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80화 (80/200)

제80화.

MS 백화점이라면 서울에만 여러 개가 있는 가장 대중적인 백화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대형 백화점에 [서풍TWO]가 입점하게 된다면?

머릿속 계산을 빠르게 마친 이준형의 얼굴색이 벌겋게 변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서인우와 함께 이 가게를 공동 운영하는 이준형이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방금 말씀하신 MS 백화점은 이미 유경동 셰프님의 중식당이 입점해 있지 않나요? 워낙 맛집이라 저도 줄 서서 먹어 봤거든요.”

“제가 알기로는 곧 계약 만기라 나가신다고 하던데…. 한 번 알아보세요.”

“오, 값진 정보 감사합니다.”

이준형이 오묘한 눈빛을 보였다.

옆에 서 있던 서인우 또한 깍듯하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제가 더 감사해요. 너무 오랜만에 진짜 맛있는 [서풍]의 백짬뽕을 먹어서 술이 확 깼거든요. 좀 빨리 마셨는지, 금방 취해서…. 어디든 다음에 또 찾아올게요.”

계속 아무 말 없이 서 있던 차성철이 유현주를 따라 인사를 했다.

“서동수 셰프님이 해주신 맛 그대로입니다. 지난번에 이미 확인 했지만,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지금 이 맛을 계속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그건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든 이 맛은 꼭 지켜낼 겁니다.”

두 남자의 눈이 진지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유현주와 차성철이 가게를 나가고 둘만 남자 이준형이 곧장 노트북을 꺼냈다.

MS 백화점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런저런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뭐하냐?”

“정보를 얻었으면 빨리 실행해야지. 우선 오늘은 늦었고 내일 이 사람한테 전화해서 몇 가지 알아보자.”

“그런 대형 백화점은 이미 내정된 업체가 있지 않을까? 우린 이제 1년도 안 됐는데...”

“너 잊었냐?”

“뭘?”

이준형이 두 팔을 벌려 요리하는 시늉을 했다.

“전 국민이 보는 요리 경연 방송에서 최종 우승을 한 사람이 너라는 사실을 말이야. 이건 해볼 만해.”

“신청을 받아주기만 한다면 잘해볼 자신은 있다. 너와 우리 직원 1호 정다운 씨와 함께라면 뭐든 다 할 수 있어.”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를 꺼내 온 이준형이 칙 소리와 함께 캔을 따 서인우에게 건넸다.

그리고는 다른 한 캔을 들고 부딪쳤다.

“우리 한 번 해보자. 어때?”

“좋아. 비록 이 가게에서 계획했던 일 년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우리 새로운 도약을 꿈꿔보자.”

“진짜 사람 죽으라는 법 없나 보다.”

벌컥벌컥 맥주를 마시고는 이준형의 말이 이어졌다.

“나 사실 취업 포기하고 너랑 이 가게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하고 정말 많이 싸웠다.”

서인우는 처음 듣는 얘기에 묵묵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거 같아. 대기업에 원서만 넣고 다니던 내가 이런 시장 초입에 있는 짜장면집을 운영하겠다고 했으니...”“그럼, 나도 처음에 네가 제안했을 때 솔직히 많이 놀랐으니까.”

“그때도 얘기했지만, 이건 다른 사람이었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어. 너니까, 서인우 너라서 내가 결정한 거지.”

인우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 준형의 말이 정말 큰 힘이 되었다.

“나는 네가 나를 믿어준 결과를 직접 느끼게 해줄 거다. 지금 이 정도 시련에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아프니까 청춘 아니겠냐? 우리는 나이가 깡패인데, 뭐든 도전해보자. 자, 마셔.”

다시 한번 세게 맥주 캔을 부딪치고, 둘이 나란히 앉아 노트북에 보이는 MS 백화점에 관해 이것저것 공부하기 시작했다.

“우선 여기 명함에 있는 번호로 전화해 보자. 그리고, 신청 방법이랑 조건도 알아보고. 내일 바쁘겠는데?”

“심사 준비는 나한테 맡겨. 내가 경연대회 때보다 더 열심히 준비해볼 테니까.”

“그래, 너만 믿는다. 나 당분간 부모님께는 비밀로 할거거든. 걱정 끼쳐 드리기 싫다.”

“그러자. 나도 잘 넘기기만 바랄 뿐이다. 우리 이모부 아시게 되면 아주 시끄러워질 거야.”

둘이 새 캔을 따서 부딪치며 조용히 작전을 세우기 시작했다.

“내일 정다운 씨 출근하면 교육 제대로 해야겠다. 지영씨랑 아주 친해진 것 같던데.”

“그래, 지영이 알면 우리 최소 한 시간은 볶일 거다. 하루라도 빨리 대책을 세워야지, 이모네 식구 누구든 알게 되면 우리 아무도 못 말린다. 이것만 비우고 일어나자.”

“그래,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고.”

빈 캔을 치우고 둘이 같이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갔다.

* * *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잠에서 깬 서인우는 곧장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달리기 시작했다.

생각할 것이 많은 날은 더 먼 거리를 달렸다.

더운 날씨지만, 그나마 새벽바람은 숨이 막힐 정도는 아니었다.

흐린 회색 운동복이 땀에 젖어 진한 색으로 변했을 때쯤 집으로 돌아와 개운하게 샤워를 했다.

어김없이 찾아온 새벽시장.

잠들어 있었을 때는 전혀 몰랐던 풍경.

새벽 시장에 올 때마다 서인우는 이렇게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했다.

달콤한 잠과 맞바꿀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싱싱한 해산물과 신선한 채소들을 사서 가게에 도착한 서인우는 제일 먼저 중식도를 찾았다.

“사부, 어제 그 여자 손님이 귀인이었던 거지?”

-그 여자가 준 정보에 성공적인 결과가 있어야 귀인이 되겠지. 사실 귀인과 악연은 한 끗 차이니까.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너에게 뭔가 도움을 주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잘못됐을 때 그럴 때도 그 사람을 귀인이라 부를 수 있을까?

서인우는 채소를 손질하던 손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지. 결국 좋은 결과를 얻어야 귀인이 되는 거긴 하지. 다시 말해서 어제 그 여자분이 귀인이 되는 건 나한테 달린 거네?”

-이제 좀 세상 이치를 알겠냐?

“그럼 귀인으로 만들어야겠어. 아니, 꼭 그렇게 만들 거야. 반드시 MS 백화점에 우리 [서풍TWO] 입점을 성공시킬 거고, 먹물 만두도 그 백화점에 납품해볼 생각이야.”

-야, 우리 제자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응, 모든 건 사부와 함께하는 계획이라는 거 잘 알지?”

-이거 뭔가 노예계약 같은 냄새가 나는데...변호사를 좀 고용해야겠어.

각종 채소를 손질하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주방에 가득했다.

아직 8시도 되지 않은 이른 아침에 [서풍TWO]의 문이 열리며 종소리가 맑게 울렸다.

중식도와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던 서인우가 흠칫 놀라 나가보니 어릴 적 실험실에서 본 듯한 핏줄 가득한 눈깔을 한 이준형이 보였다.

자다가 뛰쳐나왔는지 뒷머리가 정확히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이준형, 너 꼴이 이게 뭐냐? 출근이 아니라 밤샘 근무하고 퇴근하는 사람 같잖아?”

“내가 밤새 생각해 봤는데, 우리 이번에 어떻게든 백화점으로 들어가자.”

“그래, 지원 자격이 안 되면 밤낮으로 쫓아다니며 사정해 볼 생각이다. 우리 아빠처럼.”

“네 아버지?”

“응, 그런 게 있어. 다음에 기회 되면 얘기해 줄게.”

이준형이 그제야 의자를 빼서 앉으며 맞은편 자리를 손으로 툭툭 쳤다.

“잠깐 앉아봐.”

“나, 아직 점심 장사 준비 덜 됐는데?”

“잠시면 돼.”

서인우가 앉는 걸 기다릴 새도 없다는 듯이 이준형의 입이 바로 열렸다.

“우리 백화점 입점에 성공하고 나서 나한테 좋은 계획이 생겼어.”

“난 천천히 준비해서 먹물 만두도 납품해볼 생각이다. 그 백화점부터... 네 계획은 뭔데?”

누군가가 손가락을 튕겨서 세상이 멈춘 줄 알았다.

이준형이 입을 벌린 채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야, 이준형. 왜 그래?”

“내가 한숨도 못 자고 고민하다 세운 계획인데…. 너, 너 이자식이 어떻게....”

“무슨 소리야? 숨 좀 쉬고 똑바로 말해봐.”

“말 안 해.”

이준형이 갑자기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는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얘가 뒤늦게 사춘기가 왔나?

감정 조절이 안 되는 건가 싶었다.

잠시 후 박았던 고개를 쳐든 이준형이 작은 눈으로 서인우를 노려봤다.

“넌 요리 담당하는 셰프니까 지금처럼 완벽한 요리만 해주면 되지, 왜 내 영역을 침범하는데?”

“네 영역?”

“그래. 우리가 동업하는 조건 말이야.”

서인우는 속으로 둘이 동업하는 조건이 있었나 한참 생각했다.

“넌 요리 담당이고 내가 브레인 담당인데...그래서 뭐든 획기적인 계획을 세워보려고 한숨도 안 자고 나왔단 말이야.”

“아!”

이제 무슨 말인지 알아먹었다.

브레인 담당이 맞는...거겠지?

희망 사항인 듯한 이준형의 외침에 서인우가 작게 소리 내 웃었다.

“웃지 마! 인마, 기분 나빠.”

“좋아서.”

“그건 또 뭔 소리?”

“네가 이 [서풍]을 위해 얼마나 열심인지 한 번 더 알게 돼서 너무 좋다.”

“잊었나 본데, 나 동업자야. 내 인생을 걸었다고.”

이준형의 어깨를 툭 치며 서인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아침이나 먹자. 오랜만에 먹물 만두 먹을까?”

“먹물 만두? 나 먹을 게 있어?”

“오늘은 조금 더 만들면 되지. 손님한테는 못 팔아도 내 동업자는 배불리 먹여준다.”

“좋아, 벌써 군침 도네. 빨리 만들자.”

이준형과 같이 주방으로 들어가자 중식도의 소리가 다시 들렸다.

-아, 깜짝이야. 쟤 꼴이 왜 저래?

‘우리 가게의 무한한 발전을 위해 밤새 고민하다 왔다니까 이쁘게 봐줘.’

-무한한 발전은 무슨, 재는 볼 때마다 무한 도전이구먼.

바로 만들어 먹는 먹물 만두는 그야말로 끝내줬다.

커피까지 시원하게 마시고 9시가 넘기만을 기다렸다.

* * *

같은 시간 MS 백화점 식품사업부.

8시 30분부터 시작된 회의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이번 중식당 입점은 전에 말한 대로 [만가복]이 들어올 것 같다. 워낙 유명한 맛집이라 내가 한 달 동안 사정했어. 그러니까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

“지금까지 유경동 셰프의 [도원]이 워낙 많은 인기를 누렸기 때문에 그 명성에 버금가는 업체가 들어와야 맞죠. 수고하셨습니다.”

“그 명성은 우리 백화점에 입점해서 얻어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계속 말씀드리지만, 실력 확실한 곳으로 한 군데만 더 경쟁해보고….”

“뭐? 방금 내 말 못 들었어?”

다들 박진상 부장의 노고에 앞다투어 인사말을 내놓고 있는 속에서 구본석 과장이 찬물을 끼얹었다.

회의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온 구본석 과장은 식품부가 매일 음식을 먹기만 하는 곳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킨 커다란 배 위에 두 손을 척 올렸다.

180이 조금 넘는 키에 0.1톤 몸무게를 자랑하는 구본석 팀장이 이미 혼나는 데는 이골이 난 듯 아무렇지 않게 모니터를 한참 들여다보며 회의 내용을 정리하고 있었다.

“과장님, 좀 전 회의 중에 전화가 한 통 들어왔었는데요, 10분 후에 다시 한다고 했습니다.”

“어디라고는 안 하고?”

“중식당 입점 관련해서 전화했다고 하는데요, [서풍]의 서인우 라고 그러던데요.”

“뭐? 누구?”

구본석 과장의 커다란 음성이 온 사무실에 쩌렁쩌렁 울렸다.

무슨 일인가 쳐다보는 직원들 사이에서 조금 전 전화를 받았던 직원 신진희가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렸다.

아무래도 귀에 익은 이름이라 했는데, 구본석 팀장의 반응을 보자 갑자기 전화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떠오른 눈치였다.

“과장님, 통화할 때는 제가 기억이 안 났는데, 그... 그 사람 맞죠? 중화요리 최고의 고수.”

“다시 전화한다고 했지?”

“네. 곧 전화 올 겁니다.”

구본석 과장이 모니터로 회의에서 박진상 부장이 언급한 [만가복]의 홈페이지를 열심히 살피고 있었다.

“이거 잘하면 [중화요리 최고의 고수를 찾아서] 방송 시즌 2가 되겠구만.”

구본석 팀장의 혼잣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인 전화에서 힘찬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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