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김원상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어두워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마영준이 방금 완성한 쪽갈비 스테이크 덮밥을 들고 가까이 다가갔다.
“이거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이 시켰는데? 음식을 먹으러 온 건지, 맛보러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배도 고팠고, 셰프님 음식 꼭 먹어보고 싶었습니다.”
김원상은 애써 태연한 척 대답했다.
“워낙 유명해서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맛있습니다. 탕수육에 치즈를 올린다는 발상이 정말 대단합니다.”
“한참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 때 만든 요리입니다. 카레에 초콜릿, 심지어 과일 쨈까지 찍어 먹어봤으니까요.”
“그 도전정신 많이 배워야겠습니다.”
마영준이 김원상의 눈을 말없이 쳐다봤다.
금방 거둘 거라는 예상과 달리 한참을 쳐다보고 있던 그가 의자를 살짝 빼며 물었다.
“잠시 앉아도 되겠습니까?”
“안 그래도 저도 시간 좀 내주십사 부탁하려던 참입니다. 우선 요 맛있게 생긴 갈비 한 쪽 뜯겠습니다.”
“그럼 맛보고 있어요. 난 마실 것 좀 내오겠습니다.”
마영준이 뒤돌아서자 갈색으로 윤기가 자르르한 갈비를 한 점 들어 입에 넣었다.
단짠의 매력, 그걸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맛이었다.
고기는 질기지 않아서 먹기 편했고, 약간 짭조름한 간이 밥과 어우러져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저 잘난 척만 하는 사림인 줄 알았는데, 이런 실력을 갖추고 있을 줄이야….’
단순히 근래 들어 유명해진 반짝스타라고 생각했다.
부러울 정도로 맛있는 요리를 먹으니 자기도 모르게 짜증이 올라왔다.
‘나한테 이 맛을 낼 수 있냐고? 못할 것도 없지. 혹시, [만가복]에서 여기 메뉴들을 염탐해 그대로 올리자는 걸까?’
순간 자존심이 상한 듯한 김원상이 주변을 의식하며 일그러진 표정을 다시 바로 잡았다.
양념을 살짝 얹어 밥을 크게 떠 한 숟가락 입에 넣고 오물거리고 있는데, 마영준이 연한 노란빛이 드는 음료를 두 잔 가지고 나왔다.
“내가 직접 만든 레몬청이 들어간 레모네이드입니다. 느끼함을 좀 없애줄 거예요.”
“감사합니다. 느끼하지 않고 아주 맛있어요. 욕심 같아서는 다 먹고 싶은데, 내 위장에 한계가 왔나 봅니다.”
“그럼 이제 본론을 말해봐요.”
“네?”
갑작스러운 마영준의 말에 놀란 김원상이 마시던 레모네이드를 내려놓고 그의 눈을 빤히 쳐다봤다.
“대회가 끝나자마자 나를 찾은 이유가 단지 내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서리라고 생각이 들지는 않아서요.”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마영준이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셰프님 요리 먹어보니 얼마나 이 일을 좋아하고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마영준이 대답 대신 웃어보였다.
“그런데, 지난번 경연대회에서 내 요리에 계속 만점을 주셨죠?”
“그랬죠. 그게 뭐 문제가 되나?”
“최종 우승을 차지한 서인우 참가자의 요리에 낮은 점수를 준 이유를 묻는 게 차라리 낫겠네요.”
“서인우가 본인의 실력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김원상이 기분 나쁜 감정을 드러내며 쳐다봤다.
“난 내 요리에 자부심도 있고 대회 내내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인정하기 싫어도 서인우가 남다르긴 했죠. 안 그렇습니까?”
“그런 실력을 갖추고 있는 자한테 왜 나만 낮은 점수를 줬을까? 그게 궁금해서 찾아왔다?”
대답을 바라고 물었던 건 아니었나 보다.
마영준의 다음 말이 바로 이어졌다.
“김원상씨는 왜 대회에 참가했습니까? 이미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아는 최고의 중식당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부자가 제일 받고 싶은 선물이 돈이라지 않습니까? 지금 자리에 안주해 있지 않고, 더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누가요? 당신... 아니면, 아버지 김형식 회장?”
뜻밖에 아버지 이름이 튀어나오자 김원상은 더 확신이 생겼다.
마영준한테 뭔가 있다는 확신.
“갑자기 아버지 이름이 왜 나오는 겁니까? 우리 아버지를 잘 아십니까?”
“웍좀 만진다는 사람이 [만가복] 회장님을 모른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닙니까?”
“개인적인 관계를 묻는 겁니다. 셰프님 처음 시작이 [만가복] 아니었나요?”
살짝 놀란 듯한 마영준이 김원상의 눈을 쳐다봤다.
“생각보다 나한테 관심이 많았나 보네. 1년 좀 넘게 김형식 회장 밑에서 일했었지.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다시 시작했고….”
김원상이 말을 자르며 물었다.
“결승전을 앞두고 나한테 다른 사람이 우승하게 놔둘 것 같진 않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이제 대회도 끝났으니,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듣고 싶습니다.”
“이미 짐작하고 있는 거 아닌가? 아니면, 처음부터 둘이 계획했던 거였나?”
“답답하게 자꾸 말 돌리지 말고 시원하게 얘기해주세요. 아버지 맞습니까? 그래서, 셰프님도 점수를 일부러 차이 나게 준거냐고요?”
화가 난 듯 씩씩거리는 김원상을 말없이 바라보던 마영준이 레모네이드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숨이 막힐듯한 정적 속에서 너무나도 태연하게 음료수를 마시는 마영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을 알면 뭐가 달라지나? 당신도 나도 그냥 김형식 손바닥에서 조종당하는 장난감인 거라고. 우리 둘 다 욕심을 버리지 못해 이 꼴을 당하고 있는 거지.”“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세한 건 아버지한테 가서 직접 들어요. 내가 해줄 수 있는 얘기는 지금 당신이 짐작하고 있는게 틀리지 않을거라는 것 정도.”
말을 마친 마영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오라는 인사는 못 하겠군. 남은 음식 포장해 가든지…. 그럼 난 들어가서 일해야겠습니다.”
뒤돌아선 마영준의 고개가 힘없이 떨어져 있었다.
그의 뒷모습을 보고 어릴 적 가지고 놀다 떨어져 고개가 부러진 로봇 장난감이 왜 떠올랐을까?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면 똑같은 느낌을 받겠지?’
긴 한숨이 테이블 위에 안개처럼 깔리기 시작했다.
* * *
유독 앳돼 보이는 하얀 얼굴에 안경을 쓰고 있어도 코가 오뚝한 게 눈에 띄는 비쩍 마른 여자가 가게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저...여기...서인우...”
쭈뼛거리며 들어온 앳된 여자는 유일하게 아는 얼굴인 인우가 아닌 다른 사람이 다가오자 살짝 당황한 듯 보였다.
“여기 사장님 찾아오셨어요?”
인우 이모 딸 지영이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주방에서 잠시 나와 있던 인우가 홀 쪽을 향해 걸어왔다.
“면접 보러 왔죠? 여기 앉아요.”
여자는 그대로 선 채 가게를 휙 둘러보고 서 있는 지영과 준형을 번갈아 살폈다.
“이 콧구멍만 한 가게에 사람이 네 명이나 필요한가요? 아니면, 이미 직원을 다 뽑은 건가요?”
“여기 있는 사람은 직원 뽑을 때까지 잠시 도와주는 겁니다. 그쪽..아, 이름이 뭡니까?”
그제야 가방에서 이력서를 꺼내 내민 여자가 뭔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의자를 빼 앉았다.
카운터 쪽으로 돌아간 지영을 쫓아 바싹 붙은 준형이 작게 말했다.
“인우를 아는 눈치죠? 뭐지? 무슨 사이지?”
“궁금하면 옆에 앉아서 면접 보세요. 어차피 동업인데...”
“그렇긴 하지만, 저 놈이 먼저 보고 합격하면 내가 2차로다가...”
“저 사람 말대로 콧구멍 만한 가게에서 무슨 면접을 2차까지 봐요? 그냥 옆에서 대충 주워듣던지...”
“그래도 내가 공동대표인데, 주워들으라는 말은 좀...”
지영이 신경도 안 쓴다는 듯 카운터 위를 정리했다.
‘치울 것도 없구만 맨날 치우고 있냐?’
입을 삐죽거린 준형이 방금 한 말이 무색하게 슬그머니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그쪽이 사장님 맞긴 맞아요?”
“제가 여기 공동대표로 있는 사람입니다. 이준형이라고...”
준형의 말엔 관심도 없다는 듯이 눈길한번 주지 않던 여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직원 조건이 뭔가요? 그리고, 페이는 얼마나 줄 수 있어요?”
“전에 말한 것처럼 열심히 해주면 됩니다. 무엇보다 진심으로 일해주면 다른 조건 없습니다. 페이는 이제 막 오픈해서 많이는 못 드려요. 대신 6개월 후 두 배로 줄 자신 있습니다.”
여자가 눈썹을 찡그리며 인상을 썼다.
“6개월 후에 두 배를 준다고요? 그걸 어떻게 장담해요? 완전 사기꾼이네.”
여자의 말에 꿈틀거리는 준형을 보고 잠시 눈을 마주친 인우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내 말이 맞나, 안 맞나 확인한다는 생각으로 한번 일해보면 어때요? 손해 볼 건 없는 것 같은데...정다운씨?”
“푸흡!”
옆에 서 있던 준형이 터진 웃음을 막기 위해 입을 틀어막았다.
“이 아저씨도 계속 같이 일하는 건가요?”
정다운의 노골적으로 화난 듯한 눈빛에 꼬리를 내린 준형이 슬그머니 카운터 쪽으로 옮겨갔다.
그곳에서도 반갑지 않은 눈으로 노려보는 지영의 눈을 보고 어디로 가야할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좋아요. 내가 사장님 그 눈빛을 보고 한 번 믿어보죠. 언제부터 출근하면 되나요?”
“명찰이랑 앞치마 제작해 놓을 테니까 다음 주부터 정식 출근하는 걸로 합시다. 그 전에 하루 나와서 인수·인계받도록 하고요.”
“휴무일은 언제인가요?”
“매주 월요일 휴무입니다. 주말 중에 하루 나와서 인수·인계받고, 화요일부터 출근하면 됩니다. 주말에 오면 정식 계약서 작성하도록 합시다.”
정다운이 일어서며 다시 물었다.
“여기 사장님이 샀어요? 아니면 월세?”
“아직은 월세입니다.”
“아직은? 좋아요. 계약서에 6개월 후 두 배 월급 꼭 명시해주세요. 그럼 주말에 다시 오겠습니다.”
가게 내부를 다시 한번 둘러본 정다운이 가게 문을 열고 사라지자 준형이 인우의 팔을 잡아끌어 의자에 앉혔다.
“뭐냐?”
“뭐가?”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너를 아는 것 같던데?”
“우연히 알게 됐어. 정다운 씨는 일자리 구하고, 나는 사람을 구하고 있어서 내 이름하고 핸드폰 번호 적어서 줬거든.”
준형이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인우를 쳐다봤다.
“그게 다야? 설마 지나가다 한 번 보고 지금 면접 통과를 말한 거냐?”
“열심히 한다고 했고, 난 일할 사람이 필요하고... 더 뭐가 있어야 하는데?”
“아니, 그래도…. 몇 명 면접 보고 골라도 되지 않나 싶어서.... 또, 애가 눈빛이 싸나워. 쌈닭 같은 표정하고 너무 언발란스한 이름 때문에 내가 빵터졌잖아.”
옆에서 듣고 있던 지영이 인우 옆에 앉아 이력서를 꼼꼼하게 살폈다.
“어려 보인다 했더니, 이제 스무살이네? 눈이 싸나워 보이면서 좀 슬퍼 보이더라. 저런 애가 성질이 있어서 일도 잘해. 내가 주말에 잘 가르쳐 볼게.”
“그래, 주말까지만 수고해줘.”
말을 마친 인우가 주방으로 들어가자 준형이 쪼르르 그 뒤를 따랐다.
“너 자꾸 내 영역에 들어올래?”
“아무래도 지영씨 가고 더 무서운 애가 들어오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 더 면접 볼 생각 없냐?”
“없다.”
“나는 결정권 없냐?”
“다음 직원은 네가 뽑아, 됐지?”
인우가 다시 저녁 장사를 위해 양파와 양배추 등을 준비하고 있었다.
“잠깐 얘기 좀 해.”
“지금?”
준형이 뭔가 말을 하려 할 때 홀에 손님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영업 끝나고 얘기하자. 얼른 준비해.”
인우는 준형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잠시 궁금해하다 바로 채소 손질을 시작했다.
-듣자 하니 직원을 새로 뽑은 거 같은데?
“응, 다음 주부터 출근하기로 했어.”
-예쁘냐?
“몰라, 어린 애야. 열심히 한다고 했어.”
-넌 늙은 애냐? 그래서 예쁘냐고?
“그게 뭐가 중요한데? 일만 잘하면 되는 거지.”
-너 여자들 많이 가는 카페나 술집에 왜 잘생긴 남자알바를 쓰는지 몰라서 그래? 이게 시너지 효과라는 건데...
“주문이 들어왔나?”
-어쭈. 내 말 씹냐?
인우는 지영이 걸어놓은 주문지를 보고는 웍에 화력을 최고로 하여 해물과 채소를 볶았다.
칼칼한 맛이 일품인 백짬뽕을 만들어 벨을 누르려던 인우의 눈에 흐뭇한 표정으로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