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46화 (46/200)

제46화.

낮지만 강하고 위엄있는 호통 소리에 놀라 뒤돌아본 곳에는 언제 왔는지 아버지 김형식이 주방 쪽을 매섭게 노려보며 서 있었다.

“회, 회장님.”

오승연 매니저가 제일 먼저 달려갔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오셨네요. 새로운 메뉴 시식하고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뭘 해? 평가? 감히 너희들이 누구 요리를 평가해?”

“아버지.”

김원상이 재빨리 달려가며 말을 막았다.

“저랑 얘기하시죠.”

“여기 점장은 이미 경연대회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셰프야. 그 요리에 감히 누가 말을 덧붙여? 무슨 자격으로?”

목청을 높이는 이유가 정말 저것 때문일까?

지금 아버지는 누구한테 화를 내는 걸까?

다시 작은 음성으로 직원들에게 한마디 더 한 김형식이 김원상을 흘낏 노려보고는 주방을 나갔다.

급하게 뒤쫓아 온 김원상은 건물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아버지의 매서운 표정을 보고 또 잔뜩 주눅이 들었다.

“모자란 놈. 어디서 레시피를 다 공개해?”

“내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들입니다. 손님들이 내가 만든 요리를 찾는다고 해서 알려준 것뿐이라고요.”

“방송 보고 너도나도 찾는다니까 얼씨구나 춤이라도 추고 싶어? 덜떨어진 놈 같으니라고.”

“도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여전히 아버지의 눈빛에 심장이 쫄렸지만, 용기 내 눈을 쳐다보며 물었다.

“몰라서 물어? 가장 문제는 모자란 네 놈이지. 이정복 셰프 수제자라는 저놈 앞에서 자신의 비밀병기를 숨길 줄도 모르고 다 까발리는 생각 없는 놈.”

“아버지! 그만 하세요. 오늘 회의를 통해 정식 메뉴로 만들어 팔아볼 생각입니다. 그러려면 레시피를 다 공개해줘야 하고요.”

“그래서 너는 안된다는 거야. 최소한 양념 정도는 네가 만들어와서 그대로 하라고 했어야지. 어디다 팔아먹을지 알고.”

“제발 그만 하세요!”

김원상이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 낮춰! 위엄있게 행동하라고!”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쉰 김원상이 흥분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여긴 왜 오신 겁니까?”

“마영준한테 다녀왔으면 보고가 있어야 할 것 아니야? 놀러 갔다 왔어?”

“내일 회사로 찾아뵙겠습니다. 오늘은 돌아가세요.”

마지막으로 레이저를 한 번 더 쏘아낸 김형식이 혀를 차고는 주차장으로 뒤돌아 사라졌다.

쪽팔렸다.

이 나이 돼서 아버지한테 욕먹고 소리 듣는 거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직원들이 감히 아들의 음식을 평가한다고 윽박지르는 소리를 믿지 못하는 자신이 쪽팔렸다.

그 말속에 어떤 진실도 들어있지 않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잠시 숨을 돌린 후 다시 들어간 가게 분위기는 조금 전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김원상의 눈치를 슬슬 보다 눈이 딱 마주친 오승연이 어색하게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를 따라 들어간 김원상이 일부러 목소리를 더 밝게 내며 물었다.

“이제 결론을 내야죠? 먼저 이 요리 메뉴명을 뭐라고 하면 좋겠습니까?”

누구도 선뜻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냥 갈비밥 이라고 하기엔 너무 특색이 없지 않나요?”

김원상이 한 번 더 묻자 차은석이 대답했다.

“[만가복] 특선 갈비밥 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그거 좋은 거 같아요. 전 찬성에 한 표.”

오승연이 밝게 웃으며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좌 차은석 우 오승연을 바쁘게 쳐다보던 김지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좋습니다. 찬성이요.”

“그럼 [만가복] 특선 갈비밥으로 결정하죠. 다른 육류 메뉴와 잘 비교해서 가격도 정하면 될 것 같습니다.”

김원상이 상황을 정리하듯 말하고 주방을 막 빠져나가자, 차은석이 슬며시 다가와 물었다.

“문제 없겠습니까?”

“뭐가...우리 아버지 말입니까?”

“조금 전 분위기가 영 안좋던데요. 전 욕먹어 가면서 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차은석의 눈을 빤히 쳐다보던 김원상이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이 회사 [만가복]은 물론 회장님 꺼지만, 우리가 일하는 여기 이곳 마포점은 내가 책임집니다.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세요.”

“쓸 데 없는 걱정 맞습니까? 이 일로 저도... 아닙니다.”

차은석이 뭔가 말을 하려고 하다 급히 입을 닫았다.

“뭔데요? 지난번부터 뭔가 하고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속 시원히 말해봐요.”

“전에도 말했지만, 난 독립해서 내 가게를 열 때까지는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거나 무슨 변화를 주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개발? 변화?

왜 요구한 것도 아닌데 먼저 저런 소리를 하는 거지?

도대체 무엇을 겁내고 있는 거야?

“이 가게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메뉴에 변화를 주면 좋은 일 아닙니까? 그런데 왜 차셰프는 하지 않겠다는 말입니까?”

“그랬다가 나도 마셰프님처럼 될 거 아닙니까?”

“마셰프요? 누구...혹시 마영준 셰프 말하는 건가요?”

“대회 심사위원이었으니까 잘 아실 것 아닙니까? 전에 회장님 아래서 일했었던 사실도 아실 거고요.”

그랬다.

서울에서 처음 일한 곳이 [만가복]이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최근 들어 아버지 김형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도 짐작해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차은석이 왜 마영준을 얘기하면서 겁을 내고 있는 걸까?

김원상은 지금 상황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마셰프님은 정말 요리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어요. 밤낮으로 새로운 메뉴를 개발한다고 공부도 많이 했단 말입니다.”

“그런데요?”

차은석의 눈이 불안하게 살짝 흔들리더니 이내 차분히 가라앉았다.

“지금 [만가복] 인기 메뉴 중 하나인 크림 새우를 제일 먼저 만든 사람이 마영준 셰프입니다.”

“네? 그건 아버지, 아니 회장님이….”

4년인가, 5년 전쯤에 아버지가 새로운 메뉴를 개발했다고 서울 5대 지점에 있는 점장들과 셰프들을 불러 요리를 직접 시범해 보인 걸 똑똑히 기억한다.

그해 바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방송에까지 나왔었다.

“차 셰프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마영준 셰프가 제 고등학교 선배님입니다. 그때 마셰프님 매일 술만 마시고 거의 폐인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아버지가 그 요리를 어떻게 생각해 냈는지부터 다른 지점 셰프들에게 가르치는 모습까지 다 방송에도 나갔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차은석이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셰프님이 모든 과정을 다 알려줬으니까요. 물론 그 이후로 독립해서 지금 잘나가니까 전화위복이 됐다고 봐야 하는 건가?”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던 차은석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주방으로 향했다.

담배 끊은 지 2년 됐다는데 뭘 찾는지 알 것 같은 표정이었다.

마영준과 아버지 김형식 사이에 아무래도 더 깊고 추악한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김원상은 엉뚱하게 한 번도 피워본 적 없는 담배 맛이 궁금해졌다.

* * *

이준형과 함께 가게에 나타난 얼굴은 바로 박정원이었다.

서인우는 반가운 마음에 곧장 뛰어나갔다.

“안녕하세요. 박정원 심사위원님.”

“잘 지냈어요? 대회도 끝났는데 아직도 그렇게 부르네. 편하게 불러.”

“네? 뭐라고 불러야 할지...”

“선배님이 좋겠네.”

마치 자기 가게인양 의자를 빼서 편하게 앉은 박정원 요리 전문가겸 사업가가 가게를 유심히 살폈다.

“이렇게 일찍 어떻게 오셨어요? 아니, 여기 가게는 또 어떻게 아셨구요?”

인우가 박정원과 같이 들어온 준형에게 어떻게 된 건지 얼른 답을 내놓으라는 눈빛을 보냈다.

“어제 쉬는 날이어서 내가 연락드렸었어. 네 가게 위치도 알려드릴 겸 해서.”

“여기 이 시간에 오면 공짜 밥에 서인우표 핸드드립 커피까지 얻어 마실 수 있다고 해서 왔는데? 밥 안 줘? 나 아무것도 안 먹고 와서 배고파.”

당황한 인우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자 박정원이 트레이드 마크 같은 장난기 섞인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설마 여기 한솥밥 먹는 식구한테만 제공되는 건 아니지?”

“그럼요. 아, 여기 우리 [서풍TWO] 직원 1호 정다운 씨입니다.”

“안녕하세요. 인사가 늦었네. 난 공짜 밥 먹으러 온 박정원입니다.”

다운의 표정을 보니 박정원을 이미 알아본 눈치였다.

하긴 한때 텔레비전을 틀면 거의 매일 보였던 사람이니 모를 리가 없겠지.

방송으로만 보던 사람이 눈앞에 있는 게 믿기지 않는 건지, 낯가림 심한 성격에 쑥스러운 건지 다운이 고개를 어색하게 숙여 보였다.

“안녕하세요. 정다운입니다.”

“이름 정말 이쁘고 정답네.”

그 말에 준형이 또 웃음이 터지려는 걸 혀 깨물며 참고 있었다.

주방에 들어온 인우는 원래 하려던 달걀 볶음밥에 곁들여 먹을 청경채 버섯볶음을 준비했다.

“사부, 오늘 특별히 더 맛있게 해야겠는데...”

-난 항상 같은 맛, 같은 모양이지. 그게 나의 매력이라고나 할까?

청경채를 깨끗이 씻어 큰 건 반으로 가르고 작은 건 그대로 준비해놓고, 표고버섯을 썰었다.

뜨거운 물에 청경채와 표고버섯을 살짝 데친 후 건져 웍에 기름을 넣고 다진 마늘을 넣어 볶았다.

그리고는 청경채를 넣고 소금, 설탕으로 간을 하고 전분물을 넣어 마무리 해 접시에 담았다.

웍에 다시 기름을 넣고 굴소스를 타지 않게 잘 볶은 후에 표고버섯을 넣고 똑같이 간하고 전분물을 넣어 윤기 나게 볶았다.

노릇노릇하게 볶은 달걀 볶음밥과 윤기 나는 청경채 버섯볶음을 담고 있는데, 정다운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이거 내가면 되는 건가요?”

아무래도 그들과 섞여 있기 불편했겠지….

마지막에 넣은 참기름향이 식욕을 자극하는 볶음밥 네 개를 쟁반에 담은 다운이 먼저 나가고 인우가 따라 나갔다.

“저희 아침은 그냥 간단히 먹습니다. 다음에 저녁에 오시면 제대로 요리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나 바쁜 사람이야. 사실 오늘도 이거 먹고 바로 지방 내려가야 해서 일찍 움직인 거라고.”

박정원은 고소한 달걀 볶음밥에 짭조름한 청경채와 버섯볶음을 올리며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

“이 간단한 요리도 누가 했느냐에 따라 감칠맛이 참 달라. 역시 고수가 만들어서 그런지 맛있네.”

별거 아닌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어 보인 박정원이 인우를 쳐다봤다.

“커피 마시면서 우리 사업 얘기 좀 해야지? 동업자인지 매니저인지 철저히 믿을 만하던데?”

준형이 배시시 웃어 보였다.

어제 쉬는 날 연락을 했었다는 건 인우가 알고 있는 준형이라면 먼저 가능성을 따져보고 내린 결정일 것이다.

새로 산 원두로 커피를 내려가자 정다운이 눈치껏 다른 곳으로 자리를 피했다.

그곳에서 혼자 커피를 홀짝이며 냅킨을 접기 시작했다.

“어제 자네 동업자 말로는 앞으로 점점 가게가 바빠질 거라고 하더군. 그래서 지금 시간 있을 때 사업 관련 얘기를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딱 한 가지 조건만 맞춰 주실 수 있다면, 선생님 아니 선배님께 레시피를 전부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

“[서풍]이름을 걸고 싶다는 것 말이지?”

“네, 선배님 이름과 [서풍] 이름이 같이 걸리는 콜라보 형식이면 좋겠습니다.”

박정원이 생각하고 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서인우씨는 레시피를 제공하고, 난 자본을 들여 제작하도록 하지. 상품이 만들어지면 먼저 우리 둘 가게에서 판매를 시작하도록 해보자고.”

조용히 듣고 있던 준형이 박정원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달싹이고 있었다.

“편하게 말해. 수익을 어떻게 나누는지가 궁금한 거지?”

“솔직히 말씀드려서 자본을 선생님이 다 내시면 그 수익을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아서요.”

“이럴 때는 두 가지야. 내가 서인우 씨한테 돈을 주고 레시피를 사거나, 아니면 판매 수입의 일정 지분을 서인우 씨가 갖게 되거나.”

박정원과 이준형이 동시에 서인우를 바라봤다.

선택하라는 의미일 거다.

“그 둘 중 하나로 제가 선택을 해도 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지금 이 계약에서는 서인우 씨가 갑이야.”

인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저는 선배님의 명성과 사업 노하우를 믿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수입의 일정 지분을 선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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