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화.
“지금 치즈 탕수육 만들고 계시는 겁니까?”
“보다시피. 이거 한 번 맛을 보고 뭐가 더 나은지 말해봐요.”
차은석 셰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치즈 탕수육을 하나 집어 길게 치즈가 늘어나는 걸 휘휘 감아 사천 소스에 찍었다.
“고소함과 매콤함이 섞여 나쁘지 않은데요?”
“그럼 이 소스는?”
김원상이 레몬소스를 가까이 들이밀자 차은석이 작은 탕수육을 하나 골라 소스에 찍어 입에 넣었다.
“이건 완전 똑같은 맛이네요.”
“뭐가요?”
“마 셰프님 치즈 탕수육 만드시는 거 아닙니까?”
“치즈를 마영준 셰프가 개발한 것도 아니고, 탕수육에 치즈를 올리는 건 다른 가게에서도 하는 거야, 안 그래?”
차은석이 비웃듯이 작게 웃었다.
어쩌면 그냥 아무 의미 없이 웃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마영준의 메뉴를 따라 할 생각으로 만든 요리라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괜히 눈치 보이고 신경이 쓰였다.
“어차피 경쟁이니까요. [만가복]에서는 두 가지 소스를 같이 내는 걸로 하죠. 선택해서 찍어 먹을 수 있게.”
“나도 같은 생각입니다. 내가 며칠 소스를 좀 더 연구해서 알려줄 테니 새로운 메뉴로 올려봅시다.”
“그런데, 왜 갑자기 치즈 탕수육입니까? 우리 탕수육도 두 종류나 있는데...”
김원상이 잠시 고민하는 듯 말을 아끼고 있었다.
“주위에 치고 올라오는 중식당들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잖아. 그러니, 우리도 계속 메뉴를 연구해서 대비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럼 연구를 해야죠. 이건 그냥 따라 하기 아닙니까? [셰프의 주방] 대표 메뉴를 [만가복]에서도 맛볼 수 있다는 건 뭘 의미하는지 아실 거 아닙니까?”
동네 구멍가게 앞에 대형 마트가 생기는 꼴이 되겠지.
똑같은 물건이라면 가격 좋고 서비스 좋은 대형 마트를 찾는 게 소비자 심리 아니겠어?
먹고 먹히는 경쟁 관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맛으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예전에 [서풍]이 그랬듯이...
“내가 따라 한다고? 그럼 탕수육을 처음 만든 사람은 그를 따라하는 가게가 수백, 수천 개가 넘을 텐데 그걸 어떻게 설명할 건가요?”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건 저도 찬성입니다. 대신 아이디어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면 좋겠군요.”
“어디 좋은 아이디어나 내보면서 그런 얘기 하지? [만가복] 마포점만의 특징이 될 수 있는 메뉴나 한번 개발해 보란 말이에요.”
차은석이 말없이 김원상의 눈을 빤히 쳐다보더니 몸을 돌렸다.
“지금 나와 있는 메뉴만으로도 머리 아픕니다. 나는 변하지 않는 맛을 유지하는 데에만 신경을 쓰고 싶습니다.”
“그것도 중요하지. 그럼 각자 알아서 열심히 하면 되겠네. 뭐가 됐든 우리 [만가복]에 득이 되는 일이면 되니까...”
김원상 또한 그 말을 뒤로 하고 주방을 나왔다.
‘마영준 가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 몇 개만 잘 만들어서 조금 더 싸게 내놓으면 사람들이 굳이 자리도 몇 개 없는 그 가게를 갈 이유가 없지.’
오늘 처음 시도한 치즈 탕수육이 생각보다 그럴듯하게 만들어지자 자신감이 생긴 김원상은 가까이에서 걸리적거리는 두 가게를 한꺼번에 제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간판에 [서풍]이라는 이름을 달고 장사를 시작한 마영준과 경연대회 때부터 거슬렸던 서인우. 그 둘이 동시에 추락하는 걸 상상하자 바로 아버지 김형식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디 이제 좀 성에 찹니까? 아들의 변한 모습을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김원상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만가복]을 나와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 * *
며칠 전 봤던 좀비가 [서풍 TWO]에도 출몰했다.
“너 도대체 며칠째 집에 안 들어간 거야? 잠을 자기나 하는 거냐?”
“잤어. 한 시간 정도?”
“그래서 찾긴 찾았어?”
“아니, 아직. 오늘은 꼭 찾아낼 거다.”
“사장님.”
“응?”
서인우가 핏발 선 눈으로 정다운을 올려봤다.
“오늘은 홀에 절대 나오지 마세요.”
“응? 왜?”
“이미지 관리는 하셔야죠. 사장님 얼굴 보려고 오는 손님이 몇인데...”
“내 얼굴이 그 정도야? 당장 화장실 가서 세수하고 면도라도 해야겠다.”
“물론 지금 상태로도 여기 다른 누구보다는 훨씬 잘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관리 차원에서 조심해야죠.”
이준형이 설마 자기를 말하는 거냐고 손짓하며 물었다.
“혹시 여기 다른 누구가 나야? 그건 좀 아니지.”
“거울 본다면서요?”
“요즘 우리 엄마가 나보고 얼굴이 핀다고 난리야. 다운씨만 외모 타박 하는 거라고.”
“어머니 여기로 한 번 모시고 오세요.”
“그건 또 왜?”
“사장님 얼굴 직접 보시면 현실감이 확 오실 텐데요.”
기가 막히다는 듯이 이준형이 소리 내 웃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쓰리 빈보다 훨씬 잘생겼다고 했어.”
“쓰리 빈 이 누구냐?”
“현빈, 원빈, 김우빈?”
“네 어머니 자식 사랑이 끔찍 하시구나. 부럽다 인마.”
“그렇지? 뭐?”
웃으며 화장실에 들어간 서인우가 시원하게 세수를 하며 거울을 쳐다봤다.
전보다 볼이 살짝 패인 듯 보이는 얼굴이 영 신경 쓰였다.
분명 엄마는 뭐라 말로 표현하시지 않겠지만, 이모랑 이모부가 보시면 시끄러워질 게 뻔했다.
쉬는 날 하루를 제외하고는 평균 4시간 정도 잠을 자고 종일 서서 일했다,
허리도 어깨도 끊어질 듯 아팠지만, 중식도와 간간이 나누는 아빠 얘기에 힘들 줄도 몰랐다.
단정하게 면도를 하고 화장실을 막 나오는데 가게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어서오세요.”
이준형의 목소리가 유독 높았다.
“안녕하세요. 견적서 나와서 가지고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메일로 보내주셔도 되는데, 직접 나오셨네요.”
앞머리가 물에 젖은 서인우가 손에 물기를 마저 닦으며 다가왔다.
“직접 보고 필요하면 가격 조율도 하려고요. 그런데, 사장님 안색이 별로 안 좋으시네요?”
“별거 아닙니다. 며칠 잠을 못자서... 우선 앉으세요.”
“네.”
“식사는 하셨나요? 뭐라도 만들어 드릴까요?”
“아침 먹고 나왔어요. 물론 또 먹을 수는 있지만, 그건 다음기회로 남겨 놓을게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커피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서인우가 주방으로 들어가자, 이준형이 궁금했는지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지난번 친구분하고 왔을 때는 왜 아는 척 말아 달라고 한 거예요? 친구는 제시카 씨가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나 보네요?”
제시카, 아니 김서원은 그날 봤던 장염 소동이 혹시 무슨 문제라도 일으킨 건 아닌가 걱정이 됐다.
쉬이 아는 척을 할 수도 없는 자신의 처지가 답답했다.
“아직 내 주변에서는 아무도 몰라요. 조금이라도 자리 잡으면 오픈하려고요.”
“그럼 그냥 백수인 줄 아는 거예요?”
질문하는 정다운의 눈에 모처럼 생기가 돌았다.
“네, 백수...백수 맞아요.”
서인우가 진한 커피 향을 뿜어내며 쟁반에 커피 넉 잔을 담아 들고 다가왔다.
“커피 드시면서 말씀하시죠.”
“감사합니다.”
넷이 자리에 앉아 커피잔을 각각 앞으로 가져갔다.
“음, 향이 진짜 좋은데요? 어디...”
후후 불어 한 모금 마신 제시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핸드드립으로 내린 커피네요. 사장님이 커피까지 내리실 줄 아시나 봐요?”
“좋아하는 거라서요.”
“이건 산미가 살짝 있으면서 향도 좋고, 바디도 풍부하고... 로스팅도 잘 된 것 같고, 게다가 목 넘김도 정말 부드러워요. 진짜 커피 잘 내리시네요.”
이준형과 정다운이 갑자기 들린 외계어에 당황해 동시에 서인우를 쳐다봤다.
“산미 있는 커피를 좋아하세요?”
“오전에는 향 좋고 산미 있는 커피가 땅기더라고요. 전 지난번에 보셔서 아시겠지만, 먹는 거 마시는 거 다 좋아합니다. 다시 말해 안 가려요.”
이래서 사람 겉 보고는 모르는 거다.
호리호리한 몸에 왠지 까칠한 입맛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인상과는 전혀 상반된 발언.
기다렸다는 듯이 이준형이 물었다.
“그럼 혹시 사람도 안 가리시는지...”
“그럼요. 그 중 특히 사람은 절대 안 가려요. 사람을 어떻게 가려요? 다 자기만의 개성이 있는 거잖아요.”
그 말이 그런 뜻이 아닐 건데...
이준형의 입이 귀에 걸렸다.
분명 사람을 안 가린다고 했지, 인물을 안 따진다는 말을 한 건 아니었건만...
그의 잔에 담긴 것만 커피가 아니라 김칫국인 듯 시원하게 한 사발 들이켜고 있었다.
“커피 잘 마실게요. 그럼 천천히 마시면서 제가 뽑아온 견적서 한 번 살펴봐 주세요.”
제시카가 가방에서 꺼낸 서류를 내밀었다.
“입구 쪽에 폴딩도어로 문을 설치해서 여름에는 열어두고 비가 오거나 추울 땐 닫아서 난방되도록 하면 좋을 것 같아요. ”
“지난번 두 번째 도안인 거죠?”
“네, 천장을 레트로 느낌 나는 천막 형태로 만들면 감성과 실용성 두 가지를 다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좋아요. 아주 좋네요.”
분명 이준형은 견적서를 보지 않았다.
설명하는 제시카의 옆모습만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혼자 실실 웃으며 무조건 찬성한다는 발언을 내뱉었다.
“이 가게는 평수가 넓지 않기 때문에 작은 문짝 여섯 개짜리 폴딩도어를 설치하고 입구와 천장은 통유리로 한 후에 레트로 천막 처리를 하면 작업 끝입니다.”
“겨울에도 확실히 따뜻하겠네요?”
“네, 16미리 유리를 사용할 겁니다. 원하시면 22미리 유리로도 제작할 수 있고요. 그럼 단가가 조금 더 올라갑니다.”
“아, 그렇군요.”
“이 견적서 보시고 다른 업체에도 문의해 보신 후 결정하세요. 확실한 건 제가 직접 디자인하고 기술자분 섭외해서 진행하기 때문에 그 어느 곳보다 저렴할 겁니다.”
이준형이 손까지 흔들며 급하게 견적서를 집어 들었다.
“비교는 무슨..딱 봐도 저렴하게 잘 뽑아 주셨는...아야!”
정다운이 이준형의 옆구리를 툭 쳤다.
“사장님, 그래도 비교해 보고 결정하실 거죠?”
“그래야지. 내일까지 연락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천천히 따져보시고 연락해주세요. 제작은 일주일 가량 소요 되지만, 설치는 장사에 지장 안되게 휴무일 하루에 뚝딱 해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시카가 남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커피 정말 잘 마셨습니다. 진짜 맛있는 커피는 이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실 때 아쉬움을 준단 말이에요.”
“언제든 커피만 마시러 오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 말씀 입력했습니다. 그럼 연락 기다릴게요.”
고개를 까닥하며 동시에 밝은 미소를 보이며 제시카가 문을 열고 나갔다.
“여기랑 할거지? 보니까 견적서도 아주 저렴하게 잘 뽑아줬네.”
“아저씨, 인테리어에 대해 뭐 좀 알아요? 이게 싼 건지 비싼 건지 잘 아냐고요?”
“아니, 잘 몰라. 그래도, 제시카가 가격을 속이진 않을 거라는 건 알아. 그건 확실히 믿음이 가.”
정다운이 입을 삐죽거렸다.
“믿음이 가는 건지, 그냥 믿고 싶은 건지...”
“다 들리거든? 당연히 둘 다야.”
“일어나요. 테이블 닦게. 장사 준비 안 해요?”
괜히 심통이 난 정다운이 거칠게 행주를 테이블에 던졌다.
“다운 씨 뭐 기분 나쁜 일 있어? 왜 갑자기 성질이야?”
“없거든요. 저 여자가 갑자기 와서 장사 준비에 차질 생길까 봐 걱정돼서 그러는 거거든요. 안 그래도 손님도 떨어졌는데, 더 신경 써야죠.”
기특했다.
정말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벌고 싶다고 하더니 마치 자기 가게처럼 신경 쓰고 일해주는 정다운의 모습이.
억지로 끌려 나온 사람처럼 한 데 섞이지 못하고 불만 가득한 표정만 짓고 있던 정다운이 이제 정말 진정한 [서풍TWO]의 정식 직원 1호가 되었다.
오늘도 [서풍TWO]에는 찬 바람만 썰렁하게 불었다.
인터넷 영상의 위력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었다.
믿고 찾아와주는 단골손님들이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그럴수록 서인우는 더 열심히 CCTV를 뒤졌다.
벌써 며칠째 밤을 새우며 찾았지만, 가게에 찾아왔던 영상의 주인공 남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CCTV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집중해 보고 있던 서인우의 눈 앞에 가게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가 하나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