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53화 (53/200)

제53화.

깜깜한 밤, 불 꺼진 [서풍TWO]의 안쪽으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영업이 끝나고 인우 혼자 주방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다 마신 맥주 캔을 찌그러트려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냉장고에서 손질된 갑오징어와 다진고기, 부추를 꺼냈다.

오징어를 해물용 도마 위에 올려놓고 중식도를 들었다.

“사부, 이제 [서풍TWO]만의 시그니처 요리를 하나 만들어 보자고.”

-뭐야? 영업 다 끝난 거 아니야? 그럼 야근수당 주나?

“오징어를 최대한 작게 다져야 해, 사부.”

-내 말은 씹고, 자기 말만 하고.인우 손에 쥐어있는 중식도는 빠른 속도로 오징어를 으깨듯이 다져놓았다.

인우는 커다란 그릇에 다진 오징어와 고기, 그리고 다진 부추를 넣고 소금과 후추, 참기름과 생강즙을 살짝 넣어 젓가락을 들어 한 방향으로 저었다.

오전에 만들어 놓은 시커먼 만두피를 들고 와서 만두를 빚었다.

가스 위에 올려놓은 냄비에 물이 끓자 빚은 만두를 몇 개 넣고는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다시 한 모금 마셨다.

중식도가 인우 앞에서 빙글 돌면서 말을 했다.

-이 시커먼 만두는 뭐냐?

“나 대학 합격한 겨울에 아빠가 처음으로 며칠 휴가 내서 같이 중국 청도 여행을 갔었어.”

-중국에 갔었다고?

“응, 그때 오징어 먹물로 만들어서 굉장히 유명한 만두라고 아빠가 시켜줬는데, 내가 너무 맛있게 먹었거든. 아빠가 한국 가면 꼭 만들어 주신다고 약속했던 만두야.”

인우는 캔에 남은 맥주를 한 번에 다 마셔버리고는 냄비에 하얗게 올라오는 연기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난 기억에 없는데. 서동수가 만들었으면 당연히 내 기억에 있어야 하는데.

“내가 대학 입학하고는 친구들하고 여행가고, 술 마시고 노느라 아빠와 시간을 보낼 기회가 없었어. 난 가끔 그게 너무 후회되고 화가나.”

인우는 손에 들려있던 캔을 더 세게 찌그러트려 버리고는 다 익어 둥둥 떠오른 검은 색 만두를 건져서 접시에 올려놓았다.

“휴...어디 맛을 볼까?”

인우는 뜨거운 만두를 살짝 식히고는 한입에 먹었다.

“음, 내 입맛엔 맛있는데. 내일 애들한테 먹어보라 하고 결정해야겠네.”

인우는 빚어놓은 만두를 냉동실에 잘 넣어두고는 주방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급하게 마신 맥주 두 캔에 살짝 취기를 느낀 인우는 간단히 샤워를 하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

멍하니 옆으로 누워 창문을 바라보고 있던 인우는 작게 소리내 아빠를 불러보았다.

“아빠! 참 달이 밝다. 창문이 작아서 내가 잘 보이긴 해? 꿈에라도 다시 한번 나오지. 거기서도 요리하느라 바쁜 거야?”

인우는 피곤한 상태에 급하게 마신 맥주 탓일 거라고, 아빠랑 같이 여행 가서 먹었던 만두를 다시 만들었던 탓일 거로 생각하며 흐르는 눈물을 급하게 닦아냈다.

다음 날 인우는 저녁 장사가 시작되기 전에 어제 만들어서 얼려 놓았던 먹물 만두를 준형과 다운에게 선보였다.

“이거 색이 왜 이래? 먹어도 안 죽나?”

예상했던 대로 준형이 질색하며 소리쳤다.

“오징어 먹물로 만든 만두다. 먹어봐.”

“그럼 몸에는 좋겠네. 용감한 내가 먼저 먹어보지. 별로 당기지는 않지만...”

준형은 거부감에 잠시 주춤하다 만두 하나를 입에 넣었다.

“우와. 이거 뭐냐? 이 색깔에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 거냐? 너무 맛있어.”

준형의 반응을 보고서야 정다운도 만두를 하나 입에 넣었다.

입 안에 있던 만두를 삼키며 다운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지를 들어 보였다.

준형이 만두 하나를 더 입에 넣은 채 우물거렸다.

“야, 이 만두 꼭 헤어진 내 전 여친 같다, 겉보기랑 아주 달라.”

그 말에 인우와 다운이 동시에 큰 소리로 웃었다.

“맛이 어떤데?”

인우가 아직 입꼬리가 올라간 채로 준형에게 물었다.

“우선 까만 색깔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맛이 나오는데. 고소하고 짭조름하고 그러면서 아주 부드럽고, 몰라. 어쨌든 겁나 맛있어.”

“정말 생각지 못한 맛이에요. 진짜 맛있어요.”

까칠한 단답형 정다운 입에서 저 정도의 반응이라면 성공이다.

인우는 젓가락으로 만두를 반 잘라 속을 보여주며 설명을 했다.

“이거 내가 중국 여행 갔을 때 먹어본 만두인데, 몸에 좋은 오징어 먹물로 만두피를 만들고, 속에 갑오징어랑 다진고기 그리고 부추를 넣어 만든 거야.”

유난히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고 있던 준형이 만두를 하나 더 입에 넣고는 물었다.

“고기만두하고는 다른 맛이라 했더니 그게 오징어 맛이었구나. 너무 맛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부드럽지?”

“거의 으깨듯이 다져서 넣었거든.”

인우는 말없이 접시의 만두를 다 먹어 치운 준형과 다운을 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난 이 만두를 [서풍TWO]의 대표 메뉴로 하고 싶은데, 둘의 의견은 어때?”

준형은 불룩하게 나온 입안의 만두를 다 삼키고는 바로 대답했다.

“난 무조건 찬성. 당장 우리 엄마 먹게 사 가고 싶을 정도야.”

다운이 준형을 보고는 눈을 반쯤 작게 뜨고 말했다.

“아저씨 은근히 효자네요. 지난주에는 엄마랑 싸웠다고 그렇게 욕하더니.”

이준형은 무안한지 뒷머리를 긁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게 가족 아입니까?”

인우는 다운의 대답을 기다리며 쳐다봤다.

“나도 찬성이요. 그런데 만두까지 만들려면 사장님이 너무 힘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우선 만두는 당분간 한정판매 메뉴로 할 생각이야. 한 접시에 12개로 매일 20인 한정. 그날 아침에 만들어서 그날 다 팔리면 끝나는 메뉴로.”

“좋아, 그럼 내일부터 내가 한 시간 일찍 나올게. 속은 네가 만들고 만두는 둘이 같이 빚자고.”

“고맙다, 준형아. 아빠의 메뉴가 아닌 나 서인우의 첫 번째 메뉴가 될 거야. 우리 가게를 대표하는 메뉴가 될 수 있게 맛있게 만들어 보자.”

인우는 준형이 고맙고 든든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정다운이 한마디 거들었다.

“뭐 내 도움이 필요하면 나도 한 시간...”

“됐어. 직원은 조금이라도 더 자고 정해진 시간에 나와.”

인우와 준형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했다.

“어차피 집에 있어봤자 좋은 것도 없는데...”

다운은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중얼거리며 테이블을 정리했다.

그리고는 주방으로 따라 들어온 정다운이 냉장고를 열고는 물었다.

“사장님. 아까 먹은 만두 더 있어요?”

“너 아직 배 안 부르구나. 내가 바로 삶아줄게.”

“아, 누굴 돼지로 아나? 그게 아니고, 내일부터 장사하려면 벽에 사진이라도 하나 붙여놔야죠.”

“안 그래도 메뉴판 옆에 써서 붙일 생각이야.”

“아니죠. 비쥬얼 시대에 사진이 딱, 그리고 간단한 설명이 딱 있어야 광고가 되는 거라고요. 빨리 삶아서 한 접시 예쁘게 담아봐요.”

“알았어, 나중에 내가 할게.”

“음식 하기도 바쁜데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요? 매일 심심해 죽겠는데 내가 해올게요.”

인우가 먹물 만두를 예쁘게 접시에 담자, 다운은 바로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었다.

“그럼 내일 출근하면서 하나 만들어 올게요.”

인우는 주방을 나가는 다운의 뒷모습을 보며 점점 달라지는 모습이 어색하면서 고마웠다.

자기 가게가 다운에게 가치 있는 직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다음 날 정다운은 출근하자마자 큰 종이봉투에서 뭔가를 꺼내 벽에 붙였다.

어제 찍은 사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근사한 먹물만두 사진에 알록달록한 예쁜 글씨로 간단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이야, 멋진데? 너 제법이다.”

준형이 먼저 사진을 보고는 매우 만족스러운 듯이 말했다.

다운이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사진을 더 잘 붙게 꾹꾹 눌렀다.

“정다운. 내가 전부터 든 생각인데, 너 핸드폰이나 컴퓨터 다루는 데 소질이 있는 것 같아. ”

인우가 사진을 계속 쳐다보며 말했다.

“사장님이 워낙 못하는 거지, 요즘 애들 이런 거 못하는 애 없어요. 다른 애들은 공부도 하면서 같이 하는 거지만.”

표정이 어두워진 정다운이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인우는 과연 손님들이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매우 궁금해졌다.

밖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하나둘씩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부분 짜장면이나 짬뽕을 시키고, 간혹 한 두 테이블에서 요리를 주문했다.

메뉴를 보면서 옆에 붙어있는 만두 사진을 보며 한마디씩 얘기는 하는 듯 했으나 선뜻 주문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다 익숙한 걸 좋아하지. 검은색 만두라는 것 때문에 뭔가 두려움이 있을 거야.’

-당연한 거 아니냐? 나 같은 요리 인생도 네 만두 보니까 입맛이 별로던데...

인우는 주문 들어온 음식을 만들면서 동시에 큰 냄비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주문한 음식을 만들어 벨을 누르며 작은 접시에 먹물 만두를 4개 올려 같이 놓았다.

“사장님, 저 테이블 만두는 주문하지 않았는데요.”

“이건 우리 가게 대표 메뉴라고 시식해보라고 해줘.”

“아, 무슨 말인지 접수 완료입니다.”

다운은 테이블에 주문한 짜장면과 짬뽕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작은 접시에 있는 만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이건 저희 [서풍TWO]의 대표 메뉴인 몸에 좋은 오징어먹물 만두입니다. 한 번 맛보세요. 오전에 사장님이 직접 만드신 겁니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젊은 여자 둘이 각자 주문한 짜장면과 짬뽕을 앞에 두고 만두를 먼저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이런 까만색 만두는 처음이야.”

“그러게, 우리 입도 까매지는 거 아니야?”

두 여자 손님은 한번 크게 웃더니 동시에 만두를 먹었다.

만두를 넣어 불룩한 입을 오물거리던 두 여자는 동시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어머, 대박. 이거 너무 맛있다. 먹어보기 전에는 상상이 안 되는 맛이야. 이건 꼭 먹어봐야 맛을 알겠네.”

“맞아, 난 처음 먹어보는 맛인데, 너무 맛있다. 이 만두.”

다운은 손님들이 하는 말을 듣고는 주방 쪽으로 살며시 가서는 엄지를 들어 보였다.

인우는 다른 테이블에도 똑같이 만두를 시식할 수 있게 제공했다.

손님이 빠져나가고 마무리 정리를 하면서 인우가 준형과 다운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딱 1주일만 만두 시식 기간으로 하자.”

“없는 살림에 퍼주기까지.”

다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인우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까만색 만두를 익숙하게 만들 시간이 필요해. 일주일이면 충분할 거야.”

“하긴, 처음에 보기만 해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맛이었으니까요. 우리처럼 다들 맛보면 다시 찾게 되겠죠. 특히 누구처럼 중독이 될 수도 있고요.”

매일 저녁을 먹물 만두로 달라고 했던 준형의 말을 다시 떠올리며 다운이 말했다.

“네가 그 얘기 하니까 또 먹고 싶네.”

준형의 넉살에 다들 피곤한지도 모르고 환하게 웃었다.

내일은 또 [서풍TWO]의 대표 메뉴에 어떤 반응들을 보일지 기대되는 저녁이었다.

* * *

기다란 대리석 식탁에 빈틈없이 음식이 차려졌다.

“엄마, 뭘 이렇게 많이 했어?”

김서원이 자리에 앉으며 놀라 목소리가 커졌다.

“네가 얼마 만에 우리 집에서 밥 먹는 건데...독한 계집애.”

“나도 한 번 나오면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을 것 같아서 더 참고 버틴 거라고. 이제 다시는 안 나갈 거야.”

김형식이 상석에 앉자 그 옆으로 김서원과 김원상이 마주보고 앉았다.

오랜만에 집에 온 딸 옆에 바짝 붙어 앉은 김형식의 아내 이영주는 입이 귀에 걸렸다.

“너 그런데 짐은 어디 있어?”

“그건 좀 설명이 필요해서 나중에 얘기하자, 엄마. 뭐부터 공략하지? 먹고 싶었던 음식 다 있네.”

김서원이 눈동자 굴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식탁 위 잔뜩 차려진 음식들을 정신없이 살폈다.

식탁 위에 육해공이 다 모여 있었다.

유학 생활 내내 아버지 김형식이 보내준 돈으로 고생하지 않고 잘 먹고 지냈다.

하지만, 항상 엄마와 한국이 그리웠다.

친구들과 떡볶이 사 먹던 추억이 사무치게 좋았다.

오빠가 조금만 더 일을 잘해줬다면….

의지와 상관없이 길게 있어야 했던 유학 생활의 내면은 여기 있는 사람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회사는 언제부터 나올 거냐?”

김형식의 한마디가 식탁에 찬물을 끼얹었다.

가득 차려진 음식, 너무나도 먹고 싶었던 음식들이 눈앞에 있지만, 서원은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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