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62화 (62/200)

제62화.

박정원이 한참 앞에 서서 가게 분위기를 살핀 후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선배님, 어서 오세요. 벌써 새우면이 완성된 건가요?”

“그건 내가 몇 가지 보완사항을 주문해서 며칠 더 걸릴 거야. 오늘은 가게 분위기 좀 보려고 잠깐 들렀어.”

“영상 보신 거죠?”

가장 바쁠 시간에 썰렁한 가게를 근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박정원을 보고 이준형이 물었다.

“대놓고 [서풍 TWO]를 물 먹일 작정이던데?”

“안 그래도 지금 가게 CCTV로 그 손님이 언제 왔었는지 찾는 중이었습니다.”

“눈에 핏발이 제대로 선거 보니 며칠 밤새웠나 보군. 그래서, CCTV에 나오기는 하던가?”

“아직 못 찾았습니다.”

박정원이 예상했다는 듯이 입술을 꽉 다문 채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매일 새벽시장 가서 신선한 재료로 그날그날 요리한다는 거 아는 사람은 다 알 텐데...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영상을 그대로 믿는 사람도 많을 테지.”

“그런가 봅니다. 인터넷에 그 영상 올라오고 나서부터 현저하게 손님이 줄었어요.”

말을 하는 이준형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내가 좀 찝찝한 게 있어서 찾아왔는데….”

박정원이 말을 하다 말고 정다운을 슬쩍 쳐다봤다.

“여기 있는 두 명은 저와 똑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뭐든 다 공유하니까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렇군. 지난번 요리 경연대회 때 말이야. 시청자 심사위원단 기억하나?”

“그럼요, 워낙 긴장됐던 순간들이라서 이름까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사람들 얼굴과 심사평, 점수들은 다 기억합니다.”

이준형이 가방에서 테블릿을 꺼내 들고 왔다.

“필요하면 그때 영상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지금 틀어볼까요?”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고... 그때 심사위원단 중에 유독 서인우 자네 요리를 혹평하고 점수도 낮게 줬던 사람이 몇 있었지.”

“네, 그랬었죠. 맛은 철저히 개인적인 거니까요.”

“그렇지, 각자 입맛이 다 다르지. 하지만, 점수를 이미 정해놓고 있었다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서인우보다 이준형이 더 놀란 듯 목청이 커졌다.

“사실 그날 방송이 시작하기 전에 내가 화장실에 들렀다가 들은 소리가 있어서...”

“무슨 소리를 들으셨는데요?”

“서인우가 어떤 요리를 선보이든지 무조건 낮은 점수를 주면 되는 거라고, 반대로 김원상 점수는 다 만점을 주라고 하는 말 말이야.”

“뭐라고요? 어느 새끼가...김원상 그놈입니까?”

이준형이 흥분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김원상 짓은 아니었네. 그건 확실해. 사실 그날 방송이 끝나고 내가 주차장에서 김원상을 추궁했었지. 그런데, 본인도 놀라고 화가 나는 눈치더라고. 아마, 누가 한 짓인지 바로 짐작이 갔던 것 같아.”

“그 사람 아버지 [만가복]의 김형식이겠네요?”

“그걸 어떻게…. 왜 그 사람일 거라고 짐작하는 건가?”

서인우가 긴 한숨을 뚝뚝 끊어지게 내 쉬었다.

“사실 얼마 전에 마영준 셰프님한테 요리대회에 관해 자세한 얘기 다 들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마영준 셰프님한테 어떤 식으로 보복이 있었는지까지 전부 다요.”

서인우가 마영준에게 들은 얘기와 김형식의 보복, 그리고 그 해결과정에서 [셰프의 주방×서풍]이 탄생하게 된 것까지 모조리 얘기해 주었다.

“역시 그랬던 거였군. 사실 나도 그 당시에는 김원상의 얼굴이 너무 비참해 보여서 이 일을 비밀로 해준다고 했었네. 하지만, 이번 영상을 보고는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지.”

말을 하는 박정원뿐만 아니라 그 얘기를 듣고 있는 서인우와 이준형, 정다운 모두 얼굴에 분노가 가득 자리 잡았다.

“도대체 그 인간은 왜 우리 사장님을 못 잡아먹어서 난리인 건가요? 제가 잘은 모르지만, 사장님이 어디서 원한을 사거나 그럴 스타일은 절대 아닌데요.”

“나도 그날 이후 나름대로 알아보고는 있는데, 딱히 무슨 감정이 있어서는 아닌 것 같아.”

“그러면요?”

“서인우의 능력이 그 욕심 많은 사람을 자극했을 거야.”

“제 능력이요?”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는 듯이 서인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서풍]의 서동수 셰프님 요리는 전국적으로 이미 최고의 맛으로 인정을 받지 않았나? 자네가 그 맛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걸 보고 솔직히 나도 굉장히 놀랐거든.”

“인우가 아버지 맛을 그대로 내기 위해서 얼마나 피땀 흘리며 노력했는데요. 다 노력의 결과인건데...”

“노력만 한다고 서인우처럼 완벽하게 같은 맛을 내지는 못하지. 이건 타고난 재능이라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는 일이야.”

잠 못 자며 밤낮으로 노력했지만, 중식도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 감사함에 더 죽어라 노력했다.

이제 조금씩 결실이 보이기 시작했는데...너무 치명적인 악소문을 퍼트려 버렸다.

“저는 맹세코 신선하지 않은 재료를 단 한 번도 사용한 적 없습니다.”

“여기 누구도 그걸 의심하지는 않아. 중요한 건 [서풍 TWO]를 좋아해 주고 찾아주던 손님들이 불안해하고 꺼리기 시작했다는 거지.”

“반드시 그 영상에 나왔던 사람을 찾아내서 밝혀내고 말 겁니다.”

계속해서 홀 한쪽에 시선을 두고 있던 박정원이 서인우를 쳐다봤다.

“그래서 말인데, 소문이 더 퍼지기 전에 자네 쪽에서 아예 대응 방송을 하나 만들면 어떨까 하는데.”

“대응 방송이요?”

“얼마 전 올라온 영상에 대한 확실한 오해를 풀어주겠다 하고 자신 있게 설명해 주고, 경쟁업체 중 한 군데에서 벌인 일인 듯하다는 힌트를 살짝 보여주자고.”

이준형과 정다운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인 것 같아요.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작전인 거죠.”

그 둘과 다르게 서인우의 표정은 밝아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전 요리라면 얼마든지 자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영상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그리고, 방송에 어떤 식으로 내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온 거 아닌가? 설마 이 바쁜 몸이 한가해서 놀러 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박정원이 입꼬리를 살짝 빼 올리며 피식 웃어 보였다.

“여기 내가 매주 하는 방송 프로그램 제목을 아는 사람?”

“동네 식당이요.”

정다운의 빠른 대답이었다.

“그렇지, 동네마다 다니며 잘 알려지지 않은 맛집을 소개해주는 프로그램.”

“그렇다면...”

이준형의 눈이 커지며 입가에 미소가 물감 번지듯 퍼졌다.

“그래, 내가 담당 피디한테 얘기했더니 서인우가 하는 식당이라면 무조건 섭외하고 싶다고 하더군. 주말 지나고 바로 하루 촬영하도록 하자고.”

“그럼 우리 가게가 방송에 나오는 건가요?”

“하나만 확실히 해두지. 내가 여기를 섭외하자고 제안한 건 서인우의 실력을 충분히 알기 때문이지 절대 개인적인 친분 때문은 아니라는 거야. 난 공과 사가 아주 확실한 사람이거든.”

서인우가 자리에서 일어서 허리를 깊숙이 꺾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난 그저 방송의 기회만 줄뿐이야. 물론 그 기회도 자네의 실력이 이미 인정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고. 그러니, 그 방송에서 여기 [서풍 TWO]에 대해 모든 걸 투명하게 보여주라고. 결국 진실은 통한다는 걸 말이야.”

“알겠습니다. 진정성 있는 요리와 방송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준비 많이 하겠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난 방송만 잡아 주는 거야. 나머지는 여기 세 사람이 해내야 할 일들이지. 한 번 잘해봐. 그럼 난 가봐야겠네.”

셋이 동시에 일어서서 허리를 반으로 접으며 큰 소리로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팀워크가 아주 잘 맞는군. 자세한 일정 잡히는 대로 연락하겠네. 그럼 수고해. 아 참, 서인우 잠 좀 자고.”

“네, 감사합니다. 운전 조심하십시오.”

“야, 인마.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이게 다 저렇게 유명한 사람과 알고 지내는 네 능력이다.”

“정말 소중한 인연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해주네. 우리 방송 준비 열심히 해보자.”

“그래, 그러니까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푹 자. 다운 씨 말대로 이미지 관리도 해야지.”

정다운이 바통 터치에 들어갔다.

“맞아요. 우선 멋진 얼굴로 시청자들을 확 사로잡은 후에 사장님의 뛰어난 요리 솜씨로 완전히 붙들어 매두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점심은 제가 하겠습니다. 사장님은 푹 쉬세요.”

“에헤이. 다운 씨도 요즘 신경 쓰는 일도 많고 피곤한데 쉬어. 내가 나가서 햄버거 사서 올 테니까.”

“아니요. 이럴 때일수록 제가 더 열심히 요리를 배워서 우리 가게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어요.”

팔을 걷어붙인 정다운이 말릴 새도 없이 주방으로 향했다.

“빨리 쫓아가서 어떻게 좀 말려봐. 우리 가게에 힘을 보탠다는 말이 내가 살면서 가장 힘 빠지는 말이었다는 거 아냐?”

“열정 있고 좋은데 뭐. 설마 지난번처럼 또 실패 하겠냐?”

아무리 연습해도 안 되는 음치가 있듯이 아무리 노력해도 요리가 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산 증인이 정다운 이었다.

새로운 메뉴도 아닌, 지난번에 이어서 또다시 시도해보는 볶음밥이었다.

고슬고슬 중식 볶음밥은 흉내 못 내더라도 최소 자취생이 혼자 해 먹는 볶음밥 정도는 나올 줄 알았다.

“이번엔 간장 넣고 볶은 거야?”

유독 갈색이 진한 볶음밥을 보고 이준형이 물었다.

“아뇨. 지난번처럼 소금으로 간했는데요?”

“그래? 그럼 이 간장처럼 보이는 진한 색의 정체는 뭐지?”

서인우가 웃으며 답했다.

“고소한 볶음밥이겠네. 뭐긴 뭐냐 누룽지구만.”

“누룽지? 누룽지 볶음밥도 중식 메뉴에 있는 거냐?”

정다운이 여차하면 접시에 이준형의 얼굴을 박을 듯한 포즈를 취하며 심하게 노려봤다.

“오래 볶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맛은 나쁘지 않으니까 조용히 먹기나 해요.”

서인우한테 먼저 먹어보라는 신호를 보내느라 이준형의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한 숟가락 가득 떠서 입 안에 넣은 서인우가 입을 다물어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아저씨는 왜 안 먹어요? 지난번보다 훨씬 잘 됐다니까요.”

“어? 난 별로 배가 안고파서...아니야, 먹어야지. 지금 막 먹으려고 했어.”

정다운의 무시무시한 흰자위가 다시 출몰하자 이준형이 급하게 숟가락을 들었다.

“진짜 누룽지도 넣은 거야? 딱딱하게 누룽지 같은 게 씹히는데?”

지난번에 기름이 너무 과해서 떡이 됐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기름을 거의 안 넣었나 보다.

볶음밥의 반 이상이 눌어붙어 딱딱한 누룽지를 만들어놓은 듯했다.

“어때요? 더 고소하지 않아요?”

“다운 씨도 먹어보고 하는 말인 거지?”

“그럼요.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고소하고 맛있던데요.”

“아, 그게 문제였구나.”

“뭐가요?”

이준형이 정말 중요한 걸 알아냈다는 듯이 아랫입술을 쭉 내밀어 윗 입술을 덮은 채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다운 씨 입맛, 정확하게는 타고난 미각.”

“정말 그 정도에요? 제 미각이 타고났다고 생각 들어요?”

“응, 맛있는 것과 맛없는 걸 구분하지 못하는 미각을 타고난 것 같아. 그러지 않고는 지금 이 볶음밥을 고소하고 맛있다고는 절대 말 못하지.”

“지금 뭐라 그랬어요?”

그럴 줄 알았다.

정다운의 흰자위가 검은 눈동자를 다 잡아 먹어버렸다.

누가 지금 장면을 영상으로 찍었다면 정말 뛰어난 CG라고 착각할 정도로 완벽하게 흰자위만 들어낸 정다운이 목을 좌우로 꺾으며 이준형에게 다가갔다.

“어허, 사람이 자신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지.”

“더 해봐요.”

점점 이준형의 목소리가 힘을 잃어갔다.

“다시 먹어볼까? 이게 또 꼭꼭 씹어서 삼키고 나니까 고소한 맛이 뒤에 올라오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그렇죠? 그럼 다시 먹어봐요.”

그새 표정이 밝게 변한 정다운이 정상적인 눈을 떠 보이며 준형의 옆에 바짝 붙었다.

기대에 찬 얼굴로 준형의 숟가락이 움직이는 곳을 다운의 눈동자가 따라갔다.

‘살려줘.’

준형의 안타까운 비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네가 배가 많이 고팠나보구나. 내 것 더 먹어.”

기회를 잡은 서인우가 자신의 접시에 있던 볶음밥의 반을 이준형의 그릇에 부어주었다.

이준형의 얼굴이 아빠 따라 목욕탕에 갔다가 시원하다는 말에 속아 뜨거운 탕에 들어간 어린아이 같았다.

“걱정하지 말고 맘껏 먹어요. 주방에 더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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