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110화 (110/200)

제110화.

MS 백화점 지하 1층 식품관 입구에 준비된 팝업 스토어에서 이준형과 정다운이 열심히 새우면을 설명하고 있었다.

쇼핑하러 온 사람들과 간단히 식사하러 온 사람들이 하나둘 관심을 가지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게 요리경연대회에서 최종우승한 사람이 만든 그 새우면 맞아요? 밀가루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고 했던 그거?”

“네, 맞습니다. 고객님. 저희 사장님과 박정원 대표님이 함께 공동 제작하신 제품입니다. 여기 MS 백화점에서 최초로 판매하는 거니까 한번 드셔보세요.”

방송을 보면서 호기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이것저것 물어보고 요리법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다운 씨. 영업도 잘하네.”

“내가 뭐든 하면 제대로 하거든요.”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선뜻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아직 광고가 안 돼서 그런가? 사람들이 바로바로 사지는 않네요.”

“아무래도 처음 접하는 제품이니까 이것도 입소문이 나면 달라질 거야. 나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

“네.”

이준형이 화장실을 향해 막 꺾어지자마자 9층 식당 인테리어를 살피고 서인우가 내려왔다.

“다운 씨. 수고가 많지?”

“사장님. 일찍 나오셨네요?”

“당연히 일찍 나와야지. 9층 좀 들여다보고 왔어. 준형이는 어디 갔나 보네?”

“잠시 화장실에...어서오세요.”

“어머, 서인우 씨 맞죠? 중화요리 최고의 고수?”

“아, 안녕하세요. 그때 방송에서 보여드렸던 밀가루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새우면입니다.”

“그 방송 보고 나도 한번 먹어보고 싶었는데...이렇게 제품으로 나오게 될 줄 몰랐어요. 이거랑 저거 두 개씩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서인우씨, 맞네. 나도 나도 두 개씩 주세요.”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며 새우면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손에 물기를 털어내며 다가오던 이준형이 놀란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다 달려왔다.

“뭐냐? 왜 이렇게 갑자기 사람들이 몰린 거야?”

정다운이 피식 웃으며 서인우를 가리켰다.

“그 어떤 홍보도 광고도 다 필요 없어요. 사장님 존재 자체가 최고의 영업전략이네요.”

“이씨, 지금 다들 서인우 얼굴 보려고 모여든 거란 말이야? 난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있어서 무슨 연예인이라도 나타났나 했네.”

“시끄럽고요. 저 고객님 것부터 빨리 봉투에 담아주세요.”

잠시 뾰로통해 있던 이준형이 몰려드는 사람들을 정리해가며 새우면을 판매했다.

셋이 나란히 서서 제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인우야. 이러다 우리 재벌 되는 거 아니냐?”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너랑 정다운 씨가 후회하지는 않게 해줄게.”

“후회는 무슨...내가 얘기 안 했나?”

“뭘?”

“내가 너 엄청나게 사랑한다고.”

“확 계약 없던 일로 하는 수가 있다.”

이준형이 연신 키득키득 웃다가도 손님이 다가오면 바로바로 새우면을 설명하고 계산을 했다.

계속 서 있고 설명하고 하면서도 전혀 힘들지 않아 보이는 게 조금씩 일하는 재미를 느끼게 된 것 같았다.

“제시카 씨는 잘하고 있냐?”

“응, 일찍부터 와서 인부들한테 인테리어 컨셉 설명해주고 있는 것 같았어. 나중에 한 번 올라가 봐.”

“그래, 손님 좀 적어지면 아이스커피라도 사서 가봐야겠다. 어서 오세요.”

4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 두 명이 다가와 두 종류의 새우면을 살피고 있었다.

“이거 요리하기 어렵지 않나? 아무나 할 수 있는 건가요?”

“네, 이 제품이요...”

“서인우 씨가 직접 설명해주면 좋겠는데...”

이준형의 얼굴이 빨간 사과가 되고 있었다.

“아, 네. 제가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여기 면만 들어있는 건 고객님들이 요리하실 때 흔히 사용하시는 라면 사리, 우동 사리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럼 부대찌개나 볶음면 뭐 이런 거 하면 되겠네요?”

“네, 밀가루에 대한 부담 없이 얼마든지 넣어서 드실 수 있습니다.”

아주머니 하나가 포장된 새우면을 여러 개 집어 앞으로 가져갔다.

“어머, 잘됐다. 우리 이거 좀 사서 쟁여놓자. 요즘 별로 먹지도 않는데, 자꾸 살이 쪄서...아마 밀가루 때문인 것 같아. 자긴 안 그래?”

“맞아. 요즘 더워서 입맛도 없어서 자꾸 국수 같은 거 먹으니까 살이 붙는 것 같아. 나 지난번 보다 좀 찐 것 같지 않아?”

“에이, 모르겠는데?”

서로 툭툭 쳐가며 깔깔 웃고 있는 아주머니 사이로 고개를 쑥 내민 이준형이 숨겨 놨던 영업 스킬을 뽐내기 시작했다.

“고객님. 두 분 다 좀 잘 챙겨 드셔야 겠어요. 대충 보니까 30대는 되신 것 같은데...이렇게 살점이 없으시면 나중에 나이 드셔서 골골하십니다.”

“네? 30대요?”

“죄송합니다. 혹시 20대이신가요? 제가 여자들 나이는 잘 모르겠어서. 여기 직원이 이제 막 20대 됐는데, 언니 같은데...”

“언니? 에구 이 아가씨 기분 나쁘겠네. 우리는 이모나 엄마 뻘이지?”

말하면서 연신 입이 귀에 걸린 아주머니들을 정면으로 쳐다보며 이준형이 유독 큰 리액션을 펼쳤다.

“네? 엄마요? 그럼 이 직원이 유치원생이어야 하는데요?”

“뭐라고요? 이 직원 재미있네. 호호호.”

이미 새우면 사리 와 밀키트를 여러 개 집어 들고 있던 아주머니 둘이 경쟁하듯이 하나둘 더 집어 들었다.

“고객님. 유통기한 잘 확인하시고 날짜 내에 필요하신 만큼만 구매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많이 사주겠다는데도 그걸 말리고 있는 서인우를 슬쩍 노려본 이준형이 말을 이었다.

“네, 여기 백화점 식품관에서 계속 판매할 겁니다. 필요하신 만큼 구매하세요.”

“그래요? 음...그래도 이건 다 줘요. 자기는?”

“나도 요거 네 개. 밀키트 네 개 주세요. 우린 네 식구라 한 번 먹으면 없어. 씁, 더 살까?”

쇼핑백 가득 새우면을 담고 사라지는 손님을 바라보며 정다운이 이준형의 옆구리를 툭 쳤다.

“오, 아저씨. 장사 잘하네요?”

“내가 또 아줌마들 심리를 잘 알아.”

“어떻게요?”

“우리 엄마가 거의 매일 살이 찐 거 같지 않냐 물어봤었거든.”

“아!”

“하루는 솔직히 얘기했다가 나 그날 한 끼도 못 얻어먹었다. 그때 얻은 교훈이지. 여자들한테 외모에 관해서는 절대 진실을 말하면 안 되고 칭찬만 해줘야 한다는 거.”

잠시 크게 웃고는 바로 다시 판매를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백화점 입구에서 가장 핫한 스토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 * *

복사해온 CCTV 화면을 유심히 쳐다보던 유재철이 오토바이 번호판을 확대해 적으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난데 유재철. 지금 보낸 번호 하나만 조회해줘.”

“선배님. 또 무슨 일인데 직접 움직이셨어요?”

“별거는 아니고, 그냥 뺑소니 사고. 좀 찝찝한 게 있어서.”

“선배님이 찝찝하다면 분명 뭔가 있는 거겠네요. 잠시만요.”

핸드폰 너머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경쾌한 소리가 전해졌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희끗희끗한 머리를 대충 쓸어넘긴 유재철이 대답이 건너오기를 기다리며 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이 번호, 도난 신고 들어온 거네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두드리던 손가락을 책상 위에 그대로 멈추고 있던 유재철이 걸터앉아있던 책상에서 내려왔다.

“그러면 그 오토바이 주인 이름이랑 주소 좀 보내줘.”

“네, 안 그래도 지금 보냈습니다.”

“땡큐.”

“선배님! 언제...”

“알았어, 밥 살게. 끊자.”

주소가 적힌 문자를 보며 주차장에 도착한 유재철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럼 한 번 움직여 볼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인데...그 꼬리 잡으러 가보자.”

혼잣말하며 액셀러레이터 위에 올린 발에 힘을 주었다.

* * *

핸드폰을 손에 쥐고 사무실 창가에 서서 밖을 내려다보고 있던 김형식이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핸드폰을 귀에 가져갔다.

“그래서 지금 어디까지 알아냈다는 거야?”

-그때 사용했던 오토바이 주인을 만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오토바이를 제가 사용했다는 걸 알아낼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확신할 수 있어?”

-회장님. 저 못 믿습니까?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김형식이 인상을 쓰자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니까 애초에 일을 확실히 처리 했어야지? 심사장에 가지 못하도록 팔이든 다리든 부러트려 놓으라고 하지 않았나?”

-그 인간 다리가 성하지 않을 겁니다. 그 상태로 움직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뿐입니다.

“하여튼 어떤 상황에서도 내 이름이 나오는 일은 없어야 할거야. 딸내미들 생각해야지.”

잠시 답이 바로 건너오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악의 경우 제가 안고 갑니다.

“그래야지. 그게 부모인 게지. 알았어. 끊어!”

통화를 마치고 핸드폰을 서랍 안에 밀어 넣고 의자에 등을 기대앉았다.

“멍청한 것들. 누구 하나 맘에 들게 일하는 놈이 없어.”

똑똑.

아직 짜증이 가라앉지 않았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후 회의 결과를 가지고 회장실 문 앞에 서 있던 차성철이 안에서 대답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와!”

퉁명스러운 소리가 들리자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회의 결과 가지고 왔습니다.”

“맨날 아무 발전도 없는 회의...뭔가 좀 획기적인 대안이 좀 나왔나?”

가늘게 뜬 눈으로 노려보는 눈빛에 평상시보다 더 살벌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잠시 움찔했던 차성철이 금세 자세를 가다듬었다.

“MS 백화점 입점에 실패했으니 이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분명 [서풍]이 날개를 달기 시작할 거야. 난 그 꼴은 죽어도 볼 수 없어.”

차성철이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해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김형식을 쳐다보고 있었다.

“차 팀장. 지금 그 눈빛이 뭔가?”

“아주 하찮은 규모의 [서풍]이 이제는 우리 [만가복]과 견줄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가려 합니다. 그 기회는 회장님이 제공하셨습니다.”

“뭐야? 어디서 건방지게….”

김형식의 강렬한 눈빛에 절대 지지 않는 강한 시선을 보낸 차성철이 한 가닥 내려온 머리카락을 올렸다.

“서인우의 [서풍TWO] 가게를 문 닫게 만든 장본인이 회장님이시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만가복]이 뭐가 아쉬워서 그렇게까지….”

“자넨 아직 몰라.”

“뭐를 모른다는 말씀이십니까?”

“서인우, 그리고 그 아버지 서동수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타고난 재능. 내가 그리고 우리 아들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안 되는 그 능력 말이야.”

“그래도 당당하게 실력으로 겨뤘어야 했습니다. 저는 우리 [만가복]이라면 충분히 그따위 가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경쟁하기에는 사이즈부터가 다릅니다.”

“아니, 몇 년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그 평가를 알면서 그런 말을 지껄이고 있나?”

차성철이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있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만가복]의 전 직원이 서인우가 쏟는 노력 그 이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말을 못 알아듣나? 그게 노력으로 될 게 아니란 말이야.”

짧은 한숨 소리만 들리며 한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차성철이 작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한 번쯤은, 단 한 번이라도 아드님을 믿어주셨어야죠?”

“차 팀장! 일 잘한다고 내가 너무 기를 살려놨군. 선을 넘지 말게.”

“죄송합니다. 호통 들을 것 각오하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드님을 딱 한 번만 믿어봐 주세요.”

김형식이 시선을 들어 차성철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내 아들 김원상. 그놈은 절대 서인우 한테 안돼. 서인우가...그 서인우가 내 아들로 태어났어야지.”

차성철이 놀라 김형식을 향하던 시선을 바닥으로 떨궜다.

바로 그때 문 앞에 김원상이 서 있었다.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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