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0화.
박인식 음식 평론가의 글은 그 위력이 생각보다 어마어마했다.
안 그래도 점심, 저녁 식사 시간에는 항상 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이 있었는데, 이제 식사 시간에 상관없이 오픈하는 순간부터 문 닫을 때까지 줄 서서 기다리는 상황이 되었다.
“사장님, 오늘도 오픈하자마자 줄 서 있어요. 방금 번호표 12번까지 나눠 줬다니까요.”
정다운이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그 기사가 나온 지 벌써 일주일인데, 오히려 갈수록 더 손님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주문서를 확인하던 정다운이 힘들지도 않은지 싱글벙글 입이 귀에 걸렸다.
박은선이 이에 질세라 한마디 더 했다.
“만두 주문도 벌써 열 상자나 들어왔어요. 식사하고 가면서 가져가신다네요.”
어제부터 시작한 냉동만두 판매는 입소문이 나면서 얼리기 무섭게 팔려나갔다.
이제 만두 담을 케이스 제작만 끝내게 되면 서풍의 먹물 만두가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건 시간문제였다.
“자, 오늘도 다 같이 힘내서 파이팅 합시다.”
서인우 역시 목소리에 힘이 더해졌다.
먹물 만두와 짜장면 하나, 탕수육 하나.
오늘의 첫 주문이었다.
“먹물 만두 먼저 준비 하겠습니다.”
안상훈 역시 목소리가 한 톤은 올라간 듯 보였다.
역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았다.
새로 부은 깨끗한 기름에 간이 배게 재어 놓은 돼지고기를 반죽에 묻혀 넣자 하얀 튀김옷이 꽃처럼 활짝 피어났다.
노릇노릇 튀겨진 고기를 건져 소스에 재빨리 휘리릭 볶아 접시에 담은 후 벨을 눌렀다.
띵!
윤지영이 뛰어 들어와 먹물 만두와 탕수육이 담긴 접시를 가지고 나갔다.
띵!
뒤이어 완성된 짜장면과 짬뽕이 곧바로 기다리고 있는 손님 테이블에 놓였다.
박은식 평론가의 기사가 나온 후로 치즈 치킨밥은 매일 재료 소진으로 주문량을 따라가지 못했다.
역시나 주문 화면에 치즈 치킨밥 두 개가 반짝거렸다.
한참 닭고기와 채소를 볶고 있던 서인우의 앞치마 주머니에서 불이 반짝거리며 진동이 울렸다.
볶은 고기와 채소를 불린 찹쌀에 섞어 찜기에 올린 후에야 발신자 번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모부였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던 서인우는 우선 간단히 문자를 보냈다.
[지금 요리 중입니다. 잠시 후에 전화할게요.]
오랜만에 걸려온 이모부의 전화가 반갑고 궁금했지만, 요리가 먼저였다.
두 개의 치킨 밥 위에 치즈를 골고루 올려 오븐에 돌리니, 주방 가득 치즈 향이 고소하게 풍겼다.
안상훈 역시 멋진 칠리소스 꽃을 그려 요리를 완성했다.
잠시 한가해진 틈을 타 직원 통로로 나가 이모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신호가 울리자마자 바로 목소리가 넘어왔다.
“이모부, 전화하셨죠?”
-너, 아직 뉴스 안 본거지? 이게 무슨 일이냐?
“네? 뉴스라니요?”
-김형식하고 형님 친구 최 뭔가 하는 그 두 놈이 작당해서 형님을 죽게 했다는 게 사실이냐?
서인우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 듣고 있어? 설마…너도 알고 있었던 거야?
“잠시만요, 이모부. 저 기사 좀 찾아보고 다시 전화를 드릴게요.”
-이게 무슨…. 알았다.
종료 버튼을 누르는 서인우의 손이 점점 떨려왔다.
핸드폰으로 김형식 이름을 검색하자 수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중 오늘 오전에 발표된 내용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프랜차이즈 중식당 회장의 두 얼굴.>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기사에는 김**과 최**, 죽은 [서풍]의 서동수 이렇게 셋이 고향 친구였다는 사실부터 시작해 최** 아들의 음주운전 사고 밀폐 조작 사건, 그리고 결국 그 사건을 덮기 위해 친구인 서동수를 살해한 상황까지 모든 의혹이 낱낱이 적혀있었다.
경찰이 해당 세 명에게는 출국 금지를 내린 상태이며, 곧 조사를 시작한다는 내용 또한 적혀있었다.
그 기사의 밑에 엄청난 수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많은 네티즌이 바로 [만가복] 김형식의 이름을 거론했고, 최** 은 여러 명의 유명 셰프 이름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 내용을 읽자마자 서인우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일주일 전 최만수 회장을 만났을 때 이번에는 절대 빠져나가지 않게 할 거라는 게 이걸 말하는 거라는 걸.
언론을 통해 진실을 밝히게 하려는 거였다.
기사를 다 읽어갈 무렵 윤지영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서인우를 향해 달려왔다.
“오빠, 방금 아빠한테 전화 왔었어.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나도 기사 보고 있었어.”
“이거지? 오빠가 요즘 잠도 못 자고 결국 쓰러지기까지 하게 만든 거. 맞지? 오빠는 알고 있었던 거지?”
윤지영이 눈물을 참느라 눈을 깜빡이며 연신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그 기사에 나온 최 뭐시기 라는 사람 그 아저씨는 아니지? 오빠가 아르바이트 했던 이모부 친구….”
말을 잇지 못하고 결국 눈물을 흘리는 윤지영을 위로할 새도 없이 가게 안으로 손님들이 밀려 들어왔다.
“나중에 자세히 얘기하자.”
간신히 눈물을 멈춘 윤지영의 어깨를 한 번 다독여 준 서인우는 마음을 다잡고 빠른 걸음으로 주방으로 들어갔다.
지금은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요리에만 전념하라는 듯이 계속해서 주문이 밀렸다.
한 번에 짬뽕 다섯 그릇을 만들어 내놓자마자, 탕수육 대 자와 중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안상훈 또한 짜장면과 볶음밥을 만드느라 정신없었다.
저녁 시간이 다가올수록 요리를 시키는 손님이 더 많아졌다.
서인우는 전복을 비롯한 각종 해물을 넣어 전가복을 만들어 벨을 누르자마자 해삼, 표고버섯, 죽순 등을 채를 썰어 유산슬을 만들기 시작했다.
잠시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저 정신없이 음식을 만들어 내놓고, 또다시 음식을 만들고 그렇게 마감 시간이 다가올 때였다.
-인우야!
중식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왜 그래, 사부?’
-그 사람, 서동수 친구.
‘그 얘기는 지금 하고 싶지….’
-그럴 시간 없어. 빨리 그자한테 달려가.
서인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지금 가게야. 불은 꺼져 있지만 분명 안에 있어. 빨리 뛰어가라고. 가서 살리란 말이야!
“뭐?”
너무 놀란 나머지 서인우의 생각이 소리로 만들어져 튀어나왔다.
안상훈이 이상한 눈으로 서인우를 쳐다봤지만, 그걸 설명할 여유는 없었다.
“안 셰프님. 죄송합니다. 주문은 마감됐으니 마무리 좀 부탁합니다.”
“사장님. 무슨 일이세요?”
안상훈의 소리가 들렸지만,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홀을 정리하고 있던 직원들 또한 놀라 쳐다봤지만, 그것 또한 챙길 시간은 없었다.
직원용 주차장으로 달려가 운전대를 잡자마자 바로 출발했다.
거친 타이어 소리가 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중식도의 말처럼 최영만의 [양자강]은 불이 꺼져 있었다.
금요일 저녁 시간이다.
어느 중식당이든 많은 손님이 몰려오는 황금 시간대지만, 그곳만 어둠 속에서 차가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거침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갑자기 들이닥친 서인우를 보고 놀라고 당황한 최영만이 손에 들려있던 병의 뚜껑을 열어 입에 넣으려 하고 있었다.
“하지 마! 내 허락 없이 죽지도 말란 말이야!”
툭!
서인우가 뺏어 던져 버린 약통이 바닥에 떨어지며 그 속에서 독한 냄새를 내뿜는 농약이 흘러나왔다.
“내버려 둬! 흐흑….”
최영만이 소리를 지르며 울어댔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이건 나한테도 그리고 우리 아빠한테도 절대 용서받을 수 있는 짓이 아니야!”
“흐흑….”
서인우는 잠시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바닥에 널브러져 앉아 두 손으로 가슴팍을 쥐어 잡고 오열하는 최영만을 부축해 일으켰다.
“아저씨, 나와 우리 아빠…그리고 남은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받고 싶으세요? 그렇다면, 용기있게 그 날의 진실을 밝혀주세요.”
한참 고개를 들지 못하고 흐느껴 울던 최영만이 감정 없는 듯한 눈으로 서인우를 바라봤다.
* * *
마감 시간이 지난 후 가게를 정리하던 윤지영이 다들 몰려 앉아있는 홀 정면에 놓인 텔레비전을 틀었다.
9시 뉴스가 막 시작되었다.
“5년 전 전 국민의 사랑을 받던 중식당 [서풍] 서동수 사장의 죽음에 관한 비밀이 오늘 밝혀졌습니다. 그때의 모든 상황을 밝히고 자수를 해 온 최영만 씨의 인터뷰 내용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앵커의 멘트가 있고 난 후 바로 이어진 인터뷰 화면에는 며칠 새 시커멓고 핼쑥한 얼굴로 나타난 최영만의 얼굴이 눈만 가려진 상태로 흘러나왔다.
“저는 죽은 [서풍]의 서동수 사장 고향 친구입니다.
친구라는 단어를 쓰기 죄송스럽지만, 평생 친구로 있고 싶었습니다.
6년 전 아들의 음주운전 사고를 덮어 준 [만가복]의 김형식 회장 또한 같은 고향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아들 일로 김형식은 서동수를 산으로 불러 조용히 처리해 주지 않으면 아들의 음주운전 조작 사건을 세상에 알리겠다 협박했습니다.
아들의 인생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보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반평생을 함께 보낸 친구를 내 손으로 죽일 수도 없었습니다.
추운 겨울, 등산하기에 위험한 날씨였지만 서동수는 내 부름에 기꺼이 눈 덮인 산으로 와줬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유인한 얼음이 얼어 미끄러운 곳에서 아주 잠깐 사이에 중심을 잃고 발을 헛디뎠습니다.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친구를…. 나는…흐흑…찾지 않고 겁에 질려 산을 혼자 내려와 버렸습니다.
결국 서동수는 내가 죽였습니다.”
최영만의 흐느끼는 소리만 들리다 인터뷰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그 자리에서 함께 뉴스를 듣고 있던 서인우와 [서풍 TWO]의 직원 모두 숨죽여 흐느꼈다.
누구도 감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세상이 멈춰 버린 적막 속에 여기저기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다.
* * *
한동안 온 세상이 떠들썩했다.
언론에 먼저 알린 최만수의 전략이 이번에는 제대로 먹혔다.
결국 김형식은 살인 교사로 실형을 살게 되었고, 최영만과 아들 최동훈의 음주운전 위조 사건에 연루된 사람 모두 처벌을 받게 되었다.
마감 후 가게 정리를 마치고 늦게 집에 들어온 서인우는 손에 들려있는 비닐봉지에서 소주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깨끗이 씻어놓은 잔을 두 개 꺼내 하나는 자기 앞에 또 하나는 맞은편 빈자리에 놓고 술을 따랐다.
“아빠, 한 잔 받아요.”
식탁 위의 조명이 텅 빈 자리를 비추는 것 같았다.
“내가 잘한 일일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빠한테 잘했다는 말을 듣고 싶은데….”
빈속에 술을 조금 마시자, 싸르르르 알콜이 위장에 그대로 전해졌다.
“이제 그곳에서 아프지 말고 편해졌으면 좋겠어. 더는 나와 엄마 걱정하지 말고…위에서 다 보고 있겠지만, 나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서인우는 빈자리에 놓아둔 잔에 자기 잔을 가져가 쨍 소리가 나게 부딪혔다.
“앞으로 내가 이 서풍을 어떻게 키워가는지 잘 지켜봐 줘. 그리고, 딱 한 번만이라도 꿈에 찾아와 잘했다고 내 손 한 번만 꼭 잡아줘요.”
잔에 남은 술을 전부 들이켰다.
그리고는 빈 잔에 또다시 술을 부었다.
“아빠가 따라주는 술 마시고 싶다…. 혼자 술 마신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이거 한 잔만 더 마실게.”
다시 빈자리에 놓아둔 잔을 부딪치고 멍하니 쳐다봤다.
눈가에 이슬이 맺힌 서인우는 급하게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겨울이 되면서 [서풍 TWO]를 찾는 사람이 몇 배는 더 많아졌다.
이명옥이 중심이 되어 만드는 먹물 만두도 손님이 많아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럴수록 서인우는 가장 싱싱한 해물과 신선한 채소를 더 많이 사기 위해 열심히 새벽시장에 나가 물건을 주문했다.
그렇게, 봄이 찾아오고 또다시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여름이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가을.
일 년이라는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갔다.
그동안 많은 것들이 변해 있었다.
이제 MS 백화점은 [서풍 TWO]에 식사하러 가는 김에 쇼핑까지 하게 되는 역전된 상황까지 나왔다.
“매니저님. 12번 테이블에 계신 손님이 먹물 만두 혹시 여기서도 주문할 수 있냐고 질문하시는데요?”
“그래요? 내가 말씀드릴게요.”
3개월 전에 새로 뽑은 직원 박진주에게 대답한 후 정다운 이 12번 테이블을 향해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손님. 먹물 만두 주문을 원하신다고요?”
“네, 지금 주문해놓고 식사 마치고 바로 들렀다 가져갈 수 있나 해서요.”
“그럼요, 지금 바로 주문 도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먹물 만두 대 자로 세 개 주문할게요.”
“네, 주문 넣어 드리겠습니다. 식사하시고 바로 가셔서 계산하시면 됩니다.”
다시 카운터로 다가온 정다운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