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146화 (146/200)

제146화.

이준형의 눈동자가 갈 길을 잃은 듯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김서원 씨 우리와 계속 함께하기로 했잖아.”

“어? 어, 그랬지. 응. 그러기는 했지.”

당황한 이준형이 말을 얼버무렸다.

“[서풍 TWO] 컨셉을 최대한 살려서 하기로 했어요.”

“지영씨도 이제 더 바빠지겠네. 잠실 점 운영하면서 MS 백화점 식품관 판매도 계속해야 하니까.”

“정신없겠죠. 그래도 요즘 살아있는 것 같고 좋아. 명옥 언니랑 은선 언니가 정말 성실하고, 새로 들어온 직원들도 기술을 배우려고 아주 열심이에요.”

“다행이네.”

-그 명옥 누님한테 만두소 비법을 알려준 건 나라는 사실 꼭 밝혀라.

‘엄밀히 말하면 나 서인우지. 그 레시피를 개발한 사람이니까.’

-내 칼솜씨 아니면 불가능했던 거거든?

‘그래봤자 중요한 건 레시피지.’

-너 화장실로 잠시 따라와.

서인우가 자기도 모르게 픽 웃음을 웃었다.

“오빠. 내가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가끔 멍한 표정으로 한참 있다가 웃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그러는 거 여러 번 봤거든.”

-너 딱 걸렸다. 쌤통이다.

“내가?”

“그래, 인마. 나도 여러 번 봤어.”

“내가 워낙 상상력이 풍부해서 이런저런 상상을 자주 해서 그래. 특히 요리할 때는 더하고.”

윤지영이 이해 안 된다는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뜨고 서인우를 주시했다.

“갑자기 가게가 커지고 성공하다 보니까 정신이 좀 이상해진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작년에 쓰러졌을 때 머리에 충격이 있었나 싶기도 하단 말이야.”

“나 아무 문제 없으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준형이 너는 새우면 사업 별 차질 없이 잘되고 있는 거지?”

“교묘하게 말 돌리는데…이번만 넘어가 주지. 내가 말이야 지난달 부산에 있는 다섯 개 마트에 입점을 성사시켰지 뭐냐? 그 어려운 걸 이 엉아가 했단 말이지.”

“정말 대단한데? 축하해요.”

윤지영이 이준형의 기분을 맞춰주며 오히려 더 기뻐했다.

그게 실수였다.

신이 난 이준형의 영업 스토리가 장장 20분이 넘게 이어졌다.

-오랜만에 막 생긴 와꾸 좀 보려고 따라왔더니 여전히 시끄럽네.

더는 못 참겠는지 윤지영이 이준형의 말을 자르며 새로운 안주를 시켰다.

갑자기 오돌뼈를 오독오독 씹고 싶다나 뭐라나.

“오빠, 뭐 의논할 거 있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 우선 새우면 사업 진행 상황이랑 서풍 만두 사업 진행 상황부터 확인한 거고, 오늘 내가 보자고 한 이유는….”

이준형과 윤지영이 궁금하다는 듯 몸을 살짝 가까이하며 귀를 기울였다.

“오늘 유현주 팀장하고 식품부 구본석 부장님이 마감 시간에 식당에 찾아왔었어.”

“왜? 나가래?”

이준형이 커다란 닭고기를 급하게 꿀꺽 삼키며 물었다.

“여기 백화점에서 우리 서풍이 나가면 그게 얼마나 더 손해인데요? 이제 서풍은 오픈부터 마감까지 줄 서지 않으면 못 먹는 곳이야.”

“아니, 갑자기 둘이 찾아왔다니까 놀라서….”

“여기 백화점이 베트남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다는데, 우리 [서풍]도 함께 하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해왔어.”

“베트남?”

갑자기 듣는 해외 진출 얘기에 윤지영도 이준형도 꽤 놀란 듯 눈이 커져 동시에 외쳤다.

그리고 또 서인우에게만 들리는 다른 목소리.

-지금 나더러 베트남까지 가자는 얘기냐? 나 외국어 약한데….

‘내일 오전에 둘이 있을 때 다시 얘기해.’

새로 받은 맥주를 크게 들이키고 난 이준형이 가방에 넣어둔 테블릿을 꺼내 펼쳤다.

“지금 여러 유통 업체들이 동남아 진출을 많이 계획하고 있어. 그 말은 가능성은 있다는 거지. 게다가 우리가 진출 준비를 다 하는 건 힘들지만, 백화점 진출에 우리는 그냥 지금처럼 입점 준비를 하는 거지, 안 그래?”

“그렇긴 한데, 오빠는 작년 내내 제안을 정말 많이 받았지만, 절대 하지 않았잖아? 그런데, 베트남에 진출하면 이제 [서풍]도 프랜차이즈를 시작한다는 얘기야?”

윤지영의 질문에 이준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크게 성공할 기회를 져버리는 서인우를 이해하지 못했던 둘이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빠의 수제자인 안상훈 셰프가 이제 내 요리를 거의 똑같이 만들어 내. 그래서, 2호점을 준비하고 있었던 거고.”

“그래서 더 요즘 안 셰프님한테 혹독하게 연습시켰던 거구나. 강진수도 그렇고.”

“진수는 9개월 제대로 훈련했어. 이제 본격적으로 [서풍]의 맛을 흉내 내기 시작했지.”

“새로 온 직원들도 실력이 만만치 않다면서?”

서인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면접에서 최고의 실력을 보여줬던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그냥 중식이 아닌 [서풍]의 중식을 똑같이 만들어 내야 한다는 거야.”

윤지영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처음 시장통에 가게 오픈했을 때부터 장보고 재료 준비하고 요리까지 오빠 혼자 다 해냈잖아. 사실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오빠가 해내더라.”

-이것 참 내 능력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인데, 알려줄 방법이 없네.

‘맞아, 사부가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지.’

-뭐 솔직히 인우 네가 워낙 타고난 감각이 있는 데다 성실해서 가능했지. 매일 4시간도 채 못 자면서 그 모든 걸 다 해냈으니까.

재료 준비부터 최종 요리까지 서인우 손을 다 거쳐 갔었다.

물론 지금 주방의 직원이 훨씬 많아졌지만, 그래도 최종 맛을 내는 건 무조건 서인우와 안상훈 몫이었다.

그게 한결같은 맛을 제공하기 위한 최선이었다.

이준형이 꾹 다문 입을 앞으로 내밀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뭔가 결심한 듯 딱 붙어 있던 입을 조심스럽게 떼었다.

“좋아, 우리 한번 해 보자.”

“베트남 진출을 찬성한다는 얘기야?”

이준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나도 정말 생각 많이 해봤는데 ….”

서인우가 이준형과 윤지영을 번갈아 쳐다봤다.

“둘 다 진짜로 찬성한다면, 대신 조건을 내걸 거야.”

“조건?”

“MS 백화점 측에 내걸 조건 말이야.”

이준형과 윤지영이 동시에 서인우를 응시했다.

서인우의 눈동자가 순간 반짝하고 빛나는 것 같았다.

* * *

오픈 시간 전 유현주 팀장 그리고 구본석 부장과의 미팅시간.

11층 회의실에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왼쪽으로 서인우와 이준형, 윤지영이 오른쪽으로 유현주와 구본석이 앉았다.

“아직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결정을 하셨나 보네요?”

“베트남 진출을 결정하기 전에 몇 가지 확인할 것이 있어서 미팅을 제안했습니다.”

“세 분 사장님이 딱 버티고 앉아계시니까 긴장되네요.”

“서인우 사장님은 이제 저희 대표님이세요.”

“와! 대표님. 정말 부럽습니다.”

구본석이 웃으며 앞에 놓인 커피를 들이켰다.

커피까지도 어디서 샀는지 점보 사이즈를 벌컥벌컥 마시는 모습을 보니 신기해 보였다.

서인우도 같이 커피를 조금 들이켜고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희 서풍은 아시다시피 우리 셋이 시작해서 지금은 [서풍 TWO], [서풍 새우면], [서풍 만두] 이렇게 세 개의 사업을 같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중 새우면은 박정원 대표님과 동업하신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베트남 진출을 한다면, 백화점 식품관에 우리 [서풍 새우면]과 [서풍 만두]의 입점을 조건으로 제안하고 싶습니다.”

“네?”

유현주와 구본석이 동시에 쳐다봤다.

이준형이 서인우의 말에 부연 설명을 시작했다.

“저희 [서풍 새우면]과 [서풍 만두]의 인기는 이미 잘 아실 겁니다. 그 두 제품이 식품관에 입점한다면 백화점 측에도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거라는 판단입니다.”

“허허.”

구본석이 호탕하게 웃으며 또다시 커피를 벌컥 들이켰다.

“여기 [서풍] 식구들이 이제 다 완전한 사업가가 되셨습니다. 지금 말한 두 제품 전부 워낙 인기 메뉴니까 분명 베트남에서도 먹힐 거라는 거 인정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구본석이 세 명의 얼굴을 천천히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워낙 음식값이 싼 나라 아닙니까? 그 가격에 과연 팔릴 수 있느냐입니다. 단가가 너무 높아요.”

그 점 또한 생각했던 부분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윤지영이 답을 내놓았다.

“여기서는 [새우면]과 [서풍 만두]가 누구나 쉽게 접하고 먹을 수 있는 서민 음식입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전략을 다시 해야겠죠. 상류층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화 전략 말입니다.”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유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우리가 베트남에 진출하는 백화점의 주요 타겟층은 프리미엄 VIP 고객입니다. 그러니 충분히 구매력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제 생각에는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는 있는 것 같은데요?”

“음…그럼 이 문제는 우리 둘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빠른 시일 내에 내부 검토회의를 거친 후 다시 연락드리는 걸로 합시다. 괜찮으신가요?”

“네, 감사합니다.”

회의를 마치고 잠시 로비에 서서 얘기하는 이준형과 윤지영의 얼굴이 여전히 상기되어 있었다.

“백화점 내부 회의 결과를 기다려봐야겠지만, 우리도 그날 술 마시며 얘기한 것처럼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거야. 다들 알고 있지?”

“새우면은 냉동 상태로 판매만 하는 일이라 배송에 조금 더 신경을 쓰면 되지만, 문제는 [서풍 만두]와 [서풍 TWO]다.”

서인우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있었다.

“인우야, 뭐 걸리는 거라도 있어?”

“내가 항상 말했지만, 똑같은 레시피 똑같은 재료라 해도 요리사의 마음가짐이나 스킬에 따라 맛은 완전히 달라지는 거야.”

“뭘 걱정하는지 알아. 그래서 지금까지 얼마나 고생했는지도 알고.”

윤지영이 말을 더했다.

“[서풍 만두]는 걱정할 것 없어. 만두소 레시피를 정확히 지켜서 만들기 때문에 절대 다른 맛이 나올 리 없다고. 문제는 그걸 만들어 낼 인력이지.”

“그래도 잠실 점 오픈하면 직원도 충원되니까 교육할 시간이 충분히 있겠네요. [서풍 TWO]도 이제는 전과 다른 상황 아니냐?”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직원들이 [서풍]의 모든 메뉴를 섭렵해야 내가 안심하고 주방을 비울 수 있으니까.”

“너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 조금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좀 편하게….”

서인우가 잠시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는 이준형을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안 해. 하지만, 조금 힘들더라도 손님들에게 똑같은 맛을 선보이고 싶은 거지.”

“그래, 다들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자, 그럼 각자 일터로 가봅시다. 오늘 하루도 힘내세요.”

서로 인사를 나눈 후 각자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갔다.

서인우는 주방 직원들에게 최근 들어 손님들이 부쩍 더 찾기 시작한 치즈 치킨밥을 시연해 보여 주었다.

“아시다시피 여기 백화점 입점 심사에서 우승한 메뉴입니다. 재료를 볶아 밥을 쪄서 다시 오븐에 구워야 해서 시간이 다소 걸리는 게 단점입니다.”

“미리 밥을 쪄놓은 후에 주문이 들어올 때 치즈 올려 굽기만 하면 안 되나요?”

김현수의 질문에 오상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금 쪄낸 맛과 미리 쪄서 나중에 내놓는 맛은 분명 다를 것 같은데….”

“네, 번거롭고 시간이 좀 걸려도 주문 들어오는 즉시 바로바로 요리해서 가장 맛있을 때 내놓는 걸 원칙으로 합니다. 그래서, 오픈 전에 오늘은 다들 치즈 치킨밥을 연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불려놓은 찹쌀을 꺼냈다.

그리고는 바로 닭 다리 살과 닭 날개, 표고버섯, 당근, 양파 등 재료를 작게 잘라 준비했다.

선배, 후배, 불판, 면장 구분 없이 모두 똑같이 서풍의 치즈 치킨밥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손질했다.

웍에 기름을 두르고 표고버섯과 양파, 당근을 볶다가 같은 크기로 손질해놓은 닭고기를 넣고 굴 소스와 간장을 첨가해 볶았다.

서인우가 미리 씻어놓은 연잎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연잎에 불린 찹쌀을 넣고 그 위에 볶은 재료를 올린 후 다시 찹쌀을 얇게 펴서 올렸다.

연잎으로 꼼꼼하게 싼 재료를 찜기에 올려 찹쌀이 다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

잘 쪄진 치킨 찹쌀밥에 샐러드 소스를 얇게 펴 바른 후 모짜렐라 치즈와 체다 치즈를 섞어 골고루 덮어주었다.

“여기까지 만드는 순서와 재료들의 양을 잘 기억하세요. 자, 이제 오븐에 굽기만 하면 완성입니다.”

예열된 오븐에 치즈 치킨 밥을 넣었다.

“안셰프님, 여기 접시에 칠리소스 꽃 좀 부탁드립니다.”

모두 안상훈 곁으로 다가와 그가 소스로 화려한 꽃을 만들고 있는 모습을 넋을 놓고 쳐다봤다.

“지금 이 칠리소스 꽃을 다들 빈 접시에 똑같이 만들어봐 주세요.”

“저는 미술은 정말 꽝이었는데…. 그냥 별이나 회오리 이런 거 그리면 ….”

강진수가 부쩍 작아진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응, 안돼. 여기 안 셰프님이 그린 꽃을 똑같이 해내지는 못하더라도 노력은 해봅시다.”

다들 한숨을 쉬며 선뜻 시작하지 못하고 주저주저하고 있을 때였다.

오상준이 손에 칠리소스 통을 들고 눈빛을 번쩍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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