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70화 (70/200)

제70화.

“안녕하세요, 사장님! 어떻게 오셨어요?”

“사장은 뭔 사장? 장사 그만둔 지가 언제인디?”

70대도 더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가게 문을 여는 모습을 보고 서인우가 용수철처럼 튕겨 나갔다.

“여기로 앉으세요. 제가 유자차 한 잔 내어 올게요.”

“유자차는 무신, 됐으니까 물이나 한 잔 줘봐.”

이준형과 정다운이 누구인지 몹시 궁금해하는 눈빛이었다.

“사장님, 여기는 저랑 같이 동업하는 친구 이준형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준형이라고 합니다.”

노 사장이 어색한 듯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또 여기는 저희 가게 직원 정다운 씨입니다.”

“안녕하세요.”

노사장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둡게 변했다.

“이분이 우리 가게 주인 사장님이셔.”

“아, 그전에 칼국수 집 하셨다는?”

“응, 사장님 칼국수 진짜 맛있었는데…. 건강은 좀 어떠세요?”

잠시 말이 없던 노사장이 한참 전부터 보고 있던 입구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칼국수 장사했던 집이 맞긴 맞는거여? 인테리어 한다고 전화로 통화할 때는 상상이 안 됐는데, 진짜 멋지게 변신했구먼.”

“근사하죠? 저희 그만둘 때는 원하시는 대로 원상복구 해놓을 거니까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세요.”

어딘지 불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연신 물만 마셔대던 노사장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내가 좀 미안한 얘기를 해야 해서...”

서인우가 노사장의 손을 지긋이 잡았다.

“사장님, 편하게 말씀하세요.”

갑자기 노사장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서인우뿐 아니라 이준형과 정다운 모두 당황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왜 그러세요?”

“내가 정말 미안하게 됐수. 자네들 볼 면목이 없어서...”

이준형이 뭔가 심각함을 느꼈는지, 의자를 끌어 앉았다.

“사장님, 혹시 월세를 올려 드려야 하는 건가요? 차분히 말씀해 보세요.”

“그게 아니라...이 가게가 팔렸어. 더는 내가 주인이 아니여.”

“네? 아니, 그럼 저희는...저희는 계속 장사할 수 있는 거죠?”

이준형의 목소리가 살짝 커졌다.

그에 서인우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사장님,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뭔가 사정이 있으셨던 거죠?”

“이 주 전인가 삼 주전인가부터 계속 어떤 남자가 전화 와서 가게를 팔라고 하도 난리여서 내가 안 판다고 전화를 안 받아 버렸어.”

노 사장이 숨이 찬지 물을 다시 마시고 크게 숨을 쉬었다.

서인우가 컵에 물을 더 따라 주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그 눈빛이 미안해서였을까?

노사장의 눈에 간신히 그친 눈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런디, 기어이 집까지 찾아와서 협박을...내가 무서울 게 하나도 없는디, 그 놈이 우리 딸이 사는 집하고 내 손주 이름하고 학교까지 다 알고 와서... 흐흑.”

“아니, 누가 그런짓을...”

이준형이 꽉 쥔 주먹으로 테이블을 세게 쳤다.

“정말 이래서는 안 됐는데...미안혀. 내 진심으로 사과하는 거여. 며칠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잤는데, 그래도 빨리 알려줘야 해서 오늘 왔수.”

“그래도 식사도 잘하시고, 잠도 잘 주무셔야죠. 그러다 건강 상하시면 어쩌시려고요.”

“난 아무래도 상관없는디...정말 나는 이제 죽어도 상관 없는디...흐흑. 이렇게 열심히 사는 청년들 앞날을 내가 막아서..흐흑.”

감정이 북받친 듯 노사장의 말이 중간 중간 끊겼다 이어졌다.

“사장님, 너무 걱정하시지 마세요. 새로운 주인하고 잘 얘기해서 장사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게 아녀. 자네한테 줄 위약금까지 보냈당께. 최대한 빨리 정리해 달라고...이건 경우가 아닌디...”

“네?”

이준형과 정다운이 동시에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 속에서 서인우 만이 입을 꾹 닫은 채 뭔가 깊이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사장님, 혹시 그 계약서는 가지고 오셨나요?”

“내 가져왔지. 자네한테도 보여줘야 하니께. 잠시만 기둘려 봐.”

노사장이 가방 안에서 반으로 접힌 노란 봉투를 꺼냈다.

“이게 계약서여. 이미 나도 도장을 찍어 부러서...미안혀.”

“제가 이 계약서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뭐든 해도 되지. 날 원망해도 아니, 날 죽여도 할 말이 없응께.”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정다운이 노 사장의 손을 어루만졌다.

핸드폰으로 계약서 사진을 찍어 저장해 놓은 서인우가 노 사장을 보며 가볍게 웃어 보였다.

“제가 이 새 주인한테 잘 얘기해 볼게요. 다른 가게 구할 때까지만이라도 사정해 볼 테니까 이제 더 속끓이지 마세요. 아셨죠?”

“이런 선한 사람들한테 내가 무신 짓을 한 건지... 경찰에 신고라도 하면 우리 손주를...흐흑.”

서인우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가족을 지켜야죠. 당연한 결정이셨습니다. 그놈들이 나쁜 거지 사장님이 잘못하신 건 전혀 없어요.”

노사장의 주름진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며칠을 얼마나 울었는지 눈물인지 진물인지 구분이 되지 않게 눈 주위가 벌겋게 짓물러 있었다.

* * *

공용주차장에 차를 세운 김서원이 핸드폰으로 위치를 검색하면서 다른 손으로 손부채를 하며 걷고 있었다.

“아, 저기네. 이 유명한 곳을 이제야 와보네. 이준형씨는 도착했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김서원이 이준형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문자를 보냈다.

[저는 도착했습니다. 어디쯤이세요?]

문자를 보내고 1분도 채 되지 않아서 멀리서 뛰어오는 이준형의 모습이 보였다.

“천천히 오세요.”

큰 소리로 말했지만, 들리지 않는지 이준형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천천히 오셔도 되는데, 더운데 숨 좀 돌리고 들어가죠.”

“헉 헉, 됐습니다. 들어가세요.”

[셰프의 주방×서풍]이라고 붙어있는 간판이 근사했다.

“안녕하세요. 마 셰프님 안에 계시죠?”

“네, 주방에 계시는데...아, 저기 나오시네요.”

마영준이 요리를 하다 나왔는지, 급하게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마영준입니다.”

“안녕하세요. [바램 인테리어] 제시카입니다. 연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저쪽으로 가서 앉을까요?”

마영준이 벽 쪽 시원한 테이블로 둘을 안내했다.

“커피 드릴까요? 아니면 시원한 레모네이드?”

“곧 여름이라 그런지 상당히 덥네요. 저는 시원한 레모네이드 할게요.”

“네, 이준형 넌?”

도착해서 계속 멍해 있는 이준형의 어깨를 툭 치며 마영준이 물었다.

“네? 저는 아이스커피 부탁드립니다.”

옆에 있던 직원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까딱하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서풍TWO] 입구가 너무 멋지게 변했던데요? 들어오면서 보셨겠지만, 제 가게도 [서풍]이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똑같은 인테리어로 통일감을 주고 싶어서요.”

“그럼 마셰프님의 가게를 [서풍] 가맹점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생기지 않을까 걱정되는데요, 그건 괜찮으신 건가요?”

“[서풍]의 이름이 붙은 건 저한테도 영광이라서 그건 상관없습니다.”

직원이 음료를 들고 다가와 테이블에 놓았다.

“드셔보세요. 내가 직접 만든 레몬청이라 그렇게 달지 않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목이 말랐는지, 레모네이드 절반을 단숨에 마셔버린 김서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완전 내 스타일인데요. 너무 시원하고 맛있어요. 역시 마영준 셰프님. 잘 마시겠습니다.”

마영준이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평상시와 달리 말이 없는 이준형을 보고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마영준이 다시 시선을 옮겼다.

“거기랑 똑같이 제작하고 설치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여긴 입구가 조금 더 넓어서 폴딩 도어를 약간 큰사이즈로 해서 문 여섯 짝을 하든지, 아니면 같은 사이즈로 문 여덟 짝을 하든지 그래야 할듯해요.”

“전문가 관점에서 어느 쪽을 권하시겠습니까?”

“아무래도 크기가 달라져도 문짝 개수를 같이 하는 게 더 통일감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의견입니다.”

마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나머지는 똑같이 가능하죠?”

“그럼요, 약간의 사이즈 차이 빼고는 모든 컨셉은 같이 갑니다.”

“저희 가게도 월요일이 휴무입니다. 급한 건 아니니까 제작 기간 충분히 고려하시고, 설치 날짜만 휴무일로 맞춰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서원이 두꺼운 노트에 뭔가를 메모하고는 물었다.

“견적서 받아보시고 결정하셔야죠?”

“대략적인 비용은 알고 있습니다. 사이즈 추가되는 만큼 추가 비용 생각하고 있겠습니다. 설마 사장 얼굴 보고 [서풍 TWO]보다 비싸게 해주시지는 않겠죠?”

“어머, 하하하.”

김서원이 시원하게 웃었다.

“그럴 리가요. 소개해주신 여기 이준형씨 봐서라도 잘 해드려야죠.”

평상시 같으면 입이 찢어졌을 이준형이 너무나도 담백한 표정을 짓고 앉아있었다.

아니, 사실 머릿속이 아주 담백한 것 같았다.

아무 생각 없는 표정으로 계속 유리잔 겉에 맺히는 물방울만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그럼 오늘 사이즈 좀 재도 될까요? 정확한 치수를 재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샷시가 제작되거든요.”

“그럼요. 제작에 필요한 거 다 하세요.”

김서원이 미소로 답하며 노트와 줄자를 꺼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움직임에도 이준형이 꼼짝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부탁하지 않아도 졸졸 쫓아다니며 치수 재는 걸 도왔던 이준형이 완전 딴사람 같았다.

슬쩍 서운함이 밀려오려는 걸 김서원이 고개를 흔들며 멀리 보내버렸다.

‘정신이 딴 데 있는 것 같은데...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김서원이 입구 쪽으로 걸어가자 마영준이 테이블을 똑똑 두드렸다.

“이준형. 오늘 왜 이래? 말도 없고, 표정도 어둡고...”

“어? 제시카 씨는 벌써 갔어요?”

“뭐? 정신이 빠졌네, 아주. 저기 치수 잰다고 갔잖아.”

“그거 내가 도와줘야 하는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이준형이 두리번거리며 제시카를 찾았다.

“미안해요. 잠시 딴 생각 하느라...이거 도와준다고 뛰어 와놓고는...”

“아니에요. 이건 혼자 해도 되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말도 잘 안 하고, 얼굴색도 많이 안 좋아요.”

“그냥 좀 생각할 게 있어서요. 여기 잡고 있으면 되죠?”

“네, 고마워요.”

꼼꼼하게 두 번씩 치수를 재서 노트에 적고 다시 자리로 온 김서원이 가방을 정리했다.

“오늘 측정한 치수 고려해서 정확한 견적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공사는 내일이 주말이니까 일주일 제작하고 그 다음 주 휴무일에 설치할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김서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설치하는 날 뵐게요.”

“네, 전날 미리 문자 드리겠습니다. 그럼.”

이준형이 같이 나갈 준비를 하자 마영준이 팔을 잡아끌었다.

“얘기 좀 하고 가. 시간 괜찮지?”

“네, 그럼 제시카 씨 운전 조심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가게를 빠져나온 제시카는 왠지 모를 서운함이 훅 덮친 뜨거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평상시 과하다 싶을 정도의 친절을 베풀던 이준형이 며칠 사이 딴 사람처럼 느껴졌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감정이 실린 듯 힘이 빠져 있었다.

한편 가게 안에 남은 이준형을 마영준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 있는 거야? 준형 씨 지금 너무 낯설다. 왜 그래?”

“마 세프님. 우리 장사 못하게 될지도 몰라요.”

“뭐?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서인우 어디 아파?”

“그건 아니고...”

“뭔데 그래? 여기 도착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완전 딴생각에 빠져 있던데.”

이준형이 한숨을 푹 쉬었다.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연거푸 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가 우리 가게를 샀다네요. 그것도 우리한테 위약금 주고 내쫓는 조건으로.”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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