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2화.
안상훈 셰프는 이제 거의 완벽하게 서풍의 맛을 내고 있었다.
문제는 새로 들어온 강진수다.
서인우는 다음 주 새로운 직원들이 들어오기 전에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서풍의 맛을 하나씩 가르쳐 주며 그의 능력을 키워 줄 생각이었다.
윤지영이 서인우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오빠, 또 무슨 생각에 잠긴 건데?”
“강진수 말이다. 안 셰프님처럼 [서풍]의 맛을 완벽하게 낼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었어.”
“강진수가 찾아와서 처음 요리를 선보였을 때 오빠가 보여줬던 표정 기억하고 있어. 분명 실망하게 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
“혹시라도 고객들 입맛을 만족시켜 주지 못할까 걱정이 많이 된다. [서풍]의 맛을 그리워하고 찾아온 손님들을 절대 실망하게 할 수는 없거든.”
“능력 있다면서? 오빠가 잘 교육해봐.”
“그래야지. 그 친구의 타고난 감각과 요리에 대한 열정을 믿으니까.”
윤지영이 손을 앞으로 내밀며 서인우를 쳐다봤다.
“곧 오픈이야. 파이팅하고 각자 일터로 가자고.”
“그래, 오늘도 파이팅이다.”
윤지영이 영업준비를 위해 내려가고, 주방으로 들어간 서인우는 열심히 양파를 썰고 있는 강진수에게 다가갔다.
“이제 강진수의 짬뽕 말고 서풍의 백 짬뽕 만들 수 있겠어?”
“저, 저요?”
“그래. 빨리 요리해서 도와주고 싶다면서?”
“이 웍으로 할까요?”
벌써 벽에 걸려있는 웍을 하나 집어온 강진수가 헤벌쭉하게 웃으며 재료를 준비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안상훈이 서인우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이제 본격적인 훈련 들어가나요?”
“오늘 저 친구 솜씨 한 번 보죠. 우리 서풍의 맛을 얼마나 따라 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서인우는 강진수가 준비해놓은 재료들을 유심히 살폈다.
타고난 눈썰미가 좋은지 서풍의 백 짬뽕에 들어가는 재료를 정확하게 준비해놓았다.
“곧 오픈이니까 빨리 하나 만들어 볼까?”
“넵, 솁.”
“뭐?”
“저…이거 정말 한번 해보고 싶었거든요. 간지나지 않습니까?”
기름을 둘러 달군 웍에 배추와 양파, 청경채 등 채소와 해물을 넣고 거기에 불맛을 입혀 볶다가 막 육수를 부으려 할 때였다.
“강진수!”
“넵. 셰프.”
“이 육수는 무슨 재료로 만들지?”
“그거야 닭발 아닙니까?”
서풍에서는 매일 새벽에 서인우가 만들어놓은 닭발 육수를 요리에 사용해왔다.
“좋아, 그럼 그 닭발 육수는 어떻게 만드는지 생각해본 적 있어?”
-히야, 추억 돋네. 그거 내가 너한테 냈던 미션 아니었나?
중식도의 소리가 들렸다.
서인우 또한 중식도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육수의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 닭발을 가지고 몇 날 며칠 지지고 볶고 했던 기억이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닭발을 고아서 사용하는 거 맞죠?”
“답을 나한테서 구하려고 하지 말고 육수를 맛보고 그 비결을 한 번 찾아봐. 그게 오늘 내가 주는 과제야.”
“네? 그냥 푹 고아서 만든 게 아니었어요?”
“그 비법을 알아내는 날부터 나와 동등한 자격으로 요리할 수 있게 가르쳐주지.”
큰 키에 다부진 어깨의 강진수가 결의에 찬 눈빛을 보였다.
아직 앳된 얼굴에 군데군데 여드름이 벌겋게 피어 있었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래. 우선 지금은 내가 만들어 놓은 그 육수로 백 짬뽕 완성하도록 해.”
“넵, 셰프.”
마지막으로 육수를 넣어 화라락 끓여 삶아놓은 면에 부었다.
강진수가 완성한 백 짬뽕을 세 개의 작은 그릇에 옮겨 담은 서인우가 안상훈과 강진수, 그리고 자신의 앞으로 가져갔다.
“셋이 동시에 먹어보고 서풍 백 짬뽕과의 차이점을 말해주도록 합시다.”
서인우는 우선 국물을 떠서 먹어보고, 그다음으로는 채소와 해물의 식감을 느꼈다.
그리고는 후루룩!
국물이 잘 배어있는 면을 집어 단숨에 먹고는 남은 국물을 마셨다.
안상훈과 강진수도 같은 방법으로 시식을 마쳤다.
“안 셰프님. 먼저 시식 평 부탁드립니다.”
안상훈이 냅킨으로 입을 닦은 후 늘 보이는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선 맛있습니다.”
“앗싸!”
강진수가 주먹을 쥐어 기쁜 마음을 표현했다.
“서풍의 백 짬뽕에 비해 기름양이 조금 많았고, 해물은 비슷한데 채소의 크기가 좀 작아서 아삭한 식감이 약해진 듯합니다.”
역시 서동수의 수제자이자 [서풍TWO] 2호점을 책임질 만한 정확한 평가였다.
“아침마다 내가 준비해놓는 채소와 해물의 크기를 최대한 똑같이 하도록 연습해. 오늘은 채소도 크게 잘랐지만, 웍에 넣을 때 고화력에 너무 오래 볶았어.”
서인우의 평이 이어졌다.
“그리고, 소금 양도 한 꼬집 정도 더 들어갔고, 후추양도 많았다. 그래도, 처음 치고 아주 훌륭했어.”
“감사합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사실 두 분 요리하시는 거 9개월 동안 지켜보고 연습하면서 [서풍]의 맛 얼마든지 낼 수 있다고 자만했습니다.”
강진수가 어린 나이답지 않게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오늘 두 분의 시식 평 듣고 솔직히 너무 놀랐습니다. 재료의 크기, 화력, 심지어 조미료의 양까지 맛보고 바로 알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진수 너도 워낙 감각이 있어서 열심히 하면 훌륭한 요리사가 될 수 있을 거야. 지금 이대로도 아주 맛있어. 하지만….”
서인우가 강진수의 어깨에 두 손을 올렸다.
“서풍의 맛을 꼭 찾아서 그대로 해주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내준 과제 반드시 성공하도록 하고.”
“넵, 셰프.”
그 이후로 강진수는 육수와 사투를 벌였고, 서인우와 안상훈은 첫 주문으로 들어온 요리를 시작했다.
* * *
이명옥이 만두피를 만드는 과정부터 다시 천천히 보여주자 직원들이 똑같이 반죽하느라 정성을 쏟았다.
“이렇게 만두피가 거시기 되면은 물 적신 면보를 씌워놓으면 되는 거지라. 별로 어렵지 않당께요.”
이미 그 정도는 능숙하게 해내는 박은선이 직원들에게 하나하나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서풍 만두]의 만두소는 전국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하는 유일한 레시피로 만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서풍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만두라는 얘기입니다.”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지는 얘기에 집중했다.
“만두소는 정확한 레시피로 하루에 두 번 만들기 때문에 항상 재료의 신선도에 가장 많이 신경을 씁니다.”
[서풍 만두]는 12개들이 기본 만두와 20개들이 대자 만두, 이렇게 두 가지로 판매했다.
보이는 곳에서 만두를 만들어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끓는 물에 만두를 삶기 시작하면, 그 뽀얀 연기와 만두향에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앞다투어 만두를 찾았다.
포장된 냉동 만두를 사서 집에서 만들어도 매장에서 먹는 맛과 똑같은 맛이 나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오늘도 윤지영은 줄 서 있는 손님들을 보며 발에 땀이 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만두 만드는 직원이 넷, 판매 및 손님을 맞이하는 직원이 둘 있었지만, 밀려드는 손님의 수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사장님, 우리 잠실점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어요?”
박은선이 오래 서 있어 뻐근한 허리를 펴며 윤지영에게 다가와 물었다.
“지금 인테리어 견적은 다 받았으니까 곧 공사 들어갈 거예요.”
“빨리 확장해야지 손님들이 너무 기다려서….”
“네, 오픈하고 정리되는 대로 직원도 몇 명 더 뽑아야 할 것 같아요.”
윤지영은 다음 달부터 시작하는 MS 백화점 식품관 냉동만두 판매로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 줄이 길어질수록 윤지영의 고민 또한 길어졌다.
“사장님. 우리 [서풍 만두]도 새우면처럼 공장에서 대량으로 제작해서 판매하면 어때요? 그럼 수요를 다 충당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며칠 새 다크써클이 턱 밑까지 내려온 윤지영을 안쓰럽게 쳐다보며 박은선이 물었다.
“나라고 그 생각을 안 한 게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 사장님, 아니 대표님이 절대 반대 하셨죠.”
“왜요?”
“그러면 시중에 파는 냉동 만두와 무슨 차이가 있냐는 거에요? 우리 [서풍 만두]는 직접 만든 만두소로 그 자리에서 바로 만들어 판매하는 걸 원칙으로 삼는다! 그게 대표님의 확고한 생각이십니다.”
박은선이 아쉬운 듯 작은 한숨을 내보냈다.
“비록 많이 만들지는 못하지만, 저도 그게 맞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야 [서풍 만두] 인 거죠.”
“네. 우리 대표님이 그러셨다면 그게 정답이죠. 저는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이제 들어가서 다시 만두 만드는 거 체크하고 올게요.”
* * *
정신없이 요리를 만들어 낸 후 잠시 한가한 틈을 타 서인우가 안상훈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우리 가게 대표 메뉴 아시죠?”
“양장피 말씀이십니까?”
“맞습니다. 오늘은 양장피를 소스까지 만들어 보도록 하죠. 이제 안셰프님이 양장피까지 완성하신다면 [서풍 TWO]의 모든 메뉴를 다 마스터 하시는 겁니다.”
“우와, 축하해요. 저도 만들어 볼까요?”
“너는 백 짬뽕 완성하면 그때 기회를 주도록 하지.”
강진수의 입이 주먹만큼 나왔다.
“내가 며칠 동안 연구해서 육수 비법 알아냈잖아요? 그걸로 통과라면서요?”
기특하게 육수의 비법을 알아 온 강진수는 그 뒤로도 가르쳐주는 족족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능력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매번 맛이 달라진다는 거였다.
-저놈 저 정도면 아주 훌륭한 거다. 너는 이 사부를 만난 천운으로 항상 같은 맛을 내게 된 거고.
중식도의 말이 들려왔다.
‘그래도 조금만 맛이 달라져도 주방장이 바뀐 건가 하고 생각한단 말이야. 열 번 아니 백번을 만들어도 항상 같은 맛을 낼 수 있게 연습해야지.’
-저놈 얼굴 좀 봐라. 잠 못 자고 연습했다더니 화산 폭발이다. 뒤늦게 사춘기가 다시 왔는지 얼굴이 그냥 짬뽕 색이네.
그러고 보니 처음 왔을 때보다 오히려 여드름이 더 많아졌다.
정말 뒤늦게 사춘기라도 온 건가?
“방금 주문 들어간 짬뽕, 조금 안 맵게 해달라고 부탁하셨어요.”
정다운 매니저가 급하게 주방으로 들어와 손님의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알았어요. 매니저님. 저를 부르시지, 힘들게 여기까지 오시고…. 특별히 안 맵지만 시원하고 맛있게 만들겠습니다.”
“어머, 이제 강진수 씨가 만들어요?”
“그건 아닙니다. 잘 전달하겠습니다. 누나! 파이팅!”
얼씨구.
머리 위로 크게 하트를 그리고 있는 강진수의 눈에 더 큰 하트가 그려졌다.
-저놈 얼굴의 여드름이 다 이유가 있었네. 직원 1호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구만.
‘그런 거였어? 에이, 난 모르겠는데?’
-응, 넌 원래 몰라. 아니, 영원히 모를 거다. 저 안 셰프와 만두여사 커플이 안 보여서 살 것 같다 했더니, 또 저것들이 염장질하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정다운이 머리 모양이며 옷에 유독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특히 주방에 들어올 때면 어딘가 수줍은 듯한 얼굴을 보였던 것도 같다.
우선 손님의 요구대로 매운맛을 조금 뺀 짬뽕을 만들어 내놨다.
“강진수!”
“네, 셰프.”
“너 우리 직원1호 정다운 매니저한테 사심 있냐?”
양장피를 만들고 있던 안상훈이 놀란 눈으로 강진수를 쳐다봤다.
형님도 전혀 눈치 못 채셨나 봅니다.
“사심 없습니다. 그냥….”
“그냥 뭐?”
“흑심을 품었다고 해야 할까요? 너무 사랑스럽지 않습니까? 작은 체구에 똑똑하고, 자기주장 강하고.”
이준형이 지금 이곳에 있었어야 했는데….
정다운과 이준형이 티격태격하는 걸 못 본 강진수의 눈에 제대로 콩깍지가 쓰였다.
하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풋풋하고 예쁠 청춘이긴 했다.
‘좋은 때기는 하지.’
-너님도 좋은 때거든. 밀크공주 제이씨가 그렇게 좋다고 힌트를 줘도 어쩜 그리 둔한지. 그러다 언젠가 제이씨한테 망신당하지.
‘제이 씨는 그냥 스타와 팬 관계야.’
-그러니까 왜 네가 스타냐고? 제이씨가 스타여야지.
‘무슨 소리야? 당연히 내가 팬이지.’
-다음에 또 오면 주변에 한번 물어봐라. 누가 봐도 네가 스타고 제이씨가 쫓아다니는 팬 같거든. 에이, 눈치 없는 놈. 어디서 우리 제이씨의 마음을 가지고 놀아.
서인우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였다.
제이가 어디서 듣고 있었던 걸까?
서인우와 중식도가 대화하고 있는 사이 귀신같이 제이가 식당 안으로 들어와 순식간에 홀이 시끄러워졌다.
“안녕하세요, 제이 씨.”
정다운의 반가운 목소리가 홀에 울렸다.
-아씨, 깜짝이야. 이건 정말 인연이다. 나랑 제이씨랑 아무래도 전생에 부부였던 건 아닐까?
‘괜히 희망 사항 말하지 말고. 잠시 나갔다 올게.’
-나, 나 데리고 가야지! 이런 시베리안 허스키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