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화.
안상훈과 강진수가 어느 정도 [서풍]의 맛을 내기 시작하면서, 서인우는 계획대로 주방의 인원을 늘렸다.
공고를 보고 몰려든 사람들의 수가 어마어마했었다.
서인우는 그중 최종 면접에 합격해 오늘부터 합류하기로 한 김현수, 차민정, 오상준을 나란히 세워놓고 준비해 둔 명찰을 나눠 주었다.
“늦게 연락드렸는데 이렇게 흔쾌히 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42세의 김현수는 충무로에 있는 출판 관련 작은 회사에서 일하다 사장이 장사를 접으면서 동네 중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올해 2년 차였다.
어려서부터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독립해 서울에서 혼자 살며 익힌 기술이 만만치 않았다.
차민정은 올해 32세로 꽤 큰 중식당에서 일한 지 5년 차였다.
서인우가 참가했던 요리경연대회를 본 이후로 그냥 중식당 셰프가 아닌 반드시 [서풍]의 셰프가 되고 싶다는 꿈 하나로 다시 시작하는 열정우먼 이었다.
올해 27세로 서인우와 동갑인 오상준은 특이하게 과학영재 출신으로 카이스트를 중퇴한 수재였다.
요리는 과학이라는 말을 하며 특히 [서풍]의 요리를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싶다는 그는 날카로운 눈썰미를 자랑하는 요리 1년 차였다.
사실 중식도의 능력과 서인우의 감각, 성실함 덕분에 지금까지는 서인우 혼자 그 모든 포지션을 다 해왔었다.
백화점에 입점하면서 규모가 커져 그나마 안상훈의 도움을 받은 게 전부였다.
“다들 전에 면접 오셨을 때 보셨지만, 저희 [서풍]은 지금까지 일반 중식당처럼 파트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안 그래도 백화점이라 규모도 큰데 제가 일했던 식당보다 주방 직원이 적어서 놀라기는 했었습니다. 그 많은 걸 셋이 다 해내고 있었다니.”
경력 많은 차민정이 덧붙였다.
주방 한쪽에서 슬쩍슬쩍 쳐다보고 있던 강진수와 눈이 마주친 서인우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수 씨. 이쪽으로 오세요.”
“작년에 있었던 면접에서 유일하게 들어오게 된 친구입니다. 이름은 강진수. 지금은 저와 안상훈 셰프님, 그리고 여기 강진수 그렇게 셋이 모든 요리를 해내고 있습니다.”
김현수와 차민정, 오상준 모두 어린 강진수가 벌써 요리를 하고 있다는 얘기에 무척 놀란 듯 보였다.
“일의 능률을 위해서 간단히 파트를 나누기는 하겠지만, 우리 [서풍]은 여기 주방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이 전 파트 대체 가능한 능력이 있다는 걸 믿고 있습니다. 자신 없으신 분은 지금 말씀하세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서풍]의 요리를 배울 수 있는 것만으로 영광입니다.”
모두 의지에 찬 눈빛을 보여 주었다.
“차민정 씨, 여기 오기 전에 포지션이 어떻게 됐었죠?”
“불판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김현우와 오상준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식당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불판장을 맡으셨으면 거의 모든 요리를 다 마스터 하셨는데, 여기서 새로 시작하셔도 정말 괜찮겠습니까?”
“[서풍] 요리는 초보니까요. 대신 기본기는 확실히 다져놨다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서인우도 다른 사람들도 다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오상준 씨와 김현수 씨는 다 경력 1, 2년 차에 면접 결과 실력도 비슷하다고 판단됩니다. 여기서는 서열이 아닌 그냥 파트로 면장과 칼판장을 나눌 겁니다.”
오상준이 먼저 손을 번쩍 들었다.
“저는 감히 기회를 주신다면 칼판을 맡고 싶은데…안될까요?”
김현수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보통의 중식당에서는 굳이 서열을 따진다면 면장이 가장 아래, 즉 막내에 속했다.
나이도 가장 많고 경력도 오상준보다 1년 많은 김현수가 불만을 가지는 건 당연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 [서풍]에서는 절대 서열이 아닙니다. 참고로 저는 직접 새벽에 장을 보는 것으로 시작해 세 파트를 다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김현수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그럼 제가 면장을 맡는다고 해도 다른 파트 일도 배울 수 있는 겁니까?”
“당연합니다. 제 목표는 여러분들이 독립해서 일인 식당을 차릴 수 있는 겁니다. 어찌 보면 그래서 더 힘들 수도 있습니다. 대신 두 가지는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세 명의 아니 강진수까지 네 명의 눈이 서인우에게 레이저를 쏘아댔다.
“하나는 여기에서 열심히 [서풍]의 맛을 똑같이 낼 수 있게 일해 주신다면 여러분들에게 2호, 3호, 4호 [서풍]의 이름으로 가게를 낼 수 있게 도와 드리겠습니다.”
“우와!”
“좋았어!”
“또 한 가지는 여기 [서풍]에는 따로 보조셰프가 없습니다. 그 말은 기본부터 최종 요리 완성까지 다 섭렵할 수 있는 능력과 성실함을 원합니다. 그에 대한 대가는 월급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고함과 함께 박수 소리가 온 주방에 가득했다.
한참 손뼉을 치던 오상준이 다시 손을 들며 질문을 했다.
“그러면 저기 강진수 씨라고 했나요? 그분은 파트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처음 말씀드렸듯이 저기 안상훈 셰프님하고 여기 강진수 씨, 그리고 저는 이미 [서풍]의 모든 요리를 다 해내고 있습니다. 물론 강진수 씨는 아직 더 배워야 하지만, 여러분보다 선배라는 건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얼빠진 듯한 표정의 강진수가 눈만 끔뻑끔뻑하면서 서인우를 쳐다봤다.
“강진수 씨는 차민정 씨와 함께 불판을 맡아줄 겁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칼판도 겸해야겠죠?”
“네, 뭐든 잘할 자신 있습니다.”
벌겋게 상기된 볼을 씰룩거리며 강진수가 큰소리로 답했다.
“면접 때 대충 말씀드렸던 내용입니다. 그래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불만이 있으신 분은 말씀해 주십시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면 미리 작성해놓은 계약서에 싸인 하시고, 오늘 이 시간부터 바로 작업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면접 때 이미 각오하고 왔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열정 하나는 어디 가도 빠지지 않았다.
이제 본격적인 서풍의 대형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문제는 중식도를 만나고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다 해냈던 서인우의 맛을 과연 똑같이 낼 수 있을지 더 큰 과제가 남아있긴 했지만….
“자! 그러면 시작해 볼까요?”
서인우가 중식도를 잡았다.
-어떻게 해줄까? 초장에 기를 확 죽여줄까?
‘다른 때보다 더 정확하고 빠르게. 기선제압 해야겠지?’
-좋았어. 아따 재밌는거,
‘사부, 그건 또 무슨 말투야?’
-만두 아줌마한테 배웠는디, 좀 더 배워야 하는데 없으니까 쫌 거시기허네.
‘정말 못 말린다. 장난 그만하고 재료 준비 시작!’
-오케바리.
서인우가 중식도를 잡고 깨끗이 씻어둔 양파와 배추, 양배추 등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마치 기계로 자른 듯 정확한 크기와 칼날이 보이지 않는 엄청난 속도에 5년 차인 차민정 뿐 아니라 김현수, 오상준 모두 입을 벌리고 넋을 잃고 보고 있었다.
단 한 사람 강진수만이 그동안 꾸준히 연습한 대로 서인우와 거의 비슷하게 채소를 손질하며 경쾌한 도마소리를 내고 있었다.
속도는 따라오지 못했지만, 나름 비슷한 크기와 빠른 속도에 세 명의 고개가 절로 숙어졌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각자 자신의 중식도를 들고 채소 및 해물, 고기 등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오픈을 30분 앞둔 지금 주방은 또다시 경마장이 된 듯 여기저기 말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새로 정비된 [서풍 TWO]에 첫 주문이 들어왔다.
백 짬뽕 둘, 먹물 만두 하나, 양장피 하나.
아직 주방 안에서도 서로 어색하고, 홀 직원과도 낯설었지만, 모두 자기가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다.
김현수가 끓는 물에 만두를 삶아내는 동안 강진수가 백 짬뽕을 만들었다.
옆에서는 서인우가 양장피를 만들기 위한 채소와 해물 손질을 눈 깜짝할 사이에 해놓았다.
만두를 삶고 있던 김현수뿐 아니라 차민정, 오상준 모두 노트에 적어가며 열심히 요리과정을 익혔다.
해물과 채소를 순식간에 볶아 보기 좋게 접시에 담고 소스까지 만든 서인우가 요리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그 틈에 차민정은 경력이 말해주듯이 요리과정을 한 번 본 기억으로 강진수 바로 옆에서 똑같이 백 짬뽕 국물을 만들고 있었다.
주방으로 돌아온 서인우가 그 모습을 보고는 차민정 옆으로 다가가 백 짬뽕 국물을 작은 그릇에 덜어 먹어보았다.
“방금 본 기억으로 만든 거죠? 그럼 어디 맛을 좀 볼까요?”
서인우가 먼저 향을 맡은 후 채소와 해물을 하나씩 집어 식감을 느끼며 먹었다.
“강진수! 여기에 와서 맛보고 평을 해 보세요.”
“제, 제가요?”
“네, 해주세요. 선배님.”
5년 차 경력자의 음식을 감히 평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덜어주는 차민정의 한 마디에 용기를 내 음식을 먹어 본 강진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선은 맛있습니다. 단지 서풍의 백 짬뽕보다는 시원한 맛이 약하고 후추가 너무 강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맛있기는 맛있습니다.”
강진수의 평을 이어받아 서인우가 몇 가지를 더했다.
“우선 강진수 씨 말대로 후추 향이 너무 강합니다. 그리고, 내가 직접 만드는 과정은 못 봤지만 해물 볶는 시간이 좀 길었던 것 같고, 채소 크기가 균일하지 못해 식감에서 차이가 납니다. 우리 서풍의 맛과는 차이가 있지만, 맛있는 국물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좀 더 세심하게 요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옆에서 같이 맛을 보던 김현수와 오상준은 서인우의 말이 잘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강진수 씨. 다음번 백 짬뽕 주문이 들어오면 일 인분 더 만들어 이분들께 시식할 수 있게 해주세요. 여러분들이라면 지금 이 맛과 비교해보고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
연이어 들어오는 주문에 다들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 정신없이 요리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칼질하는 소리와 고기와 해물 등을 튀기며 나는 소리가 섞여 전과 다른 북적북적한 주방이 되었다.
-이 친구들한테도 미션은 주어지겠지?
‘이번에 백 짬뽕 시식한 후 물어보려고. 그 비법은 단번에 알아차리기는 힘들지만, 그 미묘한 맛의 차이를 느낀다면 서풍의 요리를 좀 더 빨리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겠지.’
-너처럼 말이지? 그건 타고난 감각이 있어야 하는 건데…. 궁금하군. 누가 또 그런 재능이 있을지.
중식도와 간단히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정다운이 허겁지겁 주방으로 들어왔다.
“사장님, 아니 대표님.”
“무슨 일이에요. 정 매니저?”
“왔어요. 그때 왜 맛 칼럼인가 뭔가 썼던 그 아저씨, 그 아저씨가 또 왔다고요.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대표님을 만나고 싶다는데요?”
“그 음식 평론가 말씀인가요?”
“그렇다니까요. 빨리 나와보세요.”
서인우는 셰프 복을 다시 단정히 손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서풍TWO]에 대해 좋은 평을 써줬던 사람이었다.
서인우 또한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기도 했다.
“안녕하십니까? 서풍의 서인우입니다.”
“드디어 직접 만나보네요. 맛 칼럼니스트. 박인식입니다.”
중년은 되어 보이는 모습에 푸근한 인상이었지만, 순간순간 나오는 눈빛이 매서운 남자였다.
“지난번 저희 가게에 대해 좋게 글 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나한테 잘 써달라고 부탁한 적 있나요? 다 내가 보고 느낀 대로 쓴 겁니다. 그러니, 감사할 일은 아니죠.”
“좋게 받아들여 주신 것, 그리고 서풍의 음식을 맛있게 드셔 주신 거 다 감사한 일입니다.”
박인식이 다물고 있던 입을 뾰족이 앞으로 내밀더니 쩝 소리를 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지난번 먹었던 치즈 치킨밥에 대해 내가 궁금한 게 있어서 직접 찾아왔습니다. 그게 [만가복]에도 거의 비슷한 메뉴가 있던데, 알고 계십니까?”
또, [만가복]이었어?
“네, 알고 있습니다. [서풍]의 치즈 치킨밥 유사품을 만들어 내놓고 있는 거로 압니다.”
“유사품이라고요?”
“치즈 치킨밥은 여기 MS 백화점 입점 심사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메뉴입니다. 그 메뉴로 [만가복]이 보기 좋게 미끄러졌던 거고요.”
박인식이 뭔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서인우의 얘기를 받아 적고 있었다.
“[만가복]에도 훌륭하고 실력 있는 셰프가 있으니 그날 본 메뉴를 흉내는 낼 수 있을 겁니다. 셰프가 직접 만드는 과정까지 본 음식을 흉내도 못 내면 그건 자격 미달인 거죠.”
“그러니까 치즈 치킨밥은 [서풍]이 원조다 이 말씀이신 거죠?”
“그 답은 두 식당의 음식을 먹어봤으면 바로 알 수 있었을 텐데요?”
“그럼 하나만 더 묻죠. [만가복]과 계속 경쟁 관계인데, 이제 [서풍]이 스스로 좀 견줄 만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만가복]이요? 예전에는 개인적인 감정으로 [만가복]을 반드시 이겨야겠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인우가 박인식의 눈을 강렬하게 쳐다봤다.
“지금은 죄송하지만, 관심 밖입니다.”
“네?”
박인식이 놀란 듯 목소리도 눈도 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