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이 만두 너무 매력적인데요? 이거 중국 청도의 유명한 만두 맛을 그대로 만들어 낸 거죠?”
역시 세계 곳곳 안 가본 곳 없이 다니며 음식을 소개하는 사람인 만큼 오징어 먹물 만두 맛을 바로 알아보는 박정원이었다.
“네, 맞습니다.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빠와 여행 가서 너무 맛있게 먹었던 만두입니다. 이 가게를 시작하면서 오로지 그때 느꼈던 맛의 기억만으로 만든 겁니다.”
박정원이 만두 하나를 더 집어 통째로 입에 넣었다.
“이건 한참 선배인 나도 칭찬해 주고 싶은데요, 이 만두소가 갑오징어 살 맞죠?”
“네, 그렇습니다.”
“그걸 이렇게 부드럽게 으깨 만들었다는 건 정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는지 전문가인 저는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저희 손님들도 처음에는 검은색이 생소해서 어색해하셨는데, 몸에 좋은 오징어 먹물로 만들었다는 걸 아신 뒤에는 이제 저희 가게 인기 메뉴가 되었습니다.”
서인우의 설명이 끝나자 박정원의 음식 먹는 모습이 다시 카메라에 한참 담겼다.
그리고 이어서 가게 단골손님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여기 [서풍 TWO]는 이제 우리 동네 자랑입니다. 이런 곳에 고급 호텔 중식당 같은 맛을 내는 식당이 생겼으니 얼마나 좋은 지 몰라요.”
“여기서 짬뽕 먹어본 뒤로 내가 술이 늘어서 맨날 마누라한테 혼납니다. 그래도 이게 너무 시원하고 얼큰해서 그냥 딱 술안주로...”
인터뷰하는 손님에게 박정원이 질문을 던졌다.
“자주 오시는 편이세요?”
“거의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옵니다.”
“그렇게 자주 오셔서 혹시 재료에서 이상한 맛이 난다거나, 싱싱하지 않은 해산물을 맛보신 적은 없으셨나요?”
조금 전 술 안주 운운했던 남자 손님이 버럭 역정을 냈다.
“에끼, 모르는 소리 하지 마쇼. 나도 장사하는 사람인데, 여기 이 총각의 성실한 자세 보고 반성하는 중이요. 먹어본 사람은 다 알 겁니다. 재료를 얼마나 좋은 거로 쓰는지.”
박정원의 눈에 만족하는 빛이 역력했다.
옆에 있던 다른 손님이 묻지 않았는데도 한마디 거들었다.
“요 앞으로 조금 들어가면 그 골목이 다 중식당 천지요. 아마도 어디 경쟁업체에서 수작을 부린게지. 여기 젊은 사장은 절대 그럴 사람 아니요. 실력은 이미 방송에서 인정받았다더구먼.”
박정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멘트를 이었다.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 법이죠. 그리고 또 하나,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 다른 손님한테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박정원이 40대로 보이는 여자 둘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혹시 지금 제가 먹어본 먹물 만두 드셔보셨습니까?”
“그럼요, 처음에는 여기 식당에서 서비스로 줬었어요. 그때 처음 먹어본 우리 아들이 매일 졸라서 오픈 시간 되자마자 사주곤 했습니다.”
“손님 입맛에도 맞습니까?”
“처음에 색이 시커메서 망설였었는데, 서비스로 줘서 먹어봤거든요. 그런데, 이게 너무 부드럽고 감칠맛이 장난 아니더라고요. 그 뒤로 한정판매 들어가서 못살까 봐 문 열자마자. 호호호.”
맞은 편 손님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박정원이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와 조금 전 화제가 됐던 먹물 만두를 하나 들었다.
“지금 시간이 조금 지나 만두가 식었는데요, 해물 재료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이 비린 맛을 어떻게 잡느냐입니다. 과연 식은 만두에서 비린 맛이 느껴지는 지 바로 먹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들고 있던 만두를 그대로 입에 넣고는 최대한 오래 음미하며 씹었다.
“처음 뜨거울 때 먹는 맛과 완전 똑같은 맛이 납니다. 사실 나 같은 전문가가 아니라면 속 재료가 해물이라는 것도 전혀 못 느낄 정도로 부드럽고, 고소합니다.”
박정원의 익살스러운 표정이 화면에 잡혔다.
“이 맛이 궁금하십니까? 그럼 [서풍 TWO]에서 맛보시길 바랍니다. 지금 방송을 보고 계시는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그 맛이 맞는지 확인하는 재미도 있겠네요.”
서서히 방송이 마무리되어 가는듯했다.
“마지막으로 여기 셰프겸 사장인 서인우 씨에게 앞으로의 각오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이 가게는 [서풍]의 서동수 셰프님, 바로 저희 아버지가 처음 시작한 가게입니다. 그 초심을 기억하며 평생 진심으로 요리하는 서인우가 되겠습니다.”
“네, 지금까지 [서풍 TWO]를 여러분께 소개해 드렸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에는 또 어떤 새로운 식당을 찾아갈지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박정원의 마무리 인사 멘트가 끝나감과 동시에 동네 식당 시그널 음악이 흘러나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촬영이 끝나자 담당 피디가 박정원에게 달려가 역시 깍듯하게 인사했다.
서인우를 비롯해 [서풍 TWO]의 식구들도 박정원과 담당 피디, 그리고 종일 수고해준 스태프들에게 예의 바르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서인우씨는 내일 새벽 시장 가서 식재료 사는 장면을 좀 더 찍을 겁니다. 여기 계시는 카메라 감독님이 담당하실 거니까 서로 연락처 잘 입력해두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독님, 내일도 잘 부탁드립니다.”
“네, 내일 봅시다.”
박정원이 가장 먼저 가게를 나가고, 뒤이어 복잡한 촬영 장비들 정리를 마친 촬영 팀들도 우르르 가게를 빠져나갔다.
서인우는 촬영에 협조해준 단골들께 감사 인사를 한 번 더 전했다.
아무 때나 오시면 서비스 왕창 해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가게에 남은 세 사람의 얼굴이 푹 익은 파김치 같았다.
“다운씨. 힘들었지?”
“아니에요.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정다운의 얼굴이 아직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 * *
박정원의 동네식당 [서풍 TWO]편이 방송되는 날이다.
수요일 저녁 9시 50분에 시작하는 박정원의 동네 식당은 이미 많은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는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직원들에게 마무리를 부탁하고 일찍 집으로 들어온 김원상이 서둘러 벽에 걸린 텔레비전 전원을 켰다.
“아직 시작 안 했군.”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지난 주말에 마시고 남은 와인을 한 잔 따라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과연 서인우의 [서풍 TWO]가 방송에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 마음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광고가 끝나면서 익숙한 박정원의 얼굴이 나타났다.
요리 경연대회 결승전 때 마지막으로 본 그의 얼굴이 화면에 나오자 자기도 모르게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본인 요리실력이 형편없다고 생각하나?”
“사람 사서 점수 높게 받으면 우승을 차지할 줄 알았나 보지? 그렇게 본인 요리실력에 자신이 없는 건가 묻고 싶었네.”
“아, 잘나가는 아버지 빽이 있으니 무서울 게 없다는 건가?”
그날 매섭게 쳐다보던 눈빛과 김원상에게 던진 질문들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각이 나 괴로웠다.
‘이런 젠장.’
한 잔만 마실 생각에 반이 넘게 따라둔 와인을 단숨에 마셔버렸다.
서인우.
분명 가게에 손님이 뚝 끊겨서 고생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방송에 비치는 서인우는 그 어느 때보다 여유 있고 차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재수 없는 새끼. 난 너의 그 잘난 척하는 모습이 정말 구역질 나게 싫다고.”
중식도의 현란한 칼솜씨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분명 요리 대회 때도 봤던 모습일 텐데, 뭔가 더 자연스러워지고 속도 또한 더 빨라졌다.
“저 새끼는 밥 먹고 중식도 연습만 하는 거야 뭐야? 마치 중식도가 저절로 움직이는 것처럼 속도가 장난이 아니군.”
결국 소파에서 일어나 와인을 더 따라서 온 김원상이 손님들의 인터뷰에 신경을 집중했다.
“경쟁업체의 수작이라고? 증거는 있고?”
비릿한 웃음 속으로 와인을 밀어 넣으며 김원상이 계속 혼잣말을 했다.
“저건 분명 박정원이 일부러 방송을 잡은 걸 거야. 이렇게 짜고 치는 고스톱은 안되지. 내가 눈치 못 챌 줄 알았나?”
텔레비전 화면을 노려보는 김원상의 눈빛에 뭔가 새롭고 기분 나쁜 기운이 꿈틀꿈틀 올라오고 있었다.
* * *
같은 시간, 집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김형식이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서원이 너, 회사에 한 번 나온다더니 며칠째 왜 연락이 없어?”
-이번 주에 찾아뵐게요. 아직 안 주무시는 거죠?
“내가 12시 전에 자는 거 봤어?”
-그럼 박정원의 동네 식당 한 번 보세요.
“그런 프로그램을 뭐하고 보고 있어? 시간 아깝게.”
텔레비전에서 박정원과 서인우의 모습이 나오는 걸 놓치지 않고 보고 있던 김형식의 미간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자세한 건 찾아뵙고 말씀드릴 건데요. 그 방송에 나오는 [서풍 TWO]라는 가게 자세히 봐두세요.
“저따위 콧구멍만 한 가게를 뭐하러? 관심도 전혀 없는 곳인데...”
핸드폰으로 김서원의 한숨 소리가 옅게 타고 들어왔다.
-알겠어요. 이번 주에 회사로 한 번 나갈게요.
“미리 약속 잡고 와. 건방지게 아무 때나 들이닥치지 말고.”
한참 대답이 건너오지 않자 김형식이 다그쳤다.
“들었어? 대답을 해야...”
-알았어요. 비서 통해 미리 약속 잡고 찾아뵙죠. 그럼 끊을게요.
핸드폰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김형식이 서인우가 만든 오징어 먹물 만두를 빤히 쳐다봤다.
아들과 여행 가서 먹어본 만두가 너무 맛있어서 그걸 똑같이 만들고 싶다 했었는데…. 결국 아들이 그 아비의 바람을 이어 나가는군.
김형식의 머릿속이 계속 복잡하게 돌아갔다.
그때면 거의 5년도 넘었는데, 한 번 먹어본 기억으로 저렇게 똑같은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걸까?
[서풍] 서동수의 음식을 그대로 재현해 낼 수 있었던 것이 저 아들의 타고난 미각 때문이었나?
그런 생각이 미치자 불현듯 아들 김원상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런 재주를 왜 내 아들이 아닌 그자의 아들이 받은 거야?
똑같은 노력을 했는데, 왜 내가 아니라 그자가 최고의 찬사를 받는 거냐고?
김형식은 몇십 년이 흘러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실에 또다시 화가 치밀어올랐다.
내가 못 갖는 거라면 누구도 가질 수 없어!
내가 그렇게 놔두진 않을 거라고, 절대.
주먹을 으스러지게 움켜쥔 김형식이 핸드폰을 들고 서재로 들어갔다.
“나야, 내가 알아보라는 건 어떻게 됐어?”
-아, 회장님. 그 노인네가 돈 욕심이 없어요. 그냥 지금 계약이 반도 더 남았다고….
“그냥 순순히 할 것 같으면 내가 너 같은 놈한테 이런 지시 했겠어? 지금 일 한두 번 해보나?”
-죄송합니다.
“물론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지만, 사람에 따라 돈이 중요하지 않은 때도 있어. 그러니, 내가 지시하면 무조건 다른 방법이라도 찾아, 알겠어?”
-네, 명심하겠습니다. 신경 쓰시지 않게 처리하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시간 끌면 재미 없을 거야.”
-아, 알겠습니다. 최선을...
뚝.
종료 버튼을 거칠게 누르며 통화를 마친 김형식이 못마땅한 듯 혀를 차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걷고 있는 그의 머릿속에 조금 전 봤던 서인우의 얼굴과 죽은 서동수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내가 이미 경고를 했는데, 겁을 먹지 않았다는 거지?
어딜 기어오르려고?
아예 꿈틀하지도 못하게 싹부터 제거해 버려야겠어.
김형식의 눈이 뱀의 그것처럼 차갑고 매섭게 빛났다.
눈앞에 보이는 건 뭐든 잡아먹어 버릴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