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95화 (95/200)

제95화.

마지막 짬뽕을 만들 차례였다.

-이제 우리 [서풍]의 인기 메뉴인 짬뽕을 선보일 때인가? 너무 맛있어서 기절하면 안 될 텐데 말이지.

‘[만가복] 짬뽕도 만만치 않을 거야, 사부. 긴장하자고.’

-그래봤자 [만가복]엔 내가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 우선 오징어에 꽃부터 피워볼까?

서인우가 싱싱한 오징어를 도마 위에 올리자 중식도가 엄청난 속도로, 그러면서도 자로 잰 듯이 일정한 간격으로 칼집을 냈다.

잠시 그 모습을 넋을 잃고 보고 있던 차은석이 김원상에게 작게 귓속말을 했다.

“저 친구 중식도 다루는 솜씨가 정말 남다르긴 하네요.”

“멍청하게 밤낮으로 칼질만 하는 모양이지. 우리처럼 항상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업체를 키워나가는 건 할 줄도 모르는 애송이라니까.”

“그래도 저 정도 실력은 연습만 한다고 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김원상이 말없이 인상을 쓰자 차은석도 눈치껏 말끝을 흐렸다.

“죄송합니다. 요리에 집중하겠습니다.”

화라락.

서인우의 웍에 불길이 확 올라오더니 주방에 맛있는 향이 가득했다.

이에 질세라 김원상도 웍을 기울여 불향을 입혔다.

서인우와 김원상이 해물이 가득한 짬뽕을 만들 동안, 안상훈과 차은석이 탁탁 소리를 내며 수타면을 만들고 있었다.

화면을 통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심사단 석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와! 저 불맛 나는 짬뽕 빨리 맛보고 싶네.”

“수타면 만드는 장면은 봐도 봐도 신기하단 말이야. 저, 저것 봐. 벌써 면이 가늘어지고 있어.”

“이야. 역시 최고의 실력자들이네.”

최만수 또한 서인우의 칼질에 화면으로 빨려 들어갈 듯 넋을 잃고 쳐다보더니, 수타면을 만드는 모습이 보이자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장비서가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 젊은이 요리하는 모습 보시니까 또 몸이 들썩하시는가 봅니다.”

“다음 주에는 내려가야겠어. 가게를 너무 오래 비워서….”

“거긴 박 주방장이 잘하고 있는데, 무슨 걱정이십니까?”

“그래도 거기 사람들이 내가 만든 음식을 기다린단 말일세. 박 주방장보다는 내 실력이 더 낫지.”

“최 사장이 이제는 더 못 내려가시게 할 것 같은데요?”

최만수가 꺼진 모니터를 아쉬운 듯 쳐다봤다.

“회사 일은 민기가 알아서 잘하는데, 저기 저 친구처럼 듬직한 직원들도 많고 말이야…. 내 노년의 낙을 뺏으면 안...짬뽕 나오는구만.”

지금은 낙이고 뭐고 서인우가 만든 [서풍]의 짬뽕을 먹을 생각에 최만수의 얼굴에 다시 화색이 돌았다.

역시 흰 그릇에 담겨 나온 짬뽕은 보는 것만으로도 침샘을 자극했다.

두 개의 짬뽕을 신중하게 맛보며 비교했다.

[서풍] 짬뽕을 유독 좋아했던 최만수는 그 차이를 금방 알아내고 망설임 없이 스티커를 붙였다.

국물 한 방울 없이 다 비운 최만수가 이번에도 짬뽕이 담겼던 그릇을 유심히 살폈다.

옆에 앉은 장비서는 도대체 뭘 보고 있는 건지 답답한 마음에 조금 남은 국물까지 다 마셔버렸다.

그리고, 꼼꼼하게 두 그릇을 살피던 장비서가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회장님, 잠시 회장님 그릇 좀 보겠습니다.”

장비서가 작은 목소리로 말하자, 최만수가 가만히 있으라는 눈짓을 했다.

“내가 좀 의심스러운 게 있어서 그러니, 우선 티 내지 말고 가만히 앉아있게.”

그리고는 바로 조심스럽게 의자를 뒤로 빼고 아직 짬뽕을 먹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걸으며 작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 시식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정도면 우리 백화점에 입점할 만합니까?”

인사를 나누는 눈이 평상시와 다르게 날카롭게 빛났다.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사람들은 저마다 오늘 맛본 음식 맛을 칭찬하기 바빴다.

그렇게 가벼운 인사를 건네며 홀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자리에 앉은 최만수가 입을 굳게 다물고 구본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에 구본석이 잠시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무 명의 심사단 전원이 시식을 마친 듯 젓가락을 내려놓고 구본석의 진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준비한 네 가지 음식에 대한 시식이 끝났습니다. 다들 불편한 건 없으셨나요?”

“여기 [도원] 음식도 최고였는데, 오늘 또 한 번 내 최애짬뽕집이 바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언제쯤 여기서 맛볼 수 있는 겁니까?”

“이틀 후 2차 심사를 마치고 나면 최종 입점 업체가 결정될 것입니다.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오픈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차 심사는 어떻게 진행 되는지 알고 싶은데요...또 어떤 요리를 선보여 줄지 벌써 기대되네요.”

“2차 심사는 각 팀의 스페셜 메뉴를 선보일 겁니다. 메뉴는 그날 바로 공개하도록 할 것입니다.”

여기저기서 아쉬움이 섞인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럼 오늘 1차 심사 결과를 확인해 볼까요?”

구본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오진수 대리가 큰 카트에 그릇들을 가득 담아 들고 다가왔다.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던 심사단들이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를 상황에 다가오는 카트를 목을 빼며 보고 있었다.

이준형 또한 길게 목을 빼서 카트에 놓인 그릇들을 쳐다봤다.

“왜 저 그릇들을 다 가지고 들어왔지?”

“글쎄요.”

“선거처럼 하나하나 공개해서 스티커를 많이 받은 팀을 발표하려나 본데...떨리지만, 재미있겠다.”

여전히 목을 빼고 보고 있던 이준형의 눈에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느라 진땀을 흘렸을 서인우와 안상훈의 모습이 보였다.

“어! 인우야?”

반가움에 큰소리로 서인우를 부른 이준형이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몰리자 간신히 잡아 둔 오른쪽 다리를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 뒤에 잠시 있어요.”

이준형 어깨에 닿을 듯한 작은 체구의 정다운이 앞으로 나서며 말하자 그의 얼굴이 막 나온 햇사과처럼 붉게 물들었다.

“다운 씨. 감동이야.”

둘의 모습을 슬쩍 쳐다본 서인우가 반가움에 해바라기같이 환한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바로 시선을 돌리던 서인우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어떻게 어르신이...어르신도 시식단으로 참여를 하신 건가?’

최만수와 눈이 마주치자 바로 달려갈 수는 없었지만, 허리를 숙여 깍듯하게 인사했다.

빨리 결과 발표가 끝나고 오랜만에 만난 어르신을 만나보고 싶었다.

김원상도 같이 경연했던 최만수를 알아봤는지 의아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럼 이제 오늘 있었던 1차 심사의 결과를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다운 옆에 비스듬히 서 있던 이준형이 여전히 다리를 떨며 꼴깍꼴깍 계속해서 침을 삼키고 있었다.

“지금 카트 위 오른쪽에는 스티커가 붙은 그릇들이, 왼쪽에는 스티커가 없는 그릇들입니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본석이 오른쪽에서 그릇 두 개를 들어 뒤집어 보였다.

그릇 바닥에 [서풍] 과 [만가복] 글씨가 적힌 작은 라벨이 붙어 있었다.

“아하.”

전혀 몰랐던 사람들이 재미있다는 듯 소리를 내며 반응했다.

“여러분들 어렸을 때 반장선거 해보셨죠? 이제 [서풍]이 받은 스티커가 몇 개인지, [만가복]이 받은 스티커가 몇 개인지 세어 볼 겁니다.”

구본석의 설명에 사람들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재미있다는 듯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누구 한 분 나오셔서 개표를 도와주시겠습니까?”

“내, 내가 하지.”

박진상이 한 번 더 기회를 노렸다.

“내부 직원 말고 고객 심사단 중에서 한 분이면 좋겠습니다.”

구본석의 단호한 발언에 박진상의 얼굴이 시뻘겋게 불타는 고구마가 되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두 번째 테이블에 앉아있던 3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손을 들었다.

“네, 감사합니다.”

구본석과 남자가 나란히 서서 스티커가 붙은 그릇을 뒤집으며 말 그대로 개표를 시작했다.

“제일 첫 스티커는 [만가복].”

“두 번째는 [서풍].”

“이번에도 [서풍].”

“[만가복], [만가복], [서풍]...”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두 팀의 이름이 번갈아 가며 불렸다.

이름이 하나씩 불릴 때마다 사람들이 점점 의자 앞으로 몸을 쑥 빼며 같이 긴장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하나는 [서풍]입니다.”

마지막 발표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이준형이 작게 혼잣말을 했다.

“와씨, 이러다 지리겠다.”

“아, 진짜. 더러워.”

정다운이 한 발짝 크게 떨어져서 이준형을 노려봤다.

“말이 그렇다고, 말이.”

구본석이 옆에 있던 남자를 향해 인사를 하며 말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이제 자리로 돌아가 주시길 바랍니다.”

“또 뭐 할 거 없습니까? 제가 이 카트 이제 주방에 가져다 놓을까요?”

“아닙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계속 쭈뼛쭈뼛 망설이던 남자가 박진상을 힐끗 보더니, 자리로 돌아갔다.

“이제 1차 심사 결과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탕수육은 총 스무 개의 스티커가 사용되었고, 나머지 세 개의 음식은 회장님과 장 비서님을 포함해 스물두 개의 스티커가 사용됐습니다. 그러면 총...”

“팔십육 개.”

이준형이 재빨리 대답했다.

“저기 초등학교 때 산수 잘했던 분이 계시네요. 맞습니다. 다시 말해 총 팔십육 개의 표 중 두 팀이 각각 몇 개를 받았는지 발표하겠습니다.”

둥둥.

어디선가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이 흘러나와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오진수 대리. 결과를 알려 주시죠.”

오대리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네, 아마 계산을 같이하신 분들도 계실 텐데요...총 팔십육 표 중에 [서풍]이 마흔세 표, [만가복]이 마흔세 표를 받았습니다.”

“아! 뭐?”

고개를 끄덕이던 이준형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럼 동점입니까?”

심사단 중 한 명이 질문을 던졌다.

“공교롭게도 득표수가 반반입니다.”

이런...후라이드 양념 반반도 아니고.

이준형의 코가 심하게 벌름거리고 있었다.

서인우와 안상훈 또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2차 심사 결과로 결정되는 겁니까?”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대변하기라도 하듯이 긴 머리의 젊은 여자가 물었다.

“정상적으로는 1차 심사는 동점이니 2차 심사로 결정하는 게 맞습니다.”

홀 안이 다시 술렁거렸다.

구본석의 설명이 이해 안 간다는 표정의 사람들이 저마다 옆 사람과 뭐라 속삭이고 있었다.

점점 소란스러워지자 박진상이 앞으로 나와 큰 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정확히 반반으로 나뉘었다는 것은 정말 두 팀의 실력이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는 뜻이겠죠?”

입술 끝을 올리며 슬쩍 웃어 보이고 난 박진상이 말을 이었다.

“그만큼 우리 식품부 직원들이 정말 대단한 분들을 섭외했다는 사실을 꼭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에 심사단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다.

어깨가 으쓱해진 박진상이 신이 나 계속 말을 이었다.

“오늘 결과는 이렇게 동점이라는 사실을 다시 밝히며 이틀 후 있을 스페셜 메뉴 심사를 많이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로써 1차 심사를 마치도록...”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구본석이 싱글벙글 신난 박진상의 얼굴에 찬물을 확 끼얹었다.

“무슨 소리입니까, 구 과장?”

사람들 앞이라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박진상이 잔뜩 찌그러진 얼굴로 구본석을 쳐다봤다.

그때였다.

최만수가 서서히 몸을 일으켜 박진상과 구본석이 서 있는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해 짧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시선을 돌려 서인우와 김원상을 쳐다봤다.

“이번 1차 심사는 무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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