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75화 (75/200)

제75화.

아빠의 중식도, 지금 서인우의 사부는 그렇게 아빠의 손에 들어오게 된 거였다.

물론 사부가 기억하는 아빠와의 시작은 그때가 아니지만...

“그럼 그 수련이 다 끝나고는 바로 한국으로 돌아온 건가요?”

“그랬지. 나와 김형식은 비록 사부의 최종 테스트에 일등을 하지는 못했지만, 워낙 혹독하게 연습하고 배웠기 때문에 아주 자신감이 넘쳤다. 세상에 있는 돈을 다 모아들일 자신이 있었지.”

똑같은 스승에게 요리를 배우고 같은 시기에 시작을 한 세 명의 친구.

그 세 사람이 기억하는 서로는 같지 않은 듯했다.

“나는 시작이 내가 살던 화곡동이었고, 김형식은 죽어도 강남에서 자리 잡고 싶다고 지금 본사가 있는 그 근처에서 시작했지.”

“아빠는 지금 제가 하는 가게에서 시작하셨고요.”

“그래. 서로 다른 곳에서 각자 정말 말 그대로 청춘을 불살랐다.”

분명 그때는 그 누구보다 끈끈한 우정을 유지하고 있었겠지?

‘도대체 뭐가 계기가 돼서 김형식이 내 가게를 뺏기까지 한 걸까?’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아저씨, 오늘 제가 아저씨한테 꼭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최영만의 눈빛이 불안한 듯 살짝 흔들렸다.

“처음에는 그렇게 세 분이 특별한 경험도 같이하시고, 서로 의지가 되셨을 것 같은데, 김형식 회장은 왜 이렇게 변한 건가요?”

“김형식 그 친구가 규모나 명성으로 보면 우리 중 가장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

“맞아요. 본사 건물만 해도 어마어마한데, 곳곳에 체인점들도 이미 중식당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긴 한숨이 최영만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는 바로 잔에 가득하게 담긴 술을 비우고는 어두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놈의 욕심 때문이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중식당을 몇 개나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동수의 [서풍]을 이기지 못해 안달이었으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김형식 그 친구도 처음엔 그 정도로 삐뚤어지진 않았어. [서풍]이 인기가 많아져 그 큰 가게로 옮기고 나서 유명인들이 하나둘 방송에서 [서풍]을 극찬하기 시작했지.”

그 부분은 서인우도 아는 내용이었다.

어려서부터 유명한 정치인이며 연예인들이 아빠의 요리를 좋아해 주었다.

“[서풍]의 요리만큼, [만가복]의 요리도 인기를 많이 얻지 않았나요?”

“그러니 그놈의 욕심이 사람 잡는다는 거 아니냐? [서풍]의 요리는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맛이다, 평생 잊지 못할 맛이다, 그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김형식이 네 아빠를 많이 괴롭혔다.”

“아빠를 괴롭혀요?”

인우의 잔에 다시 술을 따른 후 최영만이 먼저 잔을 비웠다.

“사실 나도 부럽기는 했지. 평생 같은 요리를 했지만, 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칭찬이었거든. 나나 형식이가 하는 요리는 그냥 맛이 있다거나 없다는 것이 끝이었으니까.”

항상 같은 맛을 유지하게 해주는 중식도와 아빠의 초심이 만들어 낸 극찬이었을 거다.

지금 서인우가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바로 그것.

“분명 혼자만의 비법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몰래 숨어서 보기도 하고, 알려 달라고 며칠을 조르기도 하고, 심지어 사람을 시켜 협박까지 했으니…. 에이 몹쓸 사람.”

“가족을 걸고 협박까지 했었다는 얘기 저도 얼마 전에 들었습니다.”

“그, 그랬냐? 그러더니 결국 사람을 죽게까지...”

“네?”

최영만이 화들짝 놀라며 말끝을 흐렸다.

“아저씨, 무슨 말씀이세요? 자세히 좀 말씀해 주세요.”

“아, 아니다. 별 얘기 하려던 거 아니야. 그렇게 사람을 괴롭히니까 명을 단축하게 한 거 아니냐는 뜻이야.”

서인우가 최영만의 눈을 말없이 바라봤다.

당황한 티가 역력했지만,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아저씨도 우리 아빠 돌아가셨을 때 일은 전혀 모르세요?”

술잔을 잡은 최영만의 손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네가 알고 있는 대로 혼자 산에 갔다 사고를 당했다는 것밖에는 나도 아는 게 없구나. 미안하다.”

욕심. 열등감.

고작 그런 것 때문에 젊음을 함께한 친구를 협박까지 하고, 그 아들이 하는 가게를 하루아침에 문을 닫게 했다?

누구든 자신보다 인정받고 잘하는 사람은 무조건 깔아뭉개 발아래로 꿇려야 살 수 있는 사람.

김형식이 그런 사람이라는 거였다.

그게 친구든, 죽은 친구의 아들이든 상관없는 사람.

갑자기 술이 올라오는지 머리가 욱신거렸다.

당장 이번 달도 며칠 남지 않았는데, 그 안에 가게를 정리하라니...

서인우는 자신뿐 아니라 그를 믿고 젊음을 올인하겠다고 맘먹은 친구 이준형과 6개월 후 월급 두 배 약속을 아직 지키지도 못한 직원 1호 정다운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술에 취한 듯한 최영만이 집으로 향하는 택시를 타는 걸 지켜보고 하염없이 거리를 걸었다.

찬 바람이라도 불어주면 정신이 맑아질 것 같은데…. 오히려 한낮에 데워진 바닥에서 열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시간은 어느새 3시가 훌쩍 넘었다.

집으로 들어갈지 가게에 들를지 고민하던 발걸음이 어느새 가게로 향하고 있었다.

입구에 가까이 다가가자 누군가 무릎에 머리를 박고 쭈그려 앉아있었다.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들어 쳐다본 김서원이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엄마야!”

얼마나 쭈그려 앉아있었는지, 몸의 중심을 잃고 앞으로 넘어지려고 하는 김서원을 서인우가 잽싸게 붙잡았다.

“괜찮아요?”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이제야 와요? 회사에서 나간 지가...아휴, 술 냄새. 술 마셨어요?”

“죄송합니다.”

“뭐 죄송까지는 아니고...잠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김서원이 다리가 매우 저린지 연신 코에 침을 발라가며 물었다.

그 모습에 웃음이 나오는 것 보니 술이 약간 오르긴 했나 보다.

“들어오세요. 원두 사놓은 거 있으니까 커피 한잔하죠.”

“네. 감사합니다.”

다시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며 김서원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시원한 거?”

“네, 머리 깨지게 시원한 거로 한 잔 부탁해요.”

서인우는 얼음을 왕창 넣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두 잔 만들어 김서원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평상시 같지 않게 서인우의 눈치를 보는 김서원이 고개를 까딱하더니 단번에 커피를 반 이상 들이켰다.

“오래 기다렸어요?”

“음, 한 시간 정도?”

“전화하지...오늘 휴무일이라 가게 나오지 않으면 어쩌려고 그렇게 대책 없이 기다려요?”

“딱 한 시간만 더 기다렸다가 전화하려고 했어요.”

그 뒤로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서인우 씨가 기다렸던 것처럼요.”

서인우 또한 답답한 속을 시원하고 개운한 커피로 눌렀다.

궁금한 건 많았지만, 김서원이 먼저 입을 열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다.

“오늘 많이 놀랐죠? 기분도 상했을거고...우선 사과부터 할게요. 미안해요.”

“뭐가요?”

“오늘 회사에서 두 시간이나...”

“그 일은 제시카 씨가, 아니 한국 이름이 김서원 씨라고 했던가요?”

“네.”

“오늘 회사에서 일은 김서원 씨가 미안해할 일은 아닙니다.”

김서원이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마시고는 얼음을 하나 아그작 씹었다.

“자꾸 얼음 씹지 마세요. 치아 다 상합니다.”

“그거 알아요? 서인우 씨 가끔 우리 할머니 같아. 나보다 더 어린가 할 정도의 외모에 너무 안 어울리는 말을 많이 하거든요.”

“내가 그런가요? 내 속에 할머니 있다.”

“지금도 봐봐. 하하하”

김서원이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웃었다.

“미안해요. 맥락 없이 웃음이 나왔네요. 우선 내 이름 정식으로 알려 드릴게요. 오늘 보신 것처럼 [만가복] 김형식 회장님 딸 김서원입니다.”

“김원상 씨의 동생이시고요.”

“네. 독일에 오래 있다가 들어오면서 김서원이라는 이름을 잠시라도 잊고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거기서 썼던 이름 그대로 사업을 시작했죠.”

서인우가 처음 제시카로부터 받은 명함을 떠올렸다.

분명 그 명함에는 제시카 라는 이름 외에 성도 따라 붙이지 않았었다.

“전에 내가 외국에서 무슨 공부 하다가 왔는지 알면 깜짝 놀랄 거라고 했던 말 기억해요?”

“네, 당연히 기억합니다.”

“제 전공은 피아노예요. 웃기죠?”

“피아노라고요? 정말 멋있는데요?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뜻이네요.”

“그런 반응 아주 신선한데... 누구도 해준 적 없던 말이에요. 다들 의아해하기만 했거든요.”

김서원이 서인우의 눈을 말없이 바라봤다.

얼마 전 오빠 김원상에게 들었던 얘기와는 너무 대조적인 반응을 보인 서인우라는 남자가 궁금했다.

“내가 왜 이 나라를 떠났고, 피아노를 전공하는 사람이 어떻게 인테리어를 하고 있는지 그런 게 다 김서원이라는 이름 때문이에요.”

서인우는 여전히 말없이 김서원의 잔 밑으로 흐르는 물을 냅킨을 꺼내 닦아 주었다.

“오늘 이 가게 얘기 들었어요. 이번 달 말까지 가게를 비워야 한다는 얘기요. 그런 잔인한 일을 벌인 사람이 다름 아닌 김서원의 아버지 김형식 회장님이라는 얘기까지.”

내보이기 싫은 뭔가를 의도치 않게 들킨 사람처럼 김서원의 얼굴이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다.

“서인우 씨와 이준형 씨, 그리고 정다운 씨까지 몇 번 안 봤지만,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사실 [서풍]이 꾸는 꿈을 나도 같이 꿀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바람을 가졌었죠.”

“말도 안 되지 않는데요?”

“아니요,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죠. 나 혼자 그런 꿈을 꾸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도 아닌 내 아빠가 어떤 일을 벌였는지 다 아는데...”

“제시카 씨.”

서인우의 목소리에 작지만, 힘이 얹혀 있었다.

김서원을 바라보는 눈빛에도 평상시와 다른 강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이 가게 일은 나와 김형식 회장과의 일입니다. 난 제시카 씨와 같이 작업을 했던 거고, 앞으로 또 필요하면 제시카 씨 도움을 받을 겁니다.”

“네? 내가 누군지 알게 됐는데도?”

“달라질 게 있습니까? 난 없는데….”

“아니요. 저도 달라질 건 없어요. 그렇지만….”

서인우가 짧게 숨을 들이켰다.

“지금 우리 가게가 비상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로 [서풍]이 일으킬 바람이 멈추지는 않을 겁니다.”

김서원이 다 녹은 얼음물을 바닥까지 마셨다.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듯이.

“내일 아침 9시로 약속은 잡아놨어요. 1분도 기다리지 않겠다고 했으니, 시간 꼭 지켜야 할 거예요.”

“살면서 약속 시간 늦어본 적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네, 사실 그건 걱정 안 돼요. 제가 걱정되는 건 오히려 아빠를 만났을 때 승부를 걸 수 있는 대책이라도 있냐는 겁니다.”

서인우도 답답한지 남은 커피를 단숨에 마셔버렸다.

“사실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는 사정할 겁니다. 지금 계약 기간만이라도 이 가게에서 장사하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김서원이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 어떤 답도 듣지 못할 거예요. 서인우 씨만 상처받을 거라고요.”

“그것 또한 내 일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서풍]은 멈추지 않고 계속 불 겁니다. 그리고, [서풍]의 10년 계획에 제시카 씨도 함께 할 수 있길 바랍니다. 물론, 제시카 씨가 원한다면….”

놀란 김서원의 눈이 갈 곳을 잃은 채 심한 진동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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