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145화 (145/200)

제145화.

서인우의 이어지는 답을 기다리며 박인식이 앞에 놓인 차를 벌컥벌컥 마셨다.

“저는 요리사입니다. 모든 것은 실력으로, 제가 만든 음식의 맛으로 평가받는 겁니다.”

“그, 그렇죠.”

“이미 방송에서 했던 요리대회에서 우승하며 [만가복] 대신 전 국민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다시 붙은 MS 백화점 입점 심사에서도 [만가복]을 거뜬히 젖히고 지금 이 자리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거고요.”

“그렇네요. 결과적으로 벌써 두 번째 경쟁을 다 이기셨네요.”

서인우가 깊고 기다란 눈으로 다시 한번 박인식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요리가 전부인 가진 거 없는 제가 [만가복]을 이길 수 있었던 건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실력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그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은….”

“하루에 4시간 도 채 못 자면서 직접 새벽시장까지 돌며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 [서풍]을 찾아주는 모든 분께 최고의 맛을, 바로 아버지가 해주셨던 감동의 맛을 느끼게 해주겠다는 그 일념으로 말입니다.”

박인식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건 제가 인정합니다. 정말 감동을 주는 맛이었습니다. 그러면, 서인우 씨의 목표가 [만가복]이 아니었습니까?”

“[만가복]이요? 내 인생을 걸고 죽어라 하고 노력하는 목표가 [만가복] 따위 일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서인우의 말을 받아적던 박인식이 잠시 멈칫하는 게 보였다.

“제 목표는 단 하나입니다. 우리 [서풍] 식구들의 동반성장!”

“네? 좀 설명해주시면….”

“나에게 인생을, 청춘을 걸고 [서풍]의 맛을 찾고 지키기 위해 애써주는 우리 식구들 누구 하나 빠짐없이 다 같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게 제 목표입니다.”

“다시 말해 혼자 잘 먹고 잘살 생각은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서인우가 매력 쩌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 식구들한테는 어리지만 제가 아버지입니다. 그들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른 그런 아버지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할 겁니다. 제 아버지가 해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궁금했던 부분은 다 풀린 것 같네요. 정말 마지막으로 하나 더.”

“네. 말씀하세요.”

“오늘 날씨에 추천하는 메뉴는 뭘까요? 오면서 계속 뭘 먹어볼까 고민했는데, 정하지 못해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박인식을 보고 서인우도 같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밖이 상당히 추워졌으니 따뜻한 국물 요리가 좋겠네요.”

“아무래도 그렇죠? 그럼 전에 안 먹어본 삼선 우동 하나 부탁합니다.”

“네, 맛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주방에 들어간 서인우는 다른 직원들이 주문 들어온 요리를 준비하는 동안 차민정에게 삼선 우동을 만들도록 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청경채와 죽순, 송이버섯과 전복을 손질했다.

-송이 전복하려고?

‘날씨가 추워지는데 기운 내시라고.’

-전복에 꽃 좀 피워봐?

순식간에 전복에 칼집을 내어 재료를 준비한 서인우는 웍에 기름을 부어 달군 후 채를 친 파와 생강, 마늘을 넣어 향을 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옆에 있는 웍의 끓는 물에 남은 재료들을 샤라락 데쳐 청경채를 제외하고 모두 넣어 볶았다.

간장과 굴소스 등 향신료를 넣어 간을 한 후 마지막에 청경채를 넣고 전분물을 조금씩 넣으며 웍을 위아래로 잽싸게 흔들어 볶았다.

반지르르 윤기가 흐르는 요리를 접시에 담아내는 동안 차민정이 삼선 우동을 한창 만들고 있었다.

작은 그릇에 덜어 맛을 본 서인우가 소금 한 꼬집을 더하고 후추를 톡톡 두 번 두드려 넣었다.

김현수가 면을 만들고 있는 사이 주방을 나선 서인우가 방금 만든 송이 전복요리를 박인식 평론가에게 가져갔다.

“날씨가 매우 쌀쌀해졌습니다. 이건 건강 잘 챙기시라는 의미로 제가 드리는 서비스입니다. [서풍]의 맛을 온전하게 느끼고 그대로 전해주시는 글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꼴깍.

박인식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입구까지 들릴 듯 크게 났다.

“이렇게 귀한 요리를 해주시다니, 요거 뇌물입니까?”

“우리 식구들 기운 없는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 제가 직접 한 번씩 해주는 요리입니다. 그러면, 제가 우리 식구들한테 뇌물을 쓴 걸까요?”

“하하, 그건 아니죠. 그 뜻을 헤아리며 맛있게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돌아서는 서인우의 뒷모습을 보며 박인식이 작게 혼잣말을 했다.

“힘든 일을 겪더니 아주 많이 강해졌군. 소신 있는 건 알았지만, 단단해졌어.”

그리고는 접시에 놓인 요리의 향을 맡았다.

“이야, 송이 향이 죽인다. 냄새만 맡아도 벌써 기운이 나는듯하네. 같이 일하는 식구들을 위한 요리, 아버지의 마음…. 아주 제대로 전해지는 향이야.”

그 뒤로 그의 입은 먹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것도 초집중.

* * *

마감 시간이 다 되어갔을 때 [서풍 TWO]를 찾은 유현주가 이번에는 구본석 부장과 동행했다.

“사장님께 말씀드려놨습니다. 잠시만요.”

정다운이 둘을 빈 테이블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어쩐지 더 불룩해진 듯한 구본석의 배에서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부장님. 저녁 안 드셨어요?”

유현주가 웃으며 물었다.

“저녁 먹었지. 하지만, 맛의 본좌인 이 구본좌의 코에 음식 냄새가 들어가자마자 자동으로 작동하는 거야.”

“대학 때나 지금이나 똑같네. 직원들 앞에서는 반말하지 마.”

“나도 그 정도는 알거든. 아 진짜 조금 일찍 올라와서 짬뽕 한 그릇 때릴 걸 그랬나?”

마지막 손님이 막 계산하고 나가 홀이 조용했다.

“안녕하세요. 저 때문에 퇴근도 못 하시고 죄송합니다.”

“서인우 씨가 워낙 바쁘니 우리가 맞춰야죠.”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는 서인우에게 유현주가 먼저 말을 시작했다.

“서인우 씨와 의논할 일이 있어서 뵙자고 했습니다.”

정다운이 센스 있게 차를 준비해 내왔다.

“감사합니다. 이 차가 짬뽕 국물이면 좋을 텐데….”

구본석이 큰 소리로 웃으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용건을 말씀드리자면, 우리 백화점이 베트남 진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젊은 층 소비력이 높고 인구 증가율도 높은 편이라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얘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서인우가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혹시 ….”

“맞아요. [서풍]도 같이 베트남에 진출해보자는 제안을 하려고 왔습니다. 홍보부, 식품부 모두 회의 결과 가장 큰 성장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해외 진출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베트남에서 틀림없이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내가 감이 팍 오거든.”

구본석이 큰 배를 실룩거리며 하는 소리가 빈 홀에 울렸다.

배가 커진 만큼 소리통도 더 커진 듯했다.

유현주가 예상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준비해온 서류를 내밀었다.

“듣자 하니 프랜차이즈 문의가 빗발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 좋은 기회를 거절하는 이유 또한 잘 알고 있어요.”

서인우는 조용히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 베트남 진출을 제안하는 이유는 이미 [서풍 TWO] 2호점을 열 수 있는 준비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기 때문이죠.”

유현주의 예리함에 서인우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 서풍의 성공을 바라는 열혈 팬인 거 잊으셨어요? 항상 정보 모으고 조사하고 있습니다.”

하긴, 문 닫기 바로 전인 이전 가게에서 술에 취해 여기 백화점 입점을 제안해줬던 고마운 사람, 그게 바로 유현주였다.

그때는 물론 [만가복]의 직원이었지만….

최만수 회장의 외손녀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정말 엄청나게 놀라고 당황했었다.

지금은 많은 도움을 받는 백화점의 정보통이기도 했다.

“해외 진출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오늘 직원들과 충분히 의논해보고 이번 주 안에 답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 마디 더하자면, 우리 백화점하고 같이 들어가는 거라 여러 가지 면에서 장점이 많이 있을 겁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세요.”

“네, 제안 감사합니다.”

유현주와 구본석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가게 정리를 마친 정다운이 힐끔 쳐다보며 눈치를 봤다.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구 과장님, 아니 이제 부장님이죠. 그분 목소리가 워낙 커서 다 들렸어요.”

“고민 좀 해보고 다음 회의 때 의논해봐야지. 나 때문에 다운 씨도 퇴근이 늦어졌네.”

“아니에요.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정다운이 자리를 뜨자마자 윤지영으로부터 문자가 들어왔다.

[오빠 퇴근했어?]

[아니, 아직 식당이다. 너는?]

[나도 이제 막 정리가 끝나서 할 얘기가 있는데….]

[잘됐네. 나도 의논할 일 있어. 준형이 연락해보고 셋이 잠시 보자.]

[알았어. 준비하고 내려올 때 연락해 줘. 같이 움직이게.]

[그래.]

서인우가 마지막 문자를 보내고 바로 이준형의 이름을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어디냐? 많이 바쁘지?”

-정신없다. 나 영업이나 유통 쪽으로 정말 빼어난 인재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내가 우리 직원들 여럿 먹여 살린다는 거 알아 몰라?

이준형의 목소리에 생기가 넘쳐흘렀다.

“그래서 아직 퇴근 못 해? 의논할 일이 있어서 지영이랑 셋이 잠시 봤으면 싶은데….”

-나 거의 집에 도착했는데? 진짜 능력 있는 사람은 근무 시간에만 빡시게 일하는 거지. 칼퇴 아니겠냐?

“그럼 이 근처로 다시 와라. 중요한 안건이 있어.”

-이 엉아의 도움이 필요하군. 지난번 지영씨도 말이야….

“알았어. 만나서 듣자. 그러면 우리 전에 갔던 백화점 뒤 호프집에서 보자고. 도착하면 전화해.”

-오케바리. 내가 영업이란 무엇인지 확실히 교육해 줄게.

전화를 끊었는데도 계속 이준형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마지막 점검을 위해 주방으로 들어간 서인우의 앞에서 중식도가 빙그르르 돌았다.

-너 요즘 인기 있는 이 노래 알아?

“갑자기 무슨 노래?”

-대화가 필요해! 너 요즘 너무 달라졌어!

중식도가 어디서 들었는지 노래를 흥얼거렸다.

서인우가 피식 웃어 보이자 중식도가 다시 한번 빙그르르 돌았다.

-요즘 너 너무 바빠져서 이 사부를 정말 외롭게 한다는 사실 알아?

“사부는 항상 나와 같이 있잖아? 그래서 사부도 바쁘고.”

-야, 내가 이제야 쇼윈도 부부니 음소거 부부니 하는 게 왜 생기는지 확실히 이해했다는 거 아니냐?

“뭐?”

-둘이 같이 있지만 이건 대화도 없고…. 그러니, 당연히 애정도 없고….

“어째 올해는 작년보다 더 가을을 타는 것 같네.”

-그러니까 오늘은 나랑 놀자.

“오늘 준형이랑 지영이 만나기로 했는데?”

-그러면 나두나두. 오랜만에 막 생긴 애도 좀 보자. 하다못해 키우는 강아지도 산책을 시켜주는데, 나는 무슨 팔자가 맨날 주방에 박혀서….

“알았어. 오늘은 내 가방에 넣어 같이 나가자고. 대신 사고 치지 마.”

갑자기 조용해져서 주위를 둘러보니 벌써 가방 안에 쏙 들어가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말 못 말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고 치면 안 돼!”

윤지영과 둘이 만나 자주 갔던 백화점 뒤쪽에 있는 호프집에 도착했다.

-이야, 여기 물 좋네.

먼저 도착한 이준형의 앞에 벌써 오백짜리 생맥주잔이 반 넘게 비어있었다.

매콤한 골뱅이에 잘 삶아진 탱글탱글한 쫄면이 묻혀 있는 커다란 접시 하나와 이준형이 가장 좋아하는 후라이드 치킨이 나오자 테이블이 꽉 찬 듯했다.

지난달까지 또 새로운 마트에 영업하느라 바빴던 이준형 때문에 셋이 같이 보는 게 정확히 한 달이 넘었다.

“우리 오랜만에 뭉치네.”

이제 제법 사업가 냄새가 나는 이준형이 맥주잔을 들어 보였다.

우선 반가운 마음을 잔뜩 담아 셋이 쨍하고 잔을 부딪쳤다.

“지영 씨는 잠실점 준비는 잘 되고 있어요?”

“네. 제시카가 인테리어 컨셉 잡아 주기로 했어요.”

제시카라는 이름이 나오자 놀란 듯한 이준형의 눈이 서인우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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