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긴장한 티가 역력한 강진수와 달리 요리 경력이 많은 차민정은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밖이 소란스러운 걸 보니 예약한 손님들이 들이닥친 것 같았다.

다섯 종류 요리 각각 두 개씩에 인원수보다 둘 적은 열 개의 식사 주문이 들어왔다.

탕수육, 양장피, 칠리 새우 그리고 팔보채와 해물누룽지탕.

김현수가 바로 탕수육을 만들기 위해 고기를 튀길 준비를 하고, 오상준이 칼질을 시작했다.

강진수가 새우를 손질해 웍에 튀길 준비를 하며 동시에 칠리소스를 만들었다.

오상준이 각종 버섯과 청경채, 브로콜리를 편으로 썰어 준비해 주자 차민정의 해물누룽지탕 요리가 시작됐다.

편으로 썰어 놓은 해삼, 소라, 새우, 오징어 등 해물과 준비된 채소들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건져 놓고는 바로 기름을 넣고 달궈진 웍에 다진 파, 마늘, 생강을 넣어 볶았다.

향이 올라오자 청주와 간장을 넣고 데쳐놓은 재료들을 전부 넣어 볶으며 굴 소스로 간을 했다.

육수를 넣어 끓이며 전분물로 농도를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던 서인우가 작은 그릇에 덜어 간을 본 후 육수와 전분물을 약간 추가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현수가 노릇하게 잘 튀겨진 누룽지를 접시에 담아오자 해물누룽지탕이 금세 완성되었다.

많은 재료가 들어가는 양장피를 가장 먼저 완성한 서인우가 접시에 보기 좋게 담은 음식을 들고 룸으로 향했다.

손님들에게 인사를 한 후 소스를 부어 휘리릭 섞어 주자 요란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서인우가 뒤 돌아 룸을 나가려는 동시에 칠리 새우와 누룽지탕이 테이블에 올려졌다.

순간 서인우의 눈썹이 일그러지더니 주방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급하게 달려가는 서인우를 지켜본 정다운 매니저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강진수 씨. 칠리 새우 맛보고 내보낸 거 맞습니까?”

“네, 사장님.”

“분명 나에게 배운 우리 [서풍]의 맛이 났다고 확신합니까?”

“배운 대로 정확히 한 것 같은데….”

긴장한 강진수의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우선 시간 없으니까 주문 들어온 식사부터 만들도록 합시다.”

잘 삶아진 면에 짜장 소스를 붓고, 매콤한 향을 내뿜으며 볶은 채소와 해물에 육수를 부어 완성한 짬뽕 또한 막 삶은 면에 부어 홍짬뽕을 완성했다.

백짬뽕과 삼선볶음밥, 마파두부 덮밥이 완성되는 대로 홀 직원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날랐다.

“사장님, 코스 B 로 6인 주문 들어왔습니다.”

주문 화면을 확인한 서인우가 여전히 뭔가 화가 난 얼굴로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게살 스프, 유산슬, 칠리 새우, 탕수육 그리고 식사와 디저트로 구성된 코스 B.

조금 전 칠리 새우를 준비했던 강진수 가까이 다가간 서인우가 깨끗이 씻어 준비해 둔 웍을 쳐다봤다.

“게살 스프 빨리 준비하도록 합시다. 김현수 씨 칠리 새우 튀겨 주세요. 강진수 씨는 조금 전 만든 소스 다시 한번 만들어 보세요. 내 앞에서.”

이제 온 얼굴이 땀범벅인 강진수의 얼굴이 점점 붉게 변하고 있었다.

웍에 고추기름을 넣고 다진 파와 마늘을 넣어 볶은 후 토마토 케첩과 굴 소스를 넣은 강진수가 서인우를 슬쩍 쳐다봤다.

서인우는 여전히 무서운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강진수가 소스를 만드는 과정을 보고 있었다.

게살 스프를 만들고 있던 차민정과 유산슬 재료를 손질하던 오상준과 김현수 모두 처음 보는 서인우의 화난 모습에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강진수가 작게 다진 청홍피망을 넣고 식초를 넣자마자 서인우가 잽싸게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조금 전 룸에 나간 요리에도 식초를 이렇게 넣은 겁니까? 그래서 시큼한 향이 과하게 났던 거였냐고?”

서인우의 목소리가 주방 전체에 울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