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131화 (131/200)

제131화.

백화점 마감을 급하게 하고는 지난번 유재철을 만났던 카페에 도착했다.

강기태와의 약속이 쉽지는 않았다.

그의 범죄행각이 온 세상에 드러난 지금은 더더군다나 그 누구도 만나기를 거부했다.

서인우가 카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강기태와 유재철이 창가 쪽 자리에 앉아있는 상태였다.

“안녕하십니까? 서인우입니다. 늦었습니다.”

“우리가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어요.”

말을 끝내면서 동시에 유재철이 인사하라는 듯 강기태에게 눈짓을 보냈다.

제법 큰 덩치에 까무잡잡한 피부, 특히 매서운 눈을 정면으로 쳐다보자 전에 만났던 얼굴이 맞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강기태요. 그런데….”

“네?”

“왜 얼굴이 이렇게 익숙하지? 나 알아요?”

“마영준 셰프님 가게에서 한 번 봤습니다. 그때….”

“그때 돈 빌려준 새끼, 아니, 그 사람이 당신이요?”

“네, 그렇습니다.”

강기태가 연신 눈을 깜빡거리더니 다시 물었다.

“그럼 당신이 [서풍] 서동수 사장의 아들이란 말입니까?”

“네, 서인우 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요리대회 때도 본 것 같긴 한데…나랑도 인연이 꽤 깊네. 악연인가?”

말끝에 입꼬리를 올리며 픽 웃던 강기태가 순식간에 웃음을 도로 집어넣었다.

“내가 여기 유 부장님한테 확실하게 말했수. 나는 당신 아버지 서동수 사장 사건하고는 전혀 관련 없다고 말이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도 믿습니다.”

“그런데 왜 나를 보자고 한 거지?”

“당신이 아는 사실을 말씀해 주세요. 분명 강기태 씨가 벌인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단순 실족사는 아니라는 말씀인 거죠?”

당황한 강기태가 앞에 놓인 아이스 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난 아무것도 몰라요. 벌써 몇 년이나 지났는데, 내가 그 일을 어떻게 기억해?”

“아니, 분명 당신은 뭔가 알고 있어. 부탁입니다. 지금이라도 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 싶습니다.”

강기태와 서인우를 번갈아 쳐다보던 유재철이 그냥 있어도 무섭게 보이는 눈에 더 힘을 주며 강기태를 노려봤다.

“네가 한 짓은 아니지만, 누군가 일을 벌였다는 건 알고 있잖아? 그게 누구야? 그것만 말해주면 되는 거라고.”

손에 땀이 차는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던 강기태가 유재철의 눈을 쳐다봤다.

“우리 가족들은 정말 안전한 거 맞습니까?”

“지난번 영상통화 했는데도 아직 못 믿는 건가? 캐나다에서 지금 잘 지내고 있어. 강기태 씨도 죗값 빨리 치르고 가족과 제대로 사람답게 살아봐야 할 거 아니야?”

그 후로도 연신 쥐었다 폈다 하던 주먹에 힘을 꽉 준 강기태가 결심했는지 길게 심호흡을 했다.

“나도 누가 한 짓인지는 모릅니다. 단지, 서동수 사장님 돌아가시기 바로 전날 김형식 회장이 통화하는 걸 우연히 들었을 뿐입니다.”

“통화라니요? 누구하고 말입니까?”

잔뜩 말라버린 서인우의 목소리가 간신히 나오고 있었다.

“그건 몰라요. 그때 통화내용이 거기서 밀어 버리면 아무도 모른다고… 아들 인생이 달린 거니까 실수가 있으면 안 될 거라는 얘기만 했습니다.”

유재철과 서인우가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

거기서 밀어 버리면….

분명 서동수가 갔던 산 어딘가 일텐데….

“다른 이름이나 뭐 증거가 될 만한 게 있는지 잘 기억해 봐 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이게 전부야. 다른 건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고.”

“분명 아들 인생이 달렸다고 그랬다는 말이죠?”

“그건 내가 확실히 들었어요. 자기 한 마디면 아들을 매장할 수 있다고, 아들만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에 아들을 매장할 수 있다?

“아! 전화를 끊으면서 한마디 더 했습니다.”

서인우가 말라비틀어진 목에 억지로 침을 삼켰다.

“명심해, 친구.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친구?

아니, 얘기가 그렇게 진행되면 안 되지.

아빠와 김형식, 최영만.

김형식에게 친구라고 불릴만한 사람, 최영만.

아닐 거다.

절대 최영만은 아니어야 했다.

커다란 쇳덩이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지난번 중식도의 얘기를 들었을 때의 그 충격이 배가 되어 서인우의 머릿속을 뒤집어 놓았다.

답답한 가슴을 어쩌지 못해 이미 얼음이 거의 녹아버린 아이스 커피를 초점 없는 눈으로 그냥 마셔댔다.

컵 표면에 맺혔던 물방울이 뚝뚝 계속해서 바닥에 떨어졌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카페를 나와 무작정 걸었다.

김형식이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최영만아저씨 말고도 분명 또 있을 거다.

어디서부터 알아봐야 할지.

막막한 심정으로 걷고 있는데 유재철로부터 전화가 들어왔다.

“네, 서인우입니다.”

-강기태는 조사가 있어서 동료 형사가 데리고 갔습니다.

“아, 그랬군요. 오늘 그 사람 만나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분명 내 느낌에는 서인우씨가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아닌가요?

걸음을 멈춘 서인우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을 봐서는 의심 가는 사람이 있지만, 그 아저씨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아빠 돌아가시고 저를 제일 많이 도와주신 분이에요.”

-그런 사람을 의심한다는 건 정말 죽을 만큼 힘든 일입니다.

“네, 죄를 짓는 것 같아서 마음이 너무 안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유재철의 말이 잠시 끊겼다.

-서인우 씨가 생각하는 그 사람과 그의 아들을 은밀히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사를요?”

-만약 혹시라도 지금 서인우씨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맞는다면 분명 나한테 뭔가 걸릴 겁니다. 그러면 그때 가서 어떻게 할지는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대로 꼼짝하지 않고 멈춰 선 채 서인우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머릿속은 잔뜩 엉킨 실타래 같은데, 그걸 풀어낼 방법이 없었다.

만약 유재철이 조사해서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다면 괜한 오해로 불편한 일이 생기지는 않을 거다.

“그럼 부탁을 좀 드려도 될까요?”

-어차피 서인우씨가 얘기 안 해도 내가 어떻게든 알아낼 겁니다. 이런 찝찝한 기분이 들면 분명 뭔가 더 있는 거거든.

오랜 세월 형사로 살아온 사람답게 유독 촉이 좋은 유재철이었다.

최영만에 대해 몇 가지 정보를 전해주고 통화는 끝이 났다.

누군가에게 그를 조사하도록 했다는 사실 자체도 힘들었다.

이런 오해를 없애기 위해, 괜한 감정싸움을 더는 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 * *

박은선이 새로 투입된 지 오늘로 꼭 일주일이 되었다.

첫날부터 능수능란하게 일을 도와 정말 큰 힘이 되었던 박은선이 한가한 시간을 틈타 주방으로 고개를 쏙 내밀었다.

“상훈 씨. 바빠?”

안상훈을 부르는 박은선의 얼굴이 막 연애하는 연인처럼 수줍음을 띠고 있었다.

“지금 좀 쉬고 있어.”

눈치껏 자리를 비켜 주러 나가는 서인우의 팔을 안상훈이 살짝 잡았다.

“두 분 편하게 말씀 나누세요. 저는 잠시 밖에….”

“제 아내가 사장님과 의논할 일이 있어서 지금 온 겁니다.”

“아, 그래요? 그럼 ….”

뭔가 잠시 앉을 곳을 찾는 듯 보이는 서인우를 향해 박은선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잠시면 돼요. 사실 그저께 사장님의 먹물 만두를 먹어 보고 너무 맛있어서 밤새 연구 해봤거든요.”

“연구요?”

“네, 우리 [서풍 TWO]를 찾는 손님 중에 만두가 떨어져서 아쉬워하는 사람이 정말 많잖아요.”

“감사하게도 많이들 좋아해 주시죠.”

“그러면 더 만들어서 팔면 안 되는 건가요?”

박은선이 서인우의 눈을 응시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 돼! 누구 과로사하는 꼴 보려고 그래?

중식도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새벽부터 장사 준비하고 제가 만들 수 있는 최선이라서요.”

“그러니까 왜 사장님 혼자 만드시냐고요. 사장님이 속을 만들어 주시면 제가 만두를 빚어서 팔면 어떨까 싶은데….”

“박은선 씨가요?”

“제가 송편도 잘 빚고 만두도 제법 잘 만들어요. 손도 상당히 빠른 편이고요.”

서인우는 생각지 못한 제안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안 셰프 가족에게 조금이라도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에 일자리를 제안했는데, 이렇게 되면 박은선의 일이 너무 많아진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지만, 퇴근해서도 쉬지 못하고 유진이까지 챙겨야 하는 박은선한테 너무 무리일 것 같았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는데, 그러면 일이 너무 많아집니다.”

“그러면 우선 일주일만 해볼게요. 그리고 또 방법을 찾아봐요. 홀을 책임지고 있는 윤지영 씨, 정다운 씨하고는 얘기 다 끝났어요.”

서인우가 당황해 안상훈을 쳐다보자 그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퇴근하고 둘이 의논한 내용입니다.”

홀에서 식사하고 있던 손님이 계산하고 나가자 잠시 생긴 틈을 이용해 정다운과 윤지영도 주방으로 들어왔다.

“오빠 우리하고는 이미 얘기된 내용이야. 홀은 지금 둘이 충분히 커버 가능하고, 바쁜 시간에만 은선 언니가 도와주시면 될 것 같아.”

뭔가 결심한 듯 서인우가 홀이 보이는 주방 유리 벽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사실 지영이 후임 뽑고 어느 정도 가게 안정되면 홀이 보이는 여기 이쪽에 큰 테이블을 놓고 만두를 빚어 판매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요? 그거 좋은 아이디어 같아요.”

“그래. 만두 빚는 걸 직접 보면 더 믿을 수 있지.”

정다운과 윤지영이 동시에 찬성의 강한 뜻을 밝혔다.

“그러면 박은선 씨 말씀대로 일주일만 해보고, 반응이 좋으면 만두 담당 직원을 하나 더 뽑아서 전에 계획했던 냉동만두 판매도 시작해 보자.”

“좋아요. 찬성.”

박은선이 손뼉을 치며 좋아하자, 하나둘 덩달아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다들 더 바빠질 텐데, 괜찮겠어요?”

“사장님, 저는 지난달부터 월급도 두 배로 받았는데, 뭐든 더 하고 싶어요. 새우면처럼 냉동만두도 분명 성공할 거예요.”

“좋아요. 그러면 내 계획에서 조금 빨라지긴 했는데, 먹물 만두 사업도 본격적으로 준비해봅시다.”

“어떻게 해. 우리 너무 부자 될 것 같다.”

박은선이 남편 안상훈의 어깨를 작은 주먹으로 톡 치며 상기되어 붉어진 얼굴을 살짝 기댔다.

“자기한테 달렸다는 거 알지? 정말 자신 있기는 한 거야?”

“그럼. 내가 원래 손으로 만드는 건 다 잘해.”

박은선이 만들어 준 김밥을 먹어 본 일인으로 백퍼 공감되는 말이었다.

“그럼 내가 만두 담당 직원을 하나 더 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제가 소개해도 되겠습니까?”

조용히 듣고 있던 안상훈이 슬며시 물었다.

“안 셰프님이 소개해주시면 저야 더 감사하죠.”

“제가 아는 분이 만두를 기가 막히게 만듭니다. 처음 만났을 때 만두 인생 10년이 넘었다는데, 손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런 분이면 지금 어딘가에서 일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서풍] 없어지고 잠시 지방에서 일했을 때 만난 사람인데, 정말 성실해요. 서울에 올라온 지 일 년 됐는데, 지난달에 사장이 다섯 달 밀린 월급을 안 준다고 전화해서 울더라고요.”

“어머. 거기가 어디예요? 뭐 그런 개차반 같은 사장이 있어.”

흥분한 정다운 입에서 또 거친 언행이 툭 튀어나왔다.

“나도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신경이 쓰였었는데, 우리 가게에서 같이 일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사장님과 다른 분들이 동의하시면요.”

다들 동의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딱 한 사람 박은선만이 눈동자가 좌우 위아래로 정신없이 굴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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