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92화 (92/200)

제92화.

MS 백화점 입점을 위한 대결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비록 자신의 가게는 아니지만, 마영준의 가게에서 그의 영업을 도와가며 밤새 열심히 연습했다.

“매일 그렇게 밤새우고 잘 버티는 거 보면 젊음이 좋긴 좋은가 보다.”

브레이크 타임에 또다시 웍을 잡은 서인우를 보며 마영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형하고 몇 살 차이 안 납니다. 나이 때문이 아니라 평상시 쌓아놓은 체력 차이인 거죠.”

“지금 나 저질 체력이라고 흉보는 거지?”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안상훈이 한마디 거들었다.

“이제 곧 사십이 되는 나도 있습니다.”

셋이 소리 내서 한바탕 웃었다.

“안 셰프님 웃는 모습 보니까 정말 기분 좋습니다. 전에 [서풍]에서 뵀을 때는 워낙 말도 없고 얼굴도 어두워서 말 붙이기 어려웠는데...”

“그때는...사실 내가 대인 기피증이 심각했었습니다.”

“네?”

서인우는 그저 낯가림이 심하다고 생각했던 안상훈이 꺼낸 말에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적잖이 놀랐다.

“서동수 사장님 덕에 지금 많이 좋아졌습니다. 처음 일 년 동안 묻는 말에 대답 외에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으니까요.”

“전혀 몰랐습니다.”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처음 보는 사람들과 대화는 좀 힘들긴 합니다.”

그래서 처음 만났을 때 그토록 불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나보다.

“서동수 사장님 덕에 조금씩 사람들 눈을 보며 대화하기 시작했고, 우리 딸 유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정말이지 많이 고쳐졌습니다.”

조그만 입으로 옹알옹알 떠드는 모습을 보며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려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세상을 다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정말 선물 같은 딸이 있어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원상은 스페셜 요리로 뭘 준비할까요? 정말 열심히 연습했는데, 우리가 이길 수 있겠죠?”

“걱정하지 마. 요리 고수 서인우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서인우는 그동안 선보였던 스페셜 요리 중에 가장 좋은 평을 받았던 치즈 치킨 밥을 다시 만들어 볼 생각에 찹쌀을 물에 담가놓았다.

“지겹지도 않냐? 또 만들어 보려고?”

“오늘은 안 셰프님의 플레이팅까지 완성해 보려고요. 곧 정다운 씨랑 준형이도 올 거니까 냉정하게 다시 한번 판단해 주세요.”

“맛있다니까, 엄청 맛있어.”

마영준은 자신도 잘 나가는 퓨전 중식 요리사지만, 이번에 서인우가 대회 준비하며 선보인 치즈 치킨 밥이 욕심날 정도로 맛있었다.

‘사부, 준비됐지? 연습했던 크기로 정확히 재료 손질 부탁해.’

-나야 에브리데이 스텐바이지.

닭 다리 살과 닭 날개, 표고버섯, 당근, 양파 등 재료를 작게 잘라 준비했다.

웍에 기름을 두르고 표고버섯과 양파, 당근을 볶다가 같은 크기로 손질해놓은 닭고기를 넣고 굴 소스와 간장을 첨가해 볶았다.

미리 씻어놓은 연잎에 불린 찹쌀을 넣고 그 위에 볶은 재료를 올린 후 다시 찹쌀을 얇게 펴서 올렸다.

연잎으로 꼼꼼하게 싼 재료를 찜기에 올려 찹쌀이 다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

잘 쪄진 치킨 찹쌀밥에 샐러드 소스를 얇게 펴 바른 후 모짜렐라 치즈와 체다 치즈를 섞어 골고루 덮어주었다.

“자, 이제 오븐에 굽기만 하면 완성입니다.”

마침 예열된 오븐에 치즈 치킨 밥을 넣으려 할 때 정다운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저 늦은 거 아니죠?”

“어서 와, 다운 씨. 이제 오븐에 구울거니까 시간 딱 맞게 왔어.”

“아저씨는 아직 안 왔네요?”

“걱정하지 마, 먹는 일에는 절대 늦거나 빠지지 않으니까.”

서인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게 문이 열렸다.

“저기 들어오네.”

오븐에서 나는 고소한 향이 주방에 가득했다.

안상훈 또한 청경채와 표고버섯을 윤기 나게 볶아 놓았다.

띵 소리와 함께 오븐이 어서 맛있는 요리를 꺼내라고 외치고 있었다.

“안 셰프님, 이제 구상하신 플레이팅 부탁합니다.”

서인우가 맛있게 구워진 치즈 치킨 밥을 꺼내오자 안상훈이 기다란 접시 위에 자신이 볶은 청경채 표고버섯볶음을 왼쪽에 올렸다.

그리고, 가운데에 치즈 치킨 밥을 올리고 오른쪽에 매콤한 칠리 소스로 잽싸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 그 모습을 숨죽여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림을 완성한 안상훈이 쑥스러운 듯 앞치마를 꾹 움켜쥐었다.

마영준, 이준형 그리고 정다운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테이블로 완성된 요리를 들고 간 서인우와 안상훈의 얼굴이 진짜 대회라도 된 듯이 상기되어 있었다.

“우와 대박!”

이준형이 큰소리로 외침과 동시에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칠리소스로 완성된 작은 연꽃이 마치 방금 물에서 건진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안 셰프님, 이걸 아까워서 어떻게 먹어요?”

대답 대신 쑥스러운 미소만 짓고 있는 안상훈을 대신해 서인우가 간단히 음식에 대해 설명했다.

“다들 이미 여러 번 맛봐서 알겠지만, 메인 요리인 치즈 치킨밥에 어울릴 만한 거를 나와 안셰프님이 고민고민 끝에 만들어 낸 거야.”

“퓨전 요리 같으면서도 중식의 틀을 벗어나지 않은 정말 셰련된 플레이팅이에요.”

마치 전문 음식평론가처럼 평을 하는 정다운이 요리를 향한 갈망의 눈빛을 쏘아댔다.

“그럼 맛을 보고 아주 냉정히 평가해 주세요. 이제 내일까지 최종 레시피를 결정해야 하니까.”

각자 앞접시에 치즈밥과 청경채 표고버섯 볶음을 덜어갔다.

제일 먼저 마영준이 전문가다운 포스로 아무것도 곁들이지 않은 치즈 치킨밥을 입에 넣었다.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서인우는 문득 처음 마영준을 만났던 그때가 떠올랐다.

잔뜩 긴장한 요리대회에서 서인우의 음식에 혹평을 했던 마영준.

그랬던 그가 지금은 서인우의 성공을 바라며 든든한 힘이 되어 주고 있다.

“역시 이 치즈 치킨밥은 정말 욕심나는 레시피야. 다시 먹어도 맛있어. 그럼 소스에 찍어서 먹어보면 어떨지...”

이번에는 치즈 치킨 밥을 안상훈이 만들어놓은 연꽃 모양 칠리소스에 찍어 입에 넣었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이준형과 정다운 역시 같은 순서대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음, 이건 그냥 먹어도 맛있는데, 혹시 느끼하다 느껴질 때 이 소스에 찍어 먹으면 치킨과 칠리소스의 궁합이 워낙 좋아서 최고인 것 같다. 매콤한 맛까지 가미되어 끝내준다.”

이준형도 입안 가득 밥을 집어넣고 긍정의 끄덕거림을 연신 보여주고 있었다.

“사장님, 그리고 안 셰프님. 이거 너무너무 맛있어요. 우리 [서풍 TWO]의 두 번째 대표메뉴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러다 다운 씨 2호점 자기 달라고 조르게 생겼네.”

“못할 것도 없죠.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요리 연습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요.”

이준형이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혹시 그 음식 어머니랑 동생이랑 다 먹어봤어?”

“아니요.”

“왜? 처음에는 맛보고 그랬는데, 두 번째부터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 느끼해서 중식이 안 들어간다고 안 먹더라고요. 우리 식구들이 좀 예민해서...”

아무래도 정다운네 식구들 입맛이 예민한 게 아니라 정다운이 정말 둔한 것 같았다.

그 정도면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하고 포기할 때도 됐건만, 어머니가 먹기를 포기한 음식이라면 정말 아니라는 건데...

세상 사람 모두 아는 사실을 정작 정다운 자신만 모르고 있는듯했다.

마영준의 시식이 다시 시작됐다.

“이번에는 이 치즈 밥 위에 청경채와 표고를 하나 올려서 같이 먹어 볼게. 이건 또 다른 맛이 날듯해서 말이야.”

마치 유치원 선생님을 따라 하는 꼬맹이들처럼 이준형과 정다운도 똑같이 치즈 밥 위에 청경채와 표고를 올리고 있었다.

“둘 다 얼른 먹어봐. 이렇게 먹으니까 퓨전에서 다시 정통 중식으로 맛이 바뀌는 것 같아. 어때?”

“맞아요. 이 표고향 때문인지 소스 때문인지 중식 느낌이 더 확 사는 것 같아.”

이준형의 말에 정다운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치즈 치킨밥에 기본적으로 표고 향이 들어가 있어서 향에도 통일감을 주면서 부족할 수 있는 채소를 곁들일 수 있는 사이드를 생각한 거야.”

서인우의 말을 듣고는 있는 건지 이준형과 마영준이 청경채 표고버섯을 다시 먹고 또 먹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두 남자의 동그랗게 떠진 눈이 안상훈을 향했다.

“왜 그래?”

“야, 인우야. 분명히 이 청경채 표고버섯볶음은 안셰프님이 했다고 했지?”

“응. 왜?”

“그런데, 왜 네가 해준 맛하고 똑같아? 완전 똑같은 맛인데?”

마영준이 순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웃었다.

“서인우가 [서풍]의 맛을 그대로 내고 있고, 안 셰프 또한 서동수 셰프님께 그 비법을 전수받아 똑같이 맛을 내고 있으니...”

“아! 그래서 둘이 이렇게 같은 맛은 낸다는 거죠?”

“그렇지. 정말 대단해.”

“그러네요, 진짜 환상의 파트너네요.”

그 어떤 말보다 더 감동적인 얘기에 안상훈의 미소가 조금 전보다 더 환하게 피어났다.

* * *

같은 시간 [만가복] 마포점.

김원상이 며칠째 고심해서 만든 스페셜 메뉴를 차은석과 의논하고 있었다.

“이건 정말 맛있는데요, 호불호가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긴 합니다.”

접시 위에 촉촉한 육즙을 머금은 오겹살이 윗부분만 갈색으로 바싹하게 구워져 있었다.

“흔히 중국식 수육으로 동파육만 생각하는데, 이건 또 색다른 메뉴라 난 개인적으로 아주 좋습니다.”

“그럼 여기에 사이드로 뭘 올리면 좋을까 고민 좀 해봤어요? 오늘 오 매니저랑 다른 직원들에게 평가를 좀 들어보고 내일 레시피를 수정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이게 아무래도 고기 맛으로 먹는 거니까, 느끼함을 잡아 줄 수 있는 사이드를 생각해 봤습니다.”

김원상 또한 개운함을 살릴 수 있는 사이드를 몇 가지 생각해 놓은 상태였다.

차은석의 실력은 믿지만, 둘이 의견 대립이 생기게 되면 자기가 생각한 사이드로도 음식을 완성해 직접 평가해 볼 생각이었다.

“제가 생각한 사이드 메뉴는 사천식 청경채 볶음입니다. 매콤하고 아삭한 청경채를 고기와 함께 먹으면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김원상은 매콤한 팔보채를 조금 곁들일 생각이었다.

우선 차은석이 만들어 낸 것을 먹어 보고 결정할 생각으로 웍을 가리켰다.

“그럼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차은석이 손질해놓은 청경채와 표고버섯, 죽순, 홍고추 등을 끓는 물에 재빨리 데쳤다.

그리고는 웍에 기름을 두르고 다진 마늘을 볶다가 데친 채소들을 넣어 간장, 두반장, 굴 소스 등을 가미해 센 불에 볶았다.

매운맛을 더하기 위해 고추기름도 약간 추가했다.

매콤한 두반장 소스 향과 표고버섯 향이 어우러져 맛있는 냄새가 주방에 퍼졌다.

김원상이 만들어놓은 오겹살 수육에 앞뒤로 소금을 묻혀 껍데기 부분이 위로 올라가게 해 오븐에 구웠다.

고소한 고기향이 정점에 이를 때 오븐이 다 됐다는 소리를 내뱉었다.

갈색으로 바싹하게 구워진 부분을 위로 올락 오게 잘라 커다란 접시 한쪽으로 담고, 그 옆에 차은석이 만든 사천식 청경채 볶음을 올렸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오승연 홀매니저와 김지호 보조셰프, 그리고 직원 둘을 더 불렀다.

“이 메뉴로 최종 심사를 해볼까 합니다. 그러니 가감 없이 정확하게 평가해 주세요. 눈치 보지 말고.”

“알겠습니다. 벌써 군침이 도는데요?”

오승연 매니저가 먼저 고기를 한 점 가져가 입에 넣었다.

콰삭.

바삭한 소리가 말하지 않아도 식감이 전해지는 듯했다.

“이거 말 그대로 겉바속촉 이네요. 메뉴 이름을 겉바속촉으로 해도 될 것 같아요. 엄청 바삭한데 씹으면 육즙이 쫙 퍼져 정말 맛있어요.”

다른 직원들도 같은 생각인지 웃으며 먹고 있었다.

“이제 사이드 청경채 볶음하고 같이 먹어볼게요.”

오승연이 말하는 새에 김지호 보조 셰프가 먼저 청경채볶음을 입에 넣었다.

잠시 음미하는 김지호 옆에서 고기 한 점에 청경채를 올려 입에 넣은 오승연이 엄지척을 해 보였다.

“이거 매콤한 청경채는 처음인데요? 정말 고기랑 잘 어울려요.”

“사천식 청경채 볶음을 하셨네요?”

역시 셰프라 김지호가 금방 알아먹었다.

“어때요? 괜찮은 것 같아?”

“네, 너무 맛있고 좋아요. 우리 매장에서도 당장 판매 시작해요.”

김원상의 입꼬리가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그럼 잠시 후에 내가 다른 사이드로 한 번 더 해볼 테니까 그때도 지금처럼 정확하고 냉정하게 평가해주세요.”

말을 마친 김원상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팔보채를 평상시보다 더 매콤하게 준비했다.

김원상의 속셈을 눈치챈 차은석이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 김원상을 티가 나게 쳐다봤다.

그것은 처음 김원상이 요리 대회를 준비하면서 시식을 부탁했을 때의 바로 그 눈빛이었다.

아주 기분 나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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