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78화 (78/200)

제78화.

부동산마다 돌아다니며 가게를 알아본 지 오늘이 삼 일째다.

다행히 지금 가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알맞은 크기와 적당한 가격의 가게가 한 달 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정보를 듣고 부동산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사장님. 그러면 여기는 바로 계약 가능한 건가요?”

“그렇죠. 지금 하는 사람이 한 달 후에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하나 봐요. 아주 운이 좋은 거예요. 이렇게 빨리 구하기는 쉽지 않은데...”

“그럼 오늘 계약금을 걸겠습니다. 정식 계약 날짜 잡아 주세요.”

“알았어요. 오후에 약속 잡히는 대로 연락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지.

‘이 넓은 땅에 내가 일할 곳 하나 없겠어?’

부동산을 나오는 서인우의 발걸음이 솜털처럼 가벼웠다.

며칠 동안 걱정하며 이것저것 열심히 알아보고 다니던 이준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앞으로의 향방을 묻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듯한 정다운의 얼굴 또한 떠올랐다.

그 어느 때보다 가게 문을 활기차게 열었다.

이준형과 정다운의 기대로 가득 찬 얼굴이 보였다.

“다행히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방금 계약금 넣고 왔어.”

“정말?”

“진짜요?”

둘이 동시에 달려왔다.

“응. 내가 가기 전에 말한 여기서 20분 안 걸린다는 그 가게 계약하고 왔어.”

“우와! 그러면 여기 찾아주시는 손님들도 어쩌면 오실 수 있겠네요?”

“여기 시장분들은 시간이 돈이라 쉽지 않겠지만, 주말에 가능할 거고, 그 외 손님들은 홍보만 잘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인우야. 정말 잘됐다. 계약서는 언제 쓰는데?”

“오늘 약속 잡아서 연락해주기로 했어. 이제 다들 맘고생 그만하고 예전처럼 신나게 장사하자. 남은 며칠 더 파이팅 하자고.”

이준형과 정다운이 약속이나 한 듯이 손을 내밀었다.

서인우가 그 위에 손을 얹자 이준형이 큰소리로 외쳤다.

“아자아자, [서풍] 파이팅!”

유치할 수도 있는 이 행동들이 은근히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사장님, 그럼 오늘부터 오시는 손님들한테 가게 이전한다고 얘기할까요? 며칠이라도 홍보해야 하잖아요?”

“그건...정식 계약서 작성하고 내일 문에 써서 붙이자. 그리고 손님들께도 내일부터 말씀드리고.”

“역시 신중한 우리 사장님. 알겠습니다.”

“그럼 나는 저녁 장사 준비하겠습니다.”

주방으로 들어가는 서인우를 이준형이 졸졸 쫓아왔다.

“왜?”

“우리 이전하고 얼마 있으면 정다운 씨랑 약속한 6개월인데... 너 월급 인상 가능 하겠냐?”

“아니, 막 이전해서 어쩌면 가능하지 않겠지.”

“그럼 지금 미리 말을...”

“가능해서 주는 게 아니라, 약속이니까 당연히 지킬 거다. 그만큼 내가 안 가져가면 되니까.”

이준형의 눈빛이 이해가 안 되는 듯 보였다.

“정다운 씨도 지금 상황 정도는 이해해주지 않겠냐? 이건 우리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거니까.”

“우리 상황에 따라 월급 인상해준다고 약속했던 거 아니야. 무조건 해준다고 했던 거고, 내 사비가 들어가더라도 그 약속은 꼭 지킬 거야.”

뭔가 말을 덧붙이려던 이준형이 서인우의 강한 눈빛을 보고는 말을 다시 집어넣었다.

“걱정하지 마. 새로운 가게에서도 잘할 거다. 그리고 전에 말한 만두 포장 판매도 시작할 거고.”

“무슨 말인지 알아먹었다. 그럼 저녁 장사 준비해.”

다섯 시가 조금 넘어서 저녁 첫 주문이 들어왔다.

젊은 커플로 보이는 남녀가 입구에서 한 참 사진을 찍고 들어와 삼선볶음밥과 짬뽕을 주문했다.

“저...먹물 만두는 다 끝났겠죠? 그거 먹으려면 점심때 와야 한다고 들었는데...”

머리에 힘을 제법 줬지만, 아직 어린 티가 나는 남자가 메뉴판을 건넨 정다운에게 물었다.

“잠시만요, 주방에 확인해볼게요.”

“사장님, 오늘 먹물 만두 다 나갔나요?”

서인우가 냉장고를 열어보고 바로 답을 내놨다.

“아직 2인분 남아있어요.”

“알겠습니다.”

정다운의 답을 듣자마자 남자가 환호성을 질렀다.

“그럼 우리 먹물 만두 1인분 추가해주세요.”

주문을 받은 정다운이 사라지자 남자가 수저 세팅을 하고, 두 개의 컵에 물을 따라 맞은편 여자에게 건넸다.

“너 오늘 이 오빠 덕분에 운이 좋은 줄 알아. 먹물 만두 못 먹어 봤다고 했지?”

“응, 방송으로만 보고 너무 궁금했는데, 그거 정말 먹고 나도 이 까맣게 변하지 않아?”

“일단 잡숴 봐.”

여자가 사랑스러운 눈으로 남자를 보며 웃었다.

“주문하신 먹물 만두 나왔습니다.”

이준형이 잘 익은 먹물 만두를 내오며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군침을 급하게 삼켰다.

“진짜 까맣다. 보기에는 별로 맛있어 보이진 않는데?”

“어허, 이 오빠 믿고 한 번 먹어봐.”

여자가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는 못한 눈빛으로 만두를 하나 집어 반을 베어 물었다.

“어머.”

여자의 커진 눈이 연신 깜빡거렸다.

“거봐, 맛있지? 내 말이 맞지?”

“엉.”

고개를 끄덕이는 여자의 애교 섞인 대답이 들렸다.

“좋을 때다.”

이준형이 작은 소리로 말하며 부러운 듯 쳐다봤다.

여자는 쑥스러운 듯 말하며 계속 입을 가렸다.

아마도 거울을 보기 전까지는 자기 입안이 온통 까맣게 변했을 거라고 믿는 것 같았다.

6시가 넘어가면서 가게엔 하나둘 자리가 차기 시작했다.

더운 날씨에도 서인우의 요리는 인기가 나날이 올라가고 있었다.

입구 빨간 벽돌 가운데에서는 눈 오는 장식품이 열 일을 하고 있었다.

가게를 오는 손님마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잠시나마 더위를 식히고 있는 것 같았다.

주문지를 주방에 걸고 돌아서려던 이준형이 주방으로 고개를 쓱 내밀었다.

“바쁜데 왜 또?”

“부동산이 늦게까지 하나? 왜 아직 연락이 없지?”

“곧 연락 오겠지. 나중에 네가 한 번 연락 좀 해봐.”

“알았어.”

서인우는 계속되는 주문에 정신없이 요리하고 있었다.

7시가 거의 다 되어갔을 때였다.

이준형이 더는 못 기다리겠다고 부동산에 전화해 본다고 서인우에게 번호를 막 묻고 있었다.

때마침 서인우의 핸드폰이 부동산이라는 연락처를 밝히며 울어댔다.

“뭐야? 부동산이네. 얼른 받아봐.”

이준형이 가까이 다가와 귀를 바짝 갖다 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사장님. 안 그래도 전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화가 좀 늦었습니다. 죄송해요.

“아니에요. 몇 시까지 계약서 쓰러 가면 될까요?”

-그게…. 난 또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핸드폰을 통해 건너오는 부동산 사장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불길하다.

뭔가 일이 꼬인 듯한 불길함이 서인우의 등을 타고 식은땀으로 흘러내렸다.

“사장님, 무슨 일인데요?”

-그 건물 주인이 갑자기 전화 와서 계약을 안 하겠다고 하네요.

“네? 이미 계약금까지 걸었는데요?”

-위약금 두 배로 물어준다고, 없던 일로 하자고 그러던데...나도 갑자기 왜 이렇게 나오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전화번호를 저 주시면 제가 사정해 보겠습니다.”

-안 그래도 내가 그렇게 할까 봐 먼저 말하더라고요. 자기 전화번호 절대 유출 안 되게 주의해달라고.

당황한 서인우가 멍하니 이준형을 바라봤다.

잘 들리지는 않지만,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이준형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젊은 사장. 정말 미안하게 됐어요. 나도 어떻게든 설득해보려고 했는데, 이유도 절대 말 안 하고 그냥 위약금 물어 준다는 말만 하고 끊어버리더라고요.

“그래도 제가 사정을...”

-내가 계속 연락해서 사정했어요. 그래서 전화가 늦었던 거고.

“그런데도 안 된다고 하나요?”

-나중엔 화를 내더라고요. 인제 그만 전화하라고. 여긴 포기하고 다른 곳을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이를 어쩌나...

“알겠습니다. 할 수 없죠. 그럼 바로 다른 곳 좀 소개해 주세요.”

-내가 바로 찾아보고, 건물 주인들한테 연락 돌려보고 할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위약금도 바로 아까 알려준 계좌로 보낼게요. 참, 나도 이런 황당한...

부동산 사장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막막한 심정은 서인우에 비길 것이 못 되겠지만, 황당하긴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통화를 마치자마자 이준형이 홀에 들리지 않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뭐냐? 대충 들으니까 계약을 엎자는 것 같은데, 맞아?”

“응, 위약금 두 배로 물어주고 없던 일로 하자고 연락이 왔대.”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 우리 요즘 왜 이런 거지? 어디서 점이라도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여전히 멍해 있는 서인우를 이준형이 툭툭 쳤다.

“정신 차려 인마. 말 일까지 이제 겨우 4일 남았어. 부동산 사장님이 다른 곳 알아봐 주신다고 했어?”

“응, 여기처럼 식당 자리를 그대로 이어서 해야 시간도 비용도 단축하는데…. 그래서 거기가 딱 맞았단 말이야. 진짜 이유를 모르겠다.”

잠시 침울해 있던 주방에 아무것도 모르는 정다운의 활기찬 음성이 들렸다.

“사장님, 탕수육 아직 멀었어요?”

그 소리에 잠시 나가려던 정신을 붙들어 맸다.

정신 차려야지.

내 식구는 무슨 수를 써도 지킬 거다.

“거의 다 됐어. 바로 해서 벨 누를게.”

조용히 주방을 빠져나간 이준형도 티 나지 않게 테이블을 닦고 주문을 받았다.

완성된 탕수육을 놓고 벨을 누르자 정다운이 후다닥 다가와 가져가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사부. 다 들었지?”

-거긴 네 가게가 아닌 거야. 그러니까 미련을 갖지 마.

“화가 나고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래. 오늘 계약금 넣고 와서 준형이랑 다운 씨가 좋아하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어.”

-분명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거야. 그러니까….

“시간이 없어. 이제 겨우 며칠 후면 가게를 정리하고 나가야 한다고. 난 상관없어, 그런데...”

-네가 맨날 울부짖던 네 식구들 걱정 때문에 그러지? 지금 홀에서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 두 친구?

서인우의 어깨가 처음으로 보기 싫게 처졌다.

그 힘든 경연대회를 하면서, 가게 주인이 이 가게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는 소리를 했을 때도 지금처럼 어깨가 심하게 처지진 않았었다.

아마도 하루아침에 모든 게 다 바뀐 상황을 받아들이기 버거운 듯했다.

그런 그와 상관없이 주문은 쉴 새 없이 들어왔다.

“사장님, 비건 짜장면 가능하냐는 데요? 지난번처럼 몸이 편찮으신 분 같아요.”

“알았어. 이거 백짬뽕 만들고 나서 바로 준비할게.”

“네.”

밖에서 정다운이 말하는 소리가 얼핏 들렸다.

“고기나 해물이 전혀 들어가지 않으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또 주의해야 할 재료는 더 없는 건가요?”

“네. 포장 가능 하죠?”

“아, 포장은 면이 좀 맛이 떨어질 텐데... 가능은 해요.”

“그럼 부탁드립니다. 저희 어머니가 꼭 드시고 싶으시다고 하셔서요. 지난번 드셨던 맛을 잊지 못하신다고…. 돌아가시기 전에 꼭...”

남자는 결국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이준형은 왜 또 훌쩍이며 코를 먹고 있는지...

조금 전 계약이 깨진 사실 때문인지, 지금 듣고 있는 사연 때문인지 그건 알 수 없었다.

얘기를 전해 들은 서인우는 그때보다 더 재료에 신경 써서 비건 짜장면을 완성했다.

면과 소스를 따로 담아주며 집이 멀면 면을 한 번 따뜻한 물로 재빨리 흔들어 만들어 드리라는 말도 잊지 않고 전했다.

포장해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고 나서 가게를 휙 둘러본 서인우는 눈에 익은 손님이 몇몇 보이자 반가움과 아쉬움에 감정 조절이 힘들었다.

서둘러 주방으로 다시 돌아와 다음 요리를 준비하려 할 때였다.

-얼굴 좀 펴라. 이렇게 항상 착하게 살고 열심히 하는데 좋은 일이 있을 거다.

“나도 항상 그런 신념으로 살았어. 뭐든 최선을 다하고 착하게 살면 그 끝은 반듯이 좋을 거라는 신념.”

-그런데, 지금은 그 신념이 틀린 것 같냐?

“아니, 아직 그 신념은 변함없어. 그냥...오늘은 좀 기운이 빠질 뿐이야.”

-걱정하지 마. 곧 귀인이 나타날 거다. 이 가게에.

“귀인?”

서인우의 눈에 오묘한 빛이 반짝하고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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