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143화 (143/200)

제143화.

복잡한 백화점에 우리나라 최고의 아이돌 제이가 또 등장했다.

사람들이 잊어버리려 하면 한 번씩 등장해 각종 루머를 퍼트리고 있는 제이.

오랜만에 등장한 오늘은 항상 하던 마스크도 모자도 쓰지 않고 그냥 ‘나 제이예요.’ 하고 대놓고 [서풍TWO]에 등장했다.

그뿐 아니라, 오히려 평상시 보다 한껏 꾸민 듯한 모습이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백화점 안에 있는 사람들까지 하나둘 제이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안녕하세요, 제이 씨. 오늘은 매니저님은 같이 안 오셨네요?”

홀에 앉아있던 손님들의 손에서 번쩍번쩍 플래시가 정신없이 터졌다.

“사람들이 자꾸 사진 찍는데 한 말씀 해드릴까요?”

“네? 굳이 왜요?”

“아니, 저번에도 저랑 찍힌 사진 때문에 곤란을 겪으신 걸로 아는데….”

제이가 항상 가는 안쪽 작은 룸이 아닌 홀에 있는 빈 테이블로 걸어갔다.

“제이 씨, 안에 룸 비어있어요.”

정다운이 급하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오늘은 여기 앉을래요. 지난번에 좀 약해서….”

“네? 뭐가 말씀이신가요?”

“그런 게 있어요.”

제이의 오묘하게 웃고 있는 표정이 영락없이 짱꾸미를 보여줬다.

열심히 사진을 찍던 사람들이 다시 자신들 만의 대화를 이어갔다.

“천천히 메뉴 보시고 주문해 주세요. 저는 다시 주방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벌써요?”

“네? 지금 주문이 밀려서….”

“다들 돌아가면서 하루씩 쉰다는데, 그럼 사장님은 언제 휴무에요?”

“저는 …휴무 없습니다.”

제이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럼 자유 시간은 전혀 없어요?”

“아! 한 달에 한 번 백화점 휴무일에는 가게 문 닫습니다. 그리고, 장사 끝나고 나서 오픈할 때까지는 자유 시간이죠.”

“그럼 그때는 주로 뭐 하세요?”

서인우는 밀린 주문을 빨리 해결하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새벽 4시에 기상. 바로 새벽 운동, 그리고 새벽 시장 갑니다. 시장에서 바로 여기로 와 오픈 준비하고 마감 후에는 가게 정리합니다.”

“그러면…. 나는 언제 만나요?”

서인우가 뒤돌아 가려고 하자 급해진 제이가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물었다.

순간 주변에서 식사하던 사람들이 다 기자인 줄 알았다.

각자 자신의 핸드폰으로 지금 상황을 중계하랴, 앞 사람 옆 사람과 수군덕거리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괜히 사람들이 오해하면 어쩌려고…. 볼 일 있으셨으면 진작 말씀 하시지…. 아직 저녁 피크 시간 전이라 시간 조금 있습니다. 주방에 잠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겠습니다.”

분명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제이의 얼굴이 점점 붉게 변했다.

“됐어요. 서인우 씨 정말 둔하네요.”

가방에서 썬글라스를 꺼내 급하게 쓴 제이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제가 무슨 실수라도….”

“하나만 물을게요. 서인우 씨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뭔가요?”

“그건 요리죠.”

기가 탁 막힌 제이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럼 내가 지금 요리에 밀린 거? 이거 실화임?”

“네?”

“오늘은 내가 감정 컨트롤이 안 돼서 가볼게요. 다음에…아니, 몰라요.”

제이가 막 뒤돌아섰는데, 급하게 매니저가 뛰어 들어왔다.

“왜 혼자 와서….”

주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의식한 매니저가 급하게 제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입구에 잔뜩 몰려 있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 서로 물어보며 사진을 찍어댔다.

“저희 가게 단골이세요. 저랑 여기 사장님이라 방금 가신 제이씨랑 아주 친하거든요. 맞다! 친구예요, 친구.”

당황한 정다운이 횡설수설하더니 서인우를 끌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사장님, 정말 둔한 거예요? 아니면, 제이 씨가 싫은 거예요?”

“다운 씨. 나 지금 바쁜데?”

주방 안을 살핀 정다운이 안상훈이 이미 만들어 놓은 요리를 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이것 봐요. 사장님 잠시 자리 비워도 이렇게 아무 문제 없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데….”

서인우는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만 깜빡거렸다.

“지난번 제이씨랑 사진 찍혔을 때, 제이 씨가 분명 여기 오면 왠지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했잖아요. 사장님 요리를 먹으면 어릴 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행복하다고….”

“그래서 오늘도 정말 맛있게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그냥 가버리신 거야.”

“그건…. 정말 이유를 모르겠어요?”

서인우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가끔이지만, 우리 가게를 찾아 준 지 벌써 2년이 되어 가잖아요. 서운하겠죠. 조금은 특별한 관계가 됐다고 생각했을 텐데….”

“나는 그냥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

“그런 유명한 사람이 콕 찍어 여기에 사장님 만나러 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잘 생각해보세요. 에휴, 답답해.”

정다운이 주방을 나가자 강진수가 기분 나쁘게 서인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너는 또 왜?”

“사장님은 요리만 할 줄 알았지, 여자 마음을 읽는 건 완전히 유치원생 수준도 안 되네요. 나는 저런 감정은 이미 초등학교 때 다 마스터 했는데. 쩝!”

계속해서 고개를 가로젓고 있는 강진수를 뒤로 하고 새로 들어온 주문을 확인하는 서인우의 귀에 이번에는 중식도의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감히 우리 밀크공주를 서운하게 만들어? 이걸 그냥 확!

‘나는 그냥 맛있게 한 끼 대접해 주려고 했는데…. 진짜 어렵네.’

-그러니까 이제 요리에만 빠져 살지 말고 연애도 하고 그래. 나만 너무 찾지 말고.

서인우는 뭐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잠시 생각하다 그럴 때가 아니라고 정신을 차리고 바로 웍에 기름을 넣었다.

* * *

달리는 차의 창문을 내리고 여전히 투덜거리고 있는 제이를 룸미러로 힐끗 쳐다보며 매니저가 말했다.

“너 지난번 스캔들도 회사에서 간신히 덮었는데, 오늘 또 혼자 여기 오면 어떻게 해?”

“지난번에 왔을 때도 분명 확실하게 표현했었는데…. 저 남자는 연애 세포가 아예 없는 건가? 아니면, 눈치가 없는 걸까? 설마,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제이의 질문이 끝없이 이어졌다.

“나인데? 대한민국 최고의 아이돌 제이인데? 이게 말이 돼? 다들 말 한마디 건네려고 난리인데, 이건 내가 먼저 시간 있냐고 물었다니까!”

끼익!

매니저가 급 브레이크를 밟자 거친 타이어 소리를 내며 차가 멈췄다.

“너 미쳤어? 지금 그 사람 많은 백화점 식당에서 뭐, 뭐라고 했다고?”

“언제 쉬냐고…나는 언제 만날 수 있냐고 물었어.”

“뭐?”

매니저의 얼굴은 뭐 씹은 표정처럼 썩어가고 있었다.

“너 전에는 이런 적 없었잖아? 그 셰프한테만 유독 왜 그렇게 감정적인 거야?”

“그냥 좋아. 그 사람의 깊은 눈이 좋고, 마치 나만 생각하고 요리한 것 같은 음식도 너무 좋고…무엇보다 목표를 향해 달리기만 하는 그 사람 가슴에 사랑을 부어 넣어주고 싶어.”

“그러니까 그게 왜 너냐고? 좋다는 여자들 줄을 섰던데….”

제이의 눈이 갑자기 슬퍼 보였다.

“내가 아니까. 하루아침에 가장 든든했던 울타리 같은 존재인 아빠가 돌아가시는 게 어떤 건지 잘 아니까.”

“그래서야? 그래서 유독 저 셰프한테 관심을 가지는 거냐고?”

“처음에는 그냥 호기심이었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나를 못 알아봤다는 게 너무 신기해서.”

“그랬는데… 왜 감정이 바뀐 건데?”

“그게 이유가 어디 있어? 사람 감정이 뭐 맘먹은 대로 되는 거야?”

“너 장난이면 이제 그만하고, 진심이면 하루라도 더 빨리 마음 접어. 괜히 회사에서 소리 듣지 말고.”

“내가 알아서 해. 이제는 옛날의 애송이가 아니라고.”

제이가 룸미러를 노려봤다.

“빨리 출발하지? 스케쥴 늦을 텐데….”

다시 차 창문을 내린 제이가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슬픈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회장실 앞에 서서 멍하니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던 차성철이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문을 열었다.

“부르셨습니까?”

“어서 와요.”

김원상이 손짓하는 자리에 앉은 차성철이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에 시선을 옮겼다.

“아! 그거? H 백화점에서 우리 [만가복]의 입점을 희망한다고 연락이 와서 오전에 홍보부에서 올려다 놓고 갔습니다. 차 팀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H 백화점이라면 워낙 규모도 크고 고급 이미지여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뭐 우리야 백화점에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강남점이 꾸준히 잘되고 있어서 굳이 가까이에 있는 백화점에 입점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한데….”

김원상이 차성철의 반응을 유심히 살피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는 말끝을 흐렸다.

“이미 MS 백화점 입점에 실패했는데, 또다시 경쟁 관계인 H 백화점에 입점한다면, 아마도 차선책을 선택했다고 여겨지지 않을까요?”

“차선책?”

“더 팩트를 말씀드리자면 서풍을 따라가는 느낌이랄까요?”

기분 나쁘지만 말 그대로 팩트였다.

MS 백화점 입점 심사에서 떨어진 후 백화점 입점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솔직히 MS 백화점은 욕심낼 만한 곳이었지만, 다른 백화점은 굳이 버젓한 내 업체를 가지고 있는 [만가복]에게 특별한 매력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서풍] 이 들어간 후로 MS 백화점 매출이 급 상승했다는 뉴스를 본 후 김원상의 숨어있던 욕심이 머리를 디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중식당이라면 우리 [만가복]과 [서풍]을 떠올리겠지.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백화점도 서로 경쟁시키면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

“백화점끼리 경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만가복과 서풍이 비교되는 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건 자신 있으십니까?”

“차 팀장은 자신 없나 보군.”

차성철이 자세를 한 번 바로 잡은 후 대답했다.

“저는 우리 [만가복] 셰프님들 요리에 자신 있습니다. 문제는 항상 회장님과 전 회장님이셨죠.”

“무슨 뜻이지?”

“지금 상태로 만족하지 못하시고, [서풍]의 그림자에 갇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 부분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김형식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자신도 [서풍]을 신경 쓰고 비교하고 있었다.

“세상에 태양은 하나야. 우리 [만가복]이 대한민국 최고의 중식당이 되길 바라는 마음, 다 그 마음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 마음은 저도 같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잘나가는 중식당이기도 하고요.”

말을 마친 차성철이 김원상의 눈을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 그 사건은 어느 정도 잠잠해진 것 같은데, 전 회장님 나오실 때가 지나지 않았습니까?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리는 게 뭔가 이상합니다.”

“워낙 떠들썩하게 벌어진 일이라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아요. 차 팀장은 그런 걱정하지 말고, 이 백화점 건이나 잘 비교 분석해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차성철이 회장실을 나가고 한참 닫힌 문을 쳐다보던 김원상이 비릿한 웃음을 웃었다.

“이제 내가 일 좀 해보려고 하는데, 벌써 나오면 피곤하지.”

그의 눈에 언젠가 아버지 김형식이 원했던 맹수의 눈빛이 스며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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