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화.
1주일간의 만두 시식이 단골들에게 이제는 익숙함을 안겨 주었다.
또 그 단골들의 소개를 받고 온 손님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안겨 주기도 했다.
주말이라 저녁 식사 시간이 되면서 작은 가게가 손님으로 꽉 찼다.
네 가족이 문을 열고 들어와 마지막 빈 테이블에 앉았다.
“저 오늘은 먹물 만두 남아있나요? 그거 먹으려고 일찍 왔는데요.”
정다운은 잠시 주방에 확인하고 네 가족이 있는 테이블로 돌아왔다.
“마지막 1인분 남아 있다고 하네요.”
“앗싸.”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주먹을 쥐어 보였다.
다운은 문에 팻말을 걸어놓았다.
‘오늘 준비한 먹물 만두는 판매 종료되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먹물 만두를 먹으며 남자아이가 엄마 아빠에게 다음엔 좀 더 일찍 오자는 말을 하고 있었다.
정다운이 주문한 음식들을 테이블에 놓고 있는데, 그때 문이 열리며 [만가복] 마포지점의 김원상과 홀 매니저 오승연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김원상을 알아본 이준형은 잠시 멈칫하더니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방금 손님이 나간 테이블을 급하게 치웠다.
김원상은 기다리며 연신 주방 쪽을 쳐다봤다.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주방은 내부가 보이지는 않았다.
벽 쪽 테이블에 앉은 김원상은 천천히 내부를 둘러보다가 벽에 걸린 메뉴판을 보더니, 얼굴에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저건 예전 [서풍]에 있었던 메뉴판인데…. 진짜 이런 구린 곳에 서인우가 식당을 차린 거야? 이건...얼굴이 보여야 확인을 하지...’
목을 쭉 빼서 주방을 다시 살피던 김원상이 짜장면과 짬뽕을 하나씩 주문했다.
‘어차피 나 같은 전문가는 먹어보면 바로 맛을 알아낼 수 있다고.’
“먹물 만두는 오늘 끝난 건가요? 그거 꼭 먹어보고 싶었는데….”
오승연 매니저가 아쉬움을 한가득 얼굴에 묻히고 물었다.
“한정판매라 오늘은 끝났네요. 죄송합니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계속 주방 쪽만 보고 있는 김원상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인 이준형이 주문서를 가지고 주방으로 들어가 긴장된 목소리로 인우를 다급히 불렀다.
“야, 인우야. 서인우!”
“바쁜데 왜 불러? 그리고 내 영역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영역이고 뭐고 지금 홀에 누가 와있는지 알아?”
“혹시 어르신 또 오셨어?”
“아니, 그 사람 있잖아. 너랑 최종 결승전까지 간 [만가복].”
급하게 소식을 전한 이준형의 얼굴도 만가복이라는 이름을 들은 서인우의 얼굴도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그래? 알았다. 주문 들어온 음식 빨리 만들어 놓고 나가볼게.”
준형이 주문서를 걸어놓고 나가자 인우가 앞치마를 다시 고쳐맸다.
“사부, [만가복]에서 도전장을 내밀었는데?”
-이미 승패는 가려진 거 아니었나?
“사실 둘이 경쟁하느라 서로의 음식을 먹어보진 못했어. 오늘은 내가 먼저 도전장을 받아줘야겠지?”
-오늘 그놈은 죽었어. 죽이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주자고.
인우는 재빠르게 고기와 채소, 해물들을 손질하며 화력을 최대로 해 음식을 만들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김원상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생겼다.
같이 온 오승연에게 먼저 먹어보라고 음식을 가까이 밀어주었다.
“그럼 제가 먼저 맛을 보겠습니다.”
짜장면을 앞접시에 덜어 한 입 먹어 본 오승연의 입에서 바로 탄성이 나왔다.
“으흠, 이거 불맛이 제대로인데요? 어떻게 이렇게 맛이 깔끔하지?”
김원상은 조금씩 불안해지는 것 같았다.
그도 짜장면을 크게 집어 먹어보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네?”
짬뽕 국물을 먹고 있던 오승연이 무슨 말인가 하는 표정으로 김원상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바로 한층 더 높아진 어조로 말했다.
“와, 여기 국물 죽여주는데요.”
감탄하며 말을 하던 오승연이 김원상의 구겨진 얼굴을 보고는 급하게 목소리를 줄였다.
“물론 저희 가게도 맛있죠. 둘 다 맛있다는 얘기에요.”
짬뽕까지 맛을 본 김원상은 계속해서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어.”
맞은 편의 오승연이 김원상의 심각한 표정을 살피며 눈치를 보고 있을 때 김원상이 손을 들어 직원을 불렀다.
“저, 여기 요리하는 분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이준형이 다가와 최대한 친절하게 인사를 했다.
“방송에 나오셨던 분이시죠?”
“아, 네.”
“여기 셰프이자 사장인 서인우 씨가 곧 나올 겁니다. 안 그래도 오셨다는 얘기 듣고 반가워하고 있어요.”
“정말 서인우 씨가 하는 식당 맞아요?”
짬뽕을 열심히 먹고 있던 오승연이 물었다.
그 순간 마지막 주문까지 정신없이 해댔던 인우가 이마에 땀을 닦고는 주방을 나왔다.
“안녕하세요.”
인우가 가까이 다가오자 김원상과 오승연이 동시에 인우를 쳐다봤다.
“어머머, 맞네. 정말 그 사람이네, 서인우.”
오승연이 짬뽕 국물인지 침인지 뚝 떨어지려는 걸 간신히 들이마셨다,
“가게 이름을 보고 설마 했는데, 너무 놀랐습니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돼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제가 먼저 연락 드렸어야 했는데... 이 동네 발전을 위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 동네 발전? 남의 밥그릇 뺏으려고 들어온 주제에..’
“가까이서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겠네요. 우리 둘 다 잘해봅시다.”
‘선의의 경쟁? 그거라면 정말 자신있지.’
김원상이 내민 손을 맞잡으며 서인우가 깍듯하게 인사했다.
“선배님이 많이 가르쳐 주세요.”
‘내가 왜 네 선배야? 어디서 친한 척 달라붙으려고...’
김원상은 이 작고 초라한 가게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고 서글서글한 눈으로 자신감 있게 말하는 서인우가 정말 재수 없었다.
인우가 주방으로 돌아가고도 한참을 멍해 있던 김원상은 같이 온 오승연의 소리에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저 사람이 사장이면 홀에 나와 있어야지, 무슨 영화배우같이 생겨서 주방에만 박혀있어…? 저건 진짜 예의가 아니죠, 안 그래요?”
볼이 발그레해져서는 잔뜩 신이 난 오승연이 눈치도 없이 떠들었다.
김원상은 한심한 듯 오승연을 쳐다보더니 다시 앞에 놓여있는 음식에 젓가락을 가져갔다.
‘음식솜씨가 유전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그때 그 맛을 이렇게 정확하게 낼 수가 있지? 이건 단순히 레시피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같은 사람 아니면 이렇게 똑같은 맛을 낼 수는 없는 거라고.’
“다 먹었으면 일어나지.”
“저 국물 조금만 더 먹고요, 점장님은 왜 이렇게 안 드세요? 진짜 맛있는데요.”
“맛있다? 맛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에이,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제가 보기와 다르게 미식가라 주말에 친구랑 맛집 찾아다니는 게 취미인데요, 이 집은 짜장면의 느끼함이 전혀 없으면서 깊고 깔끔한 맛이 나고요, 짬뽕은 해물이랑 채소가 탱글탱글 그대로 살아 있으면서 불맛이 정말 예술이에요. 당장 친구랑 와서 다른 요리도 한번 먹어보고 싶어요.”
“저 사장 얼굴 보려고 다시 오는 건 아니고?”
“그러니까요, 덤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감사한 외모를 하고 있잖아요. 주방을 볼 수 있게 해놓으면 더 좋을 텐데, 그게 좀 아쉽네요.”
“그건 맘대로 하고, 이제 일어나자고.”
김원상은 일어나며 가게를 다시 한번 휙 살펴보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 * *
오늘도 회의실에서 버럭 소리를 지르고 나온 [만가복] 김형식 회장은 머리 위까지 쿠션이 되어 있는 고급 회전의자에 등을 기대고 창밖을 보며 앉아 있었다.
통유리 창문 밖에는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직 4월인데 벌써 이렇게 더워지려 하니, 갈수록 봄, 가을은 없어지고 여름하고 겨울만 길어지는구만.’
도톰한 카디건 때문인지 인중에 맺힌 땀을 휴지 한 장 뽑아 닦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온 김원상은 더워서인지 뭔가에 열을 받아서인지 얼굴이 벌게진 아버지 김형식을 보고는 주춤하는 듯했다.
“뭐하고 서 있어? 들어와 앉지 않고.”
김원상은 자리에 앉으며 다시 김형식을 힐끔 쳐다봤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눈치를 보고 있어?”
“아버지, 아니 회장님!”
“뭔데?”
“3년 전에 죽은 서동수 셰프 아들이요, 얼마 전에 요리 경연대회 나왔던... 그놈이 마포에 작은 가게를 냈어요.”
‘또 서인우야?’
김형식이 못마땅하다는 듯이 헛기침을 했다.
“서동수 아들 서인우?”
“어떻게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네요?”
“나도 방송을 봤으니까...그건 그렇고, 그놈이 가게를 열어?”
김형식은 김원상을 한심한 듯 노려봤다.
“그놈이 가게를 하든, 유학하러 가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이 얼빠진 자식.”
김원상은 빈정이 상한 것을 티 내지 않으려 애쓰며 말을 이었다.
“그 가게가 중화요리 전문점이고, 그 가게 이름이 [서풍TWO] 라고요.”
“뭐?”
김형식이 놀라 소리쳤다.
“제가 여기 온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그럼 또 뭔데?”
“방송에서 평가받은 대로 음식 맛이 예전 서동수 셰프가 한 거와 정확하게 똑같다는 겁니다.”
김형식의 얼굴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떠들어? 그게 가능하냐고?”
김원상은 아버지 김형식의 눈치를 다시 한번 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이미 예전 [서풍]을 기억하는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고요. 완전 똑같은 맛이라고.”
김형식의 얼굴이 다시 붉어지기 시작했다.
“아주 작고 쓰러져 가는 가게인데, 주말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기도 하는 맛집으로 조금씩 소문이 나고 있어요.”
김형식은 그 3년 동안 서동수와 같은 맛을 내기 위해 유명하다는 셰프들은 다 스카우트해 왔지만, 항상 뭔가가 부족하게 느껴졌었다.
“아무리 그 아들놈이 레시피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해도 완전 똑같은 맛을 낼 수는 없어. 같은 사람이 요리해도 그날그날 달라지는데 이건 절대 말이 안 되는 거지.”
김형식은 아들 원상이 하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흠, 내가 먹어보면 알 수 있을 거야. 누구보다 나는 그 맛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으니까.”
“회장님이 말씀만 하시면 언제라도 제가 모시겠습니다.”
“됐어. 차성철 팀장이랑 한번 가보면 알겠지.”
김원상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그럼 차 팀장한테 정확한 위치 얘기해 놓겠습니다.”
“그래. 나가봐. 작은 가게라고 무시하지 말고, 단골손님 뺏기지 않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으라고.”
김원상은 어금니를 꾹 물고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회장실 문을 열었다.
김원상이 회장실을 나가고, 김형식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자리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일마다 사사건건 방해하는 놈이 가까이서 가게를 차렸다는 거지?
아주 겁 없이 나대는군.
그렇게 원한다면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살벌한 곳인지 내가 제대로 가르쳐주지.
그러다 문득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다시 의자에 앉아 서랍을 열어 무언가를 정신없이 찾았다.
서랍 깊숙한 곳에서 노트를 하나 꺼낸 김형식은 떨리는 손으로 노트를 펼쳐보았다.
[미안하네.
어떻게 말해야 자네가 서운해하지 않을지 며칠을 고민하다가 이렇게 편지를 쓰네.
나는 모든 요리의 조리법을 적어놓고 음식을 만들지 않아. 재료 손질부터 요리까지 다 몸에 익히고 나만의 방법으로 기억을 하는 거라네.
자네가 부탁한 레시피는 안 주는 것이 아니라, 정말 없어서 못 주는 거야.
도움이 안 돼서 미안한 마음 알아줬으면 좋겠네.
하지만 내 가게는 항상 열려 있으니, 언제라도 내 요리를 보여줄 수 있고, 요리하면서 자네가 원하는 모든 걸 가르쳐 줄 수 있네.
그러니 아무 때나 자주 놀러 오게.
우리 세 명의 우정이 변치 않기를 바라는 서동수.]
노트를 보니 옛날 생각이 떠오른 김형식은 눈을 질끈 감았다.
김형식은 가장 먼저 인정받은 서동수의 요리 비법을 알려달라고 노트를 전해 줬었고, 그 노트에는 요리법 대신 서동수의 편지가 적혀서 돌아왔다.
그의 말을 믿지 못해 거의 한 달간 연락을 끊고, 화를 내고 협박도 해봤지만, 서동수는 쉬는 날마다 찾아와 요리를 직접 보여주고 가르쳐 주었었다.
요리 비법을 따로 적어놓지 않는 대신 요리 하는 걸 보면서 얼마든지 적어도 좋다는 말과 함께 천천히 요리해주었다.
편지가 적힌 노트의 뒷장에는 김형식이 그때 적은 요리법이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분명 레시피 따위는 없다고 했는데... 아들한테만 몰래 전수해 줬던 거였어? 의형제라고 떠들어댈 때는 언제고. 서동수! 그랬던 거였어?”
김형식은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보며 대답 없는 질문을 해댔다.
한참을 빗줄기만 보고 있던 김형식은 다시 컴퓨터에 서동수가 나오는 방송을 켜서 뚫어져라 쳐다봤다.
“저희 중 누구도 셰프님 요리 비법을 아는 사람은 없어요. 셰프님은 모든 요리법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기억하고 계신다고 하셨어요.”
그 당시 인터뷰했던 보조 셰프의 말을 다시 한번 찾아 들으며 김형식은 서인우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서인우가 만든 음식이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