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59화 (59/200)

제59화.

오늘도 새벽시장을 다녀와 일찍 장사 준비를 해놓은 서인우가 마영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님. 출근하셨습니까?”

-당연히 일찍 나와서 재료 손질 중이지.

“그럼 제가 잠시 건너가겠습니다.”

-오랜만에 얼굴 보겠네. 얼른 건너와.

서인우는 이준형과 정다운에게 문자를 보내놓고 가게를 나갔다.

[셰프의 주방×서풍] 이라는 새로운 간판이 근사하게 보였다.

“날라왔나? 다리가 길어서 그런가 빨리도 왔네.”

“저 이거...”

서인우가 뭔가가 담겨있는 쇼핑백을 건넸다.

뭔지 의아한 눈으로 안을 쳐다본 마영준이 진공 팩에 담겨있는 새우면을 꺼내 봤다.

“이번에 박정원 선배님하고 같이 만든 새우면입니다.”

“전에 요리대회에서 선보였던 그 새우면 말이야? 그게 벌써 이렇게 상품화되어 나온 거란 얘기지?”

“네, 박정원 선배님이 서둘러 주셨습니다. 오늘 선배님께서도 이 면을 테스트해 주셨으면 해서 가져왔습니다.”

“좋지. 잠깐 기다려. 내가 생각나는 요리가 있어서 얼른 만들어 볼테니까.”

서인우도 같이 일어섰다.

“선배님의 성스러운 영역 구경 좀 하면 안 될까요?”

“뭐?”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마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같이 한 번 해볼까?”

주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방금 손질해놓은 듯한 새우와 관자, 버섯 그리고 양파등 각종 채소를 웍에 넣고 센불로 볶았다.

거기에 가볍게 씻어 놓은 새우면을 넣어 재빨리 볶으면서 굴 소스로 간을 했다.

“볶음면을 해보실 생각이시군요?”

“면을 보는 순간 볶음 우동이 생각났거든.”

“이거 맛이 기대되는데요?”

“중화요리 최고의 고수가 왜 이래? 사람 쑥스럽게.”

마지막에 후추를 살짝 뿌려 접시에 담았다.

“한 번 먹어봐.”

“정말 볶음우동 같은데요? 오히려 면이 덜 퍼지고 탱글탱글해서 아주 맛있습니다.”

“그래? 그럼 나도 한 번 맛을 볼까? 이 새우면에 대해 적나라하게 평가해 주지.”

잘 볶아진 채소와 면을 한꺼번에 집어 입에 넣은 마영준이 천천히 씹으며 맛을 음미했다.

마치 요리대회 때 심사를 보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이런 퀄리티로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얘기지?”

“네. 단점이 있으면 보완 가능합니다.”

다시 한번 면을 집은 마영준이 킁킁 냄새도 맡아보고 젓가락으로 잘라도 보더니, 입에 쏙 집어넣었다.

“봉지를 뜯었을 때 느껴지는 냄새 때문에 사실 걱정을 좀 했는데, 막상 요리하니까 그 냄새는 전혀 나지 않는군.”

“안 그래도 저희도 그 냄새를 지적했습니다. 그 부분을 다시 보완해서 제품을 만들어 보신다고 했고요.”

“바로 만든 것처럼 면도 탱탱하고, 새우향도 살아있어. 나쁘지 않은데? 사실 새우 면을 바로바로 만들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서 말이야.”

“네, 그래서 새우면을 대량생산 해서 업장에는 면만, 가정에는 육수를 포함한 밀키트로 판매할 계획입니다.”

마영준이 긍정의 뜻을 잔뜩 담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 볶음면을 좀 더 연구해보지. 우리 메뉴 중 하나로 추가해서 판매해 볼 테니, 상품이 나오면 알려줘.”

“알겠습니다. 단점을 보완해서 제품이 만들어지면 바로 한 번 더 테스트 부탁드립니다.”

“이거 아주 재미있지 않나? 중식당에서 면을 사서 요리를 만든다는 생각, 과연 다른 사람도 할 수 있었을까?”

서인우 또한 같은 생각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박정원 선배님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이 새우면의 레시피를 제공한 건 서인우 자네지. [서풍]의 서동수 셰프님 아들이라 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네, 우선 저희 가게와 여기, 그리고 박정원 선배님 가게에서 판매를 시작해 보도록 할 생각입니다.”

“우선 손님들의 반응을 보자는 거지?”

“네.”

마영준이 서인우의 눈을 빤히 쳐다봤다.

“반응이 좋다면 그다음 계획은?”

“마트나 백화점 입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역시 그렇게 키워나가야지. 좋아, 이제 자네 가게로 돌아가.”

“네?”

“또 다른 요리를 뭐 할 수 있을까 개발해보고 싶으니까. 얼른 얼른 돌아가라고.”

서인우는 웃으며 등을 떠밀려 마영준의 가게를 나왔다.

오랜만에 봤지만, 확실히 전보다 밝아진 그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저녁 장사를 막 시작할 무렵 김서원이 친구 윤정아와 함께 [서풍TWO]를 찾았다.

“너희 가게 놔두고 왜 여기서 저녁을 먹자는 거야?”

“여기가 요즘 뜨는 맛집이라고 해서. 맛있게 먹고 솔직한 비교 해줘. 나도 오랜만에 한국 들어왔는데, 오빠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가게를 들어서자 이준형이 반갑게 달려왔다.

“어? 제시카..”

김서원이 친구 몰래 눈짓을 하며 손가락으로 입을 가려 아는 척 말아 달라는 표시를 했다.

양장피를 들고나오는 서인우가 보이자 재빨리 달려간 이준형이 아는 척하지 말라는 뜻을 그대로 전했다.

무슨 상황인지 알아들은 서인우가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는 바로 양장피를 섞어주고 돌아갔다.

“저 사람이 여기 셰프인가봐. 뭐 저렇게 잘생겼어? 여긴 특이하게 양장피를 셰프가 직접 섞어주네, 퍼포먼스인가보다 얘. 아주 좋은데.”

김서원은 인사하며 웃던 서인우의 눈빛이 맘에 들었다.

서원이 알고 있던 아빠나 오빠의 눈빛과는 전혀 다른 눈빛이 어딘가 모르게 그녀을 위로해주는 것 같은 느낌마저 받았다.

“서원아, 왜 이렇게 멍해 있어? 이거 먹어봐. 맛이 예술이다.”

서원 친구 윤정아의 호들갑에 바로 양장피를 먹어본 김서원은 [만가복]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확실히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뭐지? 그냥 맛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 뭔가 특별함이 있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

“그냥 맛있구만, 너희 가게도 맛있는데 여긴 좀 개성이 있는 거지. 입안에 차갑고 따뜻하고 아삭하고 부드러운 게 한꺼번에 다 느껴지는 음식이네.”

정다운이 짜장면과 짬뽕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가자 김서원이 작은 윙크를 보냈다.

그리고는 친구 윤정아와 서로 자기 앞에 놓인 음식을 먹어보고, 바로 상대방의 음식까지 맛을 보았다.

“야, 여기 미쳤다. ”

흥분해서 한마디 던져 놓고는 이내 친구 서원의 눈치를 살피던 윤정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니, [만가복]도 너무 맛있는데, 솔직히 여긴 좀 특별하긴 한 것 같아. 난 지금까지 이런 맛 못 먹어봤거든.”

“괜찮아, 솔직히 나도 같은 느낌이야. 뭔가 말로 표현하지 못할 특별함이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느낌.”

“너도 그래? 나도 뭔지 모를 감동이 밀려온다. 여튼 여기 미쳤다.”

둘이 한참 시식평을 하며 맛있게 먹고 있는데,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들어와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여기 사장님이 누구예요?”

“무슨 일이신지?”

정다운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사장 나오라고 해. 우리 남편이 며칠 전에 여기서 저녁 먹고 장염이 심하게 걸려서 입원 치료하고 어제 퇴원했어. 양장피를 먹었다는데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났었다는데, 이건 분명히 상한 해산물을 쓴 거야.”

소리를 듣고 나온 서인우는 우선 인사를 꾸벅하고는 주방 안쪽에 있는 명세표를 들고 와서 보여주었다.

“손님, 우선 지금은 괜찮으세요? 고생 많이 하셨겠네요. 죄송하지만, 저희는 이렇게 매일 아침 싱싱한 해산물을 사 와서 요리합니다. 그날 재료는 그날 다 소진하는 게 원칙이고요.”

여자 얼굴에서 살짝 당황하는 기색이 보였으나, 이내 다시 목소리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당일 재료를 다 소진하는지, 며칠씩 쓰는지 그걸 우리가 어떻게 믿어요? 여기 이거 보라고, 이거 장염으로 입원한 진단서야.”

“그렇죠. 서로 신뢰를 가지고 하는 일이지 증거가 있는 건 아니니까요. 정말 죄송합니다. 치료비 일절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얼굴에 보이며 서인우가 한마디 더 덧붙였다.

“이전 [서풍]의 돌아가신 아버지 이름에 누가 되는 일 따위는 절대 하지 않는다는 건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순간 홀에서 식사하고 있던 손님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단골인데, 여기 재료 신선한 건 내 초등학생 아들 녀석도 다 안다고. 어디서 개수작이야?

-저 사람들 어디 경쟁업체서 시킨 거 아니야? 신분증 내놔봐요.

서인우가 간신히 손님들을 진정시키며 부부에게 다가갔다.

“그래도 저희 가게 손님이신데, 장염으로 고생하셨다고 하니까, 원하시는 보상해드리겠습니다.”

“보상? 거의 죽다 살아났는데, 이게 돈으로 될 것 같아? 내가 방송에 다 내보낼 테니까 그렇게 알아.”

부부가 바람을 일으키며 가게를 빠져나갔다.

“손님, 손님!”

서인우가 재빨리 뒤쫓아 나갔지만,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이준형과 정다운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서인우를 쳐다봤다.

서인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식사하고 있는 손님들에게 소란스러웠던 점에 대해 일일이 사과했다.

한바탕 난리가 수습되고 다시 평상시처럼 음식 먹는 소리와 웃으며 대화하는 소리로 꽉 찬 가게에서 오직 한 사람 김서원만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서원아. 무슨 일 있어? 왜 갑자기 아무 말 안 하고 어두운 표정만 짓고 있어?”

“어? 아니야. 잠깐 딴생각하느라, 다 먹었으면 나갈까?”

“그러자, 여기 사장 매력 있다. 음식 맛도 끝내주고. 우리 자주 오자고.”

“그래.”

친구와 헤어진 김서원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오빠가 운영하고 있는 [만가복]이었다.

“너 요즘 자주 온다? 저녁은 먹었을 시간이고, 웬일이냐?”

김원상이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김서원을 보며 물었다.

“오늘 친구랑 근처에서 저녁 약속 있었어. [서풍TWO]에서 저녁 먹었거든.”

살짝 찌푸린 표정으로 김원상이 말을 이었다.

“뭐 염탐이라도 갔었냐? 여기 놔두고 굳이 거길 왜 갔냐 서운하게.”

“염탐? 그런 게 필요해? 맞아, 사실 여기랑 경쟁업체라고 하고, 어릴 적 자주 들었던 아빠 친구분 아들이 하는 가게라 궁금하기도 해서 오늘 가봤지.”

“그래서?”

“음…. 음식도 맛있고 분위기도 좋고, 무엇보다 사장이 손님을 대하는 자세가 좋더라.”

조용히 듣고 있던 김원상의 미간이 순간 일그러졌다.

“거기 얘기라면 그만해라. 쪼그만 구멍가게가 무슨 우리 [만가복] 경쟁업체가 된다고, 넌 신경 안 써도 돼.”

“그래? 그래서 오빠는 정말 신경 안 써?”

김서원의 얼굴에 미소가 일순간 사라졌다.

“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오늘 그 가게에 작은 소란이 있었거든. 난 아무래도 그 소란이 오빠와 연관이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이 계집애가 어디서 생사람을 잡고 난리야? 내가 왜 그런 가게를 상대로 사람을 보내? 내가 뭐가 무서워서?”

바닥을 응시하고 있던 김서원의 눈이 순간 커지며 김원상을 노려봤다.

“난 무슨 소란이 있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는데…. 누가 사람을 보내서 공갈·협박했던걸 다 알고 있는 눈치네.”

“나도 소문을 다 들, 들어서 알고 있지. 이 동네는 빤하니까.”

심하게 흔들리는 동공을 억지로 부여잡으려 애쓰며 김원상이 얼버무렸다.

“됐어. 난 오빠랑 후계자 싸움 안 하려고 외국에서 몇 년을 박혀 살다 왔는데, 이런 식이면 아빠 뜻을 무조건 거부할 수만도 없겠다는 생각이 드네.”

차갑게 한마디 던지고는 뒤도 보지 않고 가게를 나서는 김서원의 귓가에 김원상의 떨리는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너! 내가 어떻게 공들여 놓은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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