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화.
인우의 [서풍TWO]는 먹고 간 사람들이 하나둘씩 다시 오기 시작했다.
장을 보러 왔다가 짜장면 냄새에 들어왔다는 아주머니부터, 아빠랑 주말에 재래시장 구경하러 온 아이들까지 모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식사를 하곤 했다.
하지만 시장 초입에 있는 허름한 가게의 음식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선뜻 들어오기를 꺼리는 듯했다.
오픈 한 지 곧 한 달이 되어 가지만 아직 손님이 많지는 않았다.
“인우야, 여기 위치가 너무 안 좋고 가게가 작아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 홍보라도 해야 하나?”
준형의 말에 인우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음식 장사는 결국 맛으로 승부하는 거야, 내가 맛있게 하면 언젠가 사람들이 알고 찾아와 줄 거라고.”
“그래, 네 말이 다 맞아. 음식점은 맛으로 승부 한다는거. 그래도 어디에 이 식당이 있는지 알아야 사람들이 그 맛을 보러 오든지 할 거 아니냐?”
“어서 오세요!”
인우는 대답 대신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큰소리로 인사를 하고 주방으로 들어온 인우는 주문표가 찍히길 기다리고 있었다.
-손님 왔다.
“응, 주문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특별 요리를 해야할 것 같다.
“그게 무슨 말이야? 특별 요리?”
인우와 중식도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홀에서는 정다운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저 혹시 요리하시는 분한테 부탁을 좀 해도 될까요?”
작은 체구의 40대 아주머니가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을 하는 목이며 팔이며 워낙 가늘어 부러질 듯 앙상했다.
“잠시만요.”
다운의 말을 전해 들은 인우는 조금 전 중식도가 툭 던진 말을 생각하며 주방을 나와 아주머니한테 다가갔다.
“뭘 도와 드릴까요?”
“사실 여기 짜장면을 너무 먹어보고 싶어요. 하지만, 제가 몸이 안 좋아서 고기를 먹으면 절대 안 되는 사람이라서요. 몇 번을 망설이다 용기 내서 들어오긴 했는데...”
“고기 말고 혹시 다른 것들 주의해야 할 재료가 또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아, 사실 고기와 해물이 안 들어가면 문제없어요. 너무 무리겠죠? 해물은 먹고 약 먹으면 되기는 해요.”
인우는 자리를 일어서며 말했다.
“고기도 해물도 없이 가장 비슷하게 맛을 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주방으로 들어온 인우는 냉장고에서 두부를 꺼냈다.
“사부, 이래서 두부 꺼내 놓으라고 했던 거야? 채식 짜장면 만들어 보라고?”
-갑자기 가게에 아픈 자의 기운이 느껴졌어. 뭔가 특별한 요리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고.
“그래? 그게 전부야?”
인우가 중식도를 하염없이 노려봤다.
-너 왜 자꾸 그런 눈으로 보는데? 내가 뭐?
“설마 다 보이는 거야? 저 아주머니가 고기를 못 먹을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아냐고?”
-너 자꾸 내 능력을 의심하는데…. 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인물이라고 해두지.
“인물은 아니고...자세히 얘기 좀 해봐. 그러니까...”
-저 아픈 사람을 계속 기다리게 할거냐? 빨리 안만들고 뭐해!
“알았어. 다음에 다시 진지하게 대화를 좀 나누자고.”
인우가 두부를 물에 한 번 씻어 도마위에 올리자 중식도가 순식간에 아주 작은 정사각형 크기로 잘랐다.
“아프신 분 같아. 더 정성을 들여 만들어 보자고.”
그리고는 높은 온도의 기름에 튀겨 접시 위에 식혀 두었다.
-튀긴 두부로 고기 식감을 내는 거지. 오, 제법인데. 얘가 또 가끔 이렇게 사부의 어깨에 힘 들어가게 한단 말이야.
인우는 웍에 감자를 넣고 센 불에 휘릭 볶으며 나머지 채소들을 넣고는 볶아놓은 춘장을 넣었다.
마지막에 튀긴 두부를 넣어 불을 한번 일으켰다 꺼서 짜장면을 완성했다.
깨끗한 무순을 올리고는 직접 들고나와 손님 앞에 놓았다.
“고기나 해물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손님만을 위한 짜장면입니다.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부디 맛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아주머니의 젓가락을 든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아주 천천히 짜장면을 한 가닥씩 먹기 시작하더니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었다.
맛있다는 말을 연거푸 몇 번을 하면서 짜장면을 다 먹었다.
가는 손목으로 짜장면을 먹고 있는 아주머니가 걱정되어 주방에서 나와 지켜보고 있던 인우에게 아주머니는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이 집을 지나가는데 어렸을 때 엄마 아빠와 같이 먹었던 짜장면 냄새가 나는 거예요. 죽기 전에 꼭 한 번만 먹어보고 싶었어요. 정말 어려서 먹어본 짜장면하고 식감이 똑같아요.”
“그럼 짜장면 생각나실 때마다 자주 오세요. 손님만을 위한 특별한 짜장면을 대접해 드릴게요.”
“그런데 고기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너무 고소하고 깔끔하고 맛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주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한줄기 떨어졌다.
“늙으면 눈물이 많아져요. 내가 정말 고마워서, 주책이네.”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준형이 한마디 거들었다.“손님, 그만큼 맛있게 드셨다는 칭찬으로 받아들일게요. 앞으로 운동 삼아 자주 나오셔서 쉬고 가세요.”
아주머니는 인우와 준형의 손을 동시에 잡고 감사 인사를 여러 번 하고는 가게 문을 나섰다.
가게 문이 닫히자 정다운이 바로 테이블에 놓인 그릇을 보고는 물었다.
“사장님! 여기 고기 들어간 거 정말 아니에요? 고기처럼 생긴 게 있는데...”
“그냥 알려주면 재미없지. 다음에 만들어 줄 테니 뭔지 한 번 맞춰봐.”
다운은 계속 의심의 눈초리로 그릇에 남아있는 짜장면 소스를 쳐다봤다.
준형이 그런 다운을 향해 걸어갔다.
“인우 저놈은 아니면 아니지 절대 누굴 속일 사람은 아니야.”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요.”
다운의 차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내말은...”
“난 그저 신기해서 그래요. 우리 엄마도 채식주의자인데...”
말을 하던 다운이 순간 잠시 나간 정신이 돌아온 사람처럼 고개를 세차게 흔들더니 입을 닫아버렸다.
“그런데, 다운 씨 어머니가 뭐?”
“아니에요.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쟁반에 담은 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쌩 사라지는 다운의 어깨가 축 가라앉아 보였다.
5시가 넘어가면서 하나둘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녁 장사도 신나게 해보자고. 자 파이팅!”
인우가 큰소리로 외쳤다.
“사장님은 항상 파이팅 넘치시네요.”
신기한 동물 구경하는 듯 쳐다보고 있던 정다운이 한마디 했다.
“그런데, 사장님. 이렇게 손님이 없어서 저하고 한 약속 지키실 수 있겠어요?”
“야, 직원이 지금 사장 걱정해주는 거냐?”
정다운은 바닥을 발로 툭툭 차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니, 음식은 진짜 끝내주게 맛있는데, 여기 가게도 너무 구리고 작고, 무엇보다 오가는 사람이 너무 없어요.”
“아무래도 시장하고도 좀 거리가 있고, 외진 곳이라서 사람이 많지는 않지.”
“아니 그걸 알고 여길 계약했어요?”
그동안 가장 큰 변화는 여전히 까칠하기는 하지만 정다운의 말이 점점 길어진다는 거였다.
아무 표정 변화 없이 일만 하던 다운이 3주가 넘어가면서 조금씩 가게에 관심을 보이며 질문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맛있는 집 있으면 차 타고 1시간 이상을 가서도 먹지? 안 그래?”
“그렇죠, 텔레비전에서 보면 친구들하고 지방까지도 가서 먹고 오긴 하더라고요.”
“흠. 나도 그런 맛집으로 만들 거야.”
“아니 사장님, 감이 이렇게 없어서야.”
“뭐? 어쭈?”
“그럼 내가 소문을 좀 내줄게요. 우리 사장님이 워낙 멍청할 정도로 성실해서 내가 답답해서 그냥 못 있겠다고요. 그래서 크게 인심 한번 쓰겠다고요.”
다운이 얘기를 하는 지금 준형은 인우보다 더 놀라 말문이 막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듣고만 있다 한마디 툭 뱉었다.
“너 뭐 밖에 나가서 춤이라도 출래?”
“아저씨, 혹시 40대야? 딱 2주일만 기다려 보셔, 가게에 자리가 없을 거니까.”
준형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인우는 사장님인데 나는 그동안 한 번도 부르지 않더니 왜 아저씨야? 나랑 인우랑 동갑이고 동업이야. 설명 못 들었어?”
“됐고요. 난 말만 앞서는 사람 딱 질색이니까 이주일 후에 보여줄게요. 그때 다시 얘기해요.”
“그래. 난 다시 주방 들어간다.”
인우는 주방으로 들어가고, 다운은 테이블을 닦고 있는 동안 준형 혼자 그 자리에 굳은 듯 서서 볼을 실룩거리고 있었다.
‘이건 분명 차별이야. 성차별이나 학벌 차별보다 더 기분 나쁜 외모 차별. 내가 인우보다 빠지는 게 뭐가 있어?’
그런 생각이 짧게 스치자 누구도 한마디 안 했지만, 준형 혼자 결론을 내렸는지 시선을 주방으로 향했다.
‘내가 외모는 좀 빠지지. 그거 말고 뭐, 뭐가 빠지냐고? 키? 내가 조금 작기는 하지만, 나는 평균 키고 저놈이 쓸데없이 큰 거고...능력?...에휴..’
준형은 거기까지 생각하다 정수기로 냉수를 가득 따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날부터 정다운은 인우가 요리를 만들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가게에서 식사하는 여학생들이 사진을 찍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인우는 그럴 때마다 여행 가서 맛있는 음식이나 예쁜 케이크를 보면 사진을 찍어 저장하던 엄마가 생각났다.
정다운이 예언이라도 한 것처럼 2주가 채 되지 않아서부터 점심 저녁 식사 시간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친구의 소개로 와봤다는 사람부터 인터넷을 보고 궁금해서 왔다는 사람들까지 그 덕분에 가게는 시장보다 더 시장통같이 바쁜 날들이 많아졌다.
* * *
인우의 [서풍TWO]에 대한 얘기는 같은 마포에 자리하고 있는 [만가복] 김원상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거기가 서인우가 차린 [서풍]이라는 거야?”
김원상은 직원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뚜렷하게 들리는 [서풍]이라는 단어에 지나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섰다.
“그게 무슨 얘기지?”
큰 소리로 호들갑을 떨며 말하던 남자 직원이 화들짝 놀라며 급하게 입을 닫았다.
“자세히 얘기해봐!”
잠시 눈치를 보던 직원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장 아래쪽에 허름한 짜장면집이 하나 생겼는데, 이름이 [서풍TWO] 라고 해서요. 주말에 친구랑 가봤는데, 친구가 이전 [서풍]하고 똑같은 맛이 난다고...”
김원상은 얘기를 들으며 어금니에 힘을 주고 있었다.
“그래서 먹어보니 어떤데?”
직원은 난처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서 있었다.
“동종업이잖아? 솔직하게 말을 해보라고.”
“솔직히 저는 너무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다음 주말에 부모님 모시고 가기로 했거든요.”
주방 안에서 저녁 장사 준비를 하고 있던 차은석 셰프의 이마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서풍]이라고...?’
주방을 의식한 김원상이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알았으니까 다들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들 가지.”
김원상은 직원들에게 주의하라고 경고하고는 가게 밖으로 나왔다.
‘내가 가보면 알겠지. 정말 서인우 그자가 하는 건지... 누군가 그 자인 척 흉내를 내고 있는건지....’
이미 요리경연 대회를 통해 서인우가 [서풍]의 맛을 완벽하게 내고 있다는 건 인정받았었다.
김원상만이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뿐...
같이 긴장하고 경연하느라 막상 그가 만든 요리를 먹어보지는 못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고? 그걸 왜 몰랐지?’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었다.
무려 상금이 1억이었다.
게다가 엄청난 시청률을 보인 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으니, 이 블록이나, 강남 같은 곳에 이름만 내걸어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텐데...
조금 전 직원이 말한 시장 초입이라는 위치와 허름한 가게라는 말에 김원상은 분명 누군가가 방송을 보고 서인우 이름을 도용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이것도 유명세인가? 만약 그렇다면 서인우 너는 지금 어디서 뭐하고 있는거냐?’
갑자기 대회 끝나고 친근하게 다가와 말을 걸었던 서인우의 깊고 맑은 눈이 떠올라 기분이 확 상해버렸다.
‘당장 가서 내 눈으로 확인해봐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